딸기네 책방

브레진스키, 'THE SECOND CHANCE'

딸기21 2008. 7. 1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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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COND CHANCE

Zbignew Brezinski. Basic Books 



<거대한 체스판>, <제국의 선택>이 미국의 세계전략을 포괄적으로 다룬 것들임에 반해 이 책은 포인트를 좀 달리하고 있다. 조지 H 부시-빌 클린턴-조지 W 부시라는 세 명의 ‘냉전 이후 미국 지도자’들을 꼭꼭 씹으면서 대상으로 공과를 평가하고, 앞으로 미국의 대외정책은 어디에 중점을 둬야할지를 짚어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책은 작년에 출간됐는데, 미국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읽을 만 하다. 브레진스키 특유의 ‘큰 틀’에다가, 제법 재미난 인물평까지 담겨 있으니. 저자는 부시1과 클린턴과 부시2를 각각 ‘글로벌 리더 1, 2, 3’이라고 부르는데, 뭐 거부감 가지고 볼 필요는 없다. 냉전 끝난 뒤 세계를 쥐락펴락했던 인물들인 것은 분명하니까. 


재미난 것은 부시1에 대한 높은 평가였다. 하와이 동서센터에 있는 모씨와 얘기하다가 의외로 부시1의 외교적 소양을 높이 평가하는 것을 보고 놀랐었는데(이 사람은 오바마 골수 지지자다), 미국 외교가에선 이것이 중평인지도 모르겠다. 민주당 외교안보 원로인 브레진스키도 부시1을 높게 치는 것을 보면. 


요는, 부시1은 냉전 끝난 뒤 복잡다단한 세상에 ‘폭발’하지 않도록 관리자 노릇을 충실히 잘 했다는 것이다. 책에는 부시1 시절 일어났던 국제정치의 주요 사건들이 쭉 나열돼 있는데, 이 목록들만 봐도 정말 어질어질하다. 시대가 하수상했던지라. 

 

나는 부시1 이라고 하면 걸프전 밖에는 기억이 안 난다. 부시1은 걸프전을 통해 미국이 세계의 주인임을 각인시켰다, 라고 브레진스키는 말한다. 그게 사실인지도 모르겠다(그러나 이 전쟁을 통해 부시1은 미국이 제멋대로 깡패라는 사실도 세계에 각인시켰다). 부시1은 과도기를 관리하는 역할을 잘 해냈지만, 그에겐 비전이 없었다. 그게 가장 큰 실패요인이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클린턴은 집권 1기 때에는 외교에 아무 관심이 없었고, 2기 때에는 ‘세계화’라는 말로 다 해 먹었다. 신문쟁이들 표현을 빌자면 ‘제목 장사’에서는 클린턴을 따라갈 자가 없었던 셈이다. 이것은 대단한 정치감각이다! 그러나 또한 공허하다. 글로벌리더3, 부시2의 경우는- 별로 요약·정리할 필요도 없겠다. 이자가 왜 십자군의 사도가 되어 지구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는지가 불가사의할 뿐이다.


세 명의 지도자 밑에서 백악관 외교안보 정책 결정과정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설명한 부분은 아주 재미있었다. 요약하면 부시1은 워낙 외교 전문가였기 때문에 대통령이 외교안보라인에 좌~악 지시를 내리는 스타일이었다. 백악관 외교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 국방장관은 주로 대통령 뜻에 따랐다. 반면 클린턴은 외교엔 무지했기 때문에 수하들에게 맡겼다. “아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백악관 외교안보회의를 들여다봤으면 누가 대통령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클린턴 때에는 외교안보라인의 목소리가 컸었다. 


부시2는 집권 이듬해에 9·11이 일어나자 머리가 확 돌아버렸는지(물론 이것은 브레진스키의 표현은 아니다) 갑자기 도덕주의(지랄염병) 확신범이 되어 내치보다 외치에 집중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부시2 집권 기간 외교정책 주도권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했다. 능구렁이 체니와 럼즈펠드는 목소리가 컸고, 파월과 라이스는 제 몫을 못 했다. 


“글로벌리더1은 경험 많고 능숙한 외교관이었지만, 역사의 전환기를 맞아 과감히 비전을 보여주지를 못했다. 글로벌리더2는 명민하고 미래지향적이었으나 미국의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전략적 일관성이 부족했다. 글로벌리더3은 내면에서 우러나온 강력한 본능(strong gut instincts)을 갖고 있었지만 세계가 얼마나 복잡한지를 몰랐고 쉽게 도그마에 빠졌다.”


그리하여, 브레진스키가 매긴 세 지도자 최종 성적표는: 


(부시2, 너는 F학점이라구!)


더 중요한 것은, 앞으로 미국이 무얼 어떻게 해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겠다. 브레진스키는 미국의 파워를 영원무궁토록 유지하기 위해(물론 이런 표현은 안 쓴다, 왜냐하면 이 자는 현실주의자이니까) 다음번 대통령이 뭘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서도 충고를 잊지 않는다. 미국을 위해서, 라고 하지만 들을만한 충고다. 미국이 하는 짓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니 남의 일이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당장 이라크 정책에서(뒤에 보론 격으로 이라크 정책 관련 제언이 실려 있다), 미국은 공개적으로, 명확하게, 이른 시일 안에 철군할 것임을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며칠 전 미국과 이라크 정부 간 ‘철군 협상’이 타결됐다. 구체적인 시일을 못 박지는 않았지만 2011년까지는 나가도록 한 것 같다. 두 번째, 이라크 철군을 비롯한 결정은 이라크 지도부와 합의하에 이뤄져야 하며 이를 만방에 알려야 한다는 것. 브레진스키는 이라크 전쟁이 미국을 얼마나 큰 불신에 빠뜨렸는지를 아는 것 같다. 


위기를 잘 헤쳐, 미국이 글로벌 리더십으로 지구 지배를 다시 굳힐 수 있게 할 ‘두 번째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글로벌리더 4’가 버락 오바마가 될지, 존 매케인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들 중 누가 되든, 군림할 기회 말고 공존할 기회를 찾아줬으면 하는 것이 62억명의 바램인데... 미국 넘들도 그걸 알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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