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오쿠다 히데오 - 남쪽으로 튀어

딸기21 2006. 12. 16.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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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1, 2 サウスバウンド

오쿠다 히데오 (지은이) | 양윤옥 (옮긴이) | 은행나무 | 2006-07-15



이런 풍의 소설, 몇 권 보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식상하지 않고 재미있다. 남쪽으로 튀어! 웬 남쪽? 왜 튀어? 이유는 여러 가지. 고릴라 같은 아빠, 한때 ‘오차노미즈(명문 사립여대)의 잔다르크’였다는 엄마. 애어른 같은 소학생 아들 눈에 저런 부모는 참으로 세상살기 힘든 타입의 인간들이다. 거기다가 나이차이 많이 나는 누나의 정체는 또 뭐란 말인가. 


어떤 나라 운동권들은 늙기도 전에 권력 잡아 폼 다 잡으면서도 자기들만 옳은 줄 안다. 그런데 도덕적 카리스마라는 것이, 아무한테서나 나오는 게 아니다. 물정 모르고 철도 없이 순수한 사람, 세상 지저분한 꼴에 말없이 뒤돌아서는 대신 싫다 그르다 말할 용기가 있는 사람, 제도의 은근한 세뇌공작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에게나 가능하다. 그러니까 바로 쟤네 아빠 같은 사람.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 수는 없고, 도덕적 카리스마를 꼭 지향하며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학교 싫어! 회사 싫어! 국가 싫어! 이렇게 하면서는 세상 살기가 힘들다. 하여 쟤네 아빠는 살기 힘들고, 엄마도 힘들고, 애들도 힘들다. 그래서 남쪽으로 튄다. 

남쪽 오키나와, 일본 내의 소외된 땅, 점령된 땅, 군국주의와 점령통치와 자본주의의 모든 모순이 밑으로 밑으로 내려와 한꺼번에 쌓인 땅. 쟤네 아빠랑 엄마(알고 보니 아빠보다 한술 더 뜨는)는 주책스런 것 같지만 실은 그 모든 모순에 반대하고, 부딪쳐 깨지고, 그러면서 마음 다쳤지만 또 지켜나갈 길을 찾아가는 그런 사람들이다. 


모든 모순들과 제도의 장난들을 저자는 콩알탄 까듯이 톡톡 터뜨리는데, 거기다가 애늙은이 아들의 사춘기 감수성과 에피소드들이 겹쳐져 아주 재미있다. 찜질방에 누워 순식간에 읽었다. 김영하 ‘빛의 제국’을 바로 직전에 봤던지라, 좀 이런 감수성 그러면서 또 통찰력 그런 것 김영하에게는 없고 오쿠다 히데오에게는 넘쳐나는 것이 비교가 됐었다. 


실은 가장 큰 차이라면, 오쿠다씨와 김씨의 차이를 넘어 일본과 한국의 ‘반골 감수성’의 차이 같은 거라고나 할까. 일본에선 국가주의 요즘 거세진다고 하지만 그래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고 목소리 높여서 이런 소설이나 만화나 뭐 그런 것들 통해서 반기를 들곤 한다. 학자들 중에도 국가주의 문제 제기하는 지식인들도 많고. 그런데 한국에서는 국가주의 싫어한다고 목소리 높여서 이야기하기가 힘들 뿐 아니라, 막상 또 싫어하는 사람들보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다. 국가주의 어쩌구 비판하는 것 자체를 ‘그래 너 특이해서 좋겠다’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인들이 한국인들보다 분방하고 창의적이어서가 아니라 아마 경험 차이일 것이다. 일본은 국가주의에 남들 죽이고 자기네도 떼죽음 당한 경험이 있지만 우린 그저 ‘우리나라 대한민국’ 외치면서 사는 것으로 존재 의미를 찾았던 시절을 겪었으니. 아직 그걸 극복해서 발랄한 소설이 쑥쑥 나오기엔 시간이 무르익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학 다닐 때 선배들이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시를 갖고 만든 노래 마지막 ‘만세 만세 민주주의여 만세’ 뒤에 ‘안녕 안녕 군부독재여 안녕’ ‘잘가 잘가 제국주의여 잘가’ 그렇게 붙여 노래하던 것이 생각난다. 


이상하게 댓구를 맞춘 후렴구들은 처연한 곡조랑 안어울려서 어색하게 들리기도 했는데, 10여년 지난 지금 저 후렴구들 인식수준에서 꽤 많이 나아오긴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87항쟁 20주년이라며 독재 망령 벗어나 중임제 개헌 할 때 되었다고 하는데, 시기 논란이야 어쨌든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군부독재 망령 안녕~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국가주의여 안녕~ 이런 것도 좀 하고 싶은데 그건 자연스럽게 시간 지나면서 해결되는 문제 같지는 않다. 


‘빛의 제국’은 국가주의에 대한 고민이 없기 때문에 거기 치인 사람들의 탈출구도 없다. 반면에 ‘남쪽으로 튀어’의 주인공들은 모순의 땅으로 간다. 말이 좋아 ‘남쪽으로 튀는’ 것이지, 실제로는 국가주의 모든 폐해가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땅으로 제발로 찾아간 것이다. 거기서 다시 모든 제도적 폭력과 맞서겠다는 것이니깐 그 가족의 투쟁이 성공하고 실패하고와 상관없이 그 비판 자체만으로도 성공적이다. 국가주의여 안녕~ 해야지만 국가 틀 안에서 꽉 막힌 문제들이 좀 풀리고, 강상중 교수 얘기처럼 특히나 동아시아야말로 국가주의 의식적으로라도 탈각해야 국가와 국민들도 차라리 더 잘되는 판이 될 것인데. 그러니까 이 틀에서 눈을 돌려야 활로가 생기는 것이 될텐데 그런 문제의식이 부족하니 우린 김영하의 간첩들과 간첩마누라와 간첩잡는 스파이들처럼 활로가 없는 것 같다. 


작품이 오밀조밀 구성도 잘 돼있고 에피소드 하나하나, 소년의 입에서 나오는 관찰기록 하나하나가 다 참 고르게 되어 있다. 예를 들면 ‘저 자식은 중학생이라고 볼 수 없게 사악한 놈이다, 아마도 사악함을 타고난 자의 중학교 1학년 때 모습이 바로 저럴 거다’ 하는 부분이 있었다. 


자기보다 한두살 어린 남자애들 상대로 ‘아저씨들한테 보내 잠지 따먹게 해버릴까’ 하는 사악한 중학생 놈, 그걸 보고 ‘가벼운 상처’로 넘기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 리얼하면서도 아주 건강해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이들의 어른스러움과 어른들의 아이같음을 모두 인정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참 좋았다. 문체도 재미있고 내용도 좋고. 그런데 가장 좋았던 것은 문제를 가볍게 풀어가는 재주보다는, 그런 문제를 느끼고 제기하는 작가의 생각의 깊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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