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희망을 거래한다- 이렇게 좋은 책은 다들 좀 읽으셔요

딸기21 2005. 11. 2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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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거래한다 L‘Aventure du Commerce Equitable (2002)
니코 로전 | 프란스 판 데어 호프 (지은이) | 김영중 (옮긴이) | 서해문집



재미있게 읽었다. '몬드라곤' 이래 이런 종류로는 제일 재미있었다(가 아니고 이런 종류의 책을 별로 읽지도 못했지만). 이른바 윤리브랜드(ethical brand) 운동의 효시가 됐던 막스하벌라르 커피 생산 프로젝트를 비롯해 같은 그룹(네덜란드 참여연대)에서 시작한 바나나, 청바지 등의 브랜드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나는 커피 브랜드 업체들도 시찰 여행에 참여하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당시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운동 안에서 시작되었던 것으로 ‘항의에서 대화로’라는 새로운 연구 방법과 관계가 있다." 


"이 접근 방법은 시위와 항의에 강조점을 두는 단계가 끝난 다음에는 건의안을 작성하고 정책에 대한 대화를 모색하는데 목표를 두는 단계로 진행된다... 브랜드 업체들은 커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였고 가격 형성과 품질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번도 커피재배 농부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시장은 익명이다. 가격 형성은 뉴욕 주식시장에서 이루어진다. 커피 재배농부들은 그들의 시야에 들어와야 했다."

"나는 인간을 인간이 맺는 관계들과 맺어지는 관계들의 중간 지점으로 보려고 한다. 그것은 쌍방향 교류인 것이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자면 인간은 하나의 점으로 표시되며 이 점에서 여러 직선들이 다른 사람들 방향으로 지나간다. 따라서 원의 형태가 아닌 별의 형태가 된다.
직선들은 계속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교차한다. 인간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와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맺는 관계들을 의식할 때 비로소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우리’의 부분이 된다... 원하였던 관계든 원치 않았던 관계든 그 관계가 무시될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은 임의로 다뤄질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예컨대, 다른 사람이 착취, 추방, 고문, 종속 혹은 그보다 더한 것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전쟁의 문제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미국은 '건조물 3347HG' '교량 4490BB' 따위를 공격할 뿐이지만 죽어가는 사람은 밀리암이라는 아낙네와 세 명의 아들, 그녀의 사촌인 젊은 병사 유세프, 유세프의 아버지인 농부 압둘인 것이다’ 유기농 식품 사먹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익명성을 넘어서야만 하는데, 그건 ‘구조’와 연결돼 있으니 힘들다. 사람들은 힘든 건 금방 까먹는다. 

"인디언 커피재배 농부들이 도움을 주고받는 모델에 걸림돌이 되는 점은 바로 상호성이 방해받는 것이다. 그들은 받을 뿐만 아니라 그들도 줄 수 있는 많은 것을 갖고 있다. 즉 커피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개념, 그들의 인간상, 그리고 자연과 지내는 그들의 방식을 줄 수 있다."

"우리는 가격을 보호해 줄 필요가 있는 불쌍한 농부들이 아니다. 우리는 친환경적이며 사회적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커피를 재배한다. 우리는 이렇게 생산한 커피를 판매할 시장을 찾고 있는 떳떳한 생산자들이다."


이 부분은 나의 소시민 의식과 부딪친다. 박완서 선생님은 뭐라고 말할까? 작은 실천은 너무나 중요하다. 본질 어쩌구 운운하는 좌익소아병 환자들을 경멸한다. 본질이 어떠네 구조가 어떠네 떠들면서 불우이웃돕기 안 하는 작자들이 제일 싫단 말이야!

여기서 문제는 ‘변혁이냐 개량이냐’가 아니고, ‘내가 얼마나 변하는가’ 하는 ‘변화의 상호성’에 대한 문제인데. 그러려면 다시 문제로 돌아간다. 끊임없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그 기간은 나오미 클레인의 책 ‘반 로고’가 출간되어 반세계화주의자들의 현대적 바이블로 떠오르던 때였다. 이 책은 상표의 독재에 대한 고발이다. 사회에 의미를 부여하는 담론이 쇠퇴하고 광고와 마케팅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상표는 브로커들에게 중요하게 되었다. 나오미 클레인은 로고를 무가치하다고 고발했다. 그녀가 나이키와 아디다스 같은 톱 브랜드의 생산 환경을 예리하게 분석한 것은 옳았다. 그녀는 인기 운동선수들에게 수억 달러를 주고 게약을 맺는 반면에 생산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을 착취하여 생산비를 구조적으로 낮추는 스포츠 스폰서 기업들의 미친 짓을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자본주의는 그와 같은 생각들을 흡수하며 그런 생각들을 해치지도 않습니다. 생태학적 공정거래 생산물의 개발은 오로지 문제를 비정치화할 뿐입니다. 이는 부분 시장에 머물 것이며 나머지 시장에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라고 그녀는 주장한다.
내 생각으로 그녀는 소비자 운동의 변증법과 세계 경제의 질서에 대한 논의를 그렇게 스쳐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지역적으로 행동하고 세계적으로 생각하라”라는 접근은 이 두 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더 나은 접근인 것 같다. 불신하게 될 수 있는 세계경제의 질서화는 인간의 의식적인 윤리적 선택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의 행동을 위한 동기를 가져오겠는가? 나는 참여연대에게 다른 길을 가도록 조언하기로 결심했다. 상표의 힘인 로고가 좋은 쪽으로 사용될 수 있을까? 로고는 이미지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여야 할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사회 운동은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사회 정의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기반을 닦는 데 회의적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정치에 대한 실망을 말한다. 희망과 의심은 시계추의 운동 속에 있다. 새로운 사회적 현실을 위한 초석이 놓임에 따라 희망의 영역이 생긴다."


나오미 클라인의 책은 읽지 못했지만-- ‘자본주의’와 ‘시장’의 문제, 시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뛰어들 것인가, 원조에서 공정거래로, 공정거래의 개념, 시혜가 아니라 1세계와 3세계가 함께 변하게 하는 지구 살리기 운동, 라틴아메리카에서 민중운동의 변화 등등 생각할 거리가 많은 것 같아서 책을 다 읽고나서 며칠을 묵혔는데 별로 생각을 곱씹지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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