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사막에 묻힌 카다피

딸기21 2011. 10. 25. 18:12
728x90
리비아의 전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가 사막에 묻혔습니다.

카다피와 네째 아들 무타심, 그리고 카다피 측근 한 명이 사막에 매장됐다고 알자지라 방송이 보도했습니다. 방송은 과도국가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카다피가 25일 새벽 사막에 매장됐고 이 자리에는 카다피가 속한 부족의 일원들과 이슬람 지도자가 나와 기도를 했다고 전했습니다.

원래 아랍·이슬람권에서는 사람이 숨지면 하루이틀만에 금세 매장을 하는데, 카다피는 지난 20일 사망한 지 닷새만에 묻혔습니다. 고향 시르테에서 사살된 카다피의 시신을 미스라타로 옮겨 상업용 냉동창고에 보관했다 해서 논란이 일기도 했지요. 미스라타 지역 군 대변인인 이브라힘 베이탈말은 알자지라 방송 인터뷰에서 “묘지가 파괴되는 걸 막기 위해서 무덤에 아무 표식을 하지 않고 매장했으며 무덤의 위치도 비밀에 부쳐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무덤 위치를 공개하지 않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군 대변인이 말한 대로 카다피를 증오하는 이들이 찾아와 무덤을 손상하는 일이 벌어지면 카다피를 추종하는 잔당들은 물론이고 이슬람 보수파들도 반발하겠죠. 반대로 카다피 잔당들의 성지가 되어버릴 위험도 있고요.


The bodies had been on display in Misrata for the last four days


지난 5월 파키스탄에서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한 미군은 하루만에 항공모함을 동원, 시신을 바다로 옮긴 뒤 아라비아해에 수장한 전례가 있습니다. 이라크 사담 후세인의 경우 정식 재판을 밟아 처형됐고, 고향인 티그리스 강변의 아부자에 묻혔지만 무덤을 찾는 이들도 별로 없다 하고, 딱히 후일담은 들려오지 않네요.

NTC says Gaddafi buried in secret grave /알자지라

카다피를 사실상 재판 없이 ‘처형’한 셈인데... 이 문제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과도국가위 측은 카다피가 교전 중 사살됐을 뿐이지 의도적으로 처형한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과도국가위 측은 “카다피가 교전 중에 숨져 이익을 보는 것은 오히려 그를 지지했던 자들”이라면서 사살 과정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카다피를 법정에 세워 죄상을 낱낱이 밝히고 처형을 하든 투옥을 하든 했어야 했는데 교전 중 숨지는 바람에 그럴 기회가 없어졌다는 겁니다. 무스타파 압델 잘릴 과도국가위 위원장은 “카다피가 교전 중에 자기 측근에게 살해됐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몇몇 시민군 병사들은 공명심에서인지 진위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카다피의 머리와 가슴을 쏘아 사살했다고들 주장하고 나섰고요. 카다피의 최측근이던 네째 아들 무타심의 경우는 아버지와 함께 사살된 뒤 시신이 전시되는 수모까지 겪었습니다. 과도국가위 내부에서조차 카다피 사살 전후사정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국제인권단체들은 카다피 처형 여부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카다피가 최후를 맞기 전 카다피의 고향 시르테를 폭격했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군 측은 카다피가 거기 있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며 사살 경위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리비아 내 인권상황에 대해서는 우려가 가시지 않습니다. 휴먼라이츠워치(HRW) 같은 인권단체들은 반카다피 진영에서도 학살을 자행한 흔적이 있다고 비판합니다. 인권단체들은 독재정권을 몰아낸 과도국가위에 민주주의와 법 절차를 지키려는 마음이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만, 과도국가위는 굳이 파헤칠 마음이 없어보입니다.

뉴욕타임스는 과도국가위가 학살이 벌어진 현장을 조사하기보다는 모든 걸 묻어버리는 데 급급하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수르트 지역에 있는 마하리 호텔에서는 24일 비닐 끈에 묶인 채 그 며칠 전 처형된 시신 수십구가 발견됐습니다. 숨진 이들 중엔 카다피 측 병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카다피 정권 시절의 관리들을 비롯한 민간인들이었습니다.

In Libya, Massacre Site Is Cleaned Up, Not Investigated /뉴욕타임스

이들을 처형한 것은 시민군으로 추정됩니다. 현장에 반 카다피 구호가 쓰여있고 호랑이, 사자, 모래 등등 미스라타 시민군 진영의 부대 이름들이 써 있었습니다. 이 호텔은 최근까지 시민군의 지역 본부로 쓰였던 곳입니다. 과도국가위나 시민군 측은 조사를 하는 대신 24일 호텔 주변 시신들 있던 곳을 싹 치워버렸습니다. 학살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것이죠.

사망자들을 조사한 의사는 치아를 비롯해 신원을 밝혀줄 증거들을 모아 법정에 세우겠다고 말했지만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 의사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많은 이들의 피를 흘려야 하는 민주주의는 대체 어떤 민주주의냐”고 물었습니다. 시민군이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체포해 고문하고 심지어 학살까지 한 것으로 보이는 사례들이 잇달아 보고됐지만 과도국가위는 조사를 할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입니다.

카다피는 죽었지만, 피가 씻겨져나가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카다피는 7남 1녀를 두었는데, 그 중 유일하게 리비아에 남아있고 또 생존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 후계자로 꼽혔던 둘째아들 사이프 알 이슬람입니다. 카다피 측이 미디어 통로로 삼아온 시리아의 알 라이 TV가 사이프의 육성메시지를 방송했습니다. “우리는 계속 저항하겠다, 나는 리비아에서 자유롭게 지내고 있다, 끝까지 복수하겠다”는 짧은 내용입니다. 사이프의 목소리가 언제 녹음된 건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사이프는 카다피 재단을 만들어 이끌고 있었는데, 2006년에는 아버지를 비판했다가 리비아를 떠나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후계자 위치에서 잠시 멀어졌고 카다피와 함께 숨진 네째 아들 무타심이 정치적으로 부상한 상황이었는데요. 그런데 내전이 일어난 뒤에는 현직 군인이던 무타심보다도 사이프가 앞에 나서서 강경대응을 주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사이프가 붙잡힐 때까지는 카다피 잔당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시민군과 과도국가위 측은 이제 카다피가 죽었으니 사이프 잡기에 매진하겠군요.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