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조종사 푸틴'

딸기21 2010. 8. 11.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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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와 쇼맨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이번엔 항공기 조종사로 변신을 했습니다. 직접 소방용 항공기 조종석에 들어가 부조종사로 하늘을 날며 산불 진화작업에 나선 것이죠. 2년 뒤 대선 재출마설이 파다한 푸틴이 다시 한번 민심 다스리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비행기 조종간을 잡고 있는 푸틴. 사진=리아노보스티


푸틴은 10일 러시아제 Be-200 수륙양용 산불진화용 비행기를 타고 화마에 휩싸인 모스크바 남동쪽 랴잔 지방 시찰에 나섰습니다. 승객석에 타고 있던 푸틴은 비행 도중 조종실 문을 열고 들어가, 부조종사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조절판 레버를 잡고 버튼을 눌러, 물 24톤을 산불 지역에 투하했습니다. 푸틴이 조종사를 돌아보며 “괜찮았느냐”고 묻자, 조종사는 “정확히 (산불 지점을) 맞췄다!”고 답했습니다. 이 장면은 채널1 TV를 통해 러시아 전역에 방송됐다고 합니다.
KGB 출신으로 만능 스포츠맨인 푸틴은 이런 ‘깜짝쇼’를 종종 보여주곤 합니다. 항공기 조종훈련을 받은 적은 없지만, 조종석에 탄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대통령 때이던 2005년 MAKS 에어쇼에서 투폴례프 Tu-160 초음속 폭격기 조종간을 잡은 적이 있고, 2000년에는 수호이 Su-27 제트기를 몰고 체첸공화국으로 날아가기도 했습니다(이건 전혀 칭찬할 일이 아닌 것이, 푸틴은 옐친 밑에 있던 90년대 중후반 체첸을 정말이지 가혹하게 짓밟았고 그 '공로'로 후계자가 된 것이거든요).

소방 비행을 마친 푸틴은 이번 산불로 집 54채가 불탄 랴잔 지역의 크리우샤 마을을 찾아가 주민들을 만났습니다. 푸틴은 “집들이 저렇게 탔는데 이 마을에 지원된 돈이 200만루블(약 7800만원) 밖에 안 된다더라”며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또 주민들이 “마을에 소방차 한 대 없다”고 하자 “정부가 지금 소방차를 추가 구입하려 하고 있다”면서 새 학교와 유치원, 스포츠센터를 지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모스크바타임스는 전했습니다.

AP통신은 폭염·가뭄 속 유례없는 산불 재앙이 일어난 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 대신 푸틴 총리가 유난히 모습을 많이 드러내고 있다는 데에 주목했습니다. 
2년 뒤 대선에서 두 사람 중 누가 출마할 것인지를 놓고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최근 메드베데프는 “둘이 동시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습니다. 푸틴이 스스로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 뒤에 나온 말이었습니다. ‘둘 사이에 합의가 이뤄졌거나 곧 이뤄질 것이고 결국 푸틴이 나서게 된다는 뜻 아니냐’는 추측이 돌았습니다. 
대중적 지지는 여전히 푸틴 편입니다. 메드베데프 지지율은 지난달 실시된 3개 기관 여론조사에서 38~52%였던 반면 푸틴 지지율은 44~61%로 나왔습니다(집권 때 80%에 비하면 많이 떨어지긴 했네요). 이번 항공기 조종도, 특유의 ‘액션 맨(행동하는 사람)’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푸틴이 물을 붓건 말건, 러시아 산불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군요.
일간 코메르산트는 이번 산불로 타버린 면적이 17만4000헥타르에 달하며, 손실액이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1%인 150억달러(약 17조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고 보도했습니다.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산불이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참사가 일어났던 우크라이나 접경지대를 향해가면서 잔존 방사능물질이 광범위한 지역에 퍼져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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