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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노벨평화상, 배경과 논란

딸기21 2009. 10. 9.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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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지난달 22일 뉴욕에서 열린 미·이스라엘·팔레스타인 3자 정상회담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악수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9일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뉴욕 | AFP연합뉴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소식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임기를 1년도 채우지 않은 미국의 현직 대통령에게, 그것도 뚜렷한 업적이나 성과가 아닌 ‘정치적 의지’와 ‘태도’를 이유로 세계 최고의 영예라는 평화상을 안겼기 때문이다. 이는 전임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8년 동안 세계가 얼마나 일방주의의 횡포에 시달렸는지, 다자주의와 대화를 얼마나 갈구했는지를 보여준다는 평이다.

9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웹사이트(http://nobelpeaceprize.org)에 밝힌 평화상 결정 이유를 들여다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노벨위원회는 오바마가 “다자 외교를 다시 중심에 놓고 유엔과 국제기구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했다”고 강조했으며, “어려운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데에 대화와 협상을 선호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부시 행정부가 유엔 등 국제기구들과 국제사회의 동의를 무시한 채 전쟁을 강행하고 일방주의로 일관, 세계를 극단적인 대립의 장으로 만들었던 것을 오바마가 되돌렸다는 의미다.
또한 위원회는 오바마가 보여준 ‘핵 없는 세상의 비전’에 높은 점수를 줬다. 앞서 오바마는 지난 4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참석, “핵 없는 세상을 만들자”며 러시아 등을 향해 핵무기 감축을 제안했다. 오바마가 내세운 ‘핵 없는 세상 이니셔티브’에 따라 미-러 간에는 시한 만료를 앞둔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의 뒤를 이을 후속협정 협상이 시작됐다. 
오바마는 지난달 유엔총회와 피츠버그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핵무기 감축을 주도적으로 제기했다. 이라크·이란 등의 ‘대량살상무기(WMD)’를 문제 삼으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갖고 있는 핵무기는 줄이려 하지 않고 오히려 미사일방어(MD)라는 이름으로 냉전적 사고를 고집했던 부시행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노벨위원회는 “‘핵 없는 세상’ 비전은 핵무기 감축과 비무장을 위한 협상의 강력한 동인이 됐다”고 밝혔다.

더불어 오바마가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한 것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오바마가 취임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인권침해의 상징이었던 쿠바 관타나모 미군기지 테러용의자 수용소 폐쇄 명령에 서명한 것이었다. 인권국가 미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전세계 이슬람권과 인권단체들의 비판을 받아온 관타나모는 아직 폐쇄되지 않았지만 오바마는 폐쇄 명령을 통해 ‘의지’를 보여줬다. 
노벨위원회는 또 “세계가 직면한 기후변화의 도전에 맞서는 데에 미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도 오바마의 공로 중 하나로 꼽았다. 전임 행정부가 기후변화라는 사실 자체를 부인했던 것과 반대로 오바마 정부는 교토의정서 체제 동참, 기후변화 대응 공조 등을 약속한 바 있다. 역설적이지만 오바마가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된 것은 ‘부시 덕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아직 오바마가 약속한 것들이 ‘시작 단계’라는 점에서, 이번 시상 결정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정치현장의 중심에 있던 인물들이 임기도 마치기 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예가 없지는 않다. 미국 대통령이 받은 것만 해도 테오도어 루즈벨트(1906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1919년), 지미 카터(2002·퇴임 뒤)에 이어 네번째다. 하지만 그들과 다른 점은, 오바마는 ‘문명 간 화해’와 ‘핵 없는 세상’과 ‘기후변화 대응’과 ‘다자주의’를 말로써 선언했을 뿐 아직 구체적인 업적으로 내세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노벨위원회가 인정했듯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바꾸고 ‘비전과 희망’을 보여주었을 뿐 아직 현실화시키지는 못했다.

더욱이 전임 행정부가 일으킨 것이었다고는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아직도 진행중이다. 로이터통신은 이를 지적하면서 “아랍·이슬람권에서는 섣부르다는 반응과 자격이 결여됐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팔레스타인 저항조직 하마스는 “오바마가 주도하는 중동평화 계획은 아직 갈길이 멀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라크 바그다드의 노동자 이삼 알 하즈라지는 로이터 인터뷰에서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이 끝나지 않았는데 무슨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냐”며 오바마는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토르비요른 야글란트 노벨위원회 위원장이 오슬로에서 수상자 결정사실을 발표하자 그 자리에 있던 취재진들에게서도 “너무 이르다”는 반응과 질문들이 쏟아져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우파들도 오바마의 수상에 곱잖은 눈길을 보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진보적 인터넷언론인 허핑턴포스트조차 “이 상은 오바마가 앞으로 이룰 진보와 외교적 업적에 대한 희망에 기대어 주는 상”이라고 보도했다.


오바마는 누구
오바마는 1961년 8월4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당시 하와이 대학으로 유학 온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캔자스 출신의 인류학도였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흑인과 백인 부모, 인도네시아인 양부 등 복잡한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 극심한 정체성 갈등을 겪으면서 한때 마약에까지 손을 댔다. 그러나 고교를 졸업한 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옥시덴틀 대학에 입학, 인종차별 반대 집회에 참가하면서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컬럼비아대를 졸업하고 시카고에서 도시빈민운동 활동을 시작한 그는 하버드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교내 잡지 ‘하버드 로 리뷰’ 첫 흑인 편집장을 지냈다. 이후 인권 변호사로 일하던 그는 1996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2007년 2월10일 대권 도전 출사표를 던진 그는 최대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꺾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됐으며, 지난해 11월 최초의 흑인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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