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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 카리브해... 세계의 보물선 싸움

딸기21 2008. 12. 18.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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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년 전 바다 밑에 가라앉은 보물선을 찾아라!

핀란드에 인접한 발트해의 바다 밑에서 난파한 선박을 놓고 러시아-네덜란드-핀란드 간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배는 약 230년 전 유럽 곳곳을 돌며 예술작품과 공예품을 모아 싣고 러시아로 돌아가던 로마노프 왕실의 배 ‘프라우 마리아(Frau Maria)’ 호인데요. 배에는 싯가를 따지기 힘들 정도로 값비싼 조각과 공예품들이 잔뜩 실려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물 사냥꾼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러시아 황실의 보물이 가득 실을 채 가라앉은 난파선을 추적해왔습니다.

보물 사냥꾼들의 이야기는 19세기 영국의 모험소설 따위에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보물 사냥꾼들의 치열한 탐사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각국 정부들까지 가세해 보물 챙기기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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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여제의 보물들

프라우 마리아의 항해는 17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러시아의 에카체리나 여제는 유럽의 경쟁자들에게 황실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상트페테르스부르크에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세웠습니다. 여왕은 이 박물관에 전시할 보물들을 모아 오도록 신하들을 각지에 보냈으며, 걸작들을 가지고 오는 유럽의 예술상들에게는 아끼지 않고 돈을 지불했습니다. 프라우 마리아 역시 에카체리나에게 건넬 예술품을 싣고 러시아를 향했던 배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을 출발한 배는 안타깝게도 핀란드 부근에 이르렀을 때 폭풍우를 만나 침몰하고 말았다는 스토리...입니다. 선원들은 구조됐지만 당대의 걸작들은 배와 함께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습니다. 당시 살아남은 선원들의 입을 통해 발트해의 보물선에 대한 이야기가 후대로 전해져 내려왔으나, 그 실체는 확인할 길이 없었지요. 그러다가 1999년 핀란드의 스쿠버다이버들이 발트해를 탐사하다가 프라우 마리아를 발견했습니다. 다이버들의 탐사보고서에 따르면 배에는 렘브란트와 반 고옌 등 네덜란드 화가들의 걸작 27점이 실려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짠 바닷물 속에 가라앉아 있었지만 그림들은 큰 손상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캔버스 천에 유화로 그려진 그림들은 납으로 된 상자에 담겨 왁스로 밀봉돼 있었던 겁니다. 또 배에는 청동 조각 수십 점과 도자기 수백 개,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금화와 은화’들이 있었다고 다이버들은 전했습니다. 러시아 영문 일간지 러시아투데이는 “유럽의 골동품 전문가들은 배에 실려있는 물건들의 값어치가 5억~10억 유로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보물선 ‘삼국지’

아직 건져 올리지도 않은 보물을 놓고 세 나라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가장 먼저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핀란드입니다. 핀란드 정부는 “보물선은 우리 영해 내에 가라앉아 있으므로 우리 것”이라 주장합니다. 반면 러시아는 에카체리나 여제가 프라우 마리아에 실린 예술품들을 구매하기로 계약을 하고 네덜란드의 예술상들에게 돈까지 다 지불했었다는 점을 듭니다. 비록 수백년 전의 일이긴 하지만 ‘계약은 계약’이라는 것이죠.

네덜란드의 입장은 다르답니다. 네덜란드는 “프라우 마리아는 엄연히 네덜란드 선적의 배였다”면서 난파한 배와 관련된 자산은 모두 네덜란드에 귀속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문화재 보호단체들은 세 나라를 향해 “낳지도 않은 달걀을 놓고 싸우지 말고 인류의 문화유산을 구할 궁리부터 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민간기구인 ‘문화재 구조센터’의 아티욤 타라소프는 러시아투데이 인터뷰에서 “우선 배를 건져놓고 누구의 보물인지 따지는 게 순서일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문제는 인양 자체에도 오랜 기간과 예산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우선 배의 상태와 거기 실린 물건들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과학적으로 계획을 세워 보물들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국 정부와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야 합니다.

러시아는 지난달 말 “독자적으로 배를 인양하겠다”고 발표해 핀란드와 네덜란드의 반발을 샀습니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게오르기 빌린바코프 부관장은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보물들이 원래 목적지였던 에르미타주의 품으로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러시아는 당장 내년에 인양 작업을 강행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 방침이 발표되자 핀란드 언론들은 “러시아가 우리 배를 건져가려 한다”며 일제히 비난했고, 발끈한 핀란드 정부도 모든 검토가 끝난 뒤 건져내야 한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측은 “모든 협상이 끝나려면 앞으로도 10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라며 일축했습니다.

보물 사냥은 끝나지 않았다

발트해에서 일어난 것 같은 바다 밑 보물 다툼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대의 보물 사냥꾼들은 자료와 정보들을 모으고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보물선을 인양한 뒤 수익을 배당하는 방식으로 활동을 합니다. 미국 플로리다주에는 ‘보물 구조단(Treasure Savors)’ 같은 보물 사냥꾼들의 단체도 여럿 있으며 보물선 추적으로 돈을 버는 회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3국 간 보물 싸움이 일어난 발트해의 핀란드 해역은 ‘러시아 황실의 보물’을 노린 사냥꾼들이 많이 몰려드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러시아 차르 시기 이 일대를 항해하다 가라앉은 배는 6000척이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남중국해와 말라카해협, 필리핀 해상도 보물 사냥꾼들에게 인기 있는 지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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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보물 사냥꾼들이 가장 많이 몰려드는 곳은 영화로도 유명해진, 한때 해적들의 천국이었던 카리브해(위 사진...유명한 해적들이죠;;) 일대랍니다. 해적들은 스페인·포르투갈 왕실의 배들을 약탈해 돈을 챙긴 뒤 배를 가라앉히기 일쑤였는데, 당시 해적들이 챙겨가지 못한 수많은 귀중품들이 배와 함께 가라앉아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해적들과의 교전에서 포격을 받고 약탈당하지 않은 채 침몰했거나 허리케인으로 난파한 배들도 많았기 때문에 카리브해는 보물 사냥꾼들의 주요 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누에스트라 세뇨라 드 아토차(Nuestra Senora de Atocha)’라는 이름의 스페인 갤리선은 1622년 9월 6일 허리케인으로 침몰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었습니다. 미국의 보물 사냥꾼 멜 피셔는 무려 16년 동안 아토차 호가 난파한 것으로 알려진 멕시코만 일대를 뒤진 끝에 플로리다주 키웨스트 부근에서 1985년 배를 찾아냈다고 합니다. 피셔는 그보다 앞서 아토차 호와 같은 선단에 소속돼 있다가 역시 난파당한 스페인 갤리선 ‘산타 마르가리타(Santa Margarita)’ 호의 잔해를 찾아내 이름이 널리 알려진 보물 사냥꾼이었다는군요.

아토차 호에 기울인 노력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발견된 배에서는 1598~1621년 발행된 스페인의 금화·은화 40톤, 콜롬비아산 에메랄드와 금·은 세공품, 1000개가 넘는 은괴가 실려 있었다고 합니다! 보물들의 가치는 당시 돈으로 4억 달러에 이르렀다네요. 이 배의 인양에는 플로리다 주 정부도 참여했습니다. 뒷날 피셔 측과 플로리다 주 정부 간에 보물 소유권을 놓고 분쟁이 벌어졌으나 미국 연방대법원은 피셔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중미의 작은 섬나라 아이티 해변에서는 32톤의 은을 실은 17세기 스페인의 화물선 ‘누에스트라 세뇨라 드 라 콘셉시온(Nuestra Senora de la Concepcion)’이 발견된 적 있습니다. 동시대에 만들어진 같은 이름의 또다른 배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태평양을 항해하다가 사이판 부근에서 침몰했는데요. 1980년대에 보물 사냥꾼들은 이 배에 실려있던 금세공품 1300여점을 비롯한 귀중품들을 건져냈습니다.

끊임없이 다툼에 휘말리는 스페인

보물선을 둘러싼 싸움 중에서 최근 가장 유명세를 탄 것은 영국에 가까운 대서양 공해 상에서 지난해 5월 발견된 ‘스페인 보물선’ 사건입니다.

미국 플로리다에 본사를 둔 보물 탐사회사 ‘오딧세이 해양탐사’의 탐사선이 발견한 이 배에는 시가로 10억 달러어치에 이르는 금괴와 100만 달러 어치의 멕시코산 은괴 등 5억 달러가 넘는 보물이 실려 있었습니다. 오딧세이는 이미 플로리다, 카리브 일대와 중국 근해 보물선 탐사로 유명해진 대표적인 보물선 인양회사입니다.

스페인 정부는 이 배가 1804년 포르투갈 해역에서 영국 해군의 공격을 받고 침몰된 스페인 함선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라스 메르세데스(Nuestra Senora de Las Mercedes)’라며 보물은 자기네들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반면 영국은 1641년 서인도제도에서 금괴와 귀중품들을 잔뜩 싣고 돌아오다 침몰한 자국 화물선 ‘머천트 로열(Merchant Royal)’호임이 틀림없다고 주장했고요.

미국의 오딧세이 측은 “바다에서 인양한 물건의 소유권은 인양회사의 것이 되는 게 해양법상의 관례”라고 맞섰습니다. 오딧세이는 아직 이 배의 정확한 인양 지점과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3자는 미국 플로리다주 연방법원에서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습니다. 스페인은 지난 2003년에도 프랑스 상선 ‘노트르담 드 델리베랑스(Notre Dame de Deliverance)’호로 추정되는 보물선을 놓고 미국 탐사업체 서브 시 리서치 사와 소유권 다툼을 벌인 바 있습니다. 미 플로리다 국립 해양보호구역에 가라앉은 이 배의 보물들은 아직도 인양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랍니다.

분쟁이 잦은 것은, 해저 보물선의 소유권에 대한 국제법이나 규약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네스코는 2001년 ‘수중 문화재의 보호를 위한 협약’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협약은 100년 이상 된 수중 유물들을 이용해 상업적 이익을 얻는 행위를 금하고 있으나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영미권에서는 인양자가 소유권의 90%를 갖는 것이 관행 상 굳어져 있으나 역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룰은 아니죠.

몇몇 국가들은 침몰한 배가 사유재산일 경우 침몰 시점에서 100년까지는 원 소유자의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타국 영해에서 침몰했을 경우 이 소유권을 인정받기는 힘든 형편입니다. 덕분에... 앞으로도 보물선 다툼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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