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왕의 귀환'과 사르코지의 미래

딸기21 2008. 12. 1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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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 7월초 유럽연합(EU) 순회의장직을 물려받으면서 파리 시내 에펠탑에 네온등을 달고 프랑스가 유럽의 중심에 섰음을 기념했다. 그러나 6개월의 임기는 벌써 끝나가고 있고, 내년 1월1일부터는 체코가 의장국이 된다. 체코 정부는 최근 엘리제궁에 “의장직 교체 의식에 참석해달라”고 초청했으나, 사르코지는 “에펠탑의 네온 불을 내 손으로 끄고 싶지는 않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16일 엘리제궁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이 일화는 ‘유럽의 지도자’ 자리에 대한 사르코지의 집착과 자부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르코지는 이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에서 임기 중 마지막 연설을 하면서 “나는 이 일(EU의장)을 정말 사랑했다”고 말했다. 사실상의 ‘고별 인사’가 된 이 연설에서 그는 “나는 유럽을 변화시키고 싶었지만 유럽이 나를 변화시켰다”며 EU 의장직이 자신에게는 정말 큰 의미가 있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사르코지가 의장직을 수행하면서 국제사회에서 EU의 위상을 드높였다는 데에는 이견이 별로 없다. 그는 의장이 되고 얼마 안 지나 그루지야 전쟁이 일어나자 크렘린을 설득, 러시아의 철군 약속을 받아냈다. 이어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 대처를 주도, 레임덕에 빠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대신해 ‘신브레튼우즈 체제’ 논의를 이끌었다.
과거 프랑스는 EU의 주축이면서도 동시에 중요한 순간에는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유럽통합과 거리를 두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지금도 일각에서는 “프랑스가 진짜로 변화해 유럽의 기둥 역할을 맡았다기보다는 사르코지 특유의 허영심 때문에 EU 일에 나선 것일 뿐”이라는 냉소적인 시선이 없지 않다. 그러나 ‘사르코지의 프랑스’가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프랑스는 글로벌 금융규제의 틀을 만드는데 앞장섰고, 유럽 금리인하와 경기부양책을 주도했다. 지난 6월에는 1966년 샤를 드골 대통령 때 탈퇴했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 통합사령부에도 복귀할 것이라 선언했다. 며칠 전 EU 정상들을 설득해 202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담은 ‘20-20-20’ 계획을 밀어붙여 성사시킨 것도 프랑스였다.

어쨌든 사르코지의 의장 임기는 10여일 뒤면 끝난다. 동유럽의 소국인 체코가 의장국이 되면 유럽의 리더십이 약해질 것이고 모처럼 높아진 유럽의 위상도 다시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체코의 바츨라프 클라우스 대통령은 ‘EU 회의론자’로 유명하고, 미렉 토폴라넥 총리는 지난 10월 총선에서 집권 시민민주당의 과반 의석 확보 실패로 궁지에 몰려있다. 내년 하반기 의장국인 스웨덴 역시 EU 통합에 적극적이지 않은데다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다.

사르코지는 그 핑계로 계속 권력을 틀어쥐고픈 기색이 역력하다. 그는 유로존 12개국 정상회담을 만들어 자신이 의장을 맡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내년에도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유지할 것”이라 말했다. 얼마전에는 남유럽-북아프리카를 잇는 ‘지중해국가연합’이라는 새로운 기구를 출범시켰다. 내년 4월 런던에서 열릴 G20 회담도 자기가 이끌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러나 그의 욕심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체코 정부는 사르코지의 행태가 몹시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프랑스의 정치평론가 도미니크 무아지는 IHT 인터뷰에서 “올 하반기에는 부시가 힘을 잃어 사르코지가 국제무대에서 왕 노릇을 했지만 내년에는 미국에 버락 오바마 정권이 들어선다”며 “‘왕’이 돌아온 뒤에도 사르코지가 지금처럼 행세할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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