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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딜레마

딸기21 2008. 12. 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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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뭄바이 테러로 ‘파키스탄 이슈’가 결국 전면에 떠올랐습니다.
생포된 테러범을 수사한 인도 치안당국이 “파키스탄 내 테러범 훈련소 출신임을 밝혀냈다”고 주장하면서, 미국 대테러전의 주요 전선 중 한 곳인 파키스탄은 곤혹스러운 처지가 됐습니다. 파키스탄은 변경지대 이슬람 극단주의 통제에 실패, 미국의 신뢰를 잃은데다 경제위기까지 겹쳐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지요. 버락 오바마 차기 미 정부의 대 파키스탄 정책도 딜레마에 빠지게 됐습니다.


영국 데일리 텔레그라프는 뭄바이 테러현장에서 붙잡힌 유일한 테러범 생존자가 1년 전 알카에다와 연계된 파키스탄 무장조직 라슈카르-에-토이바(LeT)에 가입, 파키스탄 라왈핀디에서 테러지령을 받았다고 1일 보도했습니다. 앳된 얼굴이 방송 카메라에 잡혀 눈길을 끌었던 올해 19세의 이 테러범은 파키스탄 물탄 출신으로, 남부 펀자브 지방 청년 4명과 함께 테러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테러범은 카슈미르에서 훈련을 받고 파키스탄 내륙 중심부에 있는 수도 이슬라마바드 외곽 도시 라왈핀디로 올라가 구체적인 공격 지령을 받았다고 신문은 전했습니다. 라왈핀디는 파키스탄 군 장성 관저들이 몰려 있으며, 미국의 대테러전에 협력한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대통령의 거주지입니다. 무샤라프의 담장 밑에서 테러범들이 뭄바이 테러를 기획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죠.
테러범은 공범들과 함께 세부 계획을 지시받은 뒤 동부 항구도시 카라치로 갔다가 배를 타고 뭄바이에 잠입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LeT와 연계된 인도 내 ‘인도무자헤딘’과 관련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데칸무자헤딘’은 1일 “뉴델리에서도 인디라간디 국제공항과 주요 기차역 등을 공격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인도 측은 ‘파키스탄 책임론’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에는 “파키스탄이 지도 위에 존속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를 물을 때”라는 극단적인 주장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인도 언론들은 인도가 중요한지, 파키스탄이 중요한지 미국이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며 양자택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불과 일주일 전, 경제난으로 궁지에 몰린 파키스탄의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은 핵 불가침 약속과 자유무역협정 등을 제안하며 인도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그러나 뭄바이 테러로 화해 노력은 물거품이 됐네요.
파키스탄 측은 “뭄바이 테러범들이 파키스탄인들이라는 증거가 있느냐”며 항변하고 있으나, 인도-파키스탄 관계는 급속 악화되고 있습니다. CNN-IBN방송은 인도가 파키스탄과 5년전 체결한 카슈미르 휴전협정마저 철회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당국의 수사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1일 오후에는 인도 주재 파키스탄 대사를 불러 공식 항의하면서 '항의 서한'까지 전달했다 하고요. 또 파키스탄에 "도주한 테러용의자 2명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는 소식입니다.

사실 인도 쪽이 좀 얄미운 감도 없잖아 있습니다. 인도는 테러만 나면 파키스탄 쪽에 눈을 흘깁니다. 그러면서 정작 인도 내 무슬림들의 열악한 현실, 거의 '학살'에 가깝게 진행돼 왔던 무슬림 탄압 등등 내부 모순은 나몰라라 하지요. 게다가 이번 테러 '경보'를 이미 미국 정보기구들이 인도에 보냈다고 하는데 제대로 처리도 못했고, 사건이 난 뒤에도 늑장 대응을 했습니다. 그래서 뭄바이 시민들은 당국에 엄청 열받아 있다는데, 못난 정권이 으례 하는 짓이 "남 탓"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파키스탄은 발등의 불이 떨어졌습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파키스탄이 대미관계 악화와 정정불안, 경제위기로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뭄바이 테러가 터져 “이보다 더 안 좋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파키스탄은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기로 결정했었지요. 국가파산이 코앞인데 테러 배후지로까지 몰리면서 국가 위상과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파키스탄 국민들이야말로 뭄바이 테러 여파가 자신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두려워 떨고 있다”고 타임은 전했습니다.

뭄바이 테러로 인해 미국도 대 파키스탄 정책을 손보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면서 파키스탄과 동맹을 맺고 막대한 자금을 원조했습니다. 그러나 3년 전부터 다시 아프간전 전황이 악화되면서 파키스탄은 다시 미국과 관계가 껄끄러워졌습니다. 2005년 영국 런던 7·7테러, 2006년 뭄바이 열차폭탄테러 등 주요 대형 테러의 배후에는 파키스탄 극단세력과 테러범 훈련캠프들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지요.
미국은 ‘공공의 적’이 된 파키스탄을 버릴 수도, 계속 끌어안고 갈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부시행정부가 무리하게 전쟁을 일으키느라 9·11 테러와 깊이 연관된 파키스탄과 손잡았을 때부터 이미 모순이 내재돼 있었다는 분석도 많습니다.

인도가 지금 카슈미르 쪽 파키스탄과의 접경지대에 군대를 보내네, 마네 하는 보도들이 나오는데(인도 당국은 군대를 움직일 계획이 없다면서도 이런 긴장 고조 루머들을 은근 즐기는 것 같습니다), 두 나라가 이 시점에서 물리적 충돌을 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어찌 됐든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아므르 무사 아랍연맹 의장이 3일 뭄바이를 방문합니다. 라이스라고 뾰족한 방법이 있겠습니까? 인도랑 파키스탄이 싸우면 좋아할 것은 알카에다와 탈레반 뿐이지요. 전문가들은 인도가 파키스탄 쪽으로 만에 하나 병력을 이동시키면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국경의 알카에다야말로 환호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결국 라이스 장관은 파키스탄에 '엄중 항의 & 경고' 하면서 테러수사 협조를 촉구하고, 인도에는 "미국은 인도 편"임을 강조해 안심을 시키는 수준에서 '외교'를 마무리짓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이번 테러가 인도-파키스탄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미국이 파키스탄 친미정권을 저버리게 만드는데 목적이 있는 것 같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국이 과연 핵 가진 파키스탄을 저버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만.
오바마는 대테러전의 목표를 알카에다 근절에 두겠다고 공언해왔습니다. 인도의 테러전문가 칸찬 락시만 박사는 “이번 테러는 오바마 정부의 남아시아 전략에 미리 타격을 입히기 위한 선제 도발”이라고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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