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경기침체가 빈곤층을 강타하고 있다. 특히 경제침체에 취약한 ‘워킹푸어(working poor·일하는 빈곤층)’, 즉 오랜 시간 일을 해도 생계 유지조차 제대로 하기 힘든 저소득 노동자층의 문제가 세계적인 화두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사는 23세 백인 남성 하비 쇼는 재작년 뒤늦게 고교를 졸업하고 자동차 판매회사에 취직해 26개월 동안 근무했다. 올해 말에는 부모에게서 독립, 스스로 인생을 꾸려간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으나 금융위기 여파로 포기해야만 하는 처지가 됐다. 그는 지난달 초 회사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았다. 경제 침체로 자동차 판매가 급감하자 쇼가 일하던 회사는 직원들을 대폭 줄이고 시간제 노동자로 교체했다. 키아나 에버릿(21)이라는 여성은 맥도날드에서 시간당 7.25달러를 받으며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소매점 판매원 등 여러 일자리에 지원해봤지만 “갈 곳은 맥도날드 밖에는 없었다.”
뉴욕타임스는 “쇼와 에버릿 같은 워킹푸어, 특히 젊은 층이 경제 침체로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8일 보도했다.
미국에서는 2000년대 들어 워킹푸어 계층이 꾸준히 늘어났다. 미국 빈민들을 위한 시민단체인 ‘워킹푸어 패밀리 프로젝트(WPFP)’의 조사에 따르면 미시시피, 뉴멕시코주에서는 전체 근로 가정의 40%가 워킹푸어 계층이다.
그 중 상당수가 이민자 가정이기는 하지만 43%는 백인 가정으로 나타났다. 이는 “가난한 저소득층은 대계 흑인이나 히스패닉’이라는 미국인들의 고정관념을 깨뜨린 것이었다. 금융위기 이후 워킹푸어 계층은 계속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도쿄에 사는 다케우치 미와는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다. 그는 3년 째 가게 점원 일을 하면서 연봉 200만엔이 안 되는 돈으로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1000만명 이상의 노동자가 워킹푸어로 분류된다. ‘잃어버린 10년(1990년대 장기 불황)’이 낳은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들은 최근 몇년 동안 일본 경제에 ‘훈풍’이 불면서 미래에 희망을 품게 됐지만, 미국발 금융위기 때문에 다시 궁지로 몰리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워킹푸어는 선진 사회의 부(富)를 떠받치는 기둥이면서 위기 시에는 가장 먼저 내몰리는 취약계층이다. 90년대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 바람과 외국인 이민자들의 물결로 각국에서 “일하면서도 제 몫을 못 받는” 노동자들이 양산됐다. 비정규직 노동자, 불법 이민 노동자 같은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모두 워킹푸어 계층이라 볼 수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미국에서는 연간 27주 이상 고용돼 있으면서 하루 1달러 미만 즉 ‘빈곤선 이하’의 임금을 받는 이들이 통칭 워킹푸어로 분류된다.
이들은 대부분 최저생계비 이하의 수입으로 일가족이 생활한다. 하지만 ‘일을 한다’는 점에서, 정부 구호에 의존하는 구호생활자(Pauper)와는 구분된다. 레이거노믹스에 투철한 미국의 우파 경제학자들은 “일을 하지 않고 사회복지 예산만 갉아먹는 빈민들”을 공격해왔으나, 실제로는 저소득층 상당수가 힘들게 일을 하면서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평균임금의 60% 이하를 받는 저소득 노동자를 보통 워킹푸어라 부른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계층의 80%가 여성이며 특히 이주민 여성노동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통계가 있다.
중국에서는 경제발전의 그늘에서 양산된 저소득 노동자들을 가리키는 궁망족(窮忙族)이라는 신조어까지 나타났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달 말 “내년까지 하루 1달러 미만의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노동자들은 4000만명, 2달러 미만으로 버티는 노동자들은 1억명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
워킹푸어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하면서, 이들을 위한 시민운동도 생겨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WPFP와 워킹푸어센터(CWP) 같은 시민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노동자 착취로 악명 높은 월마트 같은 대기업을 감시하는 ‘월마트 와치(Walmart watch)’ 운동, 최저임금 대신 ‘생계임금(Living Wage)’ 개념을 도입해 노동자들의 생활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자는 생계임금 운동 등을 벌인다. 일본에서는 ‘반빈곤 네트워크’ 같은 빈곤퇴치 운동이 활성화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런 요구를 받아들여, 이달초 계약기간이 한달 이하인 단기 파견근로를 금지시키는 법안을 내놨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사회정책 분석가 마이클 포스터는 로이터 인터뷰에서 “특히 노동시장이 왜곡돼 있는 나라에서는 경제위기 시 취약계층이 입는 타격이 다른 나라에서보다 더 클 수 있다”며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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