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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나지르 부토, 여걸의 죽음

딸기21 2007. 12. 28.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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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라머라 하든, 유명한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아는 사람 아니더라도 마음이 이상하다. 베나지르 부토는 참 화려한 스타일에 '여걸' 다운 면모, 그만큼의 느끼한 냄새가 항상 동반하는 이미지였었는데... 아버지는 처형당하고 딸은 암살 당했다니... 근래엔 부토와 아웅산 수치의 이미지가 천지차이였지만 사실 둘의 출발은 거의 같았다. 다만 부토는 정권을 잡았다는 것, 반대로 수치는 못 잡았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정국의 열쇠를 쥐고 있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가 테러공격에 숨짐으로써 파키스탄이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국가비상사태가 철회되고 어렵사리 총선 날짜가 잡혔지만 모든 것이 다시 불투명해졌다.


누가, 어떤 이유로 부토를 암살한 것일까.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표현을 빌리면 “용의자는 많은데 실마리는 없다”. 알카에다, 파키스탄 정보기관 등이 용의선상에 오르고 있지만 아직 확실한 것은 없는 형편이다. 미국의 대테러전쟁과 남아시아 지역 안정의 핵심인 파키스탄 정국은 마냥 혼돈을 향해가는 것처럼 보인다.




A supporter of Pakistan's assassinated former premier Benazir Bhutto's Pakistan People's Party (PPP)
holds up a poster of Bhutto during a protest in Lahore, on December 28. (AFP/Arif Ali)


‘실패한 국가’ 만들려는 알카에다 소행? 


부토 암살 용의자 1순위는 테러조직 알카에다, 혹은 알카에다와 연계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이다.
미국의 남아시아 전문가 브루스 리델은 27일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알카에다 혹은 그 연계 집단의 소행임이 거의 확실하다”고 잘라 말했다. 치밀한 테러 수법으로 보아서도 그렇고, 테러의 목적과 파급효과를 볼 때에도 알카에다가 가장 유력하다는 것. 그는 “알카에다는 파키스탄을 ‘실패한 국가’로 만들어 언제라도 극단주의 세력이 집권할 수 있는 토양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면서 “파키스탄을 지탱해온 세속주의를 흔들려는 것이 그들의 속셈”이라고 주장했다. 이탈리아 AKI통신은 아프가니스탄 알카에다 지도자가 자신들의 소행임을 주장하는 전화를 걸어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가디언도 부토 귀국 전부터 친 알카에다 무장세력이 자폭공격을 예고했던 점을 들며 역시 알카에다 소행 쪽에 무게를 실었다. 실제 부토가 8년간의 영국 망명을 마치고 귀국한 다음날인 10월19일 남부 카라치에서는 부토를 노린 자폭테러가 일어나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었다.

군 정보국 둘러싼 ‘음모론’도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한 ‘서양 스타일’의 여성 정치인 부토는 근본적으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는 대척점에 있었다.
극단주의자들은 그가 귀국함으로써 쓰러져가던 친미 정권의 수명이 연장됐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쿠데타로 집권해 10년 가까이 정권을 유지해온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과 부토의 관계는 겉보기엔 라이벌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수레의 두 바퀴’였다. 이슬람주의를 배격하고 세속주의와 서구식 정치시스템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이슬람주의자들 눈에 무샤라프-부토-미국은 하나의 정치세력이었던 것. 극단주의자들은 부토와 무샤라프의 권력분점 협상을 ‘더러운 커넥션’으로 불러왔다.

일각에선 파키스탄 군 정보국(ISI)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 머물고 있는 부토의 남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가 27일 그런 의혹을 제기했다. 부토는 아버지 줄피카르 부토가 지아 울 하크 장군의 군사정권에 처형된 이래로 ISI와는 숙적이었다.
ISI는 세속정권의 정보기구이지만 탈레반, 알카에다의 태생에서부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ISI 관여설은 ‘음모론’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더 많지만, ISI와 부토의 관계가 나빴던 것은 사실이다. 이 기구는 1988년 하크 장군이 죽고 부토가 정계에 뛰어들 때부터 부토 측을 방해해왔고, 1990년대 부토 집권 뒤에는 자르다리의 부패 의혹 등을 흘려 정권이 무너지는 데 일조했다.

총선 무산되고 ‘제2 비상사태’ 오나


내년 1월8일 총선은 예정대로 치러지기 힘들어졌다. 최대 정당인 파키스탄인민당(PPP)은 사실상 ‘부토당(黨)’이었으며, 부토가 숨진 지금은 정당을 이끌 대안을 찾기 힘든 형편이다. 무샤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파키스탄무슬림연맹(PML-N)은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다. 지난달 귀국한 또다른 반(反) 무샤라프 정치지도자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는 부토만큼의 카리스마나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 국내외의 거센 비판 속에 지난 15일 비상사태를 철회하고 헌정 복귀를 선언했으나 폭력사태가 이어질 경우 재차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도 있다. 총선을 계속 미루면 민심 이반은 더욱 심해지고, 극단주의자들은 더욱 기승할 것으로 보인다. 무샤라프 자신도 수차례 암살기도를 모면하는 등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처지이기도 하다.



유엔안보리 긴급회의… 신속 수사·처벌 촉구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 암살 소식에 경악과 분노를 표하며, 파키스탄 당국의 신속한 수사와 테러범 처벌을 촉구했다. 반 총장은 27일 성명을 내고 “부토 암살은 파키스탄의 민주주의와 정치안정을 깨뜨리려는 극악무도한 범죄”라며 “범죄자에 대한 법의 심판이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긴급회의를 열고 이번 사건을 강력히 비난하는 한편, 추가 폭력사태와 소요에 우려를 나타내고 파키스탄 국민들에게 자제와 안정을 호소했다. 안보리 순번제 의장국인 이탈리아의 유엔 주재 대사 마르셀로 스파타포라는 부토의 사망에 애도를 표한 뒤 “파키스탄 국민들이 자제심을 발휘해 국가 안정을 유지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에서 연말 휴가를 보내던 중 소식을 듣고 “미국은 파키스탄 민주주의를 저해하려는 잔인한 극단주의자들의 행위를 강력 규탄한다”는 성명을 냈다. 프랑스, 영국, 독일, 러시아, 중국, 브라질 등 각국 정상들도 부토 측에 애도를 보내고 테러세력을 규탄했다.

파키스탄의 이웃인 인도의 만모한 싱 총리는 “극악한 암살에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애도했다. 아프가니스탄의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은 “이슬람 세계의 용감한 딸이 목숨을 잃었다”며 “그녀는 파키스탄과 지역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다”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이슬람권 국가들도 테러를 일제히 비난했다고 AFP통신 등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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