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늘 말하도록 초대받은 주제는 현대영어의 쓰임새로는 붙잡기 어려운 것입니다. 오늘날 핵심적인 영어단어 속에는 폭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존 F. 케네디는 빈곤에 대한 '전쟁'을 선포할 수 있었고, 지금 평화주의자들은 평화를 위한 '전략'(전쟁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이처럼 공격성을 내포한 언어를 가지고 나는 여러분에게 평화의 진정한 의미를 복원하는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오늘 내가 말하는 모든 낱말 하나하나는 평화를 말로 드러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나 자신에게 상기시켜주게 될 것입니다. 내게는 한 인간사회가 누리는 평화는 그 사회구성원들이 향유하는 시(詩)만큼 개성적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평화의 의미를 번역한다는 것은 시를 번역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인 것입니다.
평화는 각 시대와 각 문화영역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고, 각 문화영역 내에서도 중심부와 주변부에서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중심부에서는 "평화의 유지"가 강조되지만, 주변부 사람들은 "평화로이 내버려두어져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30년간의 이른바 '개발의 시대' 동안에 후자의 의미, 즉 '민중의 평화'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발전'이라는 외피 밑에서 세계 전역에서 민중의 평화를 깨트리는 전쟁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발전이 이룩된 지역에서는 민중의 평화는 사실상 사라져버렸습니다. 나는 경제발전에 대한 제약 - 풀뿌리에서 시작하는 - 이야말로 민중이 평화를 회복하는 데 필수조건이라고 믿습니다.
문화는 늘 평화에 의미를 부여해왔습니다. 각각의 '에스노스' - 민중, 공동체, 문화 - 는 그 자신의 '에토스' - 신화, 법률, 여신, 이상 - 에 의해 비쳐지고,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강화되어 왔습니다.
평화는 말처럼 토착적인 것입니다. 유태인의 가장이 팔을 들어 자신의 가족과 양떼들에 축복을 내리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는 '샬롬'(평화)이라고 말합니다. 유태인에게 천사는 '샬롬'이라고 말하지, '팍스'라는 로마어를 말하지 않습니다.
로마의 평화는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로마 총독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군기를 치켜들 때, 그의 시선은 하늘로 향하지 않습니다. 그는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를 봅니다. 그는 그 도시에 법과 질서를 부과합니다. '샬롬'과 '팍스 로마나(pax romana)'는 같은 장소, 같은 때에 존재하더라도 그 둘 사이에는 아무 공통점이 없습니다.
오늘날 중국어 '화평(和平)'과 힌두어 '샨티'는 과거의 것과 다르지 않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두 말 사리에는 큰 간극이 있어서 서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중국어 '화평'은 하늘(天)의, 위계질서 속에서의 부드럽고 고요한 조화를 의미하는 것인 반면에 인도의 '샨티'는 친밀하고 개인적이고 우주적이며 비위계적인 깨달음을 가리킵니다. 이렇듯, 간단히 말해서, 평화에는 동일화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여기 극동에서는 평화연구가 서구에서보다는 좀더 쉽게 다음과 같은 자명한 원리에 토대를 두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즉, 전쟁은 문화의 차이를 없애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평화는 각 문화가 독자성을 가지고, 다른 문화와 비교될 수 없는 방식으로 꽃피는 조건이 된다는 기본원리 말입니다.
그러므로, 평화는 결코 수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평화는 옮겨가면 반드시 타락합니다. 평화의 이전은 전쟁을 의미합니다. 평화연구가 이러한 자명한 인종학적 사실을 무시할 때, 그것은 평화유지를 위한 테크놀러지로 전환됩니다. 즉, 어떤 종류의 도덕 재무장론으로 떨어지거나 아니면 고급장교와 그들의 컴퓨터 게임에 의한 네거티브한 전쟁과학으로 전락해버릴 것입니다.
평화는 인종학적, 인류학적 현실에 입각하지 않는 한, 비현실적인 단순한 하나의 추상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평화의 역사적 차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때도 역시 평화는 비현실적인 것으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
극히 최근까지, 전쟁은 평화를 완전히 파괴할 수는 없었고, 또한 평화의 모든 수준에 침투해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이 계속되려면 전쟁을 지탱해주는 풀뿌리 민중의 자급의 문화(subsistence culture)가 존속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전쟁은 민중의 평화의 지속에 의존했던 것입니다.
너무도 많은 역사가들이 이 사실을 간과해왔습니다. 그들은 역사를 전쟁 이야기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강자들의 흥망성쇠를 기록하려고 하는 고전적인 역사가들에게 명백히 나타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정복당한 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좀더 최근의 역사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됩니다.
그들은 주로 저항운동과 노예, 농민, 소수자, 소외된 사람들에 의한 반역과 반란과 폭동에 대해서 보고하고, 좀더 최근에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투쟁과 여성해방투쟁을 다루어 왔습니다. 이 새로운 역사도 흔히 전쟁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약자들이 적들과 싸운 충돌장명들이 주로 역사가들의 시선을 끄는 것입니다. 과거는 단순한 것으로 취급되고, 과거의 모든 것이 20세기적인 사고로 포착될 수 있다는 착각이 생겨납니다. 여러 문화를 동일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전쟁이 너무도 빈번히 역사가들의 서술의 틀이나 뼈대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평화의 역사입니다. 전쟁의 역사보다도 무한히 더 다양한 것이 평화의 역사입니다.
지금의 평화연구는 역사적 시각을 결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 주제는 문화적, 역사적 내용이 제거된 '평화'입니다. 역설적으로 평화라는 것이 자원의 희소성을 전제로 한 경제적 권력들 사이의 균형으로 환원되었을 때 평화는 하나의 학문적 주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평화연구는 제로섬 게임에 갇힌 경쟁자들 간의 최소한의 폭력휴전에 대한 연구로 제한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희소성이라는 개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희소한 것이 아닌 것의 평화로운 향유, 즉 민중의 평화는 깊은 그림자 속에 가려져 버리는 것입니다.
자원의 희소성은 경제학의 근본가정입니다. 그러나 희소성은 대부분의 역사에 걸쳐 대다수 사람들의 생활에서 오직 주변적인 중요성밖에 갖지 못하였습니다. 생활의 모든 국면으로 희소성의 개념이 확산된 것은 중세 이후 유럽문명에서였습니다. 희소성에 대한 가정(假定)이 확산되면서 평화는 이제 '팍스 에코노미카'를 의미하게 된 것입니다. '팍스 에코노미카'는 공식적인 경제권력들간의 균형을 말합니다.
'팍스 에코노미카'가 평화의 의미를 독점해버린 과정은 특히 중요합니다. '팍스 에코노미카'는 평화의 의미를 처음으로 세계적 규모로 받아들여지게 하였습니다.
유엔 창설 이후 평화는 점점 '발전' 개념과 연결되어 왔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새로운 현상인지 40세 이하의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1949년 1월 10일 트루먼 대통령이 ‘4개항 프로그램’을 발표한 날, 우리들은 바로 그날 지금처럼 사용되는 '발전'이라는 용어에 처음으로 마주쳤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조금 당혹한 심정으로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일인당 소득 향상', '선진국 따라잡기', 또는 '의존상태의 극복'이라는 목표를 내건 연속적인 프로그램 때문에 사람들이 어떻게 끊임없이 희생을 요구받아왔는지를 말입니다. '성취지향성'이니 '평화를 위한 원자력', '고용창출', '셀프 헬프(自助)' 등 한때는 수출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많은 아이디어들이 물결을 이루어 밀어닥치곤 하였습니다. 한 물결은 기업 활동을 강조하는 실용주의자들을 데려왔고, 다른 물결은 외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도록 민중들에게 설득하는 정치가들을 등장시켰습니다. 그들은 생산을 높이고, 소비 의존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각 진영의 전문가들은 평화를 향한 발전에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연결시켰습니다.
그리하여, 구체적인 평화는 그렇게 발전개념에 연결됨으로써 하나의 당파적인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발전을 통한 평화의 추구는 공리가 되었습니다. 경제성장 그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은 누구든 평화의 적으로 비난받게 되었습니다. 희소성이 없는 가치는 보호할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경제학자들의 근본전제에 의해서 '팍스 에코노미카'는 민중의 평화를 근원적으로 위협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평화가 발전개념에 연결되어버린 결과 ‘발전’에 대해 도전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도전이야말로 이제 평화연구의 주된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무엇을 차지하느냐'라는 문제를 둘러싼 논쟁 밑에서 발전·개발에 불가피하게 내재된 비용은 은폐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70년대 동안 이러한 비용의 일부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몇몇 명백한 ‘진실’이 돌연히 논란거리가 되었습니다. 즉, 에콜로지라는 이름 밑에서 자원의 한계와 감내할 수 있는 오염과 스트레스의 한계가 정치적 이슈로 된 것입니다. 그러나 환경의 유용화 가치에 대해 저질러지고 있는 폭력적인 공격은 지금까지 충분히 해명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장에는 민중의 자급문화에 대한 폭력적인 공격이 함축되어 있지만, 이는 ‘팍스 에코노미카’에 의해 은폐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 내게는 래디칼한 평화연구의 일차적인 과제로 생각됩니다.
이론과 실제 어느 쪽이든 모든 발전·개발은 민중의 자급지향적 문화를 경제시스템 속으로 통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발전은 언제나 민중의 자립, 자급적 활동이 희생되고, 공식적인 경제영역이 확대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그것은 제로섬 게임의 틀 내에서 교환이 행해지는 영역을 갈수록 확대해 나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확대는 모든 전통적인 교환형태를 희생시키면서 진행됩니다.
발전은 상품의 생산과 유통을 편리하게 하는 상황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민중의 자급적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제거해버립니다. 발전은 필연적으로 모든 형태의 민중의 평화를 희생시키면서 ‘팍스 에코노미카’를 강요합니다.
민중의 평화와 ‘팍스 에코노미카’ 사이의 대립을 예시하기 위하여, 유럽의 중세를 돌아보기로 합시다.
12세기에, ‘팍스’는 영주들 사이에 전쟁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회나 황제가 보장하려고 했던 ‘팍스’는 기사(騎士)들 사이에 무장충돌이 없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팍스’ 곧 평화는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의 자급적 생존수단을 전쟁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평화는 농민과 수도승을 보호했습니다. 이것이 ‘신(神)의 평화’, ‘땅의 평화’의 의미였습니다.
그것은 특정의 시간과 장소를 지켜주는 것이었습니다. 영주들 간의 충돌이 아무리 피비린내 나는 것이라 하더라도 평화는 소와 밭의 곡물을 보호했습니다. '땅의 평화’는 민중이 공유하는 환경의 유용화 가치를 폭력적인 침해로부터 막아주었습니다. 그것은 생존을 영위하기 위해서 달리 의존할 데가 없는 사람들이 물과 목초지, 숲과 가축을 이용할 수 있도록 보증해주었습니다. ‘땅의 평화’는 전쟁 당사자 사이의 휴전과 구분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무엇보다도 민중의 자급적 생활에 겨냥되어 있던 평화의 의미는 르네상스와 함께 상실되었습니다.
민족국가의 대두와 더불어 전혀 새로운 세계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세계는 새로운 종류의 평화와 새로운 종류의 폭력을 맞아들였습니다. 그 평화와 폭력은 모두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형태의 평화와 폭력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평화는 영주들 간의 전쟁을 지탱해주는 토대가 되었던 민중의 최소한의 자급생활에 대한 보호를 의미했던 것임에 반해 이제부터는 민중의 자급적 생활 그 자체가 공격의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자급의 문화는 시장의 먹이감이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종류의 평화가 대두됨으로써 하나의 유토피아가 추구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민중의 평화는 위태롭기는 하지만 진정한 공동체가 완전히 절멸되는 것을 막아주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평화는 하나의 추상을 둘러싸고 건설되었습니다. 새로운 평화는, 다른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 생산한 상품의 소비에 의존하는 ‘경제인간(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척도에 따라 새겨졌습니다. 민중의 평화(pax populi)가 토착적 자율성과 그것이 번창할 수 있는 환경과 그 재생산을 위한 다양한 패턴을 보호해주었던 것에 반해 새로운 ‘팍스 에코노미카’는 생산을 보호합니다. 그것은 민중문화와 공유지(共有地)와 여성에 대한 공격입니다.
첫째, ‘팍스 에코노미카’는 민중이 스스로의 생활을 꾸려나갈 수 없게 되었다는 가정을 감싸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것은 엘리트의 힘을 강화하고, 엘리트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교육과 건강관리, 경찰에 의한 보호, 아파트와 슈퍼마켓에 민중의 생존이 의존하게 합니다.
일찍이 예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방식으로, 그것은 생산자를 드높이고, 소비자를 격하시킵니다. ‘팍스 에코노미카’는 자급적 생존방식을 ‘비생산적’이라고 규정하고, 자율적인 것을 ‘비사회적’이라고 부르며, 전통적인 것을 ‘미개발된’ 것으로 봅니다. 그것은 제로섬 게임에 맞지 않는 모든 지역적 관습에 대한 폭력을 의미합니다.
둘째, ‘팍스 에코노미카’는 환경에 대한 폭력을 조장합니다. 그것은 공유지의 파괴를 허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파괴를 장려합니다.
'팍스 에코노미카'는 환경을 하나의 희소 자원으로 규정하고, 상품생산과 전문적 서비스를 위하여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깁니다. ‘팍스 에코노미카’는 공유지에 대한 전쟁을 말합니다.
셋째, 새로운 평화는 남녀 간에 새로운 종류의 전쟁을 조장합니다. 지배력을 위한 전통적인 투쟁으로부터 남녀 사이의 이 새로운 전면적인 전쟁으로의 이행(移行)은 경제성장의 부작용 가운데 아마도 가장 검토가 안 된 문제일 것입니다. 이 전쟁 역시 이른바 생산력의 성장이라고 하는, 임금노동이 모든 형태의 일을 완전히 독점해버리는 과정의 필연적인 산물입니다. 그리고 이것 또한 폭력적인 공격입니다.
임금에 관계된 일이 독점적인 지위를 갖게 됨으로써 모든 자급문화의 공통된 특징이 심한 공격을 받게 됩니다.
자급사회는 일본, 프랑스, 피지의 자급문화처럼 각기 다를지 모르지만, 한 가지 중심적인 공통성이 있습니다. 모든 일은 성에 따른 구분, 즉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로 구분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구체적인 일의 틀은 사회에 따라 다양합니다. 그러나 각 사회는 다양한 일거리를 남자 또는 여자에 따라 구분해서 분배하고, 그 분배는 저마다의 독특한 패턴에 입각하여 행해집니다. 어떠한 두 문화에서도 사회 내에서 일을 분배하는 패턴은 같지 않습니다. 각 사회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그 사회에서, 오직 그 사회에서만, 남자 또는 여자로서 갖는 특징적인 활동을 떠맡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산업화 이전(以前) 사회에서 한 남자 또는 한 여자라고 하는 것은 무성(無性)의 인간에게 부가된 이차적인 특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있어서도 이차적인 특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있어서도 가장 근본적인 특징입니다. 성장한다는 것은 ‘교육받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한 여자 또는 한 남자로서 행동함으로써 삶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녀 사이의 역동적인 평화는 정확히 이러한 구체적인 일의 구분으로 성립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평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상호 억압에 제한을 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친밀한 영역에 있어서조차 민중의 평화는 전쟁과 지배의 범위를 모두 제한합니다. 임금노동은 이러한 패턴을 파괴합니다.
산업노동, 생산적 노동은 중성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또 흔히 그러한 것으로 경험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의 구별이 없는 일이라고 규정됩니다. 그러나 일 자체가 성의 구별이 없는 것이라고 간주되더라도 일에 대한 접근은 철저하게 편향되어 있습니다.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좋은 일자리로 생각되고 대가를 받는 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데 반해 여자들의 몫은 대개 남자들이 차지하고 남은 일거리들입니다. 원래 여성들은 금전적 대가를 받지 못하는 그림자 노동에 종사하도록 강요되었습니다. 지금은 남성들에게도 점점 더 많이 그러한 노동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발전은 이론적으로 동등한 존재가 된 남녀간에 새로운 전쟁을 필연적으로 촉발시킵니다.
‘팍스 에코노미카’는 제로섬 게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지켜줍니다. 모든 사람들은 ‘경제인간(호모 에코노미쿠스)’의 규칙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이 모델에 적응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평화의 적으로서 추방되거나 아니면 순응할 때까지 교육을 받습니다. 제로섬 게임의 규칙에 의하면, 환경과 인간의 일은 모두 최소한 노름 밑천입니다. 따라서 한 편이 따면 다른 편은 잃게 됩니다.
‘팍스 에코노미카’에 긍정적인 가치가 전혀 없지는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전거는 예전에 후추 무역이 행해지던 것과는 다른 시장에서 발명되고, 그 부품들이 유통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경제권력들 간의 평화는 적어도 고대의 전쟁영주들 간의 평화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엘리트들의 평화 독점에 도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한 도전을 명확히 하는 것이 오늘날 평화연구에서 가장 근본적인 과제로 생각됩니다.
(바람구두님의 유리병에 담겨있던 일리치의 글입니다. 내용이 좋아서 여러차례 곱씹어 읽어보게 되는군요. 제가 약간 줄여서 옮겼습니다. 일리치의 책을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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