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오늘 68

747 점보기 첫 선

‘점보기’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보잉 747. 20세기 항공기의 대명사다. 미국 보잉사는 1960년대까지 민항기의 주류를 이루던 707을 대체할 초대형 항공기로 747을 디자인했다. 초창기 터보제트 엔진의 2배 출력을 낼 수 있는 고출력 터보팬 엔진이 개발돼 점보기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설계될 때만 해도 보잉사에는 초대형 항공기를 조립할 수 있는 공장이 없었다. 보잉은 미국 내 50여개 도시를 놓고 입지를 고민한 끝에 워싱턴주 에버릿의 페인필드 미군기지 땅을 이용하기로 했다. 이곳에 66년 316헥타르의 공장을 만들고 조립에 들어갔다. 사운(社運)이 걸린 일이었던지라 윌리엄 앨런 당시 보잉 회장이 에버릿 공장 설립을 일일이 현장에서 지휘했다고 한다. 에버릿 공장은 당시 미국에 지어진 가장 커다란 건..

1889년 9월 23일 닌텐도 설립

일본 최대 비디오게임 제조회사인 닌텐도(任天堂)는 1889년 9월 23일 교토에서 설립됐다. 당시 이름은 닌텐도곳파이(任天堂骨牌).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지금 정보통신(IT) 산업의 총아로 각광받는 닌텐도의 시작은 다름아닌 ‘화투’였다.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하나후다 즉 화투는 모두 수제품이었고, 닌텐도의 상품들도 뽕나무 판에 하나하나 손으로 그린 것들이었다. 창업자 야마우치 후사지로(山內房治郞)는 먼저 교토와 오사카 두 곳에 점포를 내고 화투를 팔았는데 이 가게들이 잘 돼 사업을 확대했다. 야마우치는 조수들을 고용해 생산량을 크게 늘렸다가 나중에는 대량생산 체제를 만들고 ‘닌텐도배(杯)’라는 화투 대회까지 만들며 경영수완을 발휘했다. 1902년 일본 최초로 트럼프 카드를 만들어판 것도 야마우치였..

1908년 미국 최대 자동차회사 GM 창립

미국 최대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 사장을 지내고 1952년 국방장관이 된 찰스 어윈은 의회 인준 청문회에서 “장관으로서 GM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어윈의 대답은 “미국에 좋은 것은 GM에 좋은 것이며,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은 것”이라고 대답했다. 당시만 해도 이 대답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었고 어윈은 장관 인준을 받았다. 1908년 9월 16일 자동차 브랜드 뷰익의 지주회사 형태로 창립됐다. 본사는 미시간주 플린트에 있었고 사주는 ‘자동차 빌리’라는 애칭을 얻었던 미국 자동차회사의 거두 윌리엄 듀런트였다. 듀런트는 캐딜락, 엘모어, 폰티악, 릴라이언스 모터컴퍼니 등을 잇달아 흡수해 팽창 경영을 하다가 2년 만에 채권단에 회사를 넘겨야 했지만, 시..

어제의 오늘/ '황제'의 TV출연

‘에드 설리번 쇼’는 1950~60년대 일요일 밤마다 미국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던 CBS TV의 쇼프로그램이다. 진행자인 설리번은 화려한 말솜씨와 재치로 유명했지만, 그 못잖게 까칠한 태도와 거만함으로도 출연자들 사이에 악명을 떨쳤다. 쇼 자체로도 시청률이 높았고 인기가 많았지만 에드 설리번 쇼가 두고두고 기억되는 것은 1956년 9월 9일 이 쇼를 통해 ‘황제의 등극’을 세상에 알린 한 출연자 덕분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 멤피스의 트럭운전사 출신으로 레코드를 취입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당시 21세의 청년이 이 쇼를 통해 자신의 시대가 왔음을 선언한 것이다. 엘비스가 TV에 출연한 것이 물론 처음은 아니었다. 두달 전인 7월1일 엘비스는 설리번 쇼와 경쟁하던 NBC의 ‘스티브 앨런 쇼’에 먼저 출연..

어제의 오늘/ 1945년 베트남 독립선언

인도차이나 반도 동쪽에 위치한 베트남은 남중국해에 면해 남북 1600㎞에 걸쳐 뻗어있다. 동서로 최대 폭은 650㎞로, 남북 길이가 훨씬 긴 ‘칠레형 국가’다. 국토는 북부의 고원과 통킹 삼각주, 안남 산지와 해안 저지대, 그리고 메콩강 삼각주의 다섯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원과 산과 평야와 삼각주와 해안을 모두 가진 비옥한 나라다. 특히 통킹, 메콩강 삼각주는 농경의 중심으로서 예로부터 베트남 민족의 주요 활동 무대가 되어 왔다. 남부 지역 거의 대부분에 해당되는 메콩강 삼각주는 해발 3m 이하의 저지대로 지금도 국민 절반이 이 곳에 살고 있다. 원래는 이웃한 캄보디아의 크메르 민족 땅이었으나 17세기 베트남 민족이 들어와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곡창지대를 차지했다. 하지만 베트남의 근현대사는 비옥한 땅..

어제의 오늘/ 전두환 노태우 유죄선고

1995년10월 민주당의 박계동 의원은 국회에서 노태우 전대통령이 재임 때 거액의 비자금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검찰이 진상조사에 들어가 그해 11월 첫날 노 전대통령을 소환조사한 뒤 서울구치소에 구속수감했다. 비자금 파문은 ‘돈 문제’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전두환·노태우 군사독재정권의 부정축재 의혹은 물론이고, 이들 정권의 출발점이 된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중항쟁 학살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여론을 수용해 5·18 특별법 제정을 지시하면서 이른바 ‘역사 바로세우기’를 선언했다. 광주학살에 대해서는 이미 88년 국회 청문회에서 진상규명 시도가 있었지만 진실을 밝히는 데에 실패하고 무산됐다. 피해자 유족들과 인권단체들의 고소·고발도 여러 건이었지..

어제의 오늘/ 라이너스 폴링 타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1901년 태어난 라이너스 폴링은 25세에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서 물리화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30세에는 세계 최고의 화학자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그는 화학에서 생물학으로 방향을 틀어, DNA 구조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생물학자로서도 그는 탁월했다. 폴링은 51년에 단백질의 알파 나선구조를 제시하고 이듬해에는 DNA의 ‘3중 나선구조’를 내놓았다. 인간 유전 체계의 신비의 사슬은 폴링에 의해 베일이 벗겨지는 듯했다. 그러나 DNA는 3중이 아닌 2중 나선구조임이 드러났고, 이를 밝혀낸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노벨상에 있어서라면 폴링은 아쉬울 것이 없었다. 이미 54년에 화학상을 받았던 데다가, 62년에는 다른 분야에서 또다시..

어제의 오늘/ 2000년 러시아 핵잠 쿠르스크호 침몰

2000년 8월 12일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가 노르웨이 북부 바렌츠해에서 갑작스런 폭발음을 남기고 침몰했다. 해저 108m로 가라앉은 잠수함에는 승무원 118명이 타고 있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끌던 당시 러시아 정부와 군은 사고가 나자 쉬쉬하기 바빴다. 핵잠 침몰 사실은 러시아 정부나 언론이 아닌 서방 소식통들을 통해 먼저 세계에 알려졌다. 러시아 정부는 사건이 보도되고 이틀이 지나서야 침몰 사실을 인정했다. 더 참혹한 일은, 사고 당시 핵잠 안에 118명의 승무원이 타고 있었으며 침몰 뒤에도 상당한 시간 동안 승무원들이 살아있었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군사기밀에 관련돼 있다는 이유로 서방의 구조작업 지원 제안을 거절했고 승무원 구출작업에도 늑장을 부렸다. 결국 가라앉은 ..

어제의 오늘/ 미-베트남 국교 정상화

1995년 8월 5일 미국의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이 하노이를 방문, 응우옌 만 캄 베트남 외무장관과 만나 국교 정상화 협정에 조인했다. 1975년 베트남전이 끝나고 20년만이었다. 이로써 한국전쟁 이래 동·서 냉전 진영이 맞붙은 최대 전쟁이었던 베트남전은 완전히 끝났다. 미국에서는 베트남전 참전병들이 국교 회복에 반대했지만 일반적인 여론은 지지가 압도적이었다. 베트남은 80년대 ‘도이모이(개혁)’ 정책을 실시하면서 동남아시아의 새로운 경제엔진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미국 산업계는 양질의 저렴한 노동력과 자원을 가진 베트남 진출을 몹시 바라던 터였다. 2년 뒤인 97년 두 나라는 대사를 교환했고, 98년에는 부총리로 승진한 응우옌 만 캄이 미국을 방문했다. 하일라이트는 2000년 11월 빌 클린턴 미국 ..

어제의 오늘/ 1905년 美·日 ‘가쓰라 - 태프트’ 밀약

1905년 7월 29일 미국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특사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는 필리핀 방문 길에 일본에 들러 가쓰라 다로(桂太郞) 총리를 만난다. 이 회담에서 미국은 필리핀의, 일본은 조선의 이권을 나눠갖는 일을 서로 묵인해주기로 밀약을 맺는다.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ㆍ필리핀은 너희가, 조선은 우리가 서양과 동양의 두 식민제국은 이렇게 타국들에 대한 이권챙기기로 의기투합했다. 밀약의 내용은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하는 것이 일본에게도 유리하므로 일본은 필리핀을 공략하지 않는다”, “극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는 일본·미국·영국의 상호 이해가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이다”, “일본이 조선을 보호하는 것이 극동의 평화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미국도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그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