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53

이것이 인간인가

우리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다른' 사람들을 거기에 참여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우리를 사로잡았다. 그것은 우리가 자유의 몸이 되기 전부터, 그리고 그후까지도 우리들 사이에서 다른 기본적인 욕구들과 경합을 벌일 정도로 즉각적이고 강렬한 충동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이 책은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씌어졌다. 그러니까 무엇보다 먼저 내적 해방을 위해서 씌어진 것이다. (머리말) 대체 어떤 책이길래, '우리'는 누구이길래,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줘야만 했을까. 어떤 이야기이길래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픈 욕구가 다른 기본적인 욕구들과 경쟁할 정도로 강렬했던 것일까. 읽어야지,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면서 계속 미루게 되는 책이 있다. 내 경우, 그런 책은 필시 '무거운 책'이다. 마음..

딸기네 책방 2016.10.18

뉴 차르, 드라마같은 푸틴 평전

'뉴 차르'. 굉장히 재미있었다. 미국 뉴욕타임스 모스크바 지국장을 지낸 스티븐 리 마이어스가 지은 블라디미르 푸틴 평전(이기동 옮김. 프리뷰)이다. 말 그대로 '평전'인지라, 푸틴의 인생을 할아버지 시절부터 비교적 최근 상황까지 길고 자세하게 정리했다. 우선 책 분량이 만만찮다. 각주 빼고 본문만 679쪽. 푸틴 측근들의 증언과 회고록, 그를 인터뷰한 언론, 러시아에서 나온 온갖 보도들을 종합해 생생하게 여러 상황을 재구성했다. 저자는 푸틴의 행보에 대한 '그 당시' 상황에서의 평가를 회피하지 않지만 몹시도 객관적이다. 어떤 일들이 푸틴의 성향을 만들었고 어떤 결정으로 이어졌는지 소개하고 평가하되, 악마화하지도 않고 예찬하지도 않는다. 푸틴은 금수저 출신도 아니었고 처음부터 대단한 권력을 쥐고 있던 것..

딸기네 책방 2016.10.07

히라카와 가쓰미 '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

일본의 ‘다른 자본주의 3부작’이라고 할 법한 책들을 쭉 훑어봤다. 는 재미있었고, 모타니 고스케의 는 흔하고 평범한 책 정도로 읽었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히라카와 가쓰미의 (장은주 옮김. 가나출판사)도 읽게 됐다. 탈성장에 관심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깊이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닌데 이런 책들이 계속 손에 들어온다. 내가 돈 주고 사는 것은 아니니, 아마도 이쪽의 책들이 최근에 많아진 탓인 듯. 3권의 책이 모두 결이 조금씩 다르지만 관통하는 게 있다. 우리는 성장 지상주의에 지쳤고, 너나없이 경쟁해서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쓰자는 흐름에 치였으니 이제 그런 생각은 조금 내려놓자는 것. 조금 느리게, 조금 덜 경쟁하고, 덜 벌고, 덜 갖고, 덜 쓰며 살자는 것. 경쟁에서 뒤쳐져 못 벌고 못 갖고 쓸 것 ..

딸기네 책방 2016.09.12

앤서니 기든스. 유럽의 미래를 말하다

유럽의 미래를 말하다앤서니 기든스. 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밑줄은 많이 그었지만 기든스의 책은 '두고 두고 볼' 혹은 '간직하고픈'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집에 이 있더라;;) 이 책은 유럽연합에 대한 것, 정확히 말하면 '유럽 통합론자' 기든스가 유럽을 걱정해서 유럽/유럽연합을 향해 내놓는 제언이다. 읽을만 한데, 시기적으로 좀 지나가서... 2014년 유럽의회 선거 전에 쓰인 것이라. 이미 선거는 지나갔고(극우파가 이겼고)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영국인들은 탈퇴를 택했으며... 번역은 좀 아쉽다. 군데군데 거슬리는 것, 적절치 않은 표현들이 보여서. 유럽의 이중구조와 '종이 유럽' 유럽공동체를 설계한 사람 중 한 명인 장 모네는 유럽 통합이라는 건물은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올려 구..

딸기네 책방 2016.09.11

필립 고레비치, '내일 우리 가족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제발 전해주세요!'

아프리카를 이야기하면서 조셉 콘라드의 을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날은 과연 언제일까. 그런 날이 오기는 올까. 르완다 내전을 다룬 고만고만한 읽을거리인 줄 알았다. 내전이 발생하고 1년 뒤인 1995년부터 수차례 르완다를 방문한 저자는 보고 들은 것뿐 아니라 느끼고 생각하고 고민한 것들까지 가감 없이 책에 풀어놨다. 책을 펴들자마자 순식간에 책장을 넘겼다.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았다. 폴 카가메와 요웨리 무세베니가 가진 의미, 당시 내전을 다룬 서방 언론들의 문제, 아프리카에 대한 세계의 고정관념, 그리고 무엇보다 대학살의 참상. 보미가 르완다 다녀와서 쓴 '행복기행' 시리즈 기사를 보면서, 아니 그 전에 르완다가 여성평등을 가장 열심히 추진하는 나라이고 여성 의원이 전체 의원의 64%라는 조사결과를 보면..

딸기네 책방 2016.09.08

대프니 셸드릭, 아프리칸 러브 스토리

재미나다. 케냐에서 '코끼리 고아원'을 운영한 백인 이주민 이야기. 케냐에 대한 생각에는 '식민지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영국인의 시선이 고스란히 녹아 있지만 그 또한 당시 이주민들의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고. 동물 이야기가 진짜 흥미진진! 케냐에서 암보셀리, 마사이마라 다녀왔던 기억도 나고... 초원에서 은하수를 보다케냐 마사이마라 '사파리' 여행 미화 언니가 보내주신 책인데 오랫동안 꽂아두고 있다가 올 여름 펴들고 무더위를 났다. 케냐에 가고 싶다... 여담이지만 요니가 이 책을 먼저 읽었다. 책 지은이는 대프니 셸드릭인데, 앞부분에 '빌'이라는 남성과 결혼한 얘기가 나온다. 이어 빌의 자연보호구역 동료이자 상사인 데이비드 셸드릭이 나온다. 요니가 '수상하다'며... 아무래도 대프니가 데이비드와 결혼할 ..

딸기네 책방 2016.08.30

장 카르팡티에 등, '지중해의 역사'

묵히고 묵히던 책을 휴가 때 끝냈다. 장 카르팡티에 등이 쓰고 엮은 (강민정, 나선희 옮김. 한길)>. 두꺼운 만큼 내용도 알차다. 프랑스 학자들이 ‘지중해의 역사’를 훑었는데 시간의 길이도 길고, 공간의 범위 또한 넓다. 그리스, 로마로부터 시작해 멀리는 오늘날의 이라크, 이란까지 포괄하는 중근동을 적잖게 건드리고 있고,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까지 종횡무진 넘나든다. 아쉬운 것은, 숱하게 많은 지명이 나오는데 옮긴이 주석이 없다는 것. ‘한길 히스토리아’ 브랜드로 나왔는데 이 정도 책이라면 번역자가 힘들더라도 지명마다 최소한 어느 대륙, 지금의 어느 나라 어디쯤인지는 주석을 달아줬어야 했다. 책머리 컬러 화보 대여섯 장 들어간 것 빼고는 모두 흑백인데 가격은 3만5000원. 책값이 아깝지는 않으며 번역도..

딸기네 책방 2016.08.22

스티븐 제이 굴드, '판다의 엄지'

이번 휴가는 도킨스, 굴드와 함께 보냈다. 오랫동안 쟁여두고만 있었던 도킨스의 돌베개만한 책 . 말해 무엇하리. 그리고 스티븐 제이 굴드의 (김동광 옮김. 사이언스북스). 이 책은 그동안 마음 속에(^^;;) 남겨두고만 있다가 몇달 전 결국 샀다. 교보문고를 지나가다가 매대에 올라있는 판다의 엄지를 보니...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굴드의 글을 읽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먼저 굴드, 한동안 도킨스, 그 다음엔 에드워드 윌슨에 빠져 있었고 심지어 제임스 왓슨과 르원틴의 책도 읽었건만 언제부터인가, 왜인지, 굴드를 잊고 지냈다고나 할까. 따지고 보면 이유를 모를 것도 없다. 2002년 굴드아저씨가 세상을 뜬 뒤로 어쩐지 마음의 상처를 받은 기분이었으니. 샤르트르 대성당의 남쪽 수랑에는 중세에 만들어진 가장 ..

리처드 도킨스, '지상 최대의 쇼'

도킨스에 대한 애정을 더 이상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의 책을 읽으면 늘 속이 시원하고 즐겁고 유쾌하고 통쾌하다. 와 , , 에 이어 도킨스의 책을 읽는 것은 다섯권째인 듯. 하지만 사실 정확히 기억은 안 남. 칼 세이건의 은 분명 읽은 것 같은데, 도킨스의 을 읽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a 휴가 때 벽돌베개 만한 부피를 자랑하는 (김명남 옮김. 김영사)를 들고 갔다. 여행에 가지고 다니기엔 버거운 크기이지만 읽는 즐거움이 무게와 두께를 상쇄해주고도 남는다. 여담이지만 이번 휴가에는 도킨스와 함께 굴드의 도 가져갔다. 2002년 이미 세상을 떠난 굴드의 책은 오래 전, 그러니까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옛 글들을 모은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굴드의 비판은 신랄하다. 반면에 신랄하기..

살바도르 아옌데: 혁명적 민주주의자

살바도르 아옌데: 혁명적 민주주의자빅터 피게로아 클라크 지음. 정인환 옮김. 서해문집. 아옌데의 연설이나 일화 정도만 읽었지, 인물 전체를 다룬 책은 처음이다. 스크랩을 열심히 해두려고 했는데... 중간에 덮어두고 휴가를 다녀오니 책이 없어졌다. 아옌데를 아는 사람(즉 상당한 연식이 있는 사람), 그러나 남의 책을 책상 위에서 과감히 훔쳐갈 용기가 있는 사람의 소행이다. 젠장. 칠레인들은 일종의 섬나라 사람 같은 정서를 갖고 있다. 지리적 고립과 세계적인 사건들로부터 떨어져 있는 거리감 탓에 칠레인들은 스스로 조금은 촌스럽다고 의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자국 출신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사람에 대해서는 대단한 자부심을 느낀다,원주민인 아라우칸 마푸체족은 300여 년 동안이나 독립을 위해 치열하게 ..

딸기네 책방 2016.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