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3993

도쿄의 병원에 다녀왔어요

후덥지근한 도쿄의 무더위를 견디지 못해 하루 24시간 에어컨을 틀어놨더니, 꼼꼼이가 결국 감기에 걸렸습니다. 어제 밤부터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져서, 급기야 오늘은 동네 의원에 다녀왔습니다. 가정집처럼 편안하게 해놓은 소아과 병원들을 보면서 부러워한 일도 있습니다만, 일본의 병원이 한국의 병원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아이들 진료가 공짜라는 겁니다. 6살 이하의 어린이들은 치료비가 무료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정말 그렀더군요. 꼼꼼이가 백일도 되지 않은 갓난아이일 적에 서울에서 예방접종을 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똑같은 종류의 백신인데 일반 주사는 1만원, 아프지 않은 접종은 4만원이라고 해서 울며겨자먹기로 비싼 접종을 선택했던 경험이 있거든요. 법정전염병 예방접종조차도 비싼 돈을 내야한다는 건 아무래..

작은 것이 아름답다?

며칠전 무덥던 날, 자전거를 타고서 좀 멀리 떨어진 대형 수퍼마켓에 갔다. 보통 쇼핑수레에 아이를 싣게 돼있는데, 여기는 커다란 장난감 자동차에 바구니를 놓을 수 있게 되어있어서, 꼼꼼이를 자동차에 태웠다. 아주 좋아했다. 무향료, 무색소 비누를 샀다. pure soap라고 써있는 하얀 비누 토막. 어쩐지 soap 라기보다는 cleansing bar 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색소도 향료도 들어있지 않으니, 색깔 빠진 빨래비누 같기도 하고. 비누 본연의 냄새가 난다고 할까. 값도 굉장히 싼 편이었는데, 이 비누를 요즘 애용하고 있다. 피부가 몹시 안 좋은 탓에, 보들보들한 세안보다는 뽀드득거리는 느낌을 좋아하는데 딱 내 취향의 비누(인공향료 냄새 싫은 분들, 얘기하세요, 귀국 때 선물로 사다드릴테..

일본의 날씨는 그야말로 변화무쌍

일본은 여름이면 우리나라보다 더 길고 지리한 장마철을 보내야 하는데요, 장마는 6월 초중순에 시작해 7월까지 한달 넘게 계속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기후로, 이달초 장마가 시작되는 듯 하더니만 지난주에는 내내 덥고 맑은 날씨가 이어졌습니다. 일본어써클 하기와라 선생의 말로는, 이렇게 장마철에 한 차례씩 맑은 날이 있는 것을 '쯔유노 하레마(梅雨の晴れ間)'라고 한다는군요. 장마에다가 '쯔유' 즉 '매화비'같은 예쁜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 꽃놀이 좋아하고 여름인사 빼먹지 않고 날씨를 중시하는 일본인들의 전통이 느껴지는 것만 같더군요. 서울서 나고 자라 절기는 고사하고 철 모르고 지내기 일쑤였던 저에게는, 날씨에 관한 다양한 표현들이 생경하면서도 신기하고 재미있게 들렸습니다. 날씨 얘기가 나와서 말..

마사코 소동

지난달 일본의 황태자 마루히토(44)가 아내 마사코(40)의 역성을 들며 '황실 안에 마사코를 억압하는 이들이 있다'는 의미의 발언을 한 것을 놓고, 일본 언론들이 황실 내부 갈등설을 연달아 보도하고 있습니다. 아직 딸(3) 하나밖에 없는 마사코가 '대를 이을 아들을 낳으라'는 압력 때문에 부담을 느껴 요양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주장에서부터, 황후와 마사코의 고부갈등설까지 퍼져 궁내청 안팎이 시끄럽다는데요. 황실에 관한 일련의 보도들을 보고 있자니, 마치 일본의 '가장 기묘한 부분'을 보는 것 같습니다. 똑같이 입헌군주제를 택하고 있는 영국에서는 왕실 인사들의 사생활이 황색 언론을 통해 낱낱이 중계되고 온갖 치부가 드러나 군주제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어떤 '눈에 띄는' 움직임을 찾아보..

일본 초등학생의 엽기 살인사건

요즘 일본에서 단연 화제가 되고 있는 뉴스는 초등학교 여학생의 동급생 살인사건이다. 범인이 처음부터 잡혔던(?) 마당에 속보거리랄 것도 별로 없지만 그래도 주요기사로 다뤄지고 있는데 그 초등학생이 범행 나흘전부터 동급생을 살해할 방법을 3가지나 생각해 두고 있었다는 사실이 오늘의 뉴스라면 뉴스다. 얼음송곳으로 찌르거나 수건등으로 목을 조르거나 칼로 목을 자르는 세가지를 생각했단다. 그 소녀는 '배틀로얄'(소설로도 영화로도 나온 건데 대부분 아시리라 믿고 생략)을 즐겨봤다는데 그 소설과 영화의 한 대목이 이번 사건과 흡사한 내용이다. 이 소녀는 그 장면을 연기한 배우를 좋아하는 배우로 꼽고 있단다. 배틀로얄과 흡사한 내용의 소설도 썼다고 한다. 머 이런 내용인데... 이런 사건은 일본뿐 아니라 어디든 벌어..

일본의 매뉴얼 문화

일본 정 떨어진다 싶고, 저러니 변태들이지 싶을 때가, 바로 저 '매뉴얼 문화'의 극단을 볼 때다. 물론 내가 본 것이 극단인지 아닌지는 아직 나는 모르지만, 아무튼 내가 본 가운데에서도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들이 있다. 우리처럼 도쿄에 한해살이로 연수 와 있는 선배 가족과 함께 후지산에 여행갔다가 들은 이야기다. 그 집 큰 딸이 소학교 6학년인데, 학교에서 수학여행으로 닛코에 간다고 했다. 그런데 여행 안내문(매뉴얼)을 받아왔는데, 이것이 거의 책으로 한 권 분량이더란다. 여행가기 2주 전부터 매일매일 체온을 재서 학교에 가서 보고를 해야 한단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디 그런가? 수학여행 갈 즈음 해서 아이가 열이 있거나(엄마가 손으로 이마를 재보면 알지 -_-) 아프면 선생님께 얘기하고 빠지면 되지. ..

일본의 장애인들

"제 아들입니다, 한디캬푸(핸디캡-장애)가 있어요" 코알라마을에서 자원봉사하는 구니코씨는 나보다 몇살 위의 아줌마인데, 항상 웃는 얼굴에 유머가 넘친다. 일전에 코알라마을에 갔더니 여느때처럼 아이들이 몇명 놀고 있었고, 엄마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구니코씨는 나를 보면서 사내아이 하나를 가리키더니 "장애가 있다"고 먼저 말했다. 사실 그 말을 하기 전까지는 아이에게 장애가 있는지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고 보니까 아이가 하는 행동이 예사스럽지 않았다. 뇌성마비는 아닌데, 자폐아 같기도 하고. 꼼꼼이가 같고 놀던 장난감을 구니코씨 아들이 빼앗자, 재빨리 아들을 붙들어안으며 꼼꼼이를 달랜다. 소학교 2학년이라는데, 아이가 저 나이가 되기까지 구니코씨는 지금과 같은 처신을 숱하게 해야했을 것이다. 구니코..

[2004, 일본] 쿠라시키

어느것이 진짜일까. 과연 '진짜'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이렇게 이어지는 일련의 물음들에 대한 답은, 모두 'NO'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없다--라는 류의 이야기는 아니다. 어떤 것이 일본적인 것일까. 오카야마현 구라시키라는 곳은 아주 작은 도시같았다. 역에서 내리면서부터, 서양식(아지님은 뭐가 서양식이냐고 했지만) 느낌이 짙게 풍긴다. 글쎄, 뭐가 서양식이냐고? 딱히 할 말은 없다. 느낌, 스타일이라고 해야 하나. 서울의 모든 거리가 따지고 보면 서양식 건물들(한옥이 아니라는 의미에서)로 채워져 있지만 '서양식'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롯데월드에 가도, 월드컵 공원에 가도, 서양식은 아니다. 구라시키에는 미관지구(美觀地區)라는 희한한 이름의 구역이 ..

지금 일본에선

고이즈미 정권이 예상 밖의 복병을 만나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혹 저러다가 좌초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스캔들. 정체는 뭐냐면, 국민연금(일본식 정확한 용어는 모르겠음) 문제다. 내용은 아주 단순하다. 처음 도쿄에 왔을 무렵이었으니깐 두달 가까이 됐겠다. 국민연금 홍보 광고(아마도 정부 광고이겠지)에 출연했던 여배우가 실은 연금을 안 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여배우가 기자회견을 갖고 고개숙여 사과했는데, 지적이고 좋은 인상을 가진 여자였다. 유명인이겠지? 그 뒤에, 야당인 민주당이 집권 자민당 의원들의 연금 미납을 문제삼아 대대적으로 공격을 했다. 사정은 잘 모르지만, 여야 정당과 언론이 경쟁적으로 의원들의 연금 납부 실태를 조사했으렸다. 그 결과 민주당 의원들도 연금을 안 낸것이 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