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198

날다, 그리고 버려지다

오랜만에 이 카테고리를 열어 봅니다. 하늘을 나는 것만큼 사람들을 꿈에 부풀게 하는 게 또 있을까요. 우리 딸 어릴적 소원이 날아보는 것이어서 의자 위에 올라가 날갯짓하며 뛰기도 했었는데 ㅎㅎ 하지만 인간의 꿈을 이뤄주던 비행기들, 늙거나 부서져 땅에 내려와 버려진 모습은 유독 서글픕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쓰다 버리는 쓰레기 가운데, 건물들을 빼면 비행기가 가장 덩치가 크지 않을까 싶군요. 그래서 더 을씨년스럽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세계에서 가장 큰 '비행기들의 무덤'은 미국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입니다. 이 곳의 비행기 무덤은 워낙 유명해서 '모하비 본야드 투어(mojaveairport.com/visit/)' 같은 것도 있더군요. 대략 25년 넘게 하늘을 날았던 비행기들이 퇴역하면 여기로 오는데..

43. 1차 대전 이후의 루마니아

43. 1차 대전 이후의 루마니아 루마니아. 동유럽에서 크고 인구가 많은 나라이죠. 요즘엔 서유럽으로 향하는 이주자들이 많다는 이유로 유럽 부자나라들의 눈총을 받는 나라이기도 하고요. 헝가리, 폴란드 등의 '민족국가' 성립에 대해 알아봤으니 이번엔 루마니아로 가봅니다. 오늘날 루마니아는 동유럽에서도 가장 '전근대적인'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 나라라는 평을 듣습니다. 근대로 접어드는 시기의 루마니아에는 어떤 장애물들이 있었는지 알려면 그 이전의 이 지역을 살펴봐야겠지요. 오스만 투르크 제국으로 잠시 거슬러올라가면, 그리스계인 파나리오테스 세력을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부패한 오스만 궁정을 매수해서 18세기 내내 왈라키아와 몰다비아 공국의 왕위를 장악했습니다. 그리스계와 러시아계의 지배, 계속되는 봉건주의의..

42. 땅 빼앗기고 등 떼밀려 '민족국가' 된 헝가리

42. 트리아농 조약 이후, 1920-1939년의 헝가리 동유럽사에서 틈틈이 등장하는 트란실바니아... 이 지역이 어디인지 대충 감을 잡으시려면 이 '상상여행'의 첫 회, '동유럽이란'을 참고하시고요~ 다뉴브강 유역의 드넓고 비옥한 땅, 트란실바니아는 늘 여러 세력의 먹잇감이 됩니다. 1916년 루마니아인들은 트란실바니아를 공격했다가 소득도 없이 물러섰습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패배를 한 탓에 그들은 통 목소리를 내지 못하다가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무너지면서 다시 기회를 잡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트란실바니아를 집어삼킨 루마니아 루마니아는 트란실바니아 공국을 공격, 이번에는 큰 저항 없이 점령했습니다. 트란실바니아 공국 안에 있던 루마니아계 민족주의자들이 아예 나라를 루마니아에 갖다 바친 꼴이..

41. 베르사유의 분할과 독립국가 폴란드

41. 베르사유의 분할과 독립국가 폴란드 현대 유럽의 정치 지도가 그려진 것은 1차 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연합국’ 진영의 세 나라, 즉 영국과 프랑스와 미국의 베르사유 회의(1919-21년)에서였습니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14개조 평화원칙’에서 이것이 미국의 1차적인 참전 목표라고 선언했습니다. 윌슨의 선언은 ‘연합국’의 적인 ‘동맹국’ 내 억압받던 민족들의 민족적 열망을 고취시켰습니다. 이는 ‘동맹국’의 군사적 잠재력을 약화시켜 결과적으로 ‘연합국’이 승전하는 데에 보탬이 됐고, 윌슨과 한 편에 섰던 나라들도 민족자결의 원칙을 베르사유 평화회담의 기본 전제로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우드로 윌슨의 '14개 조항' 베르사유조약 영어판(사진/위키피디아) 하지만 유럽의 승전국들은 민족국가라는 윌슨의..

40. 1차 세계대전 시기의 동유럽

40. 1차 세계대전 시기의 동유럽 7월 28일이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지 100년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요즘 1차 대전에 대한 외신들을 종종 접하게 되네요. 유럽 사람들은 어떤 눈길로 100년 전의 전쟁을 되돌아보고 있을까요. 1차 대전. 세르비아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계승자였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을 암살하면서 시작됐다고들 하지요. 전쟁을 불러온 '사라예보의 총성'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분분합니다만, 초간단 설명으로 요약하자면...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장차 물려받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점령통치하고 있었고,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는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자기네를 탄압한다며 독립국가인 세르비아와 합쳐서 자기네 민족의 나라를 만들고 싶어했고, 그래..

39. 지금부터 100년 전, 일촉즉발의 동유럽

39. 1914년의 동유럽 올해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지요. 유럽에서는 곳곳에서 전쟁의 교훈을 되새기는 행사가 벌어지는 모양입니다만... 지금부터 100년 전, 위기를 향해 치닫는 동유럽으로 가보겠습니다. 당시 독일 의회에서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 러시아와 밀착하는 데에 대한 반감이 갈수록 고조돼 폭발 직전에 와 있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는 '세력균형'의 시대. 한참 국력이 커진 독일이 이제는 합스부르크와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도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비스마르크의 생각은 '저 둘이만 친해지면 우리가 외톨이가 되니, 아예 3각 균형을 잡자'는 것. 어쩐지 제갈량의 정(鼎)이 생각나는.....

38. 1912-1913년의 발칸 전쟁

벌써 올해도 반이나 지나갔어요. 에효... 올봄은 세월호 이후 슬프디 슬프게 흘러가고 어느새 초여름이네요. 이대로라면 이 연재를 대체 올해 안에 끝낼 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암튼 다시 정신 가다듬고 정리해 올립니다. 38. 1912-1913년의 발칸 전쟁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유럽 열강에 갈갈이 찢겨나가고, 힘겹게 '근대'로의 변모를 이루며 '터키 공화국'을 향해가던 20세기 초반. 그 주축에 선 것은 케말 파샤가 이끄는 청년투르크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내세운 '투르크 민족주의'는 제국의 폭넓은 틀 속에서 용인되던 '다민족 문화'를 뿌리부터 부정한 것이었습니다. 관용적인 제국이 협소한 투르크 민족주의로 향해간 것일 수도 있고, 열강에 맞선 투르크 엘리트들의 어쩔 수 없는 방어본능이라고도 할 수 ..

37. 1908-1914년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37. 1908-1914년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으흐흐... 기필코 올해 안에는 이 시리즈를 끝내겠다는 일념으로... 또다시 '간만에' 올립니다. 드뎌 1차 세계대전 전야로 넘어왔네요. 올해는 1차 대전 발발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1차 대전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사라예보에서 어느 나라 왕자가 총맞아 죽고 전쟁이 났는데 유럽이 다 끼어들어 아수라장이 됐다' 이 정도밖에 모르는 게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 학교 다닐 때 세계사 시간에 그 정도밖에 못 배웠다, 라고 일단 선생님께 책임을 넘기고~~ (그나마 그 시절엔 세계사 수업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학생들이 '십자군 전쟁도 못 들어보고' 대학에 들어간다죠 ㅠㅠ) 187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야금야금 오스만투르크의 땅을..

36. 1908년의 발칸

36. 1908년의 발칸 1860년대 서유럽의 영향을 받은 오스만 투르크 내 개혁파들이 전통적인 제국 운영방식과 술탄의 허울뿐인 개혁을 비판하며 민족주의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술탄의 탄압을 받아 곧 해외로 추방됐습니다. 1902년 이들은 프랑스 파리에서 ‘청년투르크 Jön Türkler’라는 이름의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청년투르크 조직은 이내 두 파벌로 갈렸습니다. 한 쪽은 투르크족 중심으로 오스만 제국을 다시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다른 한쪽은 제국 내 모든 신민(臣民)들이 민족에 따라 자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며 분권화를 주장했습니다. 파리에서 청년투르크가 정치토론을 하고 있을 동안 마케도니아에서는 투르크 장교들이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제국 전역에 흩어져 있던 장교들은 테살로..

이집트 카이로 모카탐의 ‘쓰레기 마을’ 사람들이 사는 법

골목 초입부터 여느 마을과는 달랐다. 먼지가 눈앞을 가리고, 쉴새 없이 차들이 골목으로 밀려들었다. 커다란 덤프트럭, 작은 트럭, 봉고차를 개조한 것 같은 짐차, 말이나 당나귀가 끄는 수레, 사람이 밀고 끄는 손수레까지. 이 온갖 탈것들에 실린 짐은 모두 똑같다. 쓰레기다. 시내 전역에서 모아온 쓰레기가 담긴 거대한 자루가 끊임없이 골목으로 실려온다. 이집트 카이로 남동부의 모카탐 언덕 부근에는 아유브 왕조 시대의 요새가 서 있다 ‘시타델(성채)’이라 불리는 이곳은 기자의 피라미드와 함께 카이로 안팎의 대표적인 유적지다. 역사지구인 시타델 안에 들어서면 12세기 성곽에서부터 18~19세기에 단장된 모스크들까지, 아름다운 유적들이 관광객을 맞는다. 지금은 정정불안과 테러 때문에 이집트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