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프랑스의 쓰레기방지법과 유럽의 '그린 뉴딜'

딸기21 2019. 12. 10.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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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5)가 열리고 있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9일 환경운동가들과 원주민 활동가들이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마드리드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는 환경단체들이 블랙프라이데이 쇼핑 열풍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환경운동가들은 “지구 반대편에서 생산된 물건들이 배를 타고 실려온다”며 ‘환경 측면에서 양심적인 소비’를 강조했다. 같은 날 이탈리아 로마에서도 환경단체들이 ‘그린 프라이데이’를 외치며 친환경 소비를 주장하는 시위를 했다.

 

프랑스 의회의 ‘블랙프라이데이 금지법안’

 

미국과 다른 길을 걸으려는 유럽에선 요즘 환경 문제가 최대 관심사다. 미국에서 시작돼 몇 년 전부터 유럽에 상륙한 블랙프라이데이는 쇼핑붐과 함께 소비주의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스웨덴 ‘환경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촉발시킨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큰 공감을 불렀고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5)와 맞물려 연일 기후대응을 촉구하는 집회와 시위가 열린다. 미국의 리더십이 사라진 자리에서 유럽이 기후대응을 주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프랑스 의회는 9일 쓰레기방지법 개정안, 일명 ‘블랙프라이데이 금지 법안’ 심의를 시작했다. 지난달 26일 소위원회를 통과한 이 법안은 20일 표결에 부쳐진다. 법안은 쇼핑업체들의 대규모 판촉행사를 막고, 친환경 포장을 늘리고, 재고품 폐기를 금지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법안을 내놓은 환경장관 출신의 델핀 바토 하원 부의장은 “공격적인 상업행위의 문제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드리드에 모인 젊은 환경운동가들은 미국발 블랙프라이데이 쇼핑붐에 반대하며 9일 ‘미래를 위한 금요일들’이라는 시위를 했다.  마드리드 AP연합뉴스

 

친환경 신발업체로 알려진 파고는 블랙프라이데이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금요일을 다시 푸르게’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프랑스에서는 2013년 무렵부터 미국식 블랙프라이데이 행사가 시작됐고 통상 연말까지 6주 동안 쇼핑시즌이 이어진다. 시민단체들은 200여개 브랜드에 대해 “환경적인 이유로” 지난달 보이콧을 선언했다. 미국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 반대 집회도 열렸다. 환경운동가 샌디 올리바르 칼보는 르몽드에 “아마존이 이 행성에 파괴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합성섬유 스웨터가 지구를 망친다”

 

지난 2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COP25 회의가 개막됐다. 툰베리가 마드리드에 도착한 6일에는 도심에서 50만명이 참여한 대규모 환경 집회가 열렸다. 미국의 어깃장 속에 사실상 이번 총회는 ‘유럽 잔치’가 돼버렸다. 유럽의회 대표단은 9일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 55% 감축계획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37조달러 규모의 자산을 움직이는 600여개 기관투자가들은 이날 마드리드에서 ‘기후 행동을 위한 패션산업 헌장’을 발표했다. 파리기후협정에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의류산업에서 탄소배출량을 줄이자는 것으로, 이 또한 유럽이 주도했다. 앞서 환경단체 허버브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많이 팔리는 스웨터에 합성 섬유가 많이 쓰여 공해를 촉발한다는 연구보고서를 공개했다.

 

지난달 29일 글로벌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사회운동단체 ‘아탁’ 회원들이 프랑스 낭트에서 미국 쇼핑몰 아마존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낭트 로이터연합뉴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9일 ‘멀티배터리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프랑스와 독일이 주도한 이 계획은 역내에서 일회용 배터리를 줄이고 리사이클링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독일 바스프, 벨기에 원자재회사 유미코아와 화학회사 솔베이 등이 참여한다. EU는 알루미늄, 구리, 니켈, 주석 등 산업생산에 꼭 필요한 원자재들을 역내에서 조달하는 비중도 늘릴 계획이다.

 

순환경제, 녹색금융, 탄소중립…EU의 ‘그린딜’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11일 발표될 EU의 ‘그린딜’이다. 민간기구 유랙티브 등이 입수해 공개한 초안에 따르면 그린딜의 핵심은 순환형 경제를 통해 2050년까지 유럽을 ‘탄소중립 대륙’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내년 2월까지 ‘2030 생물다양성 전략’을 제시하고, 3월에는 순환경제 행동계획과 그에 따른 산업전략을 발표한다. 내년 상반기까지 녹색금융 계획을 세우고 대기·수질오염물질 배출 제로 계획도 내놓는다. 10월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포괄적인 일정을 제시한다. 내년 말에는 EU 차원의 총체적인 기후변화 적응전략을 내놓기로 했다.

 

EU는 유해성 화학물질 사용을 줄이는 화학혁신전략, 농업부문 탄소배출을 감축하는 ‘농장에서 고기까지(Farm to Fork)’ 전략도 준비하고 있다. 미국과 신흥 개도국들의 비협조 속에 유럽이라도 나서서 지구를 구하겠다는 것이다. EU는 지난달 ‘기후 긴급사태’를 선언했으며 집행위 산하 환경위원회를 ‘기후변화·환경위원회’로 바꾸기로 했다.

 

유럽연합(EU)이 11일 발표할 예정인 ‘그린딜’ 초안.  자료 유랙티브

 

그러나 성공적인 모델로 정착할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다. EU 금융감독 당국은 기후변화에 제동을 걸고 ‘녹색 대출’을 늘리라고 회원국들에 촉구했다. 친환경 경제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탄소경제 비중을 줄이는 ‘지속가능한 금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 안에서 합의를 만드는 것조차 쉽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로 자리를 옮겨간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취임 전에 2조7000억달러 규모의 채권구매 자금을 녹색투자에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취임 뒤 최근 열린 이사회 회의에서 그는 “ECB의 주된 임무는 기후변화에 대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폴리티코유럽판 등이 보도했다.

 

한쪽엔 시위, 한쪽엔 쇼핑 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신임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1일 취임하면서 기후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그러나 그가 밀고 있는 화학혁신전략은 기업들이 친환경 신소재를 개발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으로, 기존 독성물질 규제정책보다 오히려 후퇴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농업은 탄소배출이 많은 대표적인 산업이지만 막대한 보조금으로 유지되는 유럽의 농업은 프랑스 농민 등 업계의 강력한 저항 때문에 아무도 손대지 못하는 영역으로 남아 있다. 영국 가디언은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산업정책이 EU 환경 목표에 해가 될 것이라는 환경단체들 지적을 보도했다. 당장 시급한 2021~2027년 예산안조차 유럽의회 내 이견이 많아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 신임 집행부가 지난달 27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이날 유럽의회 회의에 나와 기후위기에 대응할 “유럽의 그린딜”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스트라스부르 AP연합뉴스

 

그린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교통수단 개선이다. EU는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을 높이고, 도로교통 4분의 3을 철도와 내륙수로 등으로 돌리고, 대안적 연료인프라를 구축하려 한다. 장기적으로는 교통수단에서 나오는 탄소를 ‘제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몇 해 전 자동차 배기가스 오염물질을 속인 ‘디젤게이트’의 본산이 유럽이었다. 야심찬 목표들을 내놓고 있지만 유럽의 계획도 지구온난화를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그린피스 등은 지적한다.

 

환경친화적 생활방식에 익숙한 유럽인들이라지만, 소비주의를 피해가진 못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블랙프라이데이 반대 시위가 열린 날 베를린 부근 쇼핑몰에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나온 이들이 길게 줄을 섰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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