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오션바이킹과 '정찰기' 문버드…진화하는 지중해의 구조 단체들

딸기21 2019. 10. 1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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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단체 국경없는의사회(MSF)와 ‘SOS지중해’의 활동가들이 13일 지중해에서 운항 중인 이주민 구조선박 오션바이킹호 위에서 구조된 사람들을 돌보고 있다.  SOS지중해·로이터연합뉴스

 

“임신부 4명과 아이들 9명이 타고 있다. 어디라도 내릴 수 있게 해달라.” 지중해를 떠돌던 오션바이킹호가 14일(현지시간) 유럽 각국에 보낸 ‘구조신호’다. 바다 위를 맴돌던 배에는 176명이 타고 있었다. 이탈리아 해안경비대가 그 중 108명을 이날 오전 넘겨받아 남부 항구도시 로셀라로 보냈다. 남은 사람들을 마저 내려주기 위해, 오션바이킹은 이탈리아 정부와 영국령 몰타 정부를 설득하고 있다.

 

화물처럼 실려다니다가 건네지고, 거절당했다가 간신히 내릴 곳을 찾아야 하는 이 배의 탑승객들은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이주자들이다. 정정불안과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찾아나선 이들은 난민과 이주자의 경계선에 선 사람들이다. 76명은 13일 ‘딩기’라 불리는 고무보트를 타고 리비아 해안을 출발해 지중해를 건너다 구조됐고, 몇 시간 뒤에 임신부와 아이들을 비롯한 102명이 또 다른 딩기에서 오션바이킹으로 옮겨탔다.

 

‘알람폰’ 뜨면 오션바이킹이 간다

 

오션바이킹은 1986년 노르웨이에서 만들어진 화물선이다. 처음엔 ‘텐더파이터’라는 이름이 붙었다가 1991년 ‘바이킹 파이터’로 바뀌었다. 노르웨이 선적의 이 배는 해안에 설치되는 구조물용 자재와 장비들을 나르는 것이 주 임무였다. 해상에 유출된 기름을 빨아들이는 장치도 갖추고 있어, 기름제거용으로도 쓰였다. 소방용 모니터가 3대 달려 있기 때문에 해상 화재 감시선으로도 쓰일 수 있다. 의료실도 있다. 말 그대로 다목적이다.

 

국경없는의사회와 ‘SOS지중해’가 운영하는 구조선 오션바이킹호.  사진 picture-alliance/dpa

 

쓰임새 많은 이 배는 지난 7월부터 지중해를 누비며 화물이 아닌 사람을 실어나른다. 국경없는의사회와 ‘SOS지중해’라는 구호단체가 배를 임대해 지중해를 떠도는 난민·이주민들을 구조하는 임무를 맡겼다. 지난 8월 4일 프랑스의 마르세유를 떠나 지중해로 나섰다. 목적지는 리비아 해안. 승무원 9명 외에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인력 9명과 SOS지중해의 구조팀 13명이 배에 상주한다.

 

8월 8일, 오션바이킹의 승무원들은 ‘알람폰’으로부터 긴급 구조요청을 접수하고 이탈리아 근해에서 80명을 구했다. 알람폰은 2014년 남유럽과 북아프리카 시민단체들이 만든 네트워크다. 이주민 보트가 위험한 상태에 놓인 걸 알게 되면 각국 해안경비대나 구조단체들에 연락하는 시스템이다. 터키-그리스 해역, 리비아·튀니지-이탈리아 해역, 모로코-스페인 해역으로 나눠 연락망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오션바이킹의 첫 구조가 이뤄진 그날 몰타는 이 배의 영해 입항권을 박탈했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건너가려는 이주자들이 기착할까 두려워 해안에 접근하지도 못하게 한 것이다. 이탈리아 내무부도 즉시 입항금지령을 내렸다. 바다를 떠도는 며칠 사이에 구조한 이주민 숫자는 356명으로 불어났다. 리비아 정부가 트리폴리에 내려도 좋다고 했지만 오션바이킹 측이 응하지 않았다. 내전이 끝나지 않은 위험한 곳에, 안전을 찾아 나선 사람들을 내려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독일 등 유럽연합(EU) 6개국이 긴급 회의를 했고 몰타에 압력을 넣어 구조된 이들이 하선할 수 있게 했다.

 

고무보트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는 아프리카 출신 이주자들. 지난 13일 오션바이킹은 이들을 비롯해 176명을 구조했다.  SOS지중해 트위터

 

9월 8일, 배에 탄 활동가들은 리비아 해안에서 50여명을 구조했다. 요트를 타고 떠돌다 악천후를 만난 34명도 옮겨 태웠다. 이들은 일주일 뒤인 15일 ‘난민 기착지’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람페두사 섬에 내렸다. 배는 쉴 틈이 없었다. 17일에는 나무 보트를 타고 유럽으로 가려던 48명을 발견해 태웠다. 근처에는 61명을 태운 이민선이 떠다니고 있었다. 구조 요청을 받은 오션바이킹은 이 배의 탑승자들도 옮겨 실었다. 다음날인 18일에는 73명을 더 태워야 했다. 22일 이탈리아 정부가 메시나 해안에 180여명을 내려줄 수 있도록 허락했다. 10월 12일. 리비아 해안에서 92km 떨어진 바다 위에 74명이 떠돌고 있었다. 이들을 태우고, 주변을 떠돌던 102명을 더 구조했다.

 

구조단체도 ‘정찰기’가 있다

 

9월 17일 오션바이킹에 “난민선을 발견했다”며 구조신호를 보낸 것은 시워치의 정찰기인 ‘문버드’였다. 독일에 본부를 둔 구호단체 시워치는 지중해에 경비행기를 띄워 난파 위기를 맞은 배들의 위치를 알린다. 시워치는 2015년부터 국경없는의사회나 SOS지중해처럼 지중해에 구조선을 띄워 이주자들을 구했다. 그해 처음 구입한 배는 오션바이킹보다 훨씬 낡은, 1917년 건조된 선박이었다. 배는 곧 또다른 구조단체 ‘마레 리베룸’으로 넘어갔다.

 

시워치는 이어 1968년 건조된 조금 나은 어선을 구입해 14일 동안 리비아와 몰타 사이에서 구조 활동을 했다. 이 배는 미션라이프라인이라는 단체에 2017년 넘겨졌으며 ‘라이프라인’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 시워치가 세번째로 산 배는 1972년 만들어진 것이다. ‘디그니티1호’라는 이름으로 국경없는의사회에 소속돼 구조선으로 쓰이다가 시워치로 소속이 바뀌었다.

 

구호단체 시워치의 지중해 이민선 정찰기 ‘문버드’.  시워치 웹사이트

 

2년 전부터 시워치가 주력하고 있는 것은 정찰기 문버드를 이용한 미션이다. 스위스의 ‘인도주의 파일럿 이니셔티브(HPI)’에 소속된 조종사들이 자원해 바다 위를 감시한다. 몰타 측은 지난해 이 항공기의 착륙을 막았고, 올들어서도 석 달 동안 금지시켰다가 최근 풀어줬다. 시워치 측은 웹사이트 글에서 “사람들이 물에 빠지게 방치하려는 유럽의 정책에 우리는 계속 도전할 것이다. 익사자가 어느 때보다 늘어난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임무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단체의 문버드 운영 책임자 타미노 뵘은 “그들이 우리 설비를 불법 압류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를 숨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문버드를 움직이는 조종사단체 HPI는 독일의 기독교단체에서 지원을 받는다. HPI는 지난해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추천됐다.

 

문버드의 ‘동료’인 콜리브리는 프랑스 파일럿들로 이뤄진 구조단체 ‘필로테 볼론테르’가 운행한다. 이탈리아 항공당국은 두 비행기가 “전문적인 활동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지난 7월 착륙을 막았다가 8월 27일 금지조치를 풀어줬다. 난파선에서 40명이 물에 빠져 숨졌다고 유엔이 발표한 날이었다.

 

누가 이들을 받아줄 것인가

 

전문적인 구조선과 정찰용 비행기를 갖출 정도로 구조단체들의 설비는 진화하고 있다. 문버드가 바다 위를 나는 이유, 오션바이킹 같은 구조선으로 옮겨지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분명하다. 낡은 이민선이 난파해 고기밥이 될 위험을 떠안을지라도 유럽으로 건너가려는 아프리카인들이 그만큼 많은 것이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올들어 14일까지 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도착한 사람은 6만8310명이다. 국제이주기구(IOM)는 올들어 지난 7월까지 ‘확인된’ 익사자를 426명으로 집계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올들어 10월 14일까지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으로 간 이주자 수. 유엔난민기구(UNHCR) 웹사이트

 

유럽연합(EU)은 2013~2014년 ‘마레 노스트룸’이라는 공동 해상경비활동으로 15만명을 구조했다. EU 국경관리기구인 프론텍스가 뒤이어 ‘트리튼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공동 구조에 나섰으나 지난해 2월 활동을 끝냈다. 지난 7월 유엔난민기구가 EU에 해상 구조프로그램을 다시 시작하라고 요구했으나 EU는 응하지 않고 있다.

 

바닷물에 빠져 숨지는 일만이라도 막자며 구호단체들이 구조작전을 벌이고 있으나 이주민들을 받아줄 나라는 찾기 힘들다. 오션바이킹이 정박도 못한 채 바다 위를 맴도는 날들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몰타는 이주민들이 항구에 내리면 곧바로 EU 회원국들에 분산수용하자는 데에 합의했지만 각국이 거부하고 있다. 이탈리아와 몰타, 그리스는 이주민들을 구조해 상륙시키는 활동가들에게 인신매매 관련 법률을 적용, 기소하기도 한다. 시워치의 구조선 선장은 이탈리아 람페두사에 구조한 사람들을 내려준 뒤 연금되기도 했다.

 

지난 3일은 지중해에서 선박이 난파해 368명이 숨진 ‘람페두사 난파사고’ 6년이 되는 날이었다. 국제앰네스티와 휴먼라이츠워치 등은 유럽국들에 구조선 입항 불허 정책을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무작정 이주민들을 받아줄 수 없는 각국은 빗장을 걸 방법을 찾고 있다. 인도적 책무와 부국의 책임, 경제 침체와 일자리 다툼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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