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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시장에서 ‘트럼프의 막후’로…우크라이나 스캔들 핵심 줄리아니

딸기21 2019. 9. 26.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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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개인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  게티이미지

 

‘우크라이나 스캔들’ 때문에 하원 탄핵조사까지 받게 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여론에 밀려 결국 녹취록을 공개했다. 트럼프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통화 내용이 담긴 녹취록에서 핵으로 떠오른 사람은 루돌프 줄리아니다. 2001년 ‘9·11의 뉴욕시장’으로 명성을 떨쳤던 75세 줄리아니는 공화당 주류와 달리 일찌감치 트럼프 편에 서서 최측근으로 자리를 굳혔고, ‘비공식 보좌관’으로 백악관에 영향을 미쳐온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줄리아니더러 전화하라 하겠다”

 

25일(현지시간) 공개된 녹취록을 보면 트럼프는 젤렌스키와 대화하면서 줄리아니의 이름을 5번이나 언급했다. 그는 자신의 변호사인 줄리아니에 대해 “아주 존경을 받는 사람이고, 뉴욕 시장, 대단한 시장이었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줄리아니가 당신(젤렌스키)에게 전화하게 하겠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관련된 일을) 당신이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가 해임된 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료들을 ‘물 먹이고’ 바이든과 우크라이나 관계에 트럼프가 끼어든 일, 우크라이나에 압박을 넣기 위해 갑자기 지원을 중단해버린 일에 모두 줄리아니가 개입됐다고 보도했다.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등은 트럼프가 젤렌스키와 직접 통화를 하는 것에 부정적이었는데 줄리아니가 뒤에서 트럼프를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로버트 뮬러 특검의 조사 결과 3년 전 대선 때 불거진 트럼프의 러시아 커넥션 의혹이 유야무야되자 곧바로 줄리아니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바이든 공작’에 들어간 것으로 봤다. 그 첫 단계가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임명된 키예프 주재 미국 대사를 갈아치우는 것이었고, 이어 줄리아니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젤렌스키의 보좌관과 접촉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백악관이 25일(현지시간) 공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전화통화 녹취록 요약본.

 

최근 해임된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 트럼프 주변의 관료들은 줄리아니의 이런 행동에 당혹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원조까지 중단되자 NSC 내에서 ‘누가 주도한 것이냐’는 의문이 터져나왔고, 줄리아니의 부추김 속에 트럼프가 우크라이나를 압박한 것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뉴욕시장에서 ‘트럼프의 배후’로

 

줄리아니는 의회에서 잔뼈가 굵은 이른바 ‘워싱턴 인사이더’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양당 정치와 거리를 둬온 아웃사이더도 아닌, ‘정치권 밖 정치인’이다. 1980년대에는 판사와 검사로 일했다.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1994년 뉴욕 시장이 되면서다. 2001년까지 시장으로 있으면서 뉴욕의 범죄율을 낮춰 찬사를 받았다.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는 행인들이 망가뜨린다는 사회학자들의 실험을 바탕으로 한 ‘깨진 유리창’ 이론에 따라 환경을 정비하고 치안을 강화해 성과를 거뒀다. 특히 2001년 9·11 테러 뒤 단호하고 단합된 대응을 이끌어내 명성을 떨쳤고 시사주간 타임이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로 뽑혔다.

 

시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줄리아니 파트너스’라는 컨설팅업체와 ‘브레이스웰&줄리아니’라는 법률회사를 만들어 컨설팅과 로비 활동을 했다. 하지만 뉴욕시장 시절의 명성 때문에 공화당에서 언제나 주자로 거론됐다. 2008년 대선 때 공화당 후보로 나섰지만 존 매케인에 밀려 조기 사퇴했다. 그러나 2010년 뉴욕시장 선거와 2012 대선에서도 다시 공화당 후보 물망에 올랐다.

 

2001년 9.11 테러 때 현장에서 대응을 지휘하던 줄리아니 당시 시장. 옆에 힐러리 클린턴 당시 상원의원의 모습도 보인다.

 

모든 걸 접고 사업에만 집중하는 듯했던 줄리아니는 트럼프와 함께 화려하게 정치 무대에 재등장했다. 2016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주류가 트럼프를 백안시할 때, 줄리아니는 일찌감치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몇 안 되는 유력인사 중 하나였다. 트럼프의 선거자금을 모아준 정치활동위원회(PAC)의 광고 영상에 출연했고, 트럼프가 후보로 확정된 공화당 전당대회에서는 프라임타임 연설자로 나섰다. 인종주의, 여성들에 대한 성적 공격, 세금문제 등 트럼프의 모든 악재들을 지워주고 편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공식 직함은 없었지만 미디어를 상대로 트럼프의 바람막이가 돼주면서 최측근이 됐다.

 

트럼프 취임 뒤 첫 국무장관으로 거론됐지만 줄리아니는 입각하지 않고 막후에 남았다. 일각에선 트럼프의 ‘비공식 사이버 안보보좌관’으로도 불린다. 거센 비난을 받았던 이슬람권 7개국 국민들의 미국 입국제한 행정명령에 대해서도 줄리아니 본인이 “내가 관여했다”고 인정했다.

 

트럼프가 대선 때 러시아 측과 부적절한 접촉을 했고 심지어 개입을 요청했다는 의혹에 대해 줄리아니는 “공모(collusion)이지 범죄(crime)가 아니다”라는 궤변을 펼쳤다. 러시아 의혹을 조사하던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해임돼 다시 트럼프에게 화살이 쏟아지자, 줄리아니는 “현직 대통령은 기소할 수 없다”며 방어했다. 지난해부터는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로서 뮬러 특검에 맞선 대응을 지휘했다.

 

하지만 줄리아니의 이런 개입은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물 위로 떠오르고 녹취록까지 공개되면서 역풍을 맞았다. 트럼프의 방어막이었으나 결국 트럼프에게 최대 위기를 가져온 꼴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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