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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스위스도 ‘빙하 장례식’...세계 빙하들 얼마나 녹았나

딸기21 2019. 9. 2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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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현지시간) 스위스 알프스 산악지대의 방스 지역에서 환경운동가들이 피졸 빙하의 ‘사망’을 추모하는 장례식을 열고 있다.  방스 AP연합뉴스

 

스위스 북동부, 알프스 산맥 기슭에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였다. 해발고도 2700m에서 열린 장례식에서 추모객들이 기린 것은 사람이 아닌 빙하였다. 알프스의 피졸 빙하가 사라지게 된 것을 추모하는 상징적인 의식이었다.

 

“빙하를 추모합니다”

 

피졸 빙하는 2006년 이후로 원래 크기의 80~90%를 잃어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다. 이날 장례식은 스위스기후보호연합(SACP) 주최로 열렸고 지역 주민들과 환경운동가 등 250여명이 참석했다고 AFP통신 등은 보도했다. 추모객들은 쪼그라든 빙하 앞에서 전통 악기 알펜호른을 연주하고 꽃을 놓았다. 취리히연방공과대학(ETH)의 빙하학자 마티아스 후스는 추도사에서 “스위스에서 1850년 이후 빙하 500개 이상이 사라졌다”며 추도사를 했다. ETH 연구자들은 알프스 빙하의 90% 이상이 이번 세기 말에는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기후변화 때문이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학(ETH) 마티아스 후스 교수가 공개한 피졸 빙하의 사진들. 위로부터 2006년 여름, 2017년 8월, 2019년 9월 4일의 모습이다.  사진 마티아스 후스·AFP연합뉴스

 

지난달 19일에는 아이슬란드에서 빙하 추도식이 열렸다.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총리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아이슬란드 서부 오크 화산 지대에 700년 동안 존재했던 오크예퀴들 빙하가 사라지게 된 것을 아쉬워하며 추모비를 세웠다. ‘미래로 보내는 편지’를 적은 동판에는 “다음 200년 동안 빙하들이 모두 이 길을 따를(사라질)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리기 위한 기념물”이라는 글이 적혔다.

 

스위스와 아이슬란드에서만이 아니다. 세계의 빙하들, 얼음들, 동토층들이 녹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히말라야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인도 지역의 가르왈 히말라야 빙하는 2035년 사라질 전망이다. 히말라야에 쌓여 있는 전체 얼음의 양은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9%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빙하가 형성되는 높이가 점점 위쪽으로 물러나는 ‘퇴각’은 거의 모든 곳에서 발견된다. 아프가니스탄 지역의 ‘와칸 회랑’에 있는 30개 빙하 중 28개가 1976~2003년 사이에 평균 11m씩 퇴각했다. 제메스탄 빙하는 이 기간 460m나 후퇴했다.

 

지난 8월 아이슬란드 오크 화산의 빙하 추모식 때 세워진 ‘미래로 보내는 편지’ 동판. 사진 라이스대학(Dominic Boyer/Cymene Howe/Rice University)

 

에베레스트도 파미르도 ‘빙하 퇴각’

 

중국의 빙하 612개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1950~1970년 53%가 퇴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세기 말부터 기후변화의 영향이 뚜렷해졌다. 1990년 이후로는 95%가 후퇴한 것으로 조사됐다. 에베레스트의 롱부크 빙하는 연간 20m씩 높이가 올라가고 있다. 인도의 강고트리 빙하는 1936~1996년 1147m나 올라가버렸다. 전체적으로 히말라야의 빙하는 연간 18~20m씩 위로 올라가고 있다.

 

‘세계의 지붕’ 중 한 곳인 중앙아시아도 기후변화 영향이 심각하다. 키르기스스탄의 아크쉬라크 빙하는 1977~2001년 부피가 20% 줄었다. 중국과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일대에 걸쳐 있는 톈샨(천산)산맥 빙하들은 이 일대 수백만 명에게 물을 공급해주는 중요한 수원(水源)이다. 그런데 이 빙하지대의 물 공급량이 1955~2000년 연간 2㎦씩 감소하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타지키스탄의 파미르 고원에는 빙하가 8000개 넘게 있는데, 20세기 동안 얼음 20㎦를 상실했다. 극지방을 제외하면 지구 최대 빙하인 70km 길이의 타지키스탄 페드첸코 빙하는 1933~2006년 1km나 경계선이 후퇴해버렸다.

 

자료 WGMS(World Glacier Monitoring Service)

 

유럽의 빙하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프랑스의 몽블랑 산지에 있는 메르드글라스 빙하는 1994~2008년 사이에 500m 후퇴했다. 몽블랑 꼭대기 보송 빙하는 1900년에는 해발 1050m 높이부터 존재했는데 2008년엔 1400m 높이 위로 올라가야만 볼 수 있게 됐다. 올해 ETH 연구소 조사에서 알프스 빙하의 3분의 2는 이번 세기 말에는 사라질 것으로 예상됐다. 최악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2100년에는 알프스 빙하가 모두 사라질 수도 있다. 이미 2009년 같은 대학 조사에서 스위스 빙하 89개 중 76개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었다.

 

파타고니아도 녹는다

 

2013년 노르웨이 빙하 33개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26개가 퇴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브렌달스브린 빙하는 2000~2014년 56m 물러섰고, 렘베스달스카카 빙하는 1997~2007년 200m나 후퇴했다. 브릭스달스브린 빙하는 1996~2004년 130m 뒤로 물러났다. 스페인의 피레네 산맥에 있는 말라데타 빙하는 1981~2005년 넓이가 35.7% 줄었다. 피레네 빙하는 1991년 이후 50~60%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동토층도 녹고 있다. 1952~2006년 악트루 분지의 빙하는 7.2% 감소. 2006년 연구에 따르면 알타이 지역의 기온은 120년간 1.2도 올라갔는데 특히 20세기 후반 이후 상승세가 뚜렷했다. 극동지역인 캄차카의 빙하는 통계가 많지 않지만 크게 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베리아 얼음땅 사하공화국의 빙하는 1945년 이후 70㎢가 감소했다.

 

지난 4월 16일 촬영된 베네수엘라 메리다의 훔볼트 빙하. 기후변화로 면적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메리다 AP연합뉴스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까지 이어져 있는 캐스케이드 레인지. 700여개의 빙하가 자리잡은 곳이다. 이 지역의 보울더 빙하는 1987~2003년 450m 후퇴했다. 이스턴 빙하는 1990~2005년 255m 물러났다. 스파이더 빙하, 루이스 빙하, 밀크레이크 빙하, 데이비드 빙하는 1985년 이후 아예 모습을 감췄다. 화이트처크 빙하는 1958년 면적이 3.1㎢였는데 2002년에는 0.9㎢ 밖에 남지 않았다. 캐스케이드 지역의 여름철 기온은 1946년 이후로 0.7도 올라갔고, 겨울철 적설량은 25%가 줄었다.

 

북미의 또다른 주요 산악지대인 로키산맥도 얼음이 줄고 있다. 1850년 빙하에 덮여 있던 면적이 99㎢였는데 1993년에는 그 중 27%밖에 남지 않았다. 국립빙하공원 지역의 빙하 대부분은 2030년에는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남반구 산들이라고 더위를 피할 수는 없다. 남극에 가까운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에서는 얼음 땅이 1990년대 초반 이후로 1km 후퇴했다. 19세기 말과 비교하면 10km나 물러섰다. 북파타고니아 빙원지대의 빙하 면적은 1945~1975년 93㎢ 줄었는데 그 뒤 감소세가 더욱 빨라졌다. 1975~1996년에는 174㎢나 줄어들었다. 빙원의 8%가 사라진 것이다. 이 일대 오히긴스 빙하, 페리토 모레노 빙하 모두 퇴각했다.

 

킬리만자로에 만년설은 없다

 

해발고도 5895m,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은 1912년 이후 80%가 사라졌다. 킬리만자로의 유명한 푸르트뱅글러 빙하는 1976년부터 2000년 사이에 면적이 절반으로 줄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 조사에서 케냐에 있는 마운트케냐의 빙하는 1900년 18개에서 1986년 11개로 줄어들었다. ‘적도의 빙하’로 유명한 인도네시아 푼착자야의 얼음층도 붕괴하고 있다.

 

미국 알래스카의 마타누스카 빙하 지역에서 지난 7일 관광객들이 얼음 위를 걷고 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이번 세기 말에는 알래스카의 빙하 1만9000여개 중 30~50%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마타누스카 AFP연합뉴스

 

여러 조사를 종합해보면 남극의 거대한 얼음덩어리인 빙붕(氷棚)은 지난 30년간 10% 줄었다. 그린란드 빙하도 계속 녹는 중이다. 북반구에서 봄철 얼음이 녹는 시기는 1850년 이후 9일 빨라졌고, 가을철 결빙은 10일 늦춰졌다. 미국 알래스카에선 영구동토층이 녹고 있다. 일부 지역은 4.6m나 침하했다.

 

기후관련 단체 리얼클라이미트에 따르면 빙하가 1m 쌓이기 위해서는 3m 높이의 눈이 내려야 한다. 평균기온이 1도만 올라가면 연간 빙하 높이는 1m 낮아진다고 한다. 여름철 기온이 올라가는 것도 빙하가 퇴각하는 데에 영향을 많이 준다. 상대적으로 여름철 기온이 높지 않은 노르웨이의 해안 빙하들이 그나마 적게 손실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미국 워싱턴주의 베이커산 빙하는 여름 기온 1도 올라가면 2km 후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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