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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트 하인리히, 홀로 숲으로 가다

딸기21 2017. 9. 2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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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 살 때까지 북부 독일의 숲으로 피난을 가서 6년 동안 살았다. 우리 가족이 가진 것은 아주 적었지만 나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까마귀를 애완용으로 키웠고 딱정벌레를 수집할 수도 있었다.

상쾌하고 맑고 영원한 마법에 싸인 세상. 이제는 그저 이따금씩 떠오르는 그 생생함을 다시 맛볼 수 있을까? 난 이미 그런 조건들을 많이 갖추고 있긴 하다.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해온 이후 나는 메인 주의 시골에서 십대를 보내면서 사냥을 하고, 낚시를 하고, 덫을 놓는 법을 배웠다. 메인에서 만난 스승들은 이미 오래전에 내게 집에서 맥주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라이플총을 가지고 있고 통나무 오두막은 벌써 지어놓은 상태다. 나머지는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그래서 한번 해보기로 했다. (7쪽)


얼마전 읽은 진짜 재미있는 책. ‘상쾌하고 맑고 영원한 마법에 싸인 세상’으로 돌아가길 꿈꾸며 ‘그래서 한번 해보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미국의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다.


<베른트 하인리히, 홀로 숲으로 가다>(정은석 옮김. 더숲)는 저자가 이런 꿈을 안고 어린 시절을 보낸 메인 주의 숲에서 1년간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담은 기록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곤충과 동식물의 한살이를 적은 관찰기이고, 또 다른 면에서 보면 현대사회의 혜택을 누리던 사람이 숲으로 들어가 ‘사회와 숲의 경계선’을 오가며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도전기다. 



어느 쪽으로 봐도 재미있다. 사실 책에는 잘 나와있지 않지만 그저 ‘한번 해보기로’ 했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 저자는 생물학자이고 숲에서의 생활은 연구의 일환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꿈과 시도가 빛이 바래지는 않는다.


시간은 가차 없이 흘러가고 다가오는 겨울에 대한 걱정이 식물과 동물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나의 ‘자유’ 시간을 방해했다. 눈이 내리기 전에 할 일이 상당히 많다. 한 잔의 커피와 달걀요리를 즐기면서 전화로 겨울 동안 쓸 연료를 배달해달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커피 한 잔을 데우려면 매번 불을 지펴야 하는데 이때 내 소중한 시간이 소비되는 것이다. 나무를 하나 고르고 잘라낸 다음, 통나무로 쪼개고, 톱질해서 잘게 자르고, 오두막으로 끌고 오고, 더 작게 자르고, 쪼개고, 나르고, 쌓고, 난로에 하나씩 집어넣으며, 재는 쓸어 담아서 그 속의 광물질을 숲으로 되돌려놓는 모든 작업에 시간이 걸린다. 

나는 불을 친구처럼 조심스럽게 다룬다. 잭(큰까마귀)을 보살피는 것과 비슷하다. 불을 만들어내면 내 삶이 윤택해진다. 지금 이곳에서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과 그리고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의 결과를 감수하고 경험할 필요가 있다. (81쪽)


도심에서 물을 사용한다는 것은 꼭지를 틀고 잠그는 데 몇 초 동안의 시간을 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여기서는 물을 얻으려면 오두막에서 90미터 아래에 위치한 숲 속 저지대에 있는 우물까지 가야 한다. 그곳으로 가서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놓은 나무 덮개를 열고, 양동이를 묶은 줄을 내려뜨려 한 번씩 길어 올려서 19리터짜리 플라스틱 병의 주둥이에 흘리지 않게 조심스레 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언덕 위로 힘들게 끌고 올라와서 주철로 된 싱크대 옆에 놓는다.

커피잔은 몇 주씩 씻지 않고 지낼 수 있지만 재활용센터에서 산 맥주병은 이야기가 달랐다. 나는 갈색 맥주병의 그윽한 모습이 점점 더 마음에 들었고, 집에서 만든 맥주를 다라서 마시기 전에 이것을 기를 쓰고 깨끗하게 닦으려고 했다. 깨끗하고 신선한 물로 씻어서 두 번 헹군 다음 주철 오븐에 말렸다.

결국 나는 시간에 대한 집착이 심해져서 괴이한 행동을 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얼마나 나만의 패턴, 일과, 효율에 따라 생활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심하게 초조해졌다. 내가 벌써 은둔자처럼 되어버린 걸까? (83쪽)


나는 지금 정말 분명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지나가버린 것, 그것이 인생이라고. 그러나 나는 그것을 살아냈기에 만족할 따름이다. 만일 내가 죽지 않고 계속 살 수 있다면 내 삶이 얼마나 더 행복할지 궁금하다. 정부는 늑대, 마운틴 라이언, 독수리들을 멸종 위기에 처할 때까지 없애버렸다. 그리고 이젠 이 동물들을 다시 복원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앞으로 어쩌면 그것들을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105쪽)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밝은 자주색, 라벤더 색, 주홍색의 단풍나무 잎들이 길을 수놓기 시작했다. 나는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서서 단풍잎 몇 개를 주워들었다. 나무에서 이렇게 경이로운 것들이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것들을 오래 보관하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이 풍요로운 색채를 그대로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감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잎이 마르는 대로 색은 칙칙해지고 수액이 풍부했던 빛나는 모습은 사라진다. 매일 이렇게 신선한 모습을 감상하는 수밖에 없다. (116쪽)


나무가 너무 많은 하인리히네 동네 사람들은 나무를 잘라내지 말라고 외치는 환경론자들을 테러리스트 보듯 한다. 저자 역시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의 소중함을 알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나무자르기 반대론자는 아니다. 조화를 꿈꾸며 자연이 가르쳐주는 것들을 배우고 소중히 여기려 할 뿐이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나무가 너무나 많은 곳’에서 살아온 덕분이라는 점은 좀 많이 부럽다. 


메인 주 이쪽 부근의 삶은 나무와 숲을 빼고는 상상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나무를 땔감으로 쓰고 어떤 사람은 먹고살기 위해 나무를 잘라낸다. 많은 사람들이 종이, 터보건, 설상화, 사과박스, 카누를 만들어서 생계를 유지한다. 이 모든 것이 나무로부터 나온다. 나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의 생명줄인 것이다. 이것이 문제다. 용도가 다른 두 개의 나무가 있는 것이다. 나무는 목재가 되기도 하고 숲을 이루기도 한다. (41쪽)


막 생긴 그루터기에서 싹이 나오는 것은 단단한 목재의 나무뿐이기 때문에 개벌지에서는 종종 활엽수 숲이 침엽수보다 빨리 형성된다. 주로 제지공장에서 필요로 하는 침엽수의 경우,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제초제를 사용하여 벌목을 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제지회사의 세금을 감면해주었다. 

통나무를 베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메인 숲에는 거대한 괴물같은 기계가 성숙한 나무를 통째로 싹둑 잘라내어 가지를 전부 제거하고 몇 조각으로 잘라내서 끌어내는 곳이 있다. 플렉시 유리로 된 둥근 덮개 안에 있는 사람이 레버를 당겨서 모든 것을 조정한다. 괴물같이 큰 기계가 프랑스 짐말과 체인톱과 도끼를 가진 거친 사내들의 무리를 마구간에서 떠나게 만들었다. 괴물같은 기계가 그들의 직업을 빼앗았는데, 기계가 할 일거리를 주기 위해서 제지회사들은 넓은 면적의 오래되고 다양한 숲을 개벌했다. 그리고 대신에 단종의 침엽수를 심었고 에이전트 오렌지 같은 제초제를 헬리콥터에서 뿌려대면서 숲을 ‘관리’한다고 말한다. (123쪽)


나는 무스 사냥에 참가하지 않았다. 우선 수백 킬로그램의 고기가 필요하지 않다. 둘째로 나는 사슴 사냥꾼이다. 비록 ‘스포츠’ 삼아 사냥을 하지만 않지만 커다랗고 얌전하며 위엄 있지만 멍청한 동물을 총으로 쏘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다. 꼭 장보러 가서 선반에서 고기를 꺼내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장보기보다 약간의 노력이 더 필요한 정도의 일인 것 같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스테이크 더미 위에서 쇼핑카트를 옆에 끼고 웃으면서 서 있는 사람의 사진은 본 적이 없다. (145쪽)


저자가 그린 곤충이나 식물 그림들도 책에 몇 장 들어있다.


오두막 근처에 잇는 유일한 녹색의 잎은 디지털리스 잎이다. 진화생물학자인 언스트 마이어가 몇 해 전에 준 검은색 씨앗에서 자라났다. 그는 이 씨앗들을 수년 전에 작고한, 노벨상을 받은 생태학자 니코 틴버겐으로부터 얻었다. 애벌레들을 좋아했을 틴버겐은 메인 주의 오지 숲에서 이름도 없는 자신의 팬이 당신 정원에서 가져온 꽃을 기르는 줄은 몰랐을 것이다. (132쪽)


앨리스가 알려주기를, 울피가 누군가의 장례식에 간다면 내 장례식일 거라고 말했단다.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안다. 내가 전에 장례식에서 무엇을 할지 일러주었기 때문이다. 내 재를 단풍나무 주변에 뿌리고 내 통장에서 필요한 만큼 돈을 꺼내어 맥주 한 통을 사서 신나게 놀라고 했던 것이다. 캠프파이어 주변에서 발가벗고 춤추면 더 좋겠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난 이 친구들을 정말 좋아한다. 이 땅의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들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생생한 꿈을 꾸어본다. 캠프파이어 주변에 모여 앉은 우리 사이에 공통되는 에너지가 퍼져나가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전부 ‘큰까마귀의 형제자매’들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목가적인 느낌을 주어 듣자마자 거부감이 들게 하는 것이 안타깝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정말로 가능하다면 어떻게 될까? (139쪽)


오늘은 상모솔새를 보기에 좋은 날이 아니었다. 바람소리와 삐걱거리는 나무 소리가 너무 심하게 나서, 멀리서는 눈만으로 쫓을 수 없는 그들의 가냘픈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떠오르면 바로 행동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상적인 때라는 것은 거의 없는 법이고, 그런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은 그저 변명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225쪽)


뒷부분으로 가면서, 저자의 '관찰'은 자연과 세상에 대한 '통찰'로 나아간다.


일 년 동안에만 거의 5백만 개의 배아를 생산하고 20년 정도 생산했다고 치면, 이 작은 나무는 1억 개라는 믿기 어려운 양의 배아를 생산한 것이 된다. 평균적으로 이 1억 개 중에 단 한 개의 배아만이 자라서 나무가 된다. 

가능성과 실상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다. 배아 한 개를 놓고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기는 어렵다. 배아 한 개의 상대적인 가치는 99,999,999개의 배아가 죽어야만 성체가 되는 자작나무라는 식물의 가치에 비하면 아주 낮다. 한편으로는 이런 성숙한 개체를 생산해내는 진화의 복잡한 특징을 보노라면,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자연은 불필요한 것들을 혐오하지만 때로는 낭비처럼 보이는 생산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303쪽)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것은 믿기 어려운 확률을 뚫고 이루어내는 탁월한 성취다. 

우리는 삶이 ‘원래’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무에게 그리고 대부분의 다른 생물에게 삶이란 그 자체로 제비뽑기에서의 행운과도 같은 것이다. 모든 성공에는 행운이 뒤따라야만 한다. 개인적인 차이는 중요하지만, 대부분은 동등하게 태어난다. 

우리가 물려받는 세상은 계획된 체계라기보다는 혼돈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기분이 들뜨고 즐겁고 낙천적이게 된다. 아마도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이런 곳을 꿈꾸며 이곳에 올 준비를 해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냇가에서 돌아오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불안정했다. 갑자기 과거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숲에서 살려고 학교에서 도망쳤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 (313쪽)


누구나 한번씩 생각은 해 보지만 실행하기 힘든 ‘숲살이’. 내겐 사실 꿈도 못 꿀 일이다. 메인 주의 숲은 너무나 춥고, 벌레는 또 왜 그리 많은지. 하지만 책 속의 사계절은 아름다웠고, 읽는 내내 부러웠고, 틈틈이 끼어넣은 익살스런 구절들에 혼자 웃었고, 산길을 달리는 이 생물학자를 보면서 덩달아 신났다. 


사냥 원정을 떠나기 전에 아마존의 어떤 원주민들은 스스로 신처럼 느끼기 위해서 감각을 예리하게 하고 힘을 키우고자 ‘개구리 먹기’를 했다. 나도 내 감각을 예리하게 만들고 건강한 기분을 돋우기 위하여 파밍턴 식당에서 후하게 팔고 있는 갈색빛의 뜨거운 음료를 흡입하였다. 열대 관목 씨앗을 갈아서 뜨거운 물을 부어 만든 것이다. 맛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소의 유방에서 나온 분비물을 약간 더하고 사탕수수의 즙을 결정으로 만든 것도 넣었다. (223쪽)


카페라테를 마셨다는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하다니.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이 수업의 일환으로 찾아와서 지낼 때의 에피소드는 하인리히야말로 진정 자연주의자임을 보여준다. 


우리의 급속 냉동고(겨울철 집 밖)에는 들쥐가 많았는데, 큰까마귀가 먹고도 남을 양이었다. 그렇지만 큰까마귀들은 이미 죽은 송아지 고기를 실컷 먹은 뒤였다. 들쥐의 양이 여유 있다고 생각되었다. 쥐를 먹을 준비를 하려면 먼저 해동시킨 다음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끄집어낸다. 그 다음에는 씻어서 조심스럽게 빵가루를 묻힌다. 검은 색 냄비에 올리브오일을 붓고 쥐를 볶은 다음 물을 약간 붓고 뭉근한 불에 조린다. “이거 정말로 먹을 건가요?” 데이브가 궁금해했다.

나는 한 번에 30개 분량을 준비했다. 고기가 갈색이 되고 바삭해지자 미심쩍어하는 데이브의 질문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삶의 다양한 면을 잘 인식하고 있는 제시카가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를 들고 씹으며 호들갑을 떨지 않고 사실 그대로 말했다. “이거, 꽤 맛있네요!” 제프도 하나를 먹어보더니 아무 말 없이 하나를 더 집어서 이번에는 바비큐 소스를 찍어 먹는다. 갑자기 모두들 다가왔고, 쥐들은 나초와 살사보다도 더 빨리 사라졌다. (260쪽)


길바닥은 모든 동물이 있는 훌륭한 도축장이다. 활용하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봄과 여름에 고속도로를 따라서 달리기를 하다가 박물관에 쌓아둘 정도로 많은 명금류의 사체들을 보았는데, 그 새들의 죽음이 안타깝기는 하였으나 법 때문에 그 사체를 건드리지 못하고 그냥 썩게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점이 훨씬 더 아쉬웠다. 대부분의 주에서는 차에 치여 죽은 동물들을 활용하는 것을 법으로 엄하게 금지하고 있다. (228쪽)


아 그리고, 신문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웃픈’ 감정으로 밑줄을 칠 수밖에 없었던 구절.


매일 우편함으로 배달되어 오는 신문은 아침에 모닥불을 피울 때 요긴하게 쓰인다. 무엇이든 낭비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에 가끔은 읽기도 한다.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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