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플랜테이션의 역습... 아시아 곳곳 '물 부족'

딸기21 2013. 8. 1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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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칸 고원 서부에 있는 마하라슈트라는 인도에서 세 번째 큰 주다. 사탕수수와 목화 재배지로 유명한 이 지역에서 지난 4월 농작물이 비틀리고 사탕수수에서 신맛이 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마하라슈트라는 올 들어 1972년 이래 최악의 물 부족을 겪었다. 극심한 가뭄이 이 일대를 초토화시킨 것도 아닌데 강물이 줄고 땅이 말랐다.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역설적으로 주민들의 목숨줄인 사탕수수 자체였다. 사탕수수는 다른 작물보다 15~20배나 물을 더 필요로 한다. 목화도 마찬가지로 지질에 미치는 ‘물 스트레스’ 정도가 높은 작물이다. 하지만 대지주들 대부분이 환금작물을 키우는 플랜테이션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에 땅 없는 가난한 소작농들은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 인도의 대표적인 농업지역인데도 먹을거리 생산은 갈수록 줄고 있다.

 

마하라슈트라의 비드 지역 수자원관리인 수닐 켄드레카르는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몬순(열대계절풍)에 의존하는 곳에선 사탕수수를 재배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탕수수 재배를 제한하려는 지방정부의 움직임은 번번이 대지주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마하라슈트라와 카르나타카, 라자스탄, 구자라트 주는 지난해에도 물 부족을 겪었다. 6~9월 몬순 기간 강우량이 예년보다 15%가량 줄어든 것으로 추산됐다. 소를 키우는 농가들은 목초지가 없어 고통받았고, 물을 찾아다니는 ‘물 난민’이 곳곳에서 생겨났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물센터 조사에 따르면 인도는 통계적으로 8~10년에 한 번씩 가뭄을 겪으며, 30년에 한 번은 재앙을 일으키는 대가뭄이 찾아온다. 2009년에도 가뭄이 왔으나 대가뭄 수준은 아니었다. 우물에 물이 없는 것은 “물 관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주민들은 주장한다.


지난 4월, 바싹 말라 갈라진 인도 마하라슈트라의 들판. 사진 The Times of India


인도 남동부의 안드라프라데시 주는 1970년대 저개발국의 식량 생산량을 크게 늘린 ‘녹색혁명’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초 이 지역 녹색혁명의 목표는 쌀과 밀이었다. 식량 생산량을 자급자족 이상의 수준으로 높여 농촌 인력의 ‘잉여’를 만들고, 이들이 도시 노동자로 이주해와 공업화와 도시화를 견인하게 한다는 것이 인도 정부의 개발 목표였다. 정부가 밀어붙인 계획에 따라 안드라프라데시의 농업 생산성은 크게 올라갔다.

 

그런데 쌀과 밀 같은 곡물이 아닌 목화가 이내 주요 작물이 돼 버렸다. 식량 생산, 자급자족과 전혀 상관없는 환금작물이 농촌을 뒤덮은 것이다. 먹을거리가 아닌 ‘이윤’이 농업의 목표가 됐기 때문이며, 이를 주도한 것은 땅을 가진 대지주들이었다.


안드라프라데시 북쪽의 텔랑가나에서는 목화 재배가 30년간 계속 늘었다. 물이 고갈되고 식량 생산은 갈수록 줄고 굶주림은 심해졌다. 이상한 것은, 목화의 국제 시세가 떨어져 더 이상 수지가 맞지 않는데도 목화 재배가 늘었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를 연구한 경제사학자 밤시 바쿨라바라남은 종자를 살 돈을 빌려주는 신용제도에서 원인을 찾았다. 종자값, 비료값을 빌려주는 대금업자들은 농민들에게 “반드시 목화를 심으라”는 조건을 내건다.


이유는 단순하다. 목화는 굶주림을 못 이긴 빈농들이 먹어치울 수 없는 작물이다. 사탕수수도, 커피도, 고무도, 야자도 마찬가지다. 먹을거리가 아니라 ‘담보가 되는 상품’인 것이다. 목화 재배면적이 늘고 목화값이 떨어져 곡물보다 수익성이 없는 작물이 됐지만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빚 내어 목화를 심는다. 게다가 목화는 거대 생명공학기업들이 만들어낸 유전자조작 종자가 가장 많이 유통되는 작물 중 하나다.

 

목화가 물을 많이 삼키는 작물이다보니, 목화 재배에는 우물과 관개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다. 자연 상태에서는 물 수요를 충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갈수록 건조해지고 가뭄이 잦아지자 텔랑가나의 농민들은 점점 더 관개에 의존하게 됐다. 관개시설을 만들고 물을 끌어오려면 농민들은 또 빚을 져야 한다. 이런 상태로는 농업이 지속되는 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텔랑가나와 안드라프라데시 등은 인도 내에서도 농민 자살이 가장 많은 곳이고, ‘낙살 반군’이라는 마오주의 무장조직이 기승을 부린다.


미국 저널리스트 크리스천 퍼렌티는 목화 재배와 물 부족, 물 분배과정에서의 부패, 낙살 반군과 무자비한 진압, 농민들의 자살과 소요로 이어지는 과정을 ‘메마른 분노의 폭탄’이라 표현했다. 인도 집권여당은 텔랑가나를 안드라프라데시에서 분리시켜 29번째 주로 만드는 결의안을 지난달 30일 통과시켰다. 텔랑가나가 새로운 주가 되면 물 부족, 반군, 빈곤에 시달리는 인구 4000만명의 나라가 생겨나는 셈이 된다.

 


An Indian woman picks cotton in a field in the Warangal District of Ahdhra Pradesh in India.  www.newswise.co


우즈베키스탄에도 드넓은 목화 재배지가 있다.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건조지대에 있는 우즈벡은 옛 소련 시절 목화 재배지로 이용됐다. 목화 집단농장(콜호스)들이 이곳에 줄지어 있었고, 옛 소련 전체 목화 생산량의 70%가 여기서 나왔다. 목화는 옛 소련에 돈을 벌어다주었기 때문에 ‘하얀 금’으로 불렸다. 목화를 키우기 위해 콜호스들은 아랄 해로 가는 아무다리야 강물을 끌어다 썼다. 우즈벡 곳곳에 이런 관개수로가 지금도 바둑판의 줄처럼 들어서 있다. 우즈벡이 독립한 뒤에도 목화는 여전히 핵심 수출품목이다. 미국 농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즈벡은 미국, 인도, 호주에 이어 세계 4위의 목화 수출국이었다.


목화는 우즈벡의 효자인 동시에 ‘재앙’이다. 아무다리야는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의 젖줄이다. 페르시아어로 다리야는 바다를 뜻한다. 그 정도로 큰 강이라는 뜻이다. 이 강은 멀리 파미르 고원에서 발원해 힌두쿠시 산맥을 거쳐 우즈벡의 아랄 해로 흘렀다. 이제는 그것이 과거의 일이 됐다. 고대로부터 여러 오아시스 국가들을 탄생시켰던 이 강이 지금은 서쪽의 아랄 해까지 흐르지 못하고 사막에서 말라붙는다. 1970년대 지어진 목화밭 관개수로는 총 길이가 1300㎞에 이른다. 하지만 목화밭에 물을 빼앗긴 탓에, 한때 2400㎞에 이르던 아무다리야 길이는 1400㎞로 줄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호수였던 아랄 해도 말라붙었다. 아랄 해에 기대어 살던 어민들은 마을을 떠났고, 연안의 통조림 공장들은 문을 닫은 지 오래다. 아랄 해 주변 사람들은 우즈벡이나 옛 소련의 주류 민족이 아닌 카리칼팍이라는 소수민족이다. 소련과 우즈벡이 아랄 해 사람들을 사실상 고사시켜 가면서 강물을 빼다 쓸 수 있었던 것은, 카리칼팍 사람들이 힘없는 소수민족이라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 카리칼팍 사람들은 아랄 해 수위가 내려가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아무다리야 강이 끊긴 뒤에야 주민들은 관개수로에 물을 빼앗겼음을 알 수 있었다. 


말라붙은 아무다리야, 점점 작아지는 아랄 해는 세계 최악의 인위적 재앙이다. 이런 재앙을 대가로 치르면서 목화로 벌어들이는 돈은 우즈벡 독재정권의 수중으로 모두 들어간다. 우즈벡의 목화농장은 아동 노동력을 동원하는 것으로도 악명 높다. 한국 대기업 대우인터내셔널 현지법인도 이곳에서 방직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 남부 윈난(雲南)성은 중국에서도 가장 다양한 식생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에서 유일하게 열대우림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곳의 숲이 모자이크처럼 쪼개지고, 그 사이사이에 고무나무 농장들이 들어서고 있다. 중국의 자동차 보유대수가 늘어나면서 세계적으로 타이어 수요가 늘고 덩달아 고무값이 뛰자 굿이어, 컨티넨탈, 미쉘린, 브리지스톤 같은 외국 타이어 제조회사들이 잇달아 윈난성 남부에 고무나무 플랜테이션을 시작했다. 


라오스, 미얀마 국경과 가까운 윈난성 남부 시샹반나는 보이차 생산지로 유명하다. 이곳도 고무나무 농장으로 뒤덮여가고 있다. 지난해 중국과학원 산하 시샹반나 열대식물원의 장이핑(張一平) 연구원은 “수십년에 걸친 고무나무 플랜테이션으로 지표면 물 부족이 나타나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중국 정부는 고무나무 농장이나 열대우림이나 물 순환에 미치는 영향에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얼마 안되는 공식 통계자료만 놓고 분석하더라도 고무나무 농장 지역의 토양 물 함유량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장 연구원이 이끄는 연구팀은 1994년부터 2008년까지의 자료를 분석해 시샹반나 고무나무 재배지역과 열대우림 지역의 물 순환을 분석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비슷한 양의 비가 내려도, 열대우림에 비해 고무나무 재배지역에서 지하수로 흘러내려가는 양은 크게 적었다. 중국과학원은 웹사이트에서 “이 연구 결과는 고무나무 플랜테이션이 지역 주민들 주장대로 물펌프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고 지적했다.

 


식민지배 시절이나 권위주의 통치 시절 시작된 플랜테이션의 폐해는 잘 알려져 있지만, 지금까지는 수탈에 따른 원주민들의 빈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근래에는 플랜테이션의 역습이 물 고갈이라는 형태로 주민들을 공격한다. 전통 농법으로 오랫동안 키워오던 작물 대신 외부에서 이식된 작물을 대량으로 키우면서 자연과의 조화가 깨지고 땅과 농민의 연결이 끊어졌다. 플랜테이션 회사와 지주들, 수매회사들이 요구하는 환금작물을 키우며 국제 시세에 휘둘리고 초국적 종자회사들에 의존하게 되면서 농사를 지을수록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땅과 농사에 대한 결정권을 잃고 삶을 저당잡힌 사람들, 스스로 자연과 어떻게 공존할지 선택할 권리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물조차 점점 ‘사치’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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