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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대선 '여성 후보 자흐라'

딸기21 2013. 6. 1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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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흐라는 이란 여성입니다. 2009년 6월 대선에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측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을 때 경찰의 강경진압에 아들 메흐디를 잃었습니다. 


평범하던 한 어머니는 그 뒤 정치투사로 바뀌었고, 이제는 이란 대선의 ‘유일한 여성 후보’가 됐습니다. 


“자애로운 신의 이름으로 오늘 여러분 앞에 말씀드립니다. 내 아들 메흐디의 인생은 짧았습니다. 아들은 인생을 도둑맞고 묘지에 묻혔습니다. 이제 이 묘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합니다.”

자흐라는 실존인물은 아닙니다. 이란의 유명 정치풍자 만화 <자흐라의 낙원>의 주인공입니다.


4년 전 대선 부정선거를 비롯한 정부의 독선과 이슬람 신정의 억압을 풍자하는 만화 속 캐릭터인 자흐라가 온라인 상에서 오는 14일 이란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이란 독립언론인 페이반드뉴스 등이 11일 보도했습니다.


자흐라의 웹사이트(vote4zahra.org)에는 설문조사 형식으로 된 ‘공약’이 들어 있습니다. 


“여성도 대선에 출마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나”, “모든 이란인들이 성별과 종족과 정치·종교적 신념에 상관없이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고 보는가”, “정치범과 양심수들을 석방하고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가.” 


자흐라의 주장들은 개혁을 원하는 여성·젊은이들이 그리는 이란의 미래상인 듯합니다.



<자흐라의 낙원>은 2010년 웹툰으로 시작돼 이듬해 첫 단행본이 출간됐습니다. 지금도 연재되고 있는 웹툰은 제작되자마자 16개국 언어로 번역된다고 합니다(여담입니다만 이제 영화 뿐 아니라 만화 쪽에서도 이란의 약진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ㅎㅎ)

이란 작가 겸 영화감독 아미르 솔타니가 글을 쓰고, 아랍 작가라고만 알려진 ‘칼릴’이 그림을 그립니다. 책을 펴내는 것은 유대계 출판인이라고 하는데, 신변 위협때문에 신분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자흐라의 낙원>을 이해하려면, 2009년 대선 당시의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 재선을 노리는 아마디네자드에 맞서 개혁파 후보 미르 호세인 무사비가 돌풍을 일으켰지요. 특히 여성 유권자들이 나서서 무사비 캠프를 상징하는 '녹색 바람'을 주도했는데, 선거 결과는... 아마디네자드의 승리였습니다. 개혁파는 부정선거라며 맞섰고, 이 과정에서 수십명이 사망했습니다.



만화 속 자흐라의 아들 메흐디는 2009년 옥중 사망한 모흐센 루홀라미니(당시 25세)와 시위 도중 총격에 사망한 소흐랍 아라비(당시 19세) 등의 청년들을 모델로 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자흐라의 낙원(베흐시트 에 자흐라)’은 테헤란 남부의 공동묘지 이름이기도 합니다. 2009년 시위 중 숨지면서 개혁파의 상징이 됐던 여대생 네다 솔탄이 이 곳에 묻혀 있습니다.


4년 전의 아픔을 상징하는 만화 주인공이 가상후보가 되어 인기를 끄는 것은, 사흘 앞으로 다가온 대선이 보수파 일색으로 진행되면서 개혁파의 의지를 구현할 후보가 마땅히 없기 때문입니다. 현실이 안 받쳐주니 가상현실로 눈길이 쏠리는 것이겠지요... 



최고권력기구인 혁명수호위원회는 지난달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대통령 등 개혁파 정치인들을 대거 후보자격심사에서 떨어뜨렸습니다. 여성의 대선 출마를 금지한 현행 선거법도 옳다고 결정했습니다. 

 

심사를 통과한 후보는 모두 8명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부통령을 지낸 모하마드-레자 아레프가 유일한 개혁파 후보였으나 11일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아레프는 웹사이트를 통해 “모하마드 하타미에게서 내가 더이상 이 선거전에 남아있는 것은 현명하지 않을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사퇴를 선언했습니다. 

1997년부터 2005년까지 2차례 대통령을 지낸 하타미는 이란 개혁파의 대부이죠. 하타미의 ‘권고’는 당선 가능성이 좀더 높은 하산 로하니로 개혁파 후보를 단일화함으로써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란 정치시스템의 주요 기구 중 하나인 권익위원회 위원이자 서방과의 핵협상 대표를 지낸 하니는 개혁파라기보다 중도파에 가깝지만, 현재 남아있는 후보들 중에는 그나마 자유주의적인 성향입니다. 재미난 것은, 로하니가 유일한 '성직자 후보'라는 것. (이슬람은 성직자가 없다고 하는데, 시아파 '이맘'을 달리 옮길 방법이 없어 편의상 성직자라 해두죠.) 로하니는 1979년 이슬람 혁명을 일으킨 아야툴라 호메이니와도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산 로하니. 이 분도 한 포스 하시는군요.


로하니가 부상하자 혁명수호위가 그의 출마자격을 박탈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수호위는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남은 기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난 대선 충돌 뒤 개혁 요구를 억눌러온 이슬람 세력이 개혁파의 당선을 두고만 볼 리는 없으니까요. 


로하니를 제외하면, 현재 남아 있는 5명의 후보는 모두 강경 보수파들입니다. 개혁파의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사라지면서 이번 대선은 극도의 무관심 속에 치러지고 있다고 CNN 등 외신들은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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