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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바흐의 추측

딸기21 2003. 1. 1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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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바흐의 추측 Uncle Petros and Goldbach's Conjecture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 정회성 (옮긴이) | 강석진 | 생각의나무 | 2000-05-03


'골드바흐의 추측(Goldbach‘s conjecture)'이라는 수학문제가 있다. 문제 자체는 단순하다.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라."
문제는, 이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말 그대로 '일생'을 바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나'의 삼촌 페트로스 파파크리스토스. 첫사랑 이졸데에게 자신이 대단한 인물이었음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골드바흐의 추측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수학에 대해 알기 쉽게 풀어쓴 소설이라는 식으로 여기저기 소개가 나와 있어서 조금 부담스러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는데, 의외였다. 너무 재미있었다. 얼마나 재미있었냐면- 숨도 거의 못 쉬고(헉헉) 페트로스의 일생에 내 인생의 4시간을 몰아넣었다. 

"만약 네 큰 삼촌이 그 문제를 풀었다면 멋지다거나 훌륭하다는 등의 찬사를 보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이상의 찬사도 아무런 소용이 없게 돼 버렸어. 네 큰 삼촌은 문제를 풀지 못했으니까. 인생의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니? 인생의 비결은, 항상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세우는데 있는 거야." (아버지의 이야기)

"모든 인간은 스스로 택한 절망적인 상황에 절망할 권리가 있는 거야."
"내 생각에 괴델이 저 지경에 이른 건, 그러니까 저렇게 미쳐 버린 건, 진리의 절대적 형태에 너무 가까이 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인간은 결코 진리 앞에서 잠자코 있지 못하지' 라는 따위의 시구도 있지. 성경에 나오는 '지식의 나무'나 너희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를 한번 생각해봐. 저런 류의 사람들은 보통의 기준을 뛰어넘어. 인간에게 허용된 것 이상을 알려고 들지. 신에 대한 오만한 행위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게 마련 아닐까?" (새미의 이야기)


수학에 관한 소설이라는 말도 맞지만, 이 책은 그보다는 인생에 관한 소설이다. 인간의 욕망과 오만, 가까운 이들 사이에 흔히 나타나는 미묘한 갈등, 남의 심정을 살살 긁어 괴롭히고 싶은 복수심, 우리가 종종 내뱉는 변명,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집착 따위를 가볍고 재치있는 문제로 펼쳐보인다. 

"이졸데는 내게 '아름다운 여행'을 선사했어. 그녀가 없었다면 나는 결코 여행을 떠나지도 못했을 거야. 하지만 그녀는 최초의 자극제에 불과했지." (삼촌의 이야기)

"아테네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양심의 가책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일련의 내 행동에 대해 회의가 든 것이다. 내 오만했던 자세는 진정 페트로스 삼촌을 정신적으로 치유해주겠다는 순수한 의도에서 나온 것인가? 혹시 나 자신의 욕구, 즉 내 사춘기 자아에 정신적 충격을 안겨주었던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나는 무슨 권리로 그 불쌍한 노인의 얼굴을 과거의 환영으로 덮어씌울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 용서받지 못할 어리석음의 결과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나의 이야기)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타인의 인생을 재단하고 평가하고 돌던질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이가 대체 누구인가. 그런 행동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용서받지 못할 어리석음'이다. 그러나 관대해지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절대이성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이 어려운 일인 것처럼. 이 소설이 재미있는 것은, 하나하나의 에피소드에 아포리즘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인생에 대한 통찰력. 요슈타인 가아더의 <카드의 비밀>만큼 재밌다.


◆ 페트로스 삼촌을 괴롭힌 인물: 골드바흐(Christian Goldbach,1690~1764)

`골드바흐의 추측`을 비롯해 정수론의 발전에 공헌한 수학자이다. 1725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제국 아카데미에서 수학, 역사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3년 뒤 표트르 2세의 개인 교사가 되어 모스크바로 갔고, 1724년부터는 러시아 외무부에서 일했다.
1724년 스위스의 수학자인 레온하르트  오일러에게 뒷날 자신의 이름을 붙게 될 추측을 처음으로 편지에 담아보냈다.

골드바흐의 추측: 1724년 골드바흐는 짝수들의 나열해 놓고 이런 저런 게산을 하던 중 모든  짝수는 소수 두 개의 합으로 표현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4=2+2, 6=3+3, 8=3+5, 12=5+7, 50=19+31... 등과 같은 합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당시 스위스 최고의 수학자 오일러에게 편지를 보내 이것이 일반적인 성질인지 물어 보았다. 오일러는 골드바흐가 말한 명제를 두 개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1)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
2) 5보다 큰 모든 홀수는 세 소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골드바흐의 추측`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첫번째 명제이다. 그리고 두 번째 명제는 `골드바흐의 추측이 옳다고 확신했으나 안타깝게도 증명하는 데는 실패했다.
두 번째 명제는 1937년 러시아의 위대한 정수론자 이반 비노그라도프가 증명하는데 성공했다. 한편 첫번째 명제에 대한 증명에 있어서 가장 최근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남긴 사람은 중국의 수학자 첸 징런으로, 그는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하나의 소수와 두개의 인수를 갖는 합성수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증명했다.

1998년에 슈퍼컴퓨터로 400조까지는 이 추측이 참이라는 것이 증명되었고 어느 누구도 골드바흐의 추측과 맞지 않은 짝수를 찾아내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골드바흐의 추측이 완벽하게 증명된 것은 아니다. 수학에는 아무리 예가 많은 명제일지라도 증명할 수 없으면 참된 명제일 수 없기 때문이다.
골드바흐의 추측은 겉보기와는 달리 소수의 문제가 수의 구조와 깊이 관련을 갖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때문에 앞으로도 우수한 수학자들은 그들의 관심을 끊임없이 골드바흐의 추측에 집중시키게 될 것이다.

◆ 페트로스 삼촌을 절망하게 만든 인물: 괴델(Kurt Göel, 1906~1978)

오스트리아 출신의 괴델은 수학기초론의 대가로서 20세기 최고의 논리학자로 평가되는 수학자다. 미국의 시사지 『타임』이 밀레니엄 특집으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인물 1백명을 뽑았을 때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논리에 대해 철저한 연구를 한 대가였지만 그의 죽음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비논리적이었다. 가난해 먹지 못한 것도 아니고, 시대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단식 투쟁을 한 것도 아니라, 누군가 자신을 독살하려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음식을 끊고 굶어 죽었다. 

20세기 초는 유클리드 이후 최고의 수학자로 칭송받고 있는 힐베르트가 활약하던 시대였다. 그는 이른바 '공리주의(axiomatism)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점·선·면 등 몇몇 정의와, 증명할 필요가 없는 몇 개의 공리만 있으면 수학의 모든 것을 이끌어내고,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 공리주의다. 힐베르트와 그를 지지하는 수학자들은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수학체계를 세우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정의와 공리들을 골라내고 있었다.
괴델 역시 힐베르트의 공리주의 프로그램을 뒷받침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엉뚱하게도 힐베르트의 시도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1931년 괴델이 만든 '불완전성의 정리'(참명제라고 항상 증명가능한 것은 아니다)가 그것이었다. 그는 이를 통해 유한한 개수의 정의와 공리만으로는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는 수학체계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힐베르트에게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괴델의 정리는 몹시 난해하지만 결국 20세기 수학기초론의 핵심이 되었다. 이 정리는 "어떤 컴퓨터라 해도 풀 수 없는 수학적 문제가 있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불완전성의 정리'를 만들 때까지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연구를 하던 괴델은 조국이 나치의 영향 아래 들어가자 미국으로 건너갔다. 거기서 프린스턴 고등연구원에 있으면서 아인슈타인·오펜하이머·노이만·바일 등과 같은 세계적인 과학자들과 함께 지내며 연구를 계속했다. 
그의 죽음은 자신이 이룩한 정리만큼이나 아리송한 것이었다. 말년에 십이지장궤양으로 피를 토한 뒤 누군가 자신을 독살하려 한다고 생각한 괴델은 결국 두려움에 음식을 먹지 못하고 굶어 죽었다. 사망 당시 그의 키는 168cm였는데 몸무게는 29.5kg에 불과했다. 괴델의 사망진단서에는 '인격 장애에 의한 영양 실조와 기아에 의해 사망했다'고 적혀 있다. 
비록 괴델의 죽음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의 업적은 수학·논리학·철학·언어학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분야와 같은 컴퓨터 과학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지성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앙일보, 임경순 교수의 과학자 이야기)

◆ 고통받고 절망한 페트로스 삼촌 덕분에 즐거웠던 인물: 나, 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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