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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지진으로 하타미 궁지에

딸기21 2003. 12. 2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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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 2만명의 사망자를 낸 지진으로 이란 개혁파의 상징인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또다시 궁지에 몰리게 됐다.

압둘라 라메잔자데 이란 정부 대변인은 26일 지진 발생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사흘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최고종교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희생자 가족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했다.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국민들에게 애도를 보낸다"는 성명을 발표한 뒤 수도 테헤란의 모스크를 찾아 지진 피해 회복을 기원하는 기도를 올렸다. 하타미 대통령도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하면서 "이번 지진은 국가적인 재앙으로 온국민이 힘을 모아 피해자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지진으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자만 수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지만, 가장 큰 `정치적' 피해자는 하타미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두 차례 연임하는 동안 개혁파의 기수로서 보수파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여온 하타미 대통령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벽에 부딪치면서 최근 정치적 위기에 부딪쳐왔다.
하타미 대통령은 지난 97년 개혁을 요구하는 광범위한 국민들의 지지 속에 취임했으며 2001년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정치개혁은 보수파의 거센 반대에 부딪쳤다. 79년 호메이니 혁명 이후 최고권력기관으로 군림해온 혁명수호위원회의 선거 후보심사권을 빼앗고 자유선거를 보장하기 위한 개혁안을 지난해 의회에 제출한 뒤 보-혁 갈등은 극에 달했다. 개혁파 지식인 처벌 문제 등을 놓고 보수 이슬람세력과 대학생들이 맞시위를 벌이다 유혈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타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곤두박질쳤다. 집권 2기 동안 보수파는 물론, 젊은이들마저도 지지부진한 개혁에 실망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과의 관계는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하타미 대통령 취임 뒤 오랜 적대관계를 깨기 위해 이란과 접촉을 재개했었으나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 이후 관계가 급랭했다. 부시대통령은 지난해 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으며, 이라크전 이후 다음 타겟은 이란임을 공공연히 적시해왔다. 올들어서는 이란 원전 건설 등을 문제삼아 핵무기 개발의혹을 제기했다. 하타미 정부는 지난달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으며 지난 18일 핵확산금지협정(NPT) 부속의정서에 서명했다. 대미관계에서 급한 불은 껐지만 국내에서는 보수세력의 반발이 적지 않았다.

인권변호사 시린 에바디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하타미 대통령이 축하를 보내면서 에바디측에 `이슬람의 권위를 해치지 말라'는 `경고'를 함께 보냈던 것도 보수파의 견제를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보수파들은 친정부 성향인 국영 IRNA통신을 비롯, 개혁언론을 탄압하는 데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IRNA와 영자지 테헤란타임스 등은 26일 지진 뉴스에서도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애도 성명을 가장 크게 보도했다. 정치적 알력, 미국과의 갈등에 천재지변까지 겹쳐 하타미 대통령의 지도력 위기는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란, 지진 덕에 화해?

미국이 이란 지진참사 구호활동을 돕기 위해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일시 완화했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31일 미국 기업들과 구호기관들이 지진 구호활동을 지원할 수 있도록 제재 관련 규정을 완화한다고 발표했다. 석달간의 한시적 조치이기는 하지만 미돥이란 관계 개선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조치여서 주목된다.
앞서 애덤 이렐리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지난달 30일 "지진 참사 이후 양국 간에 긍정적인 움직임이 있었다"면서 관계 개선 가능성을 재확인했다. 파월 장관도 워싱턴포스트지 회견에서 "이란 쪽에 새로운 움직임이 있다"면서 "대화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말했었다.

당장 극적인 변화가 있기는 힘들겠지만, 양국 사이에 관계개선의 전기는 마련된 것으로 외신들은 보고 있다. 미국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이끄는 이란의 개혁파 정부를 지원했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 뒤 강경 압박 쪽으로 정책을 바꿨었다.

지진을 계기로 미국이 유화제스처를 보낸데 대해 이란 정부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타미 대통령은 1일 "미국의 지원에 감사하지만 정치문제와 직접 연결시킬 수는 없다"면서 "(양국 간에) 근본적으로 해결돼야 할 문제들이 있다"고 말했다. 카말 하라지 외무장관도 "금수조치를 완전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국내 이슬람세력의 반발을 의식해 이같이 말하고는 있지만, 이란 정부도 미국에 맞설 의사는 없어 보인다. 이라크가 몰락한 뒤 리비아 못지않게 이란도 `강력한 교훈'을 얻었을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이란이 `리비아 모델'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놨다. 신문은 북한보다는 이란 쪽이 리비아처럼 자진해서 대량살상무기(WMD)를 파괴하고 대미관계 개선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1일 보도했다. 하타미 대통령은 이미 지난 10월 핵시설 사찰을 받겠다면서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보유할 의사가 없다"고 공식 선언했었다. 미-이란 관계는 리비아의 사례처럼 `핵무기 보유 포기선언-국제기구 사찰-대미관계 개선-경제제재 해제'의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편 케르만주 밤시(市)에서는 지진이 일어난지 일주일만인 1일 생존자 3명이 극적으로 구조됐다. 일본 항공자위대가 이날 케르만 공항에 도착하는 등 현지에서는 각국의 구호인력들이 몰려 구조작업과 생존자 구호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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