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그들은 사우디를 노린다

딸기21 2003. 11. 9.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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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이 심상치 않다. 세계의 '화약고'라 불릴 정도로 복잡미묘하게 얽혀 있는 곳이긴 하지만, 이번엔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중동의 '핵심' 중의 핵심인 사우디아라비아가 파동의 진원이 되고 있다. 수십년간 잠복해있던 '사우디 문제'가 바야흐로 터져나오는 양상이다.


테러는 사우디를 겨냥한다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8일 밤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 사망자 가 9일 밤(현지시간) 현재 17명으로 늘었다. 사망자 중에는 레바논인 7명, 이집트인 4명 등이 포함돼 있다. 숨진 이들 중 6명은 라마단 금식성월 기간 밤축제로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변을 당한 어린이들이었다. 부상자는 120명을 웃돌고 있다. 외국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알무하야의 빌라촌에서 테러가 발생했지만 미국인 사망자는 없었다.
테러를 일으킨 것은 알카에다로 추정되고 있다. 이미 알카에다의 '테러 경고'로 미국은 리야드 주재 공관 업무를 중단시킨 상황이었고, 사우디 경찰이 현장에서 폭발 직전 테러범들과 총격전을 벌이는 것이 목격됐다는 주장도 있다. 범행 수법은 지난 5월12일 리야드의 외국인 거주지역에서 벌어진 연쇄테러와 거의 똑같다.

흔들리는 왕정

사우디 정부는 이미 며칠 전부터 대형 테러가 일어날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진행해왔다. 수도 리야드에서 테러조직원들과 경찰 간 총격전이 벌어진 것만 해도 여러번이다. 그러나 결국 연쇄테러를 막지 못했다. 사건이 일어나고 난 뒤, "연쇄테러가 아니라 여러 차례 폭발이 있었을 뿐이다"라는 '해명 아닌 해명'을 내놓는 것이 고작이었다. 오사마 빈라덴의 알카에다 조직은 2년여에 걸친 색출작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리야드와 메카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우디가 테러범들의 목표물이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중동아랍권의 모든 모순이 집결돼 있는 곳이 사우디이고, 그 핵심에 왕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근본주의 와하브집단과 결탁해 나라를 세운 알 사우드가문은 1932년 건국 이래 일사불란한 독재체제를 만들었지만 국가를 '근대화'하는데 결국 실패했다. 오일달러로 흥청망청 왕정을 부풀려놨지만 거품이 꺼진 뒤의 실업난과 빈부격차를 감당할 힘도, 도덕성도 갖고 있지 못했다. 국민들의 지지 대신 왕정은 미국의 '우산'에 기대어 중동 친미국가들의 맏형 노릇을 해왔지만,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사우디를 계륵(鷄肋) 정도로 여기기 시작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주장하는 '중동 민주화'의 타깃도 결국은 사우디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친미독재국가의 끝은 어디인가


부패한 왕정, 무능한 통치에 좌절한 청년들의 반발은 테러로 이어지고, 폭탄의 뇌관은 리야드로 향하고 있다. 왕국의 실질적 지배자인 압둘라 왕세자는 지난달 최초의 지방선거 실시계획을 발표하는 등 '위로부터의 개혁'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인구 2400만명에 1인당 국내총생산(GDP) 1만500달러, 그런데 아직 투표 한번 실시된적 없고 올들어서야 여성을 '국민'으로 인정해준 나라. 그것이 사우디의 현실이다.
미국이 사우디 왕정을 끝내 버릴 것인가. 부시행정부는 9.11 테러 뒤 사우디 공주인 미국 주재 사우디대사 부인의 계좌까지 추적하는 등 강도 높은 압력을 가했지만, 최근 들어 중동 민주화 주장에서 사우디에 대한 언급을 빼는 등 '유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결국 문제는 사우디 내부에 있다. 지난달 사우디에서는 건국이래 최초의 대중 시위가 벌어졌다. 왕정은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해있다. 사우디 왕정이 붕괴한다면 그 파장은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의 붕괴에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클 수밖에 없다. 친미독재국가인 이집트, 불안정한 왕정을 유지하고 있는 요르단, 사우디의 그늘에서 오일달러로 연명하는 걸프의 소국들 모두 흔들릴 것이 뻔하다. 사우디를 정점으로 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유가 결정력은 이미 추락하기 시작한지 오래다. 사우디를 바라보는 중동 전문가들의 시선은 '위기감'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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