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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탐사로봇, 심해 잠수정, 거대한 철제 캡(뚜껑), 진흙 실린더…. 멕시코만 해저유정 기름유출 재앙을 막아 보려 온갖 첨단기술과 장비를 동원해온 미국이 ‘최후의 결전’에 나선다. 이번 ‘무기’는 세계 최대 규모의 유조선이다.







AP통신은 30일 미 당국이 축구장 3.5배 길이에 10층 건물 높이의 초대형 선박을 불러다 기름 걷어들이기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고래A’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배는 길이 340m, 높이는 60m에 이른다. 배는 한국에서 제작됐고 선주는 대만의 선사 TMT다. 선적은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 두고 있다.
원래는 원유와 철광석 등을 대량수송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멕시코만 사태가 난 뒤 TMT의 노부 쑤 최고경영자가 오일스키머(물 위에 뜬 기름을 분리·흡수하는 설비)로 개조하도록 지시했다. 미 당국은 TMT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날 ‘고래A’의 멕시코만 작업을 승인했다.

‘고래A’는 지난 25일 버지니아주 노퍼크항에 도착해 연료를 채워넣은 뒤 30일 루이지애나주 바닷가에 도착했다. 이 선박은 양 옆으로 기름과 물을 동시에 빨아들인 뒤 특수제작된 배 밑부분 탱크로 보낸다. 물과 기름이 분리되면 물만 다시 배출하게 된다. 계획대로라면 하루 50만배럴(약 8000만ℓ)의 원유를 걸러낼 수 있다. 노퍼크항에 방문해 배를 살펴본 루이지애나주립대학 환경학자 에드 오버튼은 “믿을수 없을정도로 어마어마한 오일스키머”라고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노부 쑤 TMT 회장은 “잔디깎는 기계가 풀밭을 돌아다니듯 멕시코만을 돌며 기름을 빨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결과를 확신할 수는 없다. 올 초 완공된 이 배는 항해경력이 반년도 채 안 된다. 기름흡수용으로 개조됐다고 하지만 실제 테스트는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폭스뉴스 등 미국 언론들은 “제대로 작동한다 해도 기름을 100%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실전에 들어가봐야 효과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미 환경관리청(EPA)과 주정부들이 ‘고래A’의 작업허가를 놓고 고민한 것도, 환경에 미칠 효과를 섣불리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텍사스, 앨라배마 일대 해상에는 올들어 첫 허리케인인 ‘알렉스’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알렉스가 2등급 허리케인으로 커지자 텍사스 일대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일대엔 홍수주의보가 내려졌다. 알렉스는 남쪽의 멕시코를 강타, 폭우와 홍수 피해를 입힌 뒤 북쪽으로 올라와 텍사스 앞바다에 도달해 있다.
미 기상당국은 허리케인이 기름유출 지역을 우회해 텍사스 서쪽 내륙으로 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동쪽 바다에 위치한 기름띠는 거세진 파도를 따라 급류를 이루기 시작했으며 방제작업은 중단됐다. 멕시코만 기름 제거작업을 하던 배들은 모두 항구로 철수했다. BP가 세번째로 설치하려던 유출차단용 돔 작업도 6~7일 이후로 연기됐다. 알렉스를 시작으로 본격 허리케인철이 다가오면 기름피해가 얼마나 커질지 알수없어 당국은 초긴장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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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우주의 탄생은 이렇다. 태초에 빅뱅이라는 대폭발이 일어나 우리 우주가 생겼다. 빅뱅이 일어난 직후 어떤 요인에 의해 우주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에너지가 들어차게 됐다. 이를 ‘표준모델 이론’이라 부른다. 안타깝게도 현재 인간이 관측할 수 있는 구성 물질은 우주 전체의 4%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암흑 물질(23%)과 암흑 에너지(73%)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물질들을 구성하는 입자는 각기 다른 질량을 갖고 있는데, 입자들의 질량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는 수수께끼다. 그래서 영국 물리학자 피터 힉스는 이른바 ‘힉스 입자’라는 것을 고안해냈다.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에 의해 각 입자들의 질량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힉스 입자의 실체는 관측된 적도, 측정된 적도 없었다.
그래서 스위스 제네바의 유럽핵물리연구소(CERN)는 엄청나게 비싼 ‘거대 강(强)입자 가속기(LHC)’라는 것을 만들어 지난해 가동을 시작했다. ‘태초의 상황’을 재현해 힉스입자가 튀어나오는지 보기로 한 것이다. LHC는 가동을 시작하자마자 고장이 나 수리를 반복하고 있지만 연구는 조금씩이나마 진전을 보이고 있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15일 “5개 정도의 입자들이 힉스 입자 후보로 거론된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표준모델 이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한국에서는 ‘핵물리학자’로 잘못 알려진, 입자물리학의 대가 고(故) 이휘소(미국명 벤자민 리) 박사다. 이휘소는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마이애미대학과 피츠버그대학에 유학해 석사 과정을 마쳤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에서 25세에 박사학위를 딴 뒤 이 대학과 스토니브룩 대학, 시카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68년에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고, 그 3년 뒤에는 세계 최고의 물리학연구소 중 하나인 미국 에너지부 산하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페르미랩)로 자리를 옮겨 입자물리학 연구팀을 이끌었다.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당시 이휘소의 존재는 독보적이었다. 이휘소는 ‘힉스 입자에 미치는 강력(강한 상호작용)의 영향’이라는 논문을 발표, 힉스 입자가 자연계의 질량을 갖게 하는 근본 입자이고 그 질량이 양성자에 110배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치를 내놨다. 지금도 힉스 입자에 대한 논문에는 이휘소의 이름이 종종 인용된다. 그 외에도 100여편의 논문을 발표, 미시세계에서 약력(약한 상호작용)의 작용에 대한 학문적 틀을 구축했다.

이휘소는 안타깝게도 77년 6월 16일 일리애나주 키워니 부근에서 교통사고로 숨지고 말았다. 겨우 42세였다. 그의 죽음을 소재로 한 소설이 히트치면서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과학자’로 잘못 알려졌지만, 제자들과 지인들에 따르면 이휘소는 핵개발과 상관없는 이론물리학자였을 뿐 아니라 핵무기 개발에 반대하는 중도-진보적인 시각의 과학자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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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에서 이긴 야당의 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승리의 여세를 몰아 정권의 기반을 무너뜨리며 대선까지 한달음에 내달려 집권당이 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작은 선거는 다 이겨도 대선의 결정적 순간에 선택받지 못해 다시 야당을 하는 길이다. 전자는 2006년 지방선거 이후 한나라당이, 후자는 2002년 지방선거 이후 한나라당이 간 길이다. 민주당이 어느 경로를 밟을지 두고 보면 알겠지만, 이미 시사하는 바가 있다. 민주당이 노무현 정부 때의 한나라당처럼 강력한 야당이 아니며,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 정권처럼 호락호락한 집권세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천 개혁도 안하고, 기득권에 매달려 선거 연합을 차버리고, 조직·노선·정책을 쇄신하지도 못한 민주당에서 그런 그림자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말하자면, 민주당이 선거에서 이겼다고 해서 쉽게 달라지지 않는, 어떤 견고한 특질 같은 것이다. 게다가 시민들의 균형 감각 덕에 횡재한 민주당은 혁신에 필요한 자극을 받을 기회도 놓쳤다. 이는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만일 민주당이 대안 세력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그동안 이 사회는 더 값있게 쓰여질 소중한 자원을 한여름 밤의 꿈으로 사라질 민주당의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제물로 허비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 가운데 진보정치가 있다.

선거 때마다 진보정당은 잔칫집 돼지였다. 말 꽤나 하는 이들은 이제 돼지도 잔칫집 손님으로 초대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고 했지만, 정작 돼지가 나타나면 너도 나도 달려들어 잡아먹으려 했다. 이번 선거도 예외는 아니었다. 진보정당을 삶아 먹고 배부른 이는 있어도 진보정치는 없었다. 물론 민주노동당의 성적은 지난 선거 때에 비해 나쁘지는 않지만, 민주당의 횡재에 비하면 초라한 것이다. 게다가 그조차 진보정치 발전을 통해 수확한 것이 아니었다. 진보신당과의 연합 대신 민주당과 단일화해서 얻어낸 것이다.

잔치집 돼지 신세의 진보정당

진보신당은 어떤가. 진보의 가치를 고수하느라 고립되고, 이명박 정권과 동반 패배했으며 심상정 사퇴 문제로 당내 갈등에 휩싸였다. 잔치는 이렇게 끝났다.

만일 진보세력이 그리 크진 않더라도 일정한 규모의 정치세력으로서 독립할 수 있다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의 힘으로 인해 상당한 발언권을 갖고 민주당과 당당히 선거 연합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연합의 성과로 민주당의 혁신을 이끌어내고 진보정치도 강화하며 함께 승리를 구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보정당은 연합의 대상이 될 만큼 가시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진보정당과의 연합을 차버린 민주당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 공허해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진보적 의제의 부상 속에서 왜소해진 진보정당의 역설. 이것이 바로 6·10 민주항쟁 23년째를 맞는 오늘 ‘진보 없는 한국 정치’의 실상이다.

반듯한 진보정당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진보·보수의 균형이라는 교과서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다수의 서민, 소외된 이들이 자기의 정치적 대표를 가짐으로써 사회적 평화를 누릴 것인가, 그들을 정치적 유령으로 취급함으로써 갈등과 모순 가득한 사회를 고수할 것인가 하는 매우 실질적인 문제이다. 그런데 진보정치에 대해 이 사회가 보이는 관심의 수준이란, 완주해서 이명박 정권을 도울 것인가, 사퇴해서 민주당을 도울 것인가 하는 왜곡된 양자택일의 문제에 머물러 있다. 노회찬이 왜 고립 속에서 완주해야 했는지, 심상정은 어떤 진보정치를 꿈꾸기에 눈물의 사퇴를 했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

이 세상 절반의 큰 짐 진 그들

노회찬·심상정은 그들이 아니면 누구도 대변해 주지 않는 이들의 삶을 위해,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당도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들의 일은 다른 누구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6년 전 겨우 10명에 불과한 진보정당 의원이 이 사회와 삶에 대해 던진 질문의 무게를 한 번 기억해 보라. 그런데 어느새 우리는 그들을 잊었다. 이 세상의 절반을 떠받치는 일을, 너무 큰 짐을 두 사람에게 맡겨 놓고 돌아서 버렸다. 그 때문에 고립에 빠진 노회찬, 고립을 탈출하려는 심상정 모두 한쪽 날개를 잃은 새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보수든 진보든 이 땅에 사는 이는 모두 두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다. 동의한다면, 그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자. 노회찬이 지키려는 것, 심상정이 확장하려는 것에 대한 우리의 지지를 보여주자. 그리고 다시 한 번 지·못·미.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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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 쵝오. 막 눈물이 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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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한국
지난 4월 초 코트디부아르 수도 아비장의 유엔평화유지사령부(ONUCI)를 찾았다. 이 나라에서는 2002년 남북 간 분쟁이 일어나 유엔 평화유지군 1만명이 파병돼 있다. 반군의 무장해제와 차기 정부를 뽑는 선거가 무사히 치러질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을 비롯해, 정부가 하지 못하는 구호·재건사업을 관리하는 것이 모두 ONUCI의 일이다.
ONUCI를 이끄는 최고 책임자는 한국인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명에 따라 ONUCI를 맡고 있는 최영진 유엔사무총장 특별대표를 만났다. 오랜 외교관 경험과 아프리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최대표는 단기적인 경제적 이득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으로,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글로벌 이슈들을 마주해야 한다며 한국에 ‘계몽된 국익(enlightened national interest)’의 관점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최대표는 “코트디부아르의 분쟁도 글로벌화와 연관돼 있다”는 말로 현지 상황을 소개했다. 이 나라는 1960년 독립 이래로 경제가 괜찮은 편이었다. 사헬(사하라 이남 건조지대)에 위치한 말리나 부르키나파소와 달리 농업 조건이 좋아 언제나 이주민들이 몰려들었다. 1800만 인구 중 600만명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80년대부터 세계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코트디부아르는 식민시대부터 이어져온 플랜테이션 농업에 의존하다보니 곡물가 하락의 영향을 심하게 받았다. 경제가 좋을 때는 이주민들을 데려다 농사일을 시켰는데 카카오, 커피값이 떨어지니 그들을 몰아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서아프리카 내분에도 '글로벌한' 배경이

오래도록 뿌리내리고 살아온 이주자들, 그리고 경제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북부인들이 정부에 반발하기 시작했다. 장기집권을 했던 초대 대통령이 죽은 뒤 정정불안이 가시화됐다. 2002년 대선에서 로랑 바그보 현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북부 주민들이 정부에 반기를 들고 무장하고 나서 일종의 내전이 일어났다.
국제사회의 중재로 유혈충돌은 끝났지만 아직 정부가 약속한 대선을 치르지 않아 갈등이 남아있다. 최대표는 “먼저 갈라진 남과북을 합치는 작업을 할 것인가, 일단 대선을 치른 뒤 화합작업을 할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 걸 보면서 한국의 해방정국을 떠올리곤 한다”고 말했다. 평화유지와 재건 활동에서 한국이 겪어온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분단 요소가 있는 나라에 선거만 도입하는 것은 큰 분란이 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제도가 곧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해선 안된다. 교육과 문화의 바탕이 없는 ‘선거 민주주의’는 더 큰 위험을 부를 수 있다. 민주주의든 인권이든, 제도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실제 중부아프리카의 자원부국인 콩고민주공화국, 서아프리카의 내전지역이었던 라이베리아는 유엔 관리 하에 성공적으로 선거를 치렀다. 하지만 ‘그 이후’가 없었다. 민주선거가 좋은 가버넌스로 연결되지 않은 것이다. 재정이 없는 라이베리아에 유엔이 지원을 해줘 군인 2000명과 경찰 4000명을 양성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월급을 줄 예산이 없다. 콩고민주공화국도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내전을 끝내고 정국을 안정시키기 위한 군대를 키웠다. 하지만 역시 그들을 먹여살릴 정부 재정이 없다. 외부지원금은 부패 때문에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다. 결과는 악순환이다. 월급을 받지 못한 군인들은 반군처럼 변질돼 주민들을 착취하고 있다.


'권위주의적 개발' 동아시아 모델엔 신중론

개발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비롯한 권위주의적 개발과정을 모델로 삼으려 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최대표의 접근은 조심스러웠다. “개발독재라는 것은 동아시아의 특수한 과정이었다. 높은 교육열과 이를 뒷받침하는 교육인프라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남의 경험을 ‘이식’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또한 권위주의적 개발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과도기적인 과정이다. 그는 “한국은 권위주의적 개발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데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면서 “이 이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권위주의적 개발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형 발전모델이 아프리카에서 성공하려면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교육을 통한 국민 계몽, 좋은 가버넌스를 위한 인식 전환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ONUCI는 교육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평화유지군의 주요 활동은 무장해제를 점검하고 치안 순찰을 하는 것 뿐 아니라 교육인프라를 확보하는 것이다. 지방 교육시설 확충에 유엔군을 보내자 주민들이 유엔군에 훨씬 호의적으로 변했다.
준비 안된 선거민주주의보다 장기적인 교육·개발을 중시하는 최대표의 생각은 서방 원조공여국들로부터 ‘민주주의를 도외시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최대표는 “이곳 사람들에게 우리의 경험을 말해주면 크게 공감한다. 하지만 돈을 내주는 서방 원조공여국들과는 생각의 격차가 있다. 이 갭을 메워줄 수 있는 것이 동아시아의 경험”이라고 말했다. 


'계몽된 국익' 관점으로 세상을 보라 

그는 한국 같은 나라들이 개발과 원조 사이의 갭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일본은 기회를 놓쳤다. 서양식 모델에 따라 돈만 냈다. 교육과 문화에 투자, 30년 이후를 내다보고 개발을 도와줄 수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최대표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서방 선진국들의 시각과, 개발이나 경제안정·통합을 우선 필요로 하는 후진국의 시각을 동시에 갖는 것은 힘든 일”이라면서 “한국은 원조 수혜국에서 시혜국으로 바뀐, 지구상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에 양쪽을 다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최대표는 한국인들, 특히 젊은이들을 향해 “문화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다르고 역사도 다른 곳에서 자기를 키울 수 있다”면서 “서양만 보지 말고 우리와 다른 세계를 보라”고 주문했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우리가 많이 뒤쳐져 있었기에 선진국들을 쳐다보며 배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덜 발전한 쪽을 보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프리카에 대한 한국의 관심은 극히 부족하다. 평화유지군 7200명과 경찰병력 1200명, 민간 지원인력 등 1만명이 유엔 깃발 아래 ONUCI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지만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네팔 등 남아시아 파견인력과 아프리카 주변국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동아시아 국가에서 온 사람은 최대표 외에 일본인 2명과 한국 군인 2명, 중국인 8명이 전부다. 그나마 중국은 평화유지군 파병 2년만에 전세계에 보낸 병력 규모가 2000명으로 벌써 한국을 넘어섰다.
이라크전 파병 과정에서 ‘석유 많은 나라에 군대를 보내 국익을 챙겨야 한다’는 근시안적인 사고가 판친 것이 사실이다. 최대표는 “우리가 당장 어떤 이익을 얻어내기 위해 파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라”고 주문했다. 그는 “이제 우리는 범 세계적인 문제에 국제사회의 일환으로 대처한다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궁극적인 국익, 미래를 내다보는 그것이 ‘계몽된 국익’이다”라고 강조했다.


아비장/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그들과 함께 섞일때 희망 있어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서 활동하는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단원 이충성씨는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몰려와 ‘니하, 니하’라고 인사한다”고 전했다. ‘니하’는 중국어 인사 ‘니하오’의 르완다식 발음이다. 키갈리에서 진행중인 대규모 공사는 대부분 중국 자본이 투자된 것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최근 가입한 산유국 앙골라와 자원부국인 콩고민주공화국 등에 최근 한국 중소기업과 개인사업가들의 진출이 늘고는 있지만 장기적, 체계적으로 관계를 맺지는 못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남부 우스터에 사는 교민 김종우씨는 “한국의 이미지가 일본은 물론 중국보다도 좋지 않아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비록 장삿속일지언정 중국은 장기적 안목에서 아프리카를 지원하고 투자를 한다. 반면 한국은 ‘아프리카를 알아야 한다’, ‘지구상 마지막 남은 거대한 시장’이라고 요란스레 떠들면서도 실제로는 투자를 하지않는다.” 지난 4월 나이지리아 라고스 코트라 비즈니스센터에서 만난 곽희윤 센터장의 말이다. 그는 “대통령이 아프리카를 순방하고 나면 그걸로 끝”이라면서 “러시아, 브라질, 인도도 아프리카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늘리고 있는데 우리는 정부·기업 차원에서 리스크를 감수하려는 생각도, 장기적으로 지원하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구호기구 피스프렌드의 황학주 대표는 한국인들이 당장의 이익만 바라볼 뿐 ‘공존’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케냐·탄자니아의 마사이족은 멀리까지 땔감을 구하러 다니면서도 가까이 있는 나무 뿌리는 건드리지 않는다. 그들은 야생동물을 다 잡아먹으면 안된다는 것을 오랜 경험과 지혜로 안다. 그래서 마사이족 거주지역은 지금까지 야생동물의 낙원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한국 기업이 지은 나이로비의 호텔에는 야생동물 뷔페식당이 있다”. 황 대표는 그것이 아프리카에 진출한 한국의 현주소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각성된 젊은이들 중에는 한국을 싫어하는 이들이 벌써 생겨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심지어 특정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종교를 퍼뜨리기 위해 그들의 가난한 환경을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서아프리카에서 만난 한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현지에 나와 살고있는 교민들이 현지 문화를 인정치 않고 교류를 거부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고 조심스레 지적했다. 현지인들을 막연하게 범죄자 취급하는가 하면, 집안일을 돕는 현지 주민을 구타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까지 있다는 것이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의 한 교민은 그곳에 산지 20년이 넘었지만 허름한 현지 교통수단을 이용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고 했다. 일부 남아공 교민들은 흑백 분리가 여전히 남아있는 곳에서 ‘백인문화’만을 선호하고 유색인 공동체와 거리를 두곤 한다.
강영수 코트라 요하네스버그 센터장은 “한국인들이 아프리카에 대해 너무 모른다”며 “생활방식, 문화체계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강 센터장은 “2년전 요하네스버그로 발령받았을 때 두려운 마음에 인터넷 검색부터 했는데, 막상 와보니 이곳 나름대로의 생활방식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르완다 ‘지구촌나눔운동’의 김윤정 간사는 “쩍쩍 갈라진 땅, 흙집, 원주민들만을 생각하다가 이 곳에 와서 미약하게나마 도시가 발달한 것을 보고 그동안 아프리카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키갈리·라고스·아비장·요하네스버그|구정은·이청솔 기자 ta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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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입니다.






강남의 위력.

그리고,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건 말건... 우리 집값만 오르면 땡이라는 용산구.... 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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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서울, 한국

우하하하하

투표는~ 좋은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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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것다/남녘은 똥덩어리 둥둥/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북녘은 털 빠진 닭똥구멍 민둥/벗은 산 만장 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쪽/남북간에 오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게딱지 다닥 꼬딱지 다닥 그 위에 불쑥/장충동 약수동 솟을대문 제멋대로 와장창/(중략)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간뗑이 부어 남산만하고 목질기기 동탁배꼽 같은/천하흉포 오적의 소굴이렷다.”


1970년 5월, 잡지 ‘사상계’에 김지하 시인의 시 한편이 발표됐다. 박정희 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담시(譚詩)라는 형식으로 발표돼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오적(五賊)’이라는 시였다. 시인은 당대의 권력을 틀어쥐고 있던 세력들을 ‘목질기기 동탁배꼽같은 천하흉포 오적’으로 묶어 부패와 타락상을 질타했다. 당초 이 시는 김지하의 지인이던 사상계 편집위원 김승균의 청탁에 따라 쓰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당인 신민당이 기관지 ‘민주전선’ 6월1일자에 이 시를 실으면서 ‘오적’은 지식인들 사이의 풍자를 벗어나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민주전선은 이튿날 곧바로 압수됐고, 김지하는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시인은 앞날을 예견한 듯 이미 ‘오적’의 첫머리에서 “시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고 읊은 바 있다. 사상계 대표인 부완혁과 김승균, 민주전선 편집국장 김용성도 함께 갇혔다. 김지하는 보석으로 풀려났고 나중에 선고유예를 받았지만 사상계는 결국 그 해 9월 폐간됐다.

김지하라는 이의 그 뒤 행보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1991년 그는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글을 써 독재정권에 맞선 젊은이들의 분신을 비하하고 비난했다. 김지하에 대해 ‘변절자’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훗날 그는 “내가 붙인 제목을 신문사에서 자극적인 것으로 바꿨다”고 ‘해명’을 했다. 지난해에는 2008년의 촛불시위를 “문화 혁명으로 승화하자”고 주장해 다시 주목을 받았다.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지식인들의 변절 혹은 변신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넘쳐난다. 하지만 변했어야 하는데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다섯 도둑’의 면면은 바뀌었을지언정 권력층의 오만함과 횡포는 근래 더해졌다. 김지하의 필화 이후 40년이 지난 지금도 ‘오적’들은 사람들의 말과 글을 막기 위해 기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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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거리’로 알려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이태원 지구대 뒷골목. 지난 3월 이 곳의 한 아프리카 식당을 찾았다. 한국에서 먹기 힘든 플랜틴(바나나튀김)과 병아리콩 스튜를 팔고, 위성TV로 나이지리아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식당 안에서는 나이지리아인들이 우르르 몰려 브라운관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종업원들도, 손님들도 모두 나이지리아인이다. 아프리카인들이 모이는 곳으로 ‘한국인’이 찾아왔다는 것에 오히려 그들이 호기심을 느끼며 신기해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지난 24일 이 곳을 다시 찾아갔다. 그러나 취재진임을 밝히자 종업원들과 손님들, 길 밖에 모여 떠들고 있던 아프리카인들의 태도가 갑자기 싸늘하게 바뀌었다. 메뉴를 가져다주었던 여성 종업원은 부엌 안으로 들어가버렸고,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젊은 남성도 “직원이 아니다”라면서 취재진을 몰아내려했다. 어렵사리 한국인 식당 주인과 전화 연결이 되었지만 주인은 “아무 것도 말해줄 수 없다, 우리 식당에서는 아무도 만날 수 없다”는 말만 했다.

식당 윗골목에 있는 레게 미용실. 아프리카인들은 곱슬머리를 그대로 두면 피부 속으로 파고들기 때문에 짧게 밀거나 펴서 고정을 해야한다. 그들을 위해 서울 안에도 그들만의 미용실이 생겼다. 미용실 안에서는 아프리카인 여성 미용사가 손님들의 머리를 말아주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인이 들어가자 겁을 먹은 듯했다. 그 곳에 있던 남성은 “보스(사장)에게 물어라,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면서 입을 닫았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이태원 지구대 뒷골목의 ‘아프리카 거리’.
이곳에는 아프리카인들이 자주 찾는 식당과 미용실 등이 모여 있다. |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한달여 전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농촌을 찾았을 때, 현지 주민들은 한국에서 온 기자를 붙들고 “우리 딸이 한국에 가서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우리도 한국으로 가고 싶은데 한국에 들어가는 비자를 받을 수 있느냐”고들 물었다. 그들에게 한국은 ‘가난에서 벗어난 꿈의 나라’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만난 얼마 안 되는 아프리카인들에게는 오히려 한국인들이 ‘도망치고 피해야 할 대상’으로 비치는 듯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이 아프리카 국가들의 미래의 모델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실제로는 그들에게 닫혀있는 나라, 결코 문을 열어주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한달 동안 행정안전부가 전국에 있는 외국인 거주자들의 실태를 조사해 ‘2009년 지방자치단체 외국인주민 현황조사 결과’라는 보고서를 냈다. 불법·합법 체류자를 가리지 않고 각 지자체 안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과 귀화자, 외국인 자녀 숫자를 조사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내 외국인 수는 총 110만6884명이었다. 그 중 절반이 중국인(조선족 포함)이었고, 그 나머지도 아시아인이 대부분이었다. 아프리카인의 숫자는 따로 나와있지 않았다.
한 금융회사가 국내 외국인 중 고소득 전문인력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만든 외국인 현황 자료에는 나이지리아인 794명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인 225명이 통계에 잡혔다. 그러나 이태원에서 아프리카 식당을 운영하면서 무역회사 일도 겸하고 있는 나이지리아 출신 사업가에게 “나이지리아인이 얼마나 들어와있느냐”고 물었더니 “2000명,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00명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계청이 올 1월 조사한 ‘장단기 체류 외국인 현황’에 따르면 국내 체류 중인 아프리카인은 7191명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주민 숫자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불법체류자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아프리카 국가 출신들에게는 단순노동비자(E-9)를 발급해주지 않는다.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관계자는 “한국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노동력을 받아들이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에 들어와 일하고 있는 아프리카인은 거의 다 불법체류자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예외가 있다면 남아공 출신의 백인 영어강사들이다. 남아공은 1994년 흑인정권이 출범한 뒤 흑인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흑인경제력육성(BEE)’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과거 기득권을 누리던 백인들은 일자리를 잃고 우르르 유럽, 아시아 등지로 떠났다. 영어교육에 목숨을 걸다시피하는 한국도 그들의 ‘시장’ 중 하나였다. 한국 내 남아공인들이 인터넷 사이트 ‘페이스북’에 만든 클럽에는 800명이 가입했다. 그런데 한국은 이른바 ‘영어 네이티브 국가’ 출신들을 영어강사로 받아들이면서도 남아공을 제외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다른 ‘영어권 국가’ 출신들은 받지 않는다. 이 또한 ‘한국식 인종차별’의 한 모습이다.

한국에 와있는 남아공 출신들은 아프리카인으로서 한국을 어떻게 느낄까. 2006년부터 서울에 살면서 한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H씨가 지난해 겪은 일이다. 국내의 한 유명 일간지에서 H씨가 일하던 대학의 여름방학 영어교육프로그램을 취재하러 학교를 방문했다. H씨의 수업을 참관하고 인터뷰를 해 갔는데, 며칠 뒤 발행된 이 신문 기사에는 “금발에 푸른 눈의 미국인 강사가 수업을 하고 있다”고 쓰여있었다. H씨는 갈색 머리의 남아공 여성이다. 그는 “남아공 강사에게 대학생들이 영어를 배운다는 것을 한국의 언론은 받아들일 수 없었나보다”면서 씁쓸해했다. 검은 피부의 아프리카인들이 받는 차별은 그보다 훨씬 클 것이 뻔하다.

구호기구 ‘피스프렌드’의 황학주 대표는 1992년부터 동아프리카 케냐, 탄자니아에서 구호활동을 해왔다. 그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인들이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한다. “아프리카는 검고, 비가 안 오고, 못 살고, 그래서 열등하다는 시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그 사람들에겐 그들 나름의 완전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보다 못한 것도 있고 뛰어난 것도 있다는 점을 보지 않는다.”
심지어 아프리카를 이해하고 도우려 하는 사람들조차 편견에 사로잡혀있는 경우가 많다고 황 대표는 지적했다. 우리가 가진 많은 것들을 그들과 나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돕는다’고들 여긴다는 것이다. “나는 역설적이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이 많이 가 있는 나라가 좋은 나라라고 본다. 한국에 아프리카인들이 적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지구상의 가난한 이들이 가고파 하는 ‘좋은 나라’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한국은 주요20개국(G20)에 끼었다고 자랑하지 말고 큰 그늘을 가진 큰 나무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적은 수의 아프리카인들이라도 이태원 같은 곳에 한데 모여서 어울려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 측면에서라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인들과 거리를 두고, 번번이 눈칫밥을 먹어야 하지만 그래도 이태원에는 아프리카인들이 모이는 교회와 식당과 가게와 미용실이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 거리가 있는 이태원1동과 한남동, 보광동 주변조차도 ‘뉴타운’ 건립계획에 따라 2017년까지는 모두 허물어질 예정이다. 


  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르완다 <암소은행> 방문기


“우리는 보통 아프리카가 전쟁 때문에 가난해졌다고 생각하는데, 가난 때문에 전쟁이 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난과 전쟁의 악순환을 끊어야 해요.”
지난 4월말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서 만난 비정부기구(NGO) 지구촌나눔운동의 지성혜 간사는 ‘암소은행’ 사업의 필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만성적인 빈곤을 끝내지 않으면 국가·종족 간의 분쟁이 생겨 생활기반과 생산시설이 파괴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지구촌나눔운동은 지난해 르완다에서 암소은행 사업을 시작했다. 키갈리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인 ‘최빈곤 지역’ 냐루바카 섹터 주민들에게 암소 구입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르완다 정부의 ‘집집마다 암소 한 마리 키우기 캠페인’과 뜻이 맞아서 사업은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르완다 정부는 고질적 영양실조를 몰아내려면 우유와 고기를 얻을 수 있는 암소를 보급해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주민들에게 암소는 ‘그림의 떡’이었다. 우량 암소 한 마리의 분양가는 한화 약 80만원이지만 이 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00달러에 불과하다.
몽골, 베트남에서 이미 가축은행 사업으로 성과를 거둔 지구촌나눔운동은 르완다 정부와 접촉해 암소은행 사업을 구체화했다. 영양실조 추방 외에 ‘소득증대’라는 목표가 추가됐다. 하루 평균 10리터 정도 생산되는 우유가 중요한 소득원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기금 마련을 위해 삼성의 후원도 받았다.
지난해 12월에는 첫 수혜자 12명을 선정해 암소 구입비를 전달했다. 수혜자는 암소를 키울 수 있는 능력과 대출금을 상환하겠다는 자립 의지를 평가해 선정했다. 돈만 지원해주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축산 세미나와 암소 건강상태 관리 등 후속 서비스가 계속 이어진다. 지구촌나눔운동은 암소은행 사업을 르완다 곳곳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아프리카를 돕는 한국인들의 손길이 더디지만 늘어가고 있다. NGO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해 말리와 코트디부아르 등 아프리카에 총 17억1500여만원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유·무상 원조를 합한 우리 정부의 아프리카 지원 규모는 지난해 1억100만달러를 기록했다. 또 해외로 나가는 모든 여행객이 최빈 개도국을 돕는 데 동참하게 되는 ‘국제빈곤퇴치기여금’도 도입됐다. 국제선 항공권 1장을 구입할 때마다 1000원씩 적립된다.
그러나 현장에서 일하는 NGO 활동가들은 “아직 멀었다”고 입을 모은다. 지성혜 간사는 “우리 인식의 틀이 한반도에 국한돼야 할 이유가 없다”며 “시민의식에 기반해 아프리카인들과 나눌 때 우리도 그 속에서 같이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키갈리|이청솔 기자 ta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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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는가?

1. 머리말

발행부수 많은 일간지만 읽고 지상파 방송만 보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스스로 입에 재갈을 물렸는지 아니면 암묵적 담합이 있었는지 몰라도, 웬일인지 4대강사업에 대해서는 언제나 굳게 입을 닫고 있기때문이다. 세계적 정론지 뉴욕타임즈는 “보도하기에 적합한 모든 뉴스를 보도한다.”(All the News That's Fit to Print.)라는 모토를 내걸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보수 언론은 언제부터인가 “내가 원하는 뉴스만을 보도한다.”(Only the News That I Want to Print.)라는 모토를 채택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눈을 돌려 좀 더 균형 있는 보도에 접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그들에 따르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4대강사업에 반대를 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극소수의 정치적인 지식인, 종교인만이 반대를 하고 있을 뿐, 말 없는 다수는 4대강사업에 대해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정부가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대화를 제의해도 이들은 일방적으로 그 제의를 거부하고 있다. 보수언론은 지금 우리에게 이처럼 자기 마음대로 왜곡한 진실을 믿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 언론에 세뇌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세상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 뻔하다. 그들은 대통령과 정부가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사람을 향해 날이 선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이유가 무언지 궁금해 한다. 반대하는 소수의 지식인, 종교인을 그냥 무시해 버리면 될 텐데 구태여 그들에게 날을 세우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무슨 일이든 반대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그렇게 일일이 신경을 쓸 필요가 있을까? 아마 이런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다.
아무리 진실을 가리려 해도 언제든 밝혀지게 마련이다. 보수 언론이 개별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왜곡 보도를 한다 해도 그림 전체를 짜맞추면 진실이 반드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통령과 정부의 공격에 관한 기사를 보고 사람들은 반대하는 세력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보수 언론이 그것을 보도한 의도는 4대강사업을 띄워 주려는 데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것과 관련된 진실을 만천하에 알린 셈이 된다.
보수 언론이 아무리 가리려 해도 가릴 수 없는 진실은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세력이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 숱한 문제들로 운동 집단이 형성되고 해체되었지만, 지금까지 4대강사업 반대 그룹처럼 규모가 큰 집단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회복을 목 타게 갈구하고 있던 시절에도 지금처럼 우리나라 4대 종교집단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어떤 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몇 천 명이나 되는 대학교수가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낸 경우도 전혀 없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사상 초유의 대규모 사회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취미 삼아 한 번 모이자는 식으로 만들어진 집단이 결코 아니다. 우리 국토 전체의 안위가 달려 있는 심각한 문제를 팔짱만 끼고 바라볼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뭉쳐진 집단이다. 따라서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갈 수는 없게끔 되어
있다. 이들에게 4대강사업을 계속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납득시키지 못하는 한 반대 의사를 스스로 철회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과 정부는 이들이 왜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홍보 부족으로 인해 실정을 잘 모르고 반대한다는 말로 받아치고 있다. 소통이 없는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이 문제라고 지적하는데, 듣지는 않고 내 말 더 들어보라고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목적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고 역공을 취하기도 한다. 상대방의 말은 단 한 마디도 들으려 하지 않는 독선과 아집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4대강사업 반대 그룹의 일원으로서, 나는 실정을 몰라서 반대하고 있다는 말에 심한 모욕감을 느낀다. 이 사업에 경제적 측면 못지않게 환경공학적, 수문학적, 생태학적 측면이 중요성을 갖는 것은 사실이며, 내가 그 방면의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조건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동안 부지런히 4대강사업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해 왔으며, 나름대로의 판단을 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지식을 축적했다.
내가 신뢰하는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4대강사업은 환경공학적, 수문학적, 생태학적 측면에서 전혀 쓸모없을 뿐 아니라 매우 큰 위험성을 수반하는 사업이다. 나는 그들이 엄밀한 과학적 근거 위에서 그와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이에 비해 지금까지 정부가 4대강사업이 필요하다는 근거로 내세운 것들을 보면 믿음이 전혀 가지 않는 엉터리 논리뿐이다. 게다가 내가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거의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타당성을 결여하고 있는 사업이다.

정치적 목적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말은 한층 더 모욕적으로 들린다. 그 동안 나에게 배운 수많은 제자들이 증언해 주겠지만, 나는 일생을 정치와 담을 쌓고 살아온 사람이다. 비록 능력과 노력 부족으로 인해 훌륭한 업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고 학자로서의 한 길을 걸어온 데에 대해서는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앞으로도 정치판에 발을 들여 놓을 의사가 추호도 없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나에게 정치적 목적 운운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들린다. 다른 교수, 신부, 목사, 스님, 교무들 어느 분에게도 그런 말을 입에 담기라도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내 양심을 몽땅 걸고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경제학자로서의 양심에 비추어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행동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 동안 나는 이런 저런 각도에서 왜 4대강사업을 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 많을 글을 써 왔다. 실정을 몰라서 반대한다는, 정치적 목적에서 반대한다는 어처구니없는 공격에 반박하기 위해 내가 왜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밝혀 보려고 한다.

2. 4대강사업은 시대착오적인 ‘강 죽이기’다

한반도대운하사업 얘기가 나왔을 때 사람들이 가장 주목했던 것은 그 사업의 시대착오적 성격이었다. 아니, 비행기로 화물을 나르는 세상인데 강 위에 느림보 화물선을 띄워 물류혁명을 일으키겠다고? 한 마디로 한반도를 길게 관통하는 운하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해외토픽에나 나올 시대착오적 발상이었다. 대선 때 내건 공약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겠다고 다짐했지만 국민의 반응은 냉담하기 짝이 없었다. 취임 반년도 안 되어 그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의 필연이었다.
한반도대운하 계획을 포기하겠다는 발표가 나온 지 몇 달 후 뜬금없이 등장한 4대강사업은 온통 초록색 분칠을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녹색뉴딜’이라는 가당치 않은 구호와 함께 나타났기 때문에 시대를 앞서가는 성격의 계획이라고 오해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한반도대운하사업을 4대강사업으로 ‘이름 세탁’을 했다고 해서 공사의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이름과 명분이 바뀌었어도 시대착오적이며 반생태적인 사업의 본질은 털끝 하나 바뀌지 않았다. 토목공사의 기본 내용이 한반도대운하의 경우와 똑같이 대대적인 준설과 여러 개의 댐(보) 쌓기인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물을 잘 흐르게 만든다고 물길을 똑바로 만들고, 물을 가둬 둔다는 목적으로 높은 댐 쌓는 것은 치수의 낡은 패러다임이다. 홍수 방지라는 명목으로 높은 시멘트 제방을 쌓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도 이미 오래 전에 밝혀진 사실이다. 강에 대한 인간의 간섭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자연의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 역시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다. 주지하다시피 지금 선진국에서는 강 주변에 만들어 놓은 인공구조물을 철거하는 것이 일종의 트렌드가 되어 있다.

4대강사업이 갖는 시대착오성은 외국 전문가에 의해서도 정확하게 지적된 바 있다. 세계적 과학저널인 사이언스(Science)지는 2010년 3월 26일 "Restoration or Devastation"이란 제목하에서 4대강사업에 관한 특집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서 지형학의 권위자인 UC버클리대학의 컨돌프(G. Mathias Kondolf)교수는 이 사업의 발상이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조금 길지만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한 문단을 그대로 인용해 보기로 한다.

더욱 근본적으로 어떤 학자들은 그 계획[4대강사업]이 하천 관리에 관한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믿는다. “4대강사업은 선진국에서 하천 관리방식이 진화되어 온 길에서 벗어나 있다.”라고 UC 버클리대학의 지형학자 컨돌프 교수는 말한다. 그는 유럽과 미국에서 개발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이제는 강들에 굽이쳐 흐르고 넘쳐흐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데 역점을 둔다고 말한다. 이 접근방식이 생태적으로 더욱 건전할 뿐 아니라, 준설이나 제방축조로 인한 하천 관리작업을 필요 없게 만든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사업 담당자 홍씨는 이에 대해 한국의 강에 대해 자신들이 연구하고 사례 분석을 한 결과에 따르면 댐과 준설이 최선의 대안이라고 대꾸했다.

More fundamentally, some academics believe the plan reflected outdated thinking about watershed management. "The Four Rivers Project is out of step with the way river management is evolving in the developed world."
says G. Mathias Kondolf, a geomorphologist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He says planners in Europe and the United States now aim to give rivers room to meander and flood. This approach is more ecologically sound, Kondolf says, and eliminates river maintenance imposed by dredging and embankments. Project official Hong counters that based on their research and case studies of rivers in South Korea, dams and dredging is the best solution.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말하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으려 할 테지만,외국의 전문가가 말했으니 믿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는 댐 축조와 준설이 현재 선진국에서 하천을 관리하는 방식과 정반대의 길을 가는 시대에 뒤떨어진 접근방식이라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입만 열면 선진국을 본받자고 부르짖는 사람들이 왜 강에 대해서만은 선진국이 가는 길과 정반대의 길을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자기 편할 때만 선진국의 예를 인용하는 그들의 버릇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입맛이 영 씁쓸하다.
그리고 이 글에 나온 홍씨라는 사람이 누구를 뜻하는지 모르지만, 대답 치고는 무척 궁색하다는 느낌이다. 도대체 몇 달 동안의 짧은 기간 동안 우리 강에 대해 무슨 심도 있는 연구를 하고 사례연구를 할 수 있었을까? 별 근거 없이 궁색함으로 모면하기 위해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 너무나 뻔하다. 최선의 대안이란 것은 몇 년의 기간에 걸쳐 수많은 모형실험을 거치고도 찾아내기 힘든 법이다. 우리가 지금 듣고 있는 4대강사업의 찬성논리가 대체로 이 정도로 엉성하고 뜬금없는 수준을 넘지 못한다.
강물이 자유롭게 굽이쳐 흐르고 넘쳐흐르도록 놓아두는 하천 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명확한 과학적 근거에 기초하고 있다. 그 동안의 연구를 통해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이는 강바닥의 모래와 자갈이 엄청난 수질 정화의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엄청난 양의 오염물질이 강으로 흘러들어도 강물이 그런대로 맑음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는 그것을 모두 준설해 강을 깨끗하게 만든다지만, 사실은 이 자연 정수기를 철저하게 망가뜨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강의 자정기능을 말살시켜 버리고 수질 개선한답시고 엄청난 혈세를 쏟아 부으려는 모습이 “병 주고 약 준다.“는 속담을 생각나게 만든다.
또한 홍수 예방의 측면에서 볼 때도 자연스러운 강의 흐름에 섣불리 손대는 것은 위험한 장난이다. 그 동안 수많은 홍수를 겪으면서 자연은 나름대로의 방어장치를 만들어 놓았다. 적절한 장소 몇 곳을 둑으로 보완하기만 하면 자연 그대로의 강은 훌륭한 홍수방지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가 경험한 대부분의 홍수 피해가 4대강사업의 공사 대상이 아닌 상류나 지류에서 일어났으며, 그나마 산림 파괴나 난개발로 인해 발생한 ‘인재’(人災)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무모한 4대강의 직강화가 어떤 초대형 인재를 초래하게 될지는 역사가 증언해 줄 것으로 믿는다.

한 마디로 말해 4대강사업은 시대착오적인 ‘강 죽이기’에 불과하다. 자연 그대로의 강을 살려 둔 채 부분적인 손질을 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임에도 불구하고 댐 축조와 준설이라는 낡은 교리를 적용해 우리의 강들을 몽땅 죽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이런 시대착오적인 토목공사를 결코 용납할 수 없다.

3. 생태계 교란은 위험한 불장난이다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이 공사의 본질이 ‘4대강 죽이기’라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다. 강은 그 자체의 생명을 갖고 오랜 기간 동안 진화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강변의 하찮게 보이는 풀숲, 모래톱, 웅덩이라 할지라도 수억 년을 끊임없이 흐른 물길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생명체라고 볼 수 있다. 그것들이 수많은 홍수와 가뭄을 거쳐 갖게 된 오늘날의 모습은 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나타내 주고 있다.
이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보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오직 심미적인 측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아름답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자연에 섣불리 손대지 말아야 할 더 중요하고 더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원래 상태 그대로 잘 보존된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가장 이롭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실질적인 이득의 관점에서 볼 때도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수질 정화나 홍수 예방의 측면에서도 (약간의 보완을 가한) 자연 그대로의 강이 가장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가 무슨 말을 하든 4대강사업과 관련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국토 전체의 생태계가 몽땅 뒤집혀질 정도로 심각한 교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정부 자신도 현재의 상태에 심각한 교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진실은 감히 부정하지 못하리라고 믿는다. 청계천과 양재천의 작은 성공에 들떠있는 정부는 생태계 교란의 위험성을 전혀 모른 채 위험한 도박을 벌이고 있다. 썩어 있던 작은 물줄기들을 깨끗하게 만드는 일과 아무 문제가 없던 4대강을 뒤집어엎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생태계에 대한 무지 때문에 4대강을 청계천과 양재천처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불장난인지 모를 뿐이다.
최근 섬진강에서만 사는 갈겨니가 난데없이 청계천에서 발견되어 우리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청계천 관리당국이 풀어 넣었는지의 여부는 확인된 바 없지만, 하여튼 청계천의 생태환경이 엉망으로 망가졌음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말할 수 있다. 깨끗한 물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서식하는 물고기의 종류가 크게 늘었다는 선전도 거짓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지금 정부가 온 국토의 강들을 청계천의 꼴로 만들어 놓으려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청계천의 예를 보면 4대강사업이 모두 끝난 후 강 주변의 생태계가 더욱 풍성해지리라는 정부의 호언장담이 어디서 나오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여기저기서 물고기 잡아와 4대강 아무 곳에나 풀어 놓겠다는 심산인 것 같은데, 한강에만 사는 물고기가 영산강에서 발견되는 일같은 것을 자주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 놓고는 강물이 깨끗해져서 서식 어종이 더욱 풍부해졌다고 거짓 홍보를 해댈 것이 틀림없다. 우리나라 큰 강들이 고유의 생태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초대형 어항이나 수족관으로 변화한다는 뜻인데, 그렇게 되면 생물학 교과서를 바꿔 써야 하는 일이 생길지 모른다. 이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모르는 무신경의 소유자들이 지금 우리나라를 다스리고 있다.

생태계의 교란은 그 귀결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특히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다. 전국의 4대강을 온통 뒤집어엎은 후 우리 국토 전반에 걸쳐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자신 있게 예측하지 못한다. 기후가 어떻게 변화할지, 지하수 수위가 어떻게 변화할지, 혹은 어떤 동식물의 종이 사라지고 어떤 종이 새로 나타날지 전혀 모르는 상태다. 최근의 언론 보도를 보면 새만금사업의 여파로 인근 변산해수욕장의 모래가 몇 미터 깊이로 파여 나가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새만금사업이 시작되기 전은 물론 공사가 진행되고 있던 과정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전 국토에 걸쳐 이런 예기치 못한 결과들이 속속 나타난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게 될지 상상해 보기 바란다.
4대강사업으로 전 국토의 생태계가 엉망으로 망가지면 원상회복을 하고 싶어도 하기가 어려울 테니 걱정이 더욱 크다. 뿌리째 뽑혀나간 나무들과 풀이 다시 무성해지려면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강바닥의 모래를 몽땅 긁어내는 바람에 산란장을 잃은 물고기들이 다시 떼지어 다닐 만큼 그 수가 늘어나려면 더 긴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더군다나 불도저와 포클레인으로 뭉개진 모래톱과 습지는 영영 되살아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목전의 이득에 눈이 어두워 이런 위험한 일을 저지른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4대강사업의 반(反)생태성은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수만, 수억 년을 평화스럽게 살아오던 뭇 생명들을 죽음의 구렁이로 내몰고 있다. 요즈음 인터넷상에서 나도는 사진들을 보면 4대강사업이 우리 국토를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뜨렸으며,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죄 없는 생명들이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그들도 우리 인간과 똑같은 생명의 권리를 갖고 이 땅에서 터 잡고 살아가는데, 도대체 우리가 그들을 떼죽음으로 몰아갈 그 어떤 권리를 갖고 있다는 말인가? 한 인간으로서의 내 양심은 이 거대한 ‘죽음의 사업’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4. 정당한 절차가 무시된 반민주적 사업이다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지만, 지금 4대강사업과 관련해 우리 민주주의는 중대한 시련에 직면해 있다. 이 사업이 그대로 강행되느냐 아니면 중단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적 원칙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고 그대로 지켜질 수도 있다. 국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개인적인 신념 하나만에 의해 강행되고 있는 4대강사업은 명백한 반민주성을 갖고 있다. 이것을 막지 못한다면 어렵게 얻은 이 땅의 민주주의는 또 다시 시궁창에 내던져지는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
잘 알다시피 4대강사업은 불과 몇 달 동안의 밀실작업의 결과로 급조된 토목공사다. 무리하게 추진되다 좌절된 한반도대운하사업과 달리, 4대강사업은 대선공약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그 정체를 드러냈다. 그리고는 이렇다 할 공론과정도 거치지 않고 집권여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서둘러 통과시킴으로써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그런 식으로 얼렁뚱땅 일을 해치워 버렸기 때문에, 그 사업을 한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삽질이 시작되고 전국의 강은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정부는 모든 절차를 지켜 공사에 착수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형식상의 절차를 지켰을지 몰라도, 상식의 선에서 보면 결코 정당한 절차가 지켜졌다고 말할 수 없다. 예컨대 불과 몇달 동안의 짧은 기간 동안에 그와 같은 초대형 토목공사의 환경영향 평가를 끝마쳤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단순한 토목사업도 몇 달 안에 끝내기 힘든 마당에, 전국에 걸친 생태계에 거의 지각변동에 가까운 영향을 줄 사업의 평가를 몇 달만에 끝마쳤다면 보나마나 부실평가였음에 틀림없다.
22조원이나 드는 초대형 토목사업인데 거의 모든 비용지출이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정부는 “국가재정법 시행령 13조에 따라 보 설치, 하천 준설 등의 사업은 재해 예방사업이기 때문에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변명한다. 궁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인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편의주의적 행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형식적으로 법 규정만 지켰다고 절차의 정당성이 보장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렇다 할 여론 수렴의 과정 없이 대통령의 지시 하나만으로 사업계획을 짜기 시작했다는 것부터가 민주주의의 원칙에 어긋난다. 모두가 잘 기억하고 있겠지만, 4대강사업이란 말이 처음 나왔을 때 제대로 된 토론회 하나 열려 본 적이 없다. 모든 보수언론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업 그 자체에 대한 정보조차 갖고 있지 못한 상태였다. 국민을 이렇게 무지의 상태에 몰아넣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추진된 사업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4대강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구도에서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이 철저하게 파괴되어 있다. 입법부와 사법부가 견제를 함으로써 행정부의 독주를 막고 건전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원칙은 거수기 역할에 충실하기로 결심한 거대여당이 국회를 장악함으로 인해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사법부가 간간히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그때마다 정부와 보수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비틀거리기 일쑤다. 그나마 사법부의 견제도 아주 사소한 사안에 관해서만 행해지고 있을 뿐, 국가운영의 기본틀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사실 견제와 균형은 행정부 안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각 부처의 성격에 따라 이와 같은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져야 합리적인 정책 수행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4대강사업의 주무부서가 국토해양부라 해서 다른 부서들이 일체 관심을 끊고 방관만 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이 사업에서 나오는 파장이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바로 자기 부서의 관심분야라 한다면 제3의 부서라도 당연히 그 사업에 간여해 견제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환경부의 입장에서 볼 때 4대강사업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이에 대한 경보를 발령해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환경부의 존재이유라는 사실에 한 점 의문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4대강사업과 관련해 환경부는 그 존재이유를 망각하고 거수기로 전락하는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말았다. 환경에 대한 위험요인을 찾아내고 대비책을 촉구해야 할 환경부가 오히려 만세를 불러주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본다 해도 이런 사례는 찾기 힘들 텐데, 내가 내는 아까운 세금이 왜 이런 부서의 유지를 위해 쓰여야 하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나아가 민주주의적 원칙이 제대로 구현되려면 제4부라고 할 수 있는 언론이 제 구실을 해줘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표적 일간지 3개사와 지상파 3개 방송국의 보도 태도를 보면 한숨만 나올 따름이다. 내가 이들에게 4대강사업의 반대투쟁에 앞서 주기를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도 현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데 그런 정도로 터무니없는 기대를 할 리가 없다. 내가 바라는 것은 최소한 객관적인 사실만이라도 정확하게 보도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중요한 사건조차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여론을 왜곡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지금까지 가톨릭 교단이 주교회의라는 공식기구의 결의를 통해 사회적 현안문제에 대해 목소리 낸 것을 본 적이 없다. 5천 여 명이나 되는 가톨릭 성직자들이 서명해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밝힌 것을 본 적도 없다. 아마 조선시대 기독교가 전파된 이래 처음 보는 중대한 사건이 아닌가 한다. 뿐만 아니라 2천 명이 넘는 선방의 수도승들이 사회적 이슈에 대해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사례도 처음 보는 일이다. 산사에서 오직 수행에 정진하고 있어야 할 수도승이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는 것 그 자체도 신기한 일인데, 그 숫자가 2천여 명이나 된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도 보수 언론은 이 중요한 사건들을 거의 모두 무시해 버렸다. 단 한 줄의 기사도 싣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설사 기사를 싣는다 해도 시시한 상해사건보다도 더 작은 비중으로 다루기 일쑤다. 그 결과 대부분의 국민은 누가 무슨 이유로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이렇게 언론까지 적극적인 협조자로 전락해 버린 상황에서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견제할 방법은 하나도 남지 않는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 원칙이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현재 국민의 절반 이상이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은 정부 자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는 주요 종교 지도자들이 거의 모두 반대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4대강사업의 강행을 고집하는 것은 국민의 의견을 듣지 않고 독선적으로 나라를 이끌어가겠다는 뜻이다.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사업을 강행하려 하는 정부 때문에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나는 이 비민주적인 4대강사업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5. 아무런 준비도 없는 졸속사업이다

4대강사업에 대한 정부의 홍보를 보면 왜 이 사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가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다. 불과 몇 달만의 밀실작업에서 태동한 사업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근거가 있을 리 만무하다. 정부가 이 사업을 해야 하는 당위성의 주요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수질 정화, 홍수 예방, 용수 확보 세 가지다. 그런데 왜 그런 목적의 사업이 필요한지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수치는 하나도 없고 그저 막연한 수사(rhetoric)로 채워져 있을 뿐이다. 물고기와 새들이 죽어가고 있으니 빨리 강을 살려야 한다, 물 부족에 대비하기 위해 담을 그릇을 크게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허황한 수사 이상의 것을 발견하기 힘들다.
수질 정화를 위해 4대강사업이 필요하다는 점을 납득시키려면 현재 4대강의 수질오염이 어느 정도이며,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려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장기간에 걸쳐 4대강의 각 지점에서 정확한 오염도를 측정하고, 주요 오염원은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이런 정확한 데이터에 기초해 여러 가지 대책의 효율성을 비교, 평가하는 작업이 따라야 한다. 이런 포괄적인 분석작업의 결과 4대강사업 같은 대규모 준설 이외의 적절한 대안은 없다는 결론이 나와야 비로소 이 사업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내가 신뢰하는 우리 대학의 환경공학 전문가에 따르면, 지금처럼 4대강을 대대적으로 파헤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한다. 강 밑바닥의 흙이 오염되어 있는 사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나, 지극히 일부에 국한된 일이며 전역에 걸친 대규모 준설은 전혀 필요 없다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이 주장을 반박하고 싶다면 4대강의 전 지점에서 채취한 토양 샘플이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면 된다. 이런 간단한 반박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정부가 아무런 객관적 증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좋은 증거다. 지금의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영산강과 낙동강의 물이 썩었다.” 혹은 “겨울 갈수기가 되면 오염도가 특히 높아진다.” 정도의 막연한 말을 늘어놓는 일뿐이다.
또한 물 부족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강물을 가둬 놓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논리적 근거도 무척 희박하다. 정부는 물 부족 사태가 올 것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할 뿐, 언제 어느 정도의 불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은 전혀 내놓지 못한다. 물 부족의 가능성을 점치는 유일한 근거는 외국의 한 사설 연구단체가 내놓은 신빙성 없는 보고서인 것 같다. 강수량을 인구로 나눠 얻은 이 조잡한 분석 결과는 많은 전문가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 이런 어설픈 분석 결과에 기초해 불 부족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것은 한 편의 코미디라고 말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우리가 가까운 장래에 물 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 앞으로 물에 대한 수요가 대폭 증가하거나 공급이 대폭 줄어든다고 예상할 하등의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물에 대한 수요는 우리의 생활방식 그리고 산업구조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만약 우리 생활방식이 어떤 이유로 갑자기 물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바뀐다면 물 부족 사태가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웬만한 집에서 모두 뒷마당에 수영장을 만들고, 매일 물을 갈아 넣는 일이 생긴다면 물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가까운 장래에 정말로 그런 일들이 발생할까? 구태여 대답을 기다릴 필요조차 없는 의문이다.

산업구조의 측면에서 볼 때도 물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해야 할 이유를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서비스업에 비해 농업과 제조업이 물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사용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만약 서비스업의 비중이 더 작아지고 농업과 제조업의 비중이 더 커진다면 물 부족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경제의 산업구조는 그 정반대의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경제규모가 전반적으로 커짐에 따라 물에 대한 수요가 커질 수 있으나, 이 수요 증가폭이 산업구조 재편에 따른 수요 감소폭보다 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산업용으로 소비되는 물의 측면에서도 물 부족 현상을 야기할 이렇다 할 요인이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물의 공급이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할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지구온난화와 더불어 강수 패턴이 불규칙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부근의 강수량이 급격히 줄어든다는 장기 전망이 나와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사막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신빙성 있는 전망이 나와 있다면, 용수 확보를 위해 4대강사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약간의 정당성을 인정해줄 수 있다. 내가 모르는 그런 전망이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나에게 가르쳐 주기 바란다.
나아가 홍수 예방을 위해 4대강사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구체적 근거가 제시된 것을 본 적도 없다. 홍수 예방을 위해 그 사업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받으려면 무엇보다 우선 그동안 일어난 홍수와 관련된 통계를 제시하고 4대강을 어떤 방식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날의 홍수 관련 통계를 보면 지금 토목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구간에서 일어난 사례가 지극히 드물다. 진정으로 홍수를 예방하기 위한 사업을 한다면 상류와 지류에 토목공사가 집중되어야 한다. 이는 그들이 내걸고 있는 홍수예방이란 목표가 아무 의미도 없는 하나의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4대강사업은 이렇다 할 준비도 없이 대통령의 지시 하나로 인해 몇 달의 짧은 기간에 급조된 초대형 토목공사다. 4개의 강에 대해 판박이와도 같이 똑같은 공사를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준비가 부실한지를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만약 철저한 사전조사를 통해 수질 정화, 용수 확보, 홍수 예방의 대책을 세운 것이라면, 토목공사의 내용이 강마다 달라져야 할 뿐 아니라 똑같은 강이라도 지점마다 달라져야 한다.
예를 들어 영산강은 수질 정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인 한편, 금강의 경우에는 홍수 예방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영산강과 금강에서 이루어지는 토목공사의 내용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똑같은 영산강이라도 이곳에서는 습지를 정리하는 데 주력하는 반면, 다른 곳에서는 오염된 물이 흘러들어오는 것은 막는 데 주력한다는 식으로 지점마다 공사의 주안점이 달라져야 마땅한 일이다.
수질 정화, 용수 확보, 홍수 예방이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정부가 4대강에 대해 한결같이 깊숙하게 준설하고 높은 댐을 쌓는 방식으로 이 과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아무런 심사숙고도 없이 즉흥적으로 대규모 토목공사를 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4대강의 모든 지점에서 판박이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면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마구잡이로 댐을 쌓고 강바닥을 긁어내고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토목공사의 과정에서 혹은 모두 끝나고 난 다음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더군다나 4대강사업처럼 사상 유례없는 대형 토목공사의 경우에는 돌발 상황의 발생 가능성이 특별히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예상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4대강사업본부가 과연 이런 대응책을 준비해 놓고 삽을 뜨기 시작했을까? 나는 절대로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만약 그런 돌발 상황이 발생한다면 온 국민이 그것의 피해를 몽땅 뒤집어써야 한다. 정부는 지금 준비 안 된 졸속공사로 국민의 안위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는 셈이다.

6. 경제적으로 전혀 가치가 없는 사업이다

한반도대운하사업은 조잡하지만 그나마 비용-편익분석 결과를 내놓아서 경제적 타당성을 평가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다. 그러나 4대강사업은 아예 비용-편익분석의 결과를 제시하지도 않고 있어 경제적 타당성의 평가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와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에 기초적인 비용-편익분석도 실시되지 않았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지난번에 쓴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나를 믿느냐? 그러면 따라 오라.”는 식으로 사업을 밀어붙이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4대강사업과 관련된 비용-편익분석 결과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정부의 의도적 선택임이 분명하지만, 나로서는 그 배경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한반도대운하가 논의되고 있을 때 편익이 비용의 두 배 이상이라는 분석 결과가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던 것을 기억하고 이번에는 아예 그런 비판의 소지를 없애자는 의도가 깔려 있을 가능성이다. 그것보다 더욱 그럴듯하다고 생각되는 가능성은 몇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 했기 때문에 비용-편익분석을 할 시간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구체적인 비용-편익분석의 결과 없이 제시된 4대강사업은 그 타당성 입증책임의 소재를 뒤바꿔놓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빚었다. 어떤 공공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입증책임은 당연히 그것의 시행 주체인 정부에 있다. 그런데 요즈음 진행되고 있는 4대강사업 관련 논의를 보면 찬성측이 반대측에게 왜 그 사업이 타당성이 없는지를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4대강을 정비하려 한다는데 무슨 근거에서 훼방을 놓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그런 적반하장식의 우스꽝스러운 요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아무리 논의가 혼란스럽게 돌아간다 하더라도 공공사업의 타당성을 입증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상식을 뒤엎으려 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수질 정화, 용수 확보, 홍수 방지에서 오는 편익이 22조원 +α   를 초과한다는 확실한 증거를 우리에게 제시해야만 4대강사업이 타당성을 갖는다는 점을 인정받을 수 있다. (여기서 +α 는 환경 파괴와 생태계 교란과 관련한 비용을 뜻하며, 이는 엄청나게 큰 값이 될 수 있다.) 그 토목공사에서 구체적으로 얼마만큼의 편익이 창출될 수 있는지를 밝히지 못하는 한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은 없다.

말이 쉽지 22조원이라면 이만저만 큰돈이 아니다. 최근 남유럽에서 방만한 재정운영으로 인한 경제위기가 빈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도 결코 안심할 처지가 되지 못한다. 이명박 정부가 참여정부로부터 건전한 재정을 물려받았기 망정이지, 부실한 재정을 물려받았다면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경제성이 입증되지도 않은 사업에 22조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부으면서 재정의 건전성을 말할 자격이 있을까? 다음 정부에게 부실한 재정을 물려주는 최초의 정부가 되기 않기를 바란다.
22조원이란 불요불급한 지출의 부담이 누구에게로 돌아갈지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더군다나 부자 감세를 통해 중, 저소득층의 조세부담을 상대적으로 더 높여 놓았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무상급식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연간 1조 남짓의 추가적 조세부담을 놓고 포퓰리즘이니 아니니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그런데 22조원이나 되는 엄청난 돈을 쓸모없이 쏟아 붓는 것과 관련한 조세부담 논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나는 그런 쓸모없는 조세부담을 단 한 푼이라도 떠안기 싫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 22조원의 비용이 전부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일단 공사가 완료된 후라 할지라도 매년 유지, 보수에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 분명하다. 청계천처럼 작은 물길 하나를 유지, 보수하는 데 매년 백억원 가까운 비용이 들어간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전국의 강들에 매년 퍼부어야 할 돈은 가히 천문학적인 규모가 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수질 정화 한 가지에 들어가는 비용만 해도 엄청난 규모일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흘러들어가는 물은 여전히 더러운데 물을 담는 그릇이 커진다고 물이 더 깨끗해질 리 없다. 오히려 물의 흐름이 늦어져 더 더러워질 가능성이 크다. 4대강사업으로 물이 맑아진다는 것은 엄청난 비용을 들여 정수를 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 많은 양의 물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과연 얼마나 많은 돈을 퍼부어야 할지 상상해 보기 바란다.
22조원에 환경 파괴와 생태계 교란과 관련된 비용을 더하고, 여기에 다시 매년 들어가는 유지, 보수비용까지 포함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간다는 결론이 나온다. 엄밀하게 계산해 보면 그 사업에서 나오는 편익이 그 1/10에도 못 미칠지 가능성이 크다. 나는 경제학자로서의 양심을 걸고 단언할 수 있다. 여러 정황에 미루어 판단해 볼 때 4대강사업은 경제적으로 전혀 가치가 없는 사업이라고 말이다. 정부가 좀 더 구체적인 수치로 나를 설득하지 못하는 한 나는 이 결론을 조금이라도 수정할 용의가 없다.
최근에는 4대강사업의 공정이 이미 30% 이상 진전되었기 때문에 사업을 계속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사이비 논리까지 등장하고 있다. 경제학의 기초만 갖고 있어도 이 논리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토목공사에 지금까지 쏟아 부은 돈은 무슨 수를 쓰든 회수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매몰비용(sunk cost)의 성격을 갖는다. 경제학원론 책을 보면 매몰비용은 얼마가 되었든 잊어버려야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는 미련 없이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4대강사업의 계속 여부를 고려할 때 이제까지 얼마의 돈이 들어갔는지는 상관하지 말고 미래의 일만을 생각해야 한다. 즉 공사를 계속해 우리의 국토를 더 망치는 것이 바람직한지 아니면 여기서 그치는 것이 바람직한지만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30%의 공정을 보이고 있는 지금 이미 처참하게 망가졌지만, 더 이상의 파괴를 막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응당 잊어버려야 하는 매몰비용에 연연해 추가적인 파괴를 용인하는 것은 결코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없다.
이미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으니 공사를 계속하자는 사이비 논리는 비단 이번뿐 아니라 늘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새만금사업의 경우에도 이와 똑같은 논리가 등장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와 토건족은 언제나 일을 저질러 놓고 보는 습성을 갖고 있다. 일단 저질러 놓고는 이 사이비 논리를 동원해 공사를 계속할 빌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나쁜 버릇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4대강사업과 관련해 그와 같은 사이비 논리가 발을 붙일 틈조차 주지 말아야 한다.

7. 맺음말

나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경제학자로서의 모든 양심을 걸고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다. 나는 그 사업이 수행할 가치도 없을 뿐 아니라, 수행해서는 안 될 것임을 자신 있게 증언할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 그렇게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면서 4대강을 정비해야 할 당위를 전혀 찾을 수 없다.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 강들이 심하게 오염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홍수와 물 부족의 위협이 눈앞에 다가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대규모 토목공사가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는 정부만 알고 있을 뿐 우리는 단 하나도 알지 못하고 있다.
4대강사업이 단지 아까운 세금이 낭비되는 결과를 빚는 데 그친다면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대규모의 환경 파괴와 생태계 교란이 가져올 파장이다. 현재 고작 30%의 공정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도 심각한 수준의 환경 파괴가 일어나고 있다. 공사가 완전히 끝났을 때 4대강 연변이 얼마나 끔찍한 모습으로 변화해 있을지는 상상하기조차 싫을 정도다. 그때가 되면 수천, 수만 년을 우리 곁에서 정겹게 굽이치며 흐르던 강은 우리와 영영 이별을 고해야 한다. 그 대신 인공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저수지들이 우리를 맞게 될 것이다.
전국의 강들을 청계천과 양재천처럼 만들겠다고 하는데, 이는 전국의 강을 성형수술대에 올리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할지 몰라도 속으로 골병이 든 생태계를 만들어낼 것이 너무나도 뻔하다. 이 강에서 살던 물고기를 저 강으로 옮기고, 이 강변에서 자라던 풀과 나무를 저 강변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전 국토의 생태계는 엉망으로 망가져 버릴 테니까 말이다. 그와 같은 인간의 무모한 간섭이 어떤 무서운 결과를 빚을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 크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순수한 동기에서 우러나온 국민의 걱정 소리에 귀를 닫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통령과 정부는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포기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수많은 지식인과 종교인들이 강한 목소리로 ‘4대강사업 절대불가’를 외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임기 안에 끝내겠다는 고집으로 맞서는 상황이다. 국민이 어떤 말을 하던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나라를 이끌어가겠다는 독선과 오만이 두렵기만 하다.
지금 4대강사업을 둘러싼 국론분열의 양상은 심각한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보수 언론이 이 진실을 잠시 은폐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국민의 눈과 귀를 언제까지나 가려둔 상태로 묶어놓을 수는 없다. 나는 이 위기상황의 진전 과정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정부와 반대진영 사이에서 힘의 대결이 빚어질 수 있고, 어쩌면 2008년의 촛불시위 때보다 한층 더 심각한 사회적 갈등의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
나는 정부에게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학자들과 종교인들이 발표하는 성명서를 정독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 사업을 저지하려는 이들의 결의가 얼마나 굳건한 것인지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회유와 위협에 넘어갈 사람인지의 여부도 미리 파악하고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4대강 사업 결사반대의 의지를 이미 굳혀놓은 상태이며, 어떤 회유나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만약 이 사실을 잘 안다면 반대여론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지금과 180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처럼 약이라도 올리듯 속도전으로 대응하는 전략은 반대진영의 결의를 더욱 굳게 만드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의 상황은 낙관적인 전망을 내리기 어려운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결정적인 반전이 없는 한 이명박 정부가 4대강사업의 삽질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업에 반대하고 있는 지식인과 종교인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것 같지도 않다. 파국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4대강사업의 삽질을 잠시 멈추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뿐이다.
어차피 4대강사업은 계속할 테지만 할 말 있으면 해보라는 식의 거짓 대화 제의는 오히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이 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끝내 설득할 수 없다면 공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각오로 대화에 임해야 한다. 사실 민주주의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진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계속 반대할 의사를 갖고 있다면 미련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으로 뽑혔다 해서, 국회의 절대다수 의석을 확보했다 해서 모든 일을 자기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백지수표를 건네받은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 동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끊임없는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제는 세계 어느 나라도 부럽지 않을 만큼 성숙한 단계에 들어섰다고 자부해도 좋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으로 인해 민주주의적 원칙은 중대한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4대강사업을 둘러싼 국론분열의 상황이 어떤 방식으로 정리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앞날이 결정될 것이다.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4대강사업을 그대로 밀어 붙인다면 이 땅의 민주주의는 회복이 어려운 상처를 입게 된다. 나는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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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교수에 대한 팁 하나- http://goodeconomy.hani.co.kr/blog/archives/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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