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라리온 8

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 (8) 과거사 청산은 '현재진행형'

지난달 19일 오전 르완다 수도 키갈리. 가탱가 지역 주민센터 앞에서 한 여성이 16년 전 일어난 ‘대학살’을 증언하기 위해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는 마을 사람들이 죽어갔던 과정을 똑똑히 지켜봤다”며 “오늘 증인으로서 당시 벌어졌던 일을 그대로 밝히겠다”고 말했다. 재판의 격식은 따지지 않는 듯했다. 이날 열린 항소심 재판에선 법복 입은 판사 대신 옆 마을 주민들 중 명망 있는 이들이 법관 역할을 맡았다. 재판 장소도 주민센터 내 30㎡ 정도 크기의 소강당이었다. 이웃 마을에서는 이날 판사가 배탈이 나서 재판이 미뤄졌다고 했다. 이것이 르완다의 지역사회별로 이루어지는 1994년 제노사이드(인종말살) 전범재판 ‘가차차’의 모습이었다. 지난달 19일 르완다의 가탱가 지역 주민센터 밖에서 수의를 ..

나라가 평안해야 국민이 오래산다- WHO 보고서

올해 태어나는 일본의 여자아이들은 평균적으로 2095년까지 살 수 있다. 운이 좋으면 22세기를 볼 확률도 높다. 하지만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태어난 남자아이들의 경우, 네 명 중 한 명은 다섯 살까지도 살아남기 힘들다. 어린 시절을 넘긴다 해도 마흔살 넘어까지 살 가능성은 높지 않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1일 유엔 밀레니엄개발목표(MDG)의 보건 분야 목표달성을 점검하고 세계 각국 보건현황을 담은 연례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1990년에서 2007년 사이 각국의 평균기대수명과 영아 사망률 등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지금 태어난 아이가 앞으로 몇 살까지 살 수 있을지를 예측한 수치인 평균기대수명은 한 사회의 보건·의료 수준을 가늠케 하는 잣대다. 이번 보고서는 특히 정치불안과 내전..

아프리카 또다시 기근 먹구름

곡물가 급등에 가뭄 같은 자연재해까지 겹치면서 기근의 먹구름이 다시 아프리카를 덮기 시작했다. 사하라의 남진(南進)으로 사막화된 중서부 건조지대에서 동아프리카까지, 곳곳에서 2000만명 이상이 식량위기로 고통을 겪고 있다. 상황이 가장 심각한 곳은 동아프리카 '아프리카의 뿔' 지역. 세계식량계획(WFP)은 22일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케냐, 우간다, 지부티 등 이 일대 5개국에서 1400만명이 기근 위기를 맞고 있다고 밝혔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1980년대 최악의 기근을 겪은 에티오피아에서는 460만명이 구호 식량에 의존하고 있고, 그 외에도 570만명이 추가 원조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WFP는 에티오피아 인구의 12%가 원조로 목숨을 부지하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기근의 가장 ..

분쟁의 불씨 꺼지지 않는 아프리카

아프리카 곳곳이 다시 유혈사태로 얼룩지고 있다. 오랜 내전의 참화에서 벗어나 재건을 꿈꿔온 콩고민주공화국(DRC)과 다이아몬드의 산지로 유명한 시에라리온에서 정부군과 반군 간, 여당과 야당 지지세력 간 유혈충돌이 벌어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요하네스버그 흑인 슬럼가 시위대에 경찰이 발포하는 일이 일어났고 수단 다르푸르 분쟁도 갈수록 꼬이고 있다. DRC 군벌싸움 재개되나 옛 자이르에서 이름을 바꾼 중부 아프리카의 자원 부국 DRC 정국이 쉽사리 안정되지 않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종족분쟁과 군벌 다툼으로 격렬한 내전을 치렀던 DRC는 지난해 10월 대선 결선투표로 조지프 카빌라 대통령이 당선되고 새 정부가 출범한 뒤 재건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카빌라 대통령을 지지하는 쪽과 반대..

시에라리온의 난민촌

그러니까 난민생활도 좀 나은 곳에서 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하면 너무 매정한 것일까. 가나에 있는 라이베리아 난민촌과 시에라리온에 있는 라이베리아 난민촌을 다녀왔다. 가나에는 사람이 바글바글, 그래도 사람사는 곳 같긴 했는데 시에라리온 프리타운 외곽 그라프톤에 있는 난민촌은 대체 뭘 먹고 사나 걱정스러운 몰골이었다. 유엔 난민기구(UNHCR) 협조로 차를 타고 난민촌에 들어가면서 본 마을 모습. 난민촌의 학교 시에라리온은 영국 식민지였다. 이 난민촌은 2차 대전 때 영국군 기지로 쓰였다는데, 활주로 흔적이 저렇게 남아 있다. 마틸다라는 이 아이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내 손을 붙잡고 따라다녔다. 때가 꼬질꼬질한 손을 입에 넣었다가, 내 손을 잡았다가. 나도 너같은 딸이 있단다. 데려올 수만 있다면..

[2006,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팔 잘린 사람들.

시에라리온 수도 프리타운 외곽의 주이 마을에는 노르웨이 구호기구의 지원으로 만든 ‘앰퓨티(Amputee) 마을’이 있다. 내전 기간 소년병들에게 팔다리가 잘려나간 이들을 위한 일종의 정착촌이다. 며칠전 국제이주기구(IOM) 직원들과 함께 주이마을을 찾았다. 일자리도 없고 정부로부터 변변한 지원도 받지 못하는 내전 피해자들은 대개 낮동안 프리타운으로 구걸을 하러 나가기 때문에 마을은 한산했다. 뭉툭하게 절단된 팔에 목발을 짚고 다니는 이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절단·전쟁피해자협회(AWWPA)의 알 하지 주수 자카(48) 회장은 갈고리가 달린 의수를 들며 취재진을 맞았다. 1999년 반군이 프리타운을 장악하기 위해 공세를 펼쳤을 당시 그는 은행에서 일하면서 시내에 거주하고 있었다. 반군이 당시 14세였던 딸을..

[2006,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우울했던 여행.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세계에서 가장 끔직하고 참혹한 내전을 겪은 나라. 아프리카 서쪽 대서양에 면한 빈국 시에라리온을 찾아가는 길은 험난했습니다. 가나 수도 아크라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라이베리아의 먼로비아에 들렀다가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으로 향했습니다. 비행기는 프리타운을 지나 세네갈을 거쳐 종착점인 감비아로 가는 ‘완행비행기’였습니다. 프리타운 공항에 내린 것은 지난 30일. 시에라리온 내 9개 공항 중 유일하게 포장된 활주로가 있는 곳이죠.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려면 육지를 파고들어온 만(灣)을 건너야 하는데 교량이 없어 군 수송기를 개조한 헬리콥터를 타고 시내로 이동했습니다. (이 헬리콥터는 정말이지 '언제 떨어진들 이상할 것 없는' 형상이었는데요. 실제로 제가 이 헬기를 타고 두어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