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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터넷 서핑하다보면, 지방선거 앞두고 "No Vote, No Kiss!"라는 슬로건을 보게 되는데요.
저 슬로건의 원조 격인 미국의 "No Vote, No Sex!"운동에 대해 찾아봤습니다.

“No Vote, No Sex”는 2004년 조지 W 부시의 재선을 막기 위해 미국 젊은이들이 만든 ‘보터가즘(Votergasm)’ 운동(http://www.votergasm.org)의 슬로건이랍니다. 더 멀리 '진짜 원조'를 찾으려면, 펠레폰네소스 전쟁 때 아테네 여인 리시스트라테의 제안에 따라 여성들이 남편들에게 "전쟁을 그만두지 않으면 섹스를 거부하겠다"고 위협해 전쟁을 멈추게 한 것을 들 수 있겠지요.






보터가즘은 무엇일까요.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한, 즉 특정 정당을 지지하기 위한 조직(?)은 아니고요. 쉽게 말하면, 투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유머러스한 캠페인이었답니다. 웹페이지를 통해 유권자 등록(미국은 우리처럼 전국민 주민등록이 되어있어 모두가 투표를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고 사전에 '등록'한 유권자들만이 투표를 할 수 있거든요)을 하는 방법을 알려준다거나, 여러가지 흥미로운 운동들을 하면서 반(反) 부시 투표를 독려한 것이죠. 보터가즘 티셔츠, 머그잔, 냉장고 자석 같은 것들을 판매하기도 했고요.
워싱턴포스트가 당시에 이 운동을 소개한 기사에 따르면 보터가즘 측은 투표 안한 사람과 일주일간 섹스를 거부하면 ‘시티즌’, 투표한 사람과 섹스하면 ‘애국자’로 구분했다네요 ^^

당시 23세였던 코미디 작가 겸 감독 지망생이던 미셸 콜린스라는 여성 주도로 보터가즘 사이트가 만들어졌는데, "No Vote, No Sex!"라는 슬로건이 눈길을 끌자 보수파들이 대대적인 공격을 하기도 했답니다. 일례로 극우파 방송인인 러시 림보는 TV쇼에 나와서 “(민주당에) 투표하면 섹스해준다는 매춘부들”이라고 맹비난했다는군요. 이에 대한 보터가즘 측의 응답은 “러시 림보 쪼리(RUSH LIMBAUGH FLIP-FLOPS)를 만들어 신고 다니겠다”는 거였다네요. 센스쟁이들... 물론 이 운동은, 민주당과는 관련이 전혀 없는 젊은이들의 운동이었고요.





과거 엄숙주의가 판치던 때와 달리 당시엔 이 밖에도 젊은층 사이에 재미난 선거운동이 많이 이뤄졌답니다. 존 케리/에드워즈 후보 뱃지를 장난스럽거나 혹은 패셔너블하게 만들어 달고 다니는 것은 기본이고요. 재미난 표어·액세서리 등이 뉴욕 등 대도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대 유행을 했답니다. 뉴욕 근교에 ‘Biking Against Bush’, ‘Bowling Against Bush’, ‘Karaoke for Kerry’, ‘Moonlight Yoga for Change’ 등등이 만들어졌다고 해요.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D4D (Downtown for Democracy) 운동 등 창의적인 캠페인들이 쏟아져 나왔답니다. 보터가즘도 그런 것들과 맥을 같이 한 현상이었습니다.
선거문화 차원에서 보자면 이런 발랄한 분위기가 결국 4년 뒤 오바마 당선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도 신나는(!) 선거참여 운동이 벌어졌으면 좋겠는데, 과연 선관위가 좋아할지... -_-;;





국내에서도 '노보트 노키스' 티셔츠가 유행(?)하고 있다는데, '섹스'라는 말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지(여전히 엄숙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는 건지) '키스'로 '순화'되었다는 점이 눈에 띄네요.


좀더 읽어보시려면-

http://gothamist.com/2004/10/28/michelle_collins_director_and_spokeswoman_votergasmorg.php
http://www.washingtonpost.com/ac2/wp-dyn/A38759-2004Oct16?language=printer


울나라 센스쟁이들의 잼난 응용 버전 하나-




출처: http://blog.ohmynews.com/peoplepower/tag/No%20Sex





경향신문 박래용 논설위원께서 이 얘기로 칼럼을 쓰셨습니다. 저도 살짝 기여를 했답니다. ^^ 읽어보세요.

[여적] ‘노 보트 노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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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WP) 신문을 내는 미국 미디어그룹 워싱턴포스트컴퍼니가 77년 역사를 지닌 주간지 ‘뉴스위크’를 매각하기로 했다. 미국 언론계는 “이제는 정말로 한 시대가 끝났다”며 회한을 드러내고 있다. 뉴미디어 시대로의 변화 속에 인쇄매체가 위기를 맞은지는 오래됐지만, ‘타임’과 함께 시사주간지의 양대 산맥이던 ‘뉴스위크’였기에 충격이 적지않아 보인다.


WP컴퍼니의 도널드 그레이엄 회장 겸 최고경영자는 5일 투자은행인 앨런&컴퍼니에 뉴스위크 매수자를 찾아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나도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비즈니스”라면서 “올해도 큰 폭의 적자가 예상되는데다, 이 잡지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 길이 보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존 미첨 뉴스위크 편집장은 모기업의 결정에 대해 “앞으로도 우리 잡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있다고 보지만 생존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놀라울 것도 없는 결정”이라고 말했다. 뉴스위크를 누가 사갈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지난해 ‘비즈니스위크’를 사들였던 블룸버그 그룹은 뉴스위크를 매입할 뜻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1933년 창간된 뉴스위크는 61년 WP 산하로 들어와 90년대 이전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다. ‘타임’이 보수적이고 친 공화당 성격인 반면 뉴스위크는 베트남전 등의 주요 이슈에서 상대적으로 리버럴한 입장을 보이면서 독자층을 확보했다. 민권운동이나 대중문화 등에 많은 지면을 할애, 젊은 층의 각광을 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독자들을 온라인 미디어나 TV 등에 빼앗기면서 90년대 이후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 2007년 뉴스위크와 타임은 발간일을 매주 월요일에서 금요일로 바꿨다. 한 주의 이슈를 선도하는 역할은 포기하되 해설·에세이 기사를 늘려 주말 독자층을 겨냥해보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대세를 돌이킬 수는 없었다. 2000년 상반기 314만부였던 뉴스위크 발행부수는 지난해 상반기엔 197만부로 줄었다. 같은 기간 타임은 407만부에서 333만부로 감소했다.
지난해 뉴스위크는 2810만달러(약322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전년 1540만달러에서 82.5%나 늘어난 액수다. 수입은 2008년 2억2740만달러에서 지난해 1억6550만달러로 줄었다. 광고 수입도, 판매 수입도 모두 감소했다. 사정은 타임도 비슷하다. 뉴스위크와 타임은 각각 1부 당 가격이 5.95달러, 4.95달러이지만 판매부수를 유지하기 위해 정기구독자들에겐 50센트씩에 배달해주고 있다.

잡지의 생존 위기는 심각하다. 한때 미국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잡지였던 ‘TV가이드’는 2년 전 단돈 1달러에 오픈게이트캐피털이라는 투자회사로 넘어갔다. 시사주간지 ‘US뉴스&월드리포트’는 발행비용을 줄이기 위해 주간지에서 월간지로 바꿨다.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지난해 역시나 ‘헐값’인 500만달러에 블룸버그로 넘어갔다. ‘리더스다이제스트’는 파산보호신청을 하고 발행부수를 대폭 줄였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만 미국시장 판매부수를 늘리며 체면치레를 하고 있다.
노스웨스턴대 저널리즘학과 찰스 휘태커 교수는 “모든 주제를 다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던 예전 방식의 시사주간지로는 다양화, 세분화된 요즘 독자들의 요구를 맞출 수 없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월요일 아침마다 가판대에서 타임과 뉴스위크를 골라들고 한 주를 내다보던 시대는 이제 완전히 끝났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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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묻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하는가. 우리에겐 정체성을 밝힐 자유가 있다.”
18일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 앞에 150여명이 모여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 “군 내 동성애자 차별을 없애기로 한 약속을 지키라”며 시위를 벌였다. 오바마가 국방부의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는 오랜 동성애자 금언 정책을 폐기하도록 하겠다고 해놓고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것에 항의하러 나선 것이다.
동성애자임을 스스로 밝혔다는 이유 만으로 강제퇴역 처분을 받게 된 동성애자 전역병 2명은 백악관 울타리에 자신들 몸을 사슬로 감고 구호를 외치다가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체포된 이들 중 한 명은 한국계 이민2세로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 장교였던 대니얼 최(29·사진)였다.




침례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최씨는 2003년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했다. 아랍어와 파르시(이란어)가 유창해 미군 내 중동 전문인력으로 인정을 받았고,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이라크전에 복무했다. 이라크에서 돌아온 뒤에는 뉴욕 주방위군에 소속돼 일하고 있었다. 그의 인생이 바뀐 것은 지난해 3월이었다. MSNBC방송 레이첼 매도우 쇼에 출연해 “나는 게이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동성애 금언 정책에 전면 도전한 최씨는 군 내부는 물론, 미국 전체 동성애자 권리운동의 상징으로 부상했다.
군은 즉시 보복에 나섰다. 국방부는 “군 내부 질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뉴욕 주방위군의 규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그를 강제퇴역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최씨는 “강제 전역 조치는 나를 비롯해 내 군 동료들 모두를 모욕한 것”이라며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전문적이고 훈련된 병사들을 용납할 수 있는 현명한 군 지도부를 원한다”는 편지를 백악관에 보냈다.

MSNBC 출연 이후 석달 사이에 미 곳곳에서 16만명이 뉴욕 주방위군에 보내는 강제퇴역 철회 청원서에 서명했고, 그를 구명하기 위한 웹사이트와 단체들이 생겼다.
최씨의 선언 뒤 웨스트포인트 출신 동성애자 장교 38명이 커밍아웃을 했고,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LGBT)의 군 복무에 찬성하는 ‘나이츠 아웃’이라는 군인조직까지 만들어졌다. 최씨는 지난해 샌프란시스코 게이퍼레이드, 뉴욕시 동성애자 행사인 프라이드 랠리 등에 참가하며 공개적인 권리투쟁을 계속했다. 오바마는 그해 10월 “금언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18일 최씨의 체포 사실은 ABC, CBS방송 등을 통해 크게 보도됐다. 최씨가 시위하는 동안 백악관 브리핑룸에서는 기자들이 로버트 기브스 대변인에게 “오바마 대통령이 그를 만날 것인지”를 물었다. 기브스는 “오늘은 그런 계획이 없다”고 말했지만, 오바마와 최씨의 만남이 이뤄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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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모든 흑인들은 지금 매장을 떠나라!”

미국 뉴저지주 남쪽 워싱턴타운십의 월마트 매장. 지난 14일 이 곳에서 쇼핑을 하던 사람들은 매장 내 안내방송을 들으며 경악했다. 갑자기 한 남성의 목소리로 “모든 흑인들은 떠나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던 것이다. 1960년대 흑백 분리가 공공연히 이뤄지던 시절도 아니고, 사상 첫 흑인대통령까지 탄생한 마당에 흑인들에게 가게를 나갈 것을 요구하는 방송이 나오자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아직까지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이 남성의 방송이 있고난 뒤, 월마트 직원이 다시 마이크를 잡고 매장 안내방송을 통해 사과를 했다. 하지만 파장이 수그러들지 않자, 결국 17일 월마트 측에서 공식 사과를 했다. 아칸소주 벤튼빌에 본사를 둔 월마트 측은 “그런 일은 우리도 용납할 수 없다”면서 누가, 어떻게 저질렀는지 조사하겠다는 성명을 냈다. 월마트는 인종 차별 기업, 이주노동자 착취 기업이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지난 몇년 동안 공을 들여왔는데 이번 일로 다시 이미지가 나빠지게 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매장 안에 있었던 소비자들과 흑인사회는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월마트 측이 문제의 남성이 누구인지, 월마트 직원인지 아닌지, 어떤 경위로 안내방송에 접근할 수 있었는지 등에 대해 사흘이 지나도록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월마트에서 쇼핑을 하고 있었다는 셰일라 엘링턴이라는 여성은 AP통신 인터뷰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인종 간 관용을 열심히 가르쳐왔는데 그런 방송이 나와 황당했다”면서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분명히 밝혀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엘링턴은 당시 함께 있었던 친구들과 함께 사건 경위가 밝혀지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으리라는 보장이 있을 때까지 월마트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마트 전직 직원으로서 역시 같은 시간 이 매장에서 쇼핑을 하고 있던 흑인 남성 빌 미첼은 “방송을 듣는 순간 충격을 받았고 몹시 기분이 상했다”면서 “하지만 (월마트에서 일하는 동안) 더 심한 말도 많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소비자들이 분노하는 것은, 월마트가 소수민족과 유색인종 등 마이너리티에 대한 차별로 물의를 빚은 것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흑인 손님들에게 모욕감을 주는 등 차별대우를 해 소송에 휘말린 것도 여러번이고, 그로 인해 회사 측이 거액의 보상금을 문 적도 많다. 지난해 2월에는 트럭 운전기사들을 고용하면서 인종차별을 해 제소되자 합의금으로 1750만달러(약 200억원)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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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룬 잡지’. 이렇게 말하면 감이 오지 않겠지만, 영어 “The International Magazine of Events”의 약자를 모아놓으면 영어를 조금이라도 들여다본 사람들은 쉽게 알아들을 이름이 됩니다.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바로 그 잡지입니다.





미국 저널리스트 겸 출판인인 브리튼 해든과 헨리 루스(아래 사진)가 창간한 타임은 1923년 3월 3일 첫 출간됐습니다. 예일대 동창생으로 캠퍼스 신문 ‘예일 데일리뉴스’를 만들던 두 사람은 일반인들을 위한 시사잡지를 만들기로 한 뒤에 이름을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맨 처음 물망에 올랐던 것은 ‘팩츠(Facts·사실들)’였으나, 해든이 “뭔가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것 같으면서도 재미있게 들리는” 이름을 골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타임’으로 결정됐습니다. 예일대 동창인 부자 친구 헨리 데이비슨, JP모건의 유력인사였던 은행가 드와이트 머로 등의 지원을 받아 세상에 선을 보였습니다.




29년 해든이 사망한 뒤 루스가 타임을 이끌었습니다. 루스는 67년 세상을 뜰 때까지 20세기 미국 미디어 업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 중 하나로 군림했습니다.
타임이 창간된 시기는 미국에서 라디오와 영화 등 새로운 매체들이 세상을 움직이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인쇄매체로 출발한 타임은 다른 미디어들을 활용하는 전술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가장 ‘핫’한 라디오프로그램과 영화를 먼저 소개하고, 그들과 공존함으로써 수익모델을 만들었던 것이죠.
타임 창간때부터 일했고 훗날 2대 주주이자 편집장을 지낸 로이 라센은 창간 이듬해인 24년부터 신생 라디오방송에 타임이 뽑은 시사퀴즈를 내보냈습니다. 나중에는 미국 내 33개 라디오방송국에서 타임 잡지와 연계한 코너를 만들었습니다. 31년에는 CBS방송이 ‘3월의 타임’이라는 이름으로 30분짜리 라디오 방송프로그램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타임이라는 이름이 미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데에는 이 프로그램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그 후 정치·경제계의 유력인사들이나 주요 기업들도 타임과의 공존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전략을 택했다는 겁니다.

80년대 이후 몇몇 큰손들에 의해 세계 미디어업계가 재편되면서 타임도 독립된 잡지로서 존재할 수 없게 됐습니다. 89년 워너 커뮤니케이션과 타임이 합병돼 타임워너라는 거대 미디어그룹이 탄생했습니다. 2000년 아메리카온라인(AOL)과의 재합병으로 ‘AOL타임워너’라는 회사가 만들어졌지만 뉴미디어와 올드미디어의 합체 실험은 사실상 실패로 끝나고 3년 뒤 다시 타임워너로 돌아갔습니다.




타임은 창간 이래 팝문화를 비롯한 ‘가벼운 뉴스’에서 분쟁·내전·정치 등 ‘무거운 뉴스’까지 고루 다루면서 시사잡지의 전범(典範)이 됐지요. 보수적·상업적인 속성, 민감한 트렌드 감각, 세련된 편집과 예술적인 사진들이 이 잡지의 성공요인으로 꼽힙니다.
제 경우, 국제뉴스를 다루는 일을 하다보니 타임을 많이 봤었는데요. (기사를 많이 읽어본 것은 아니고 말 그대로 '훑어본' 적이 많다는 얘깁니다 ^^;;
다소 '끔찍한' 사진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예를 들면 아체 지역 반군들의 시신 사진(이런 사진은 일간지에선 보기 힘들죠), 아프가니스탄 소련 괴뢰정부의 대통령이던 나지불라가 교수형 당해 매달려 있는 모습도 타임을 통해 보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이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타임의 가장 큰 특징은, 언제나 표지에 사람을 싣는다는 거겠지요. 타임의 표지모델이 된다는 것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세계 미디어의 초점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타임 첫 호의 표지인물은 누구였을까요. 출판 설비가 열악해 팩시밀리로 전송된 사진을 이용해 찍어난 제1호의 표지인물은 은퇴한 미 하원의장 조지프 캐넌이었습니다.

해마다 타임이 발표하는 그 해의 인물은 모든 언론들의 관심거리입니다.
당초 ‘올해의 남성(Man of the Year)’이었던 이 코너 이름은 1999년 ‘올해의 인물(Person of the Year)’로 바뀌었습니다. 그 전까지 여성으로서 타임 표지모델이 되었던 사람은 4명 뿐이었습니다. 영국 에드워드8세가 왕위까지 집어던지게 만들었던 ‘심슨 부인’ 즉 월리스 심슨(36년), 장제스 중국 국민당 주석 부인 쑹메이링(37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2세(52년), 그리고 아시아 민주주의의 기수였던 고 코라손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86년)입니다.
99년 이후에도 여성들은 꽤나 박대했다는 느낌입니다. 2002년 내부고발자들을 다룰 때에 여성이 등장했고 2005년 빌 게이츠 부인 멜린다가 남편 및 가수 보노와 함께 표지에 나온 것이 거의 전부입니다.




예외적으로 83년에는 개인용컴퓨터(PC)가 선정돼 ‘올해의 기계(Machine of the Year)’라는 이름이 붙었고, 89년에는 ‘위험에 처한 지구’가 뽑혀 ‘올해의 행성(Planet Of The Year)’으로 변용됐습니다. 99년 마지막호에서 ‘금세기의 인물(Person of the Century)’로 선정된 사람은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늘 영광의 얼굴들만 선정되는 것은 아니고, 아돌프 히틀러나 이오시프 스탈린 같은 독재자·전쟁범죄자들이 표지인물로 등장할 때도 있습니다. 2006년 ‘당신(You)’을 그 해의 인물로 꼽았을 때에는 의미를 놓고 논란이 분분했습니다.




유서깊은 타임도 시대의 변화를 비껴갈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2007년 타임은 주말 독자들을 겨냥하는 쪽으로 전략을 전환, 발행일을 월요일에서 금요일로 바꿨습니다. 하지만 97년 420만부에 이르렀던 발행부수는 매년 조금씩 줄어 2008년에는 340만부로 축소됐습니다.
현재 영국에서 발행하는 유럽판과 홍콩에서 펴내는 아시아판 등을 내고 있지만 캐나다판은 지난해 경영상의 이유로 없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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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절 반공 이데올로기와 ‘미국식 체제’의 우월성을 전파하던 도구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다. VoA의 출범은 2차 대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0년대 이미 미국에는 NBC 국제라디오방송, 화이트넷 등 다국어 민간 단파라디오방송들이 있었다. CBS 남미 네트워크는 대륙 곳곳에 64개 방송기지를 두고 단파라디오 방송을 했다. 39년 연방통신위원회(FCC)는 ‘미국의 방송사들이 해외로 전파를 보낼 경우 미국 문화를 보여주고 국제 우호와 상호이해를 증진시키는 데에 힘써야 한다’는 정책목표를 설정하고, 여기 맞지 않는 민간방송들의 서비스를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양차 대전 와중에 세계를 네 편 내 편으로 가르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기였기에, “언론검열”이라는 방송사들의 항변은 묻혀버렸다.

40년 남미를 나치 선전에서 지켜낸다는 명분에 따라 국무부 산하 ‘미주조정국’에서 남미권을 대상으로 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42년 1월 미 정부는 군가 격인 ‘양키 두들(Yankee Doodle)’을 막간에 집어넣으며 뉴스를 전하는 ‘미국의 소리’ 방송을 공식 출범시켰다. VoA는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이탈리아에 점령된 북아프리카, 나치 독일 영토 등 곳곳으로 방송을 확대했다.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VoA는 이미 40개 언어로 세계 39곳의 송신기지를 이용해 방송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가 전하는 소식은 좋은 소식일 수도 있고 나쁜 소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진실입니다.”
전체주의 ‘추축국’의 피억압민들에게 VoA는 자유로운 미국에 대한 상상을 부추기는 목소리였다.

VoA가 냉전의 첨병으로 굳어진 것은 1947년 2월 17일 소련에 러시아어 방송을 보내면서부터다. 미국 지도자들의 음성과 미국 자본주의의 발달상이 공산진영에까지 전해지게 된 것이다. 소련은 VoA 방해전파까지 내보냈지만 역부족이었다.
50년부터 VoA는 아랍어방송도 시작했다. 56년 수에즈 운하 위기, 58년 ‘6일 전쟁’ 등에서 아랍권 민중들에게 친이스라엘 선전을 하려 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50년대와 60년대 VoA는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 등 음악방송에도 힘을 기울여 미국 대중문화를 알리는데 앞장섰다. 미국 내에서 민권운동이 거세지자 VoA에도 바람이 불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이 방송을 타기도 했다.

89년 중국의 개방정책에 발맞춰 VoA도 만다린·광둥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냉전이 끝난 뒤에는 방송의 방향전환이 두드러졌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VoA를 감독하던 국무부 미국정보국(USIA)을 없애고 이 방송을 방송위원회(BBG) 관할로 넘겼다. 방송위는 VoA를 비롯한 관영언론들이 정치적 입김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설치된 기구이지만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들로 운영되며, 국무부 장관도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현재 VoA는 미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 캘리포니아주 딕슨과 들라노, 하와이, 일본 오키나와,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중미의 코스타리카와 벨리즈에 송신기지를 보유하고 있다. 2001년 9·11 테러 뒤 VoA는 오사마 빈라덴을 숨겨주고 있다는 의심을 받아온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지도자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의 인터뷰를 내보내 논란을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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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탄생한지 1년이 돼가지만 미국 내 인종차별과 흑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사라지려면 훨씬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미국 민주당의 유력인사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피부색을 거론하며 ‘니그로’라는 비하적인 말을 쓴 사실이 드러났다. 정치적으로는 금기시되지만 여전히 백인들의 머리에 박혀 있는, 이른바 ‘N단어(N-word)’ 문제가 다시 물위로 떠오르고 있다.



문제 발언이 정치적 우군인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사진)의 입에서 나왔다는 게 더욱 논란을 부추긴다.
2008년 대선을 앞두고 오바마가 민주당 당내 후보경선에 입후보하자 리드는 그를 가리켜 “피부색도 밝은 편이고 니그로 사투리도 안 쓰는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오바마가 없는 사적인 자리에서 지지한다는 뜻으로 말한 거였지만 은연중에 ‘N단어’가 튀어나온 것이다.
리드는 오바마 정부의 의료개혁안이 상원에서 통과되는 데 큰 몫을 한 유력 정치인이며,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오바마를 지지한 정치적 동료다. 그런 그조차 사석에서 금기어를 썼다는 사실은 미국 백인 사회에 차별의식이 얼마나 뿌리깊이 박혀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사실은 ‘타임’과 ‘뉴욕매거진’ 기자들이 쓴 <게임 체인지>라는 저서를 통해 알려졌다. 책은 이번주 발매되지만 출판사 웹사이에 일부 내용이 공개됐다. 미국 언론들은 책 내용을 인용해 9일 리드의 발언을 일제히 보도했다.
파장이 일자 리드는 즉시 “그런 나쁜 말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상처를 준 것을 깊이 후회하고 사과한다”며 “나는 언제나 오바마 후보를 자랑스러워하면서 지지했고, 당선 뒤에는 그의 정책들을 입법화하는데 앞장서왔다”고 강조했다. 오바마도 성명을 내고 “그 문제라면 리드에게 사과를 받았고 이미 끝난 얘기다”라면서 진화에 나섰다. 오바마는 “리드가 사회 정의에 관심이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며 감쌌다.
하지만 지역구인 네바다주에서 11월 중간선거에 나올 예정인 리드는 악재를 만났다. 리드는 공화당 예비후보들에게 지지율에서 밀리고 있다. 공화당 측은 “오바마더러 ‘선탠한 남자’라고 했던 베를루스코니(이탈리아 총리)와 다를 바가 무어냐”며 리드를 맹공했다.
2006년 공화당 중견 정치인이던 조지 앨런은 아시아계 청년에게 ‘마카카(원숭이)’라고 욕하는 장면이 동영상사이트 유튜브에 올라와 낙선했다.

1940년대까지 미국 남부에서는 흑인 비하어가 버젓이 쓰였지만, 오래전부터 정치권에서 ‘N단어’는 금기어였다. 1948년 워싱턴포스트는 인종분리주의자인 공화당 스트롬 서몬드의 대선 캠페인을 다루면서 “N단어는 흑인(black people)에 대한 세련되지 못한 표현”이라 비판했다. (하지만 서몬드는 무려 100살까지 상원의원을 하며 천수를 누리다가 2004년 숨졌다)

60~70년대 민권운동이 활기를 띠고 ‘정치적 올바름(politically correctness)’ 운동이 펼쳐지면서 비속어 논란이 사회·문화 영역으로 확장됐다. 68년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는 베트남전 참전을 거부하면서 “베트콩들은 나더러 니그로라 부른 적 없다”고 발언해 ‘N단어’ 논란을 재점화했다. 일본계 여성예술가 오노 요코는 71년 “여성은 세계의 니그로(nigger)”라 발언해 다시 논란을 불렀고, 그의 남편인 존 레넌은 이듬해 아예 그 내용을 노랫말로 한 곡을 발표했다.
2007년 뉴욕시 주민협의회는 상징적인 조치로 도시 내에서 니그로라는 단어를 누구든 쓰지 못하도록 결의했다.

하지만 리드 파문에서 보이듯 ‘N단어’에 배어있는 의식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3년 전 조지프 바이든 현 부통령도 당시 떠오르는 정치인이던 오바마에 대해 “세련된데다가 밝고 깨끗하고 외모도 멋진 최초의 아프리카계 주류정치인”이라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 1년 뒤 바이든은 오바마에게 사과했다.

‘N단어’는 아니더라도, 앤(Ann·흑인과 사귀는 백인 여성 혹은 백인이 되고 싶어하는 흑인 여성), 에이프(Ape·유인원), 버피(Buffie·흑인), 크로(crow·까마귀), 정글 버니(토끼)’, 모스헤드(mosshead·탄 머리), 겨자씨(Mustard seed·흑백혼혈), 삼보(검둥이) 등 흑인에 대한 비하어들이 많이 쓰인다.

유명 잡지 배니티페어의 다음달호 표지는 검은 상반신을 드러낸 타이거 우즈다. 잘 알려진대로 우즈는 아시아, 아프리카계 등 여러 인종의 혼혈이다. 인종이나 피부색과 상관없이 골프황제로 대접받던 그가, 나락에 떨어지는 순간 흑인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도 미국의 인종주의를 보여준다. 미 언론계 내부에서도 “우즈가 추락하자 새삼 그가 흑인 핏줄임을 부각시키는 경향(negroization)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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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찐 사람은 나가라?”, “우린 아름다움을 추구할 뿐이다.”

미국의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가 회원들의 사진을 판독, 연말 연휴기간 살이 찐 사람들을 퇴출시켰다. 살 찐 사람들에 대한 인신공격성 차별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해당 사이트 측은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들끼리의 커뮤니티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고 CNN이 보도했다.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한 엘리트 커뮤니티’를 자처하며 남녀 회원들의 소개를 주선하는 ‘뷰티풀피플닷컴’이라는 사이트. 회사는 미국에 있지만 해외에서도 회원들을 모집, 사업을 벌여왔다. 쫓겨난 회원들은 미국, 영국, 캐나다, 폴란드,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 가입한 5000여명이다.
이 사이트는 4일 성명을 내고 “탈퇴해 마땅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올려놓은 멤버들은 탈퇴시켰다”고 발표했다. 살찐 회원들을 정리, 속칭 ‘물관리’를 했다는 것이다. 회사 측은 “뚱뚱이(fatties)들이 우리 사이트를 활보하는 것은 우리 컨셉트에 맞지 않으며 우리의 사업방식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아름다운 우리 회원들은 명절 연휴 때 식탐을 부린 회원들에게 화가 나 있다”면서 “탈퇴시킨 이들도 살을 빼면 언제라도 다시 들어올 수 있다”고 밝혔다.

이미 이전부터도 이 사이트는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가입을 원하는 이들은 먼저 사진을 올린 뒤 48시간 동안 기존 회원의 ‘투표’를 통해 승인을 받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가 하는 일은 사업이기 때문에 일부 회원들을 잃더라도 높은 미(美)의 수준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사이트 창설자인 그레그 호지와 로버트 힌체는 스스로의 외모와 몸매관리를 홍보수단으로 삼는다. 호지는 CNN 인터뷰에서 “너무 많이 먹는 서구인들을 위해서도 우리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간지 이그재미너는 “결국 문제는 이 회사가 아닌, 살찌는 것을 적대시하고 ‘외모 검열’을 받아들이는 소비자들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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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해외입양아들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계 입양아들 대부분이 성장기에 정체성 혼란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뉴욕타임스는 9일 입양아들이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정체성 혼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조사결과와 함께 한인 입양아들의 고민과 아픔을 전하는 기사를 실었다.

플로리다주 포트로더데일에서 고교 교사로 일하는 한국계 입양아 조엘 밸런타인(35)은 3살 때인 1977년 백인 가정에 입양됐다. 백인들 속에서 자라난 그는 “인종적 정체성의 고민을 얘기하고 싶어도 자칫 양부모의 고마움을 모르는 것으로 비칠까봐 말할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1979년 미네소타주의 시골 가정에 입양된 제니퍼 타운(33)이라는 여성도 “대학에 진학한 뒤 내 과거를 알기 위해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하자 부모님은 큰 충격을 받으셨다”고 말했다.



한국계 입양아 김은미 영 씨가 트위터에 올린 백인 동생들과의 어린 시절 사진


한국전쟁 직후부터 2007년까지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계는 16만명으로 미국 내 전체 한인인구의 10%를 차지한다. 하지만 다른 교포들과 달리 입양아들은 백인들에 둘러싸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인종적 혼란을 더욱 크게 느낀다고 한다. 61년 미국에 입양된 김은미 영(46)이라는 여성은 “어릴 때 양아버지가 한국과 관련된 선물을 사주면 모두 무시했고 청소년기에도 백인 남자아이들만 사귀었다”면서 “서른이 넘어 나의 정체성을 깨닫고 나를 버린 생모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면서 큰 혼란을 겪었다”고 말했다.

뉴욕의 아동복지단체인 에반 도널드슨 입양연구소가 한국계 입양아 17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8%는 어린 시절 자신을 백인이라 생각했거나 백인이 되고 싶었다고 답했다. 60%는 중학생이 된 이후에 인종적 정체성을 깨달았다고 답했다. 한국 문화에 호기심을 갖고 친부모를 찾아나선 것은 성인이 된 이후였다고 대답한 사람이 61%였다.
조사결과 입양아들 대부분이 어릴적 인종차별과 괴롭힘을 경험했고, 교사들로부터 심한 차별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같은 아시아계로부터 배척당한 경험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을 여행했다는 밸런타인은 “나를 입양시킨 외할머니를 찾아갔더니 ‘왜 한국말을 배우지 않았느냐’고 탓했다”면서 한국인들의 태도가 입양아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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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유명 유모차 업체 맥클라렌이 미국에서 팔린 유모차 100만대에 대해 리콜을 실시하기로 했다. 한국맥클라렌도 이에 따라 해당 제품들의 부분 리콜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파이낸셜타임스 등은 맥클라렌 유모차에서 아기들의 손가락 끝이 끼여 잘리는 사고 12건이 일어나 회사 측과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가 리콜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9일 보도했다.
대상 제품은 1999년 이후 미국에서 팔린 볼보ㆍ트라이엄프ㆍ퀘스트 스포트ㆍ퀘스트 마드ㆍ테크노 XTㆍ테크노 XLRㆍ트윈 트라이엄프ㆍ트윈 테크노ㆍ이지 트래블러 등 유모차 9종이다. 특히 우산처럼 접히는 경량 유모차들에서 사고가 많이 일어났다. CPSC는 “제조사 측에서 소비자들에게 무료 안전커버를 제공할 계획이므로 소비자들은 그때까지 사용을 중단해달라”고 당부했다.

미국 측의 조치에 따라 한국맥클라렌도 10일 홈페이지를 통해 리콜 방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한국맥클라렌은 소비자들에게 사용 중단을 권고하지는 않았으며, 별도로 요청하는 소비자에 한해 안전커버를 제공하는 부분 리콜만 하기로 했다. 한국맥클라렌은 2002년 첫 시판 이후 지금까지 약 17만대의 유모차를 판매했으나 그 중 몇대가 이번 리콜대상에 들어가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 리콜 대상 모델들은 국내에서 백화점·인터넷쇼핑몰을 통해 30만~60만원대에 팔리고 있다. 특히 서울 강남 등지에서 ‘외제 유모차’ 붐을 일으킨 것이 이 브랜드다. 맥클라렌은 버버리 시트를 깐 140만원대 모델을 내놓는 등 ‘명품 유모차’ 마케팅으로 인기를 끌었으며, 몇해 전에는 300만원을 호가하는 ‘한정제작판’ 유모차 15대를 국내에 들여오기도 했다.
1965년 영국 항공기술자 오웬 맥클라렌이 창립한 맥클라렌은 2001년 미국 기업가에 넘어간 뒤 중국으로 생산공장을 대거 이전하면서 글로벌 판매를 크게 늘렸다고 한다.


<한국맥클라렌 공지>



여전히 영국에 본사를 두고는 있지만 사실 이제는 미국 회사나 다름없는데 국내에서는 '영국 왕실의 유모차' 어쩌구 해가면서 붐을 일으키는 걸 보고 좀 뜨아했더랬다. 한국에서 17만원짜리, 일본에서 9800엔짜리 유모차로 아이랑 잘만 돌아다녔는데, 한국 엄마들 유난 떠는 것도 정도가 있지... 솔직히 유모차 브랜드 놓고 난리들 치는 거 보면 '그럴 에너지와 시간과 돈의 1%만 떼어내어 다른 데에 써라'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오늘의 결론: 외제 넘 좋아하지 맙시다. 애 물건에 유난떨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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