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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종교이자 법, 사회를 움직이는 체계입니다. 무하마드는 사막의 예언자였던 동시에 움마(공동체)를 조직해 거대한 세력을 형성한 정치가였지요. 이슬람에서는 정치와 종교가 출발부터 밀접히 결합돼 있었는데요(그렇다고 오늘날 극단주의자들처럼 정치와 종교의 통합에 찬성하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이슬람은 '사제' 즉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가 없지만(모든 사람은 직접 신에게 기도하고 대화합니다) 남들이 보기에 성직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셰이크, 이맘, 아야툴라(이란 시아파), 호자(터키-중앙아시아식), 물라(아프가니스탄-'선생'이라는 뜻) 같은 것들이 대략 그런 거지요. 동네의 유식한 어른이 글 모르는 이들에게 꾸란을 읽어주고 암송해주는 경우 그 사람들을 저렇게들 부르기도 하고요. 마드라사(이슬람 학교)에서 종교 가르치는 이들을 가리키기도 하고... 

통칭해서 걍 성직자라고 하더라도, 예배를 주관하는 다른 종교의 성직자들과는 좀 역할이 다릅니다. 이란의 경우를 예로 들면, 아야툴라(더 높은 사람은 그랜드 아야툴라)들은 곧 법관입니다. 이란 보수파와 개혁파가 싸운다, 이런 뉴스를 보면 사법부와 입법부가 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법부는 성직자이자 곧 법관이고 입법부는 국민들이 선거로 뽑은 의원들인 거죠(물론 정치인들 중에도 이슬람 성직자를 겸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요).
그런 아야툴라들, 이란 말고 다른 나라의 수니파들 중에선 무프티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곧 법관입니다. 이슬람법인 샤리아에 따라 다스려지는 이란 같은 나라는 물론이고 이집트같은 세속주의(정-교 분리) 나라에도 이슬람 법정이 있고 법관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프티나 아야툴라들이 내리는 '파트와'는 말하자면 판례, 혹은 훈령에 해당됩니다. 이러저러한 사건에서 이슬람법에 따라 이러저러하게 판결한다- 예를 들면, 아야툴라 호메이니가 이슬람을 모독했다며 살만 루시디 목을 쳐라, 하고 내린 것이 파트와였습니다.

파트와 중에서도 그랜드 무프티나 그랜드 아야툴라가 내린 파트와가 더 쎕니다. 특히 이슬람 수니파들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수니 신학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곳이 카이로의 알 아즈하르입니다. 이슬람권이 자랑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알 아즈하르 대학이고요. 알 아즈하르 모스크(성원)가 나란히 있습니다.

이름만 듣던 알 아즈하르를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라고 하기엔... 걍 카이로 시내 복판에 있어요;;
혹시나혹시나 그곳에 관심 가진 분이 있으시다면... 카이로에서 관광객들 많이 가는 칼 칼릴리 시장 건너편)
대학에는 들어갈 수가 없고, 모스크에만 찾아갔습니다. 




아즈하르 모스크 앞 시장골목입니다.







시장골목에서 빵 파는 할아버지. 뒷모습 근사하죠?




여기가 아즈하르 성원. 바닥은 역시 반질반질 하얀 돌. 




미나레트.




실내에선 사람들이 앉거나 누워서 기도를 하거나 놀고;; 있습니다.

모스크도 현대화하기 때문에... 미흐라브(메카 방향을 표시해주는 일종의 벽감) 앞에 전광판이 달려서 기도시간을 알려주더군요 ㅎㅎ



이제부터는 이슬람과 전혀 상관 없는, 자투리 사진들... 




기자의 대피라미드 앞 사막입니다.
피라미드 사진은 생략. -_-




스핑크스 올라가는 길.
역시, 스핑크스 사진은 생략.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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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의 시타델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미나레트와 돔을 아주 제대로 갖춘 모스크가 있어요.
모하마드 알리 모스크입니다. 




시타델 입구의 안내지도인데요.
위쪽을 자세히 보시면 살라흐 알 딘(앗딘) 시타델이라고 써있어요.
살라딘 시절의 유적이라는 얘기입니다만.... 실제로 남아있는 것은 대부분 그 후의 유적들입니다.

보여드릴 모스크는 19세기 중반(1830~1848) 이집트를 다스렸던 모하마드 알리 파샤(파샤는 터키식 직책) 때 지어진 것이고요.




딱 보면 오스만투르크식입니다. 이스탄불의 블루모스크 쯤 되어보이는 위용입니다만... 물론 크기는 훨씬 작습니다.




옆길에서 본 모습인데, 근사하죠?





입구로 들어가보면 이런 모습입니다. 



흑, 미나레트가 넘 높아서 윗부분이 잘렸네요 




안마당이 50미터x50미터라고 하는데, 알라바스터(설화석고)로 덮여 있어요. 
엄청 뜨겁습니다. 역시 맨발로 다녀야 하는 곳이고요. 뜨겁긴 하지만 너무 아름다워요.




회랑의 창살.





모스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제법 시원해요.
시타델 돌아다니면서 더위에 허덕이다가, 잠시 들어와 앉아서 숨 좀 돌리고, 땀도 식히고.








안에서 올려다본 돔.




역시 오스만 스타일입니다.




모스크 안에서 연애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사료되는 커플...




나를 구경하러 온 소년.... ^^;;




귀여운 꼬마는 에즈마. 엄마 아빠는 터키계 무슬림인데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살다가 여행왔다고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한국인과 터키인은 '형제'... ㅎㅎㅎ





모스크 밖으로 나가 내려다본 카이로 시내.








이 사람이 모스크를 지은 무하마드 알리 파샤랍니다. 사진은 위키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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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이집트 여행 때 카이로의 시타델에 갔습니다. 시타델은 옛날의 요새, 성채를 가리키는 말인데... 카이로의 시타델은 예전에도 가본 적이 있었고, 요르단 암만의 시타델도 구경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암만의 시타델은 규모가 많이 작아요. 카이로의 시타델은 워낙 크기도 크고 (아주 오래된 것이 아니다보니) 보존 상태도 좋아서 제법 근사한 구경거리입니다. 
뭐, 대단히 유서깊고 유명한 '세계적인 급'의 모스크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모스크는 다 아름다우니까요.

카이로 시타델 입구에서 오른편으로, 가장 먼저 만나는 모하메드 엘 나세르 모스크입니다.




모스크 올라가는 길.





담벼락의 문. 어디서나 이쁜 문은 왜 이렇게 많은지.




가는 길에 올려다본 모스크.




자, 이제 들어갑니다.






정확히 말하면... 보통의 '모스크'하고는 좀 다르지요. '실내'가 없이, 회랑과 돔만 있으니까요.
그래도 안에 메카의 방향을 알려주는 미흐라브(이슬람은 우상숭배를 거부해 icon 들이나 그림이 없기 때문에 미흐라브 방향을 향해 예배를 드려요)가 있고, 민바르(설교단)도 있으니 모스크는 모스크...






왼쪽 살짝 파고들어간 것이 미흐라브, 오른쪽 문과 계단으로 이뤄진 설교단이 민바르.
디자인이 엄청 이뻐요.








모스크는 이슬람권 지역분포상 대개(남아시아, 동남아시아를 빼면) 덥고 건조한 곳에 있지요.
그래서 뜨거운 햇살과의 대비를 항상 보게 됩니다.
사막과 햇빛이 모스크의 선과 형태를 만들어준다고 할까요.







저런 선을 보면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비교적 소박한 모스크입니다만...






입구를 지나 미흐라브 쪽으로 양탄자가 깔려 있습니다.
맨발로 걸어가려면 어찌나 뜨거운지.




새까맣고 지저분한 내 발. ㅎㅎㅎ




다소 엽기적으로 보이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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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하루가 머다하고 테러가 또 기승을 부리네요.

이라크 무장저항세력이 여성, 어린이들에 이어 이번에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장애인을 자폭테러에 동원해 친미 민병조직을 공격했다는 소식이로군요.

18일 바그다드 남서부 라드와니야에 있는 이라크군 기지 앞에서 자살폭탄테러가 일어나, 당국이 주는 월급을 받으려고 줄을 서있던 친미 민병대 ‘사흐와(각성)’ 대원 48명이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당시 군 기지 앞에서는 150여명이 급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폭탄띠를 두른 남성 2명이 자폭하면서 사망자가 커졌다고 합니다.

독일 dpa통신은 이라크 내무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자폭한 두 사람은 다운증후군을 앓는 장애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습니다.


Iraqi soldiers inspect the scene of a suicide attack in Radwaniya, southwest of Baghdad, July 18, 2010.|AP


이번 테러는 장애인을 살인병기로 동원했다는 점 외에도, 친미 민병대를 타깃으로 삼은 대형테러라는 점에서 눈길을 끕니다.

‘이라크의 아들들(SOI)’이라 불리기도 하는 사흐와는 반 알카에다 군사조직으로, 2006년말 결성됐습니다.
이라크는 인구 60%가 시아파이고 수니파 수가 적지요.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 탄압받던 다수 시아파들은 상대적으로 미국 점령통치를 온건하게 받아들였지만 후세인 시절의 기득권층이던 수니파는 '이라크 알카에다' 같은 무장세력을 형성해 극렬 저항했습니다(그렇다고 시아파의 저항이 없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바그다드의 '사드르 여단' 같은 시아파 민병대는 반미 무장투쟁을 오랫동안 벌였지요).
특히 바그다드 근처 안바르주 등 3개 주가 이른바 ‘수니 삼각지대’로 맹위를 떨쳤습니다. 그러자 미국은 수니파 민병조직을 지원해, 같은 종파인 수니 저항세력에 맞서게 했습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사흐와가 수니 주민들이 알카에다에 동조하는 것을 막아주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국내 일부 언론들도 좋다고 써댔던 것이 기억나네요.
하지만 누리 알 말리키 총리가 이끄는 시아파 중심의 현 연립정부는 자칫 수니-시아 무장조직 간 경쟁을 부르고 ‘또 하나의 알카에다’를 만들어내는 꼴이 될 수 있다고 반대했었지요. 이라크 정부는 2008년 사흐와에 대한 통제권을 넘겨받았고, 아예 해산시키고 20% 가량을 내무부 산하 치안군에 받아들이는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10만명에 이르는 조직원 중 실제로 군에 수용될 수 있는 것은 3000명 뿐이어서 사실상 계획이 무산됐습니다. 사흐와 멤버들은 매달 정부가 주는 300달러 가량의 월급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 중 일부는 알카에다에 들어갔다가 전향한 사람들이고, 나머지 대다수는 일자리가 없어 조직원이 된 이들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월급 지급이 미뤄지는 경우가 많아 사흐와의 불만이 커지고 있었다고 AP는 전했습니다. 지난해 사흐와 내 몇몇 그룹들은 지방선거가 일정대로 치러지지 않자 “내전을 시작하겠다”며 정부를 위협하기도 했다는군요.

사흐와와 정부 간 갈등이 불거지는 가운데, 수니저항세력들은 ‘민족의 배신자’인 사흐와에 대한 공격을 늘리고 있습니다. 18일 테러와 거의 동시에 바그다드에서 56㎞ 떨어진 마하윌의 사흐와 검문소에 괴한들이 총격을 가해 1명이 다쳤고, 곧바로 부근에서 폭탄이 터졌습니다. 4월에는 바그다드 남부 수니파 마을인 조부르에서 괴한들이 민가에 들이닥쳐 사흐와 대원 등 25명을 사살했습니다.

미국이 이라크에 뿌려놓은 '폭력의 악순환'은 언제나 끝이 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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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이집트에 다녀왔었죠.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방문.
2004년 가족과 여행을 갔을 때는 나일강 상류로까지 쭉 올라갔고요
이번에는 짧은 출장이어서 카이로에만 머물렀는데요.




(흐흐흐 이것은 전문가가 촬영해서 보내주신 사진이고요...
이 밑으로는 제가 찍은 허접한 사진들입니다;;)


하루 낮동안 사막을 지나 홍해 연안의 자파라나 풍력발전소를 구경하는 일정이 있었습니다.
사막을 지나 한 시간 넘게 달려 수에즈 특별경제구역을 방문했고,
거기서 다시 홍해를 끼고 자동차로 두 시간을 가야 자파라나가 나옵니다.









풍력발전소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그렇게 큰 바람개비를 그렇게 많이 본 건 처음이었어요!!!

바람이 워낙 강하게, 1년 내내 부는 데다가 주거지역도 아니고, 드넓은 사막... 바로 옆에는 바다...
풍력발전에는 최적의 장소라 하더군요.


밑에서 바라본 바람개비는



바로 요런 모습.




누워 있는 바람개비. 한 개 길이가 26m래요.




발전소 관리 사무실엔 어김없이 무바라크의 사진이...




여기는 뜬금없이 등장한 홍해의 리조트.
(여기에 묵은 건 아니고요 ^^;; 밥 먹으러 들렀다가 풀 사진만 찍었어요.
저기가 수영장이고 저 너머에 홍해가 있다는데, 투숙객 아니라고 넘어가서 구경도 못하게 하더군요. 치사한 넘들.)




저게 가는 길에 차 안에서 구경한 홍해랍니다. 물에 발 한번 못 담아보고 지나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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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파키스탄이 만나는 험난한 산악지역에는 발루치라 부르는 민족이 살고 있다. 이란·이라크·시리아·터키가 만나는 북쪽의 쿠르디스탄 산악지역에 사는 쿠르드족이 역사상 독립국가를 갖지 못한 비운의 민족이라면, 발루치족은 그 남쪽에서 비슷한 처지로 이란과 파키스탄 양쪽으로부터 차별과 억압을 받는 소수민족이다. 가난과 범죄, 탄압에 시달리는 비극의 땅에서 또다시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알자지라방송과 이란 IRNA통신 등은 15일 밤 이란 남부 시스탄-발루체스탄주(州) 주도 자하덴의 자미아 모스크에서 두 차례 연쇄자폭테러가 일어나 20여명이 숨지고 70명 이상이 다쳤다고 보도했다. 테러범들은 여장을 하고 시아파 사원인 이 모스크에 들어가려다가 제지를 당하자 자폭을 했다. 이란 내무부는 최정예부대인 혁명수비대 대원들도 여러 명 숨졌다고 밝혔다. 이 날은 시아파의 시조 격인 예언자 무함마드의 손자 이맘 후세인 탄신일이어서 모스크가 신도들로 붐비고 있었다.




파키스탄에 근거지를 둔 발루치족 수니파 무장조직 준달라(‘신의 병사들’)는 자신들이 공격을 감행했다고 밝혔다. 준달라는 지난해 10월에도 자헤단의 시아파 사원을 공격, 42명을 숨지게 했다. 이란 정부는 파키스탄 정보당국에 붙잡힌 준달라 지도자 압둘말레크 리기를 인도받아 지난달 20일 처형했다.
리기는 20년 넘게 발루치족 분리운동을 하면서 테헤란 정부에 맞서온 인물이다. 2002년에는 준달라 조직을 만들었고, 2005년부터 테러공격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준달라 조직원은 1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번 테러는 리기 처형에 대한 보복으로 일어났다. 이란 정부는 지난해와 올해 수차례에 걸쳐 체포된 준달라 조직원들을 사형시켰다.

하지만 발루치족 지역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테러범 처형과 보복테러’라는 공식으로 단순화시킬 수 없는 복잡한 배경을 안고 있다. 시스탄-발루체스탄은 이란의 30개 주 가운데 면적이 18만1785㎢로 가장 넓다. 인구는 240만명에 이른다. 이란은 인구 대부분이 시아파 무슬림이지만 발루치족은 수니파가 주를 이룬다.
발루치족은 시스탄-발루체스탄과 파키스탄 내 발루치스탄 주에 흩어져 살고 있다. 두 곳 모두 이란, 파키스탄 안에서 낙후되고 소외된 곳이다. 시스탄-발루체스탄 주민들은 이란의 에너지 개발 혜택에서 소외된 채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산 헤로인과 아편을 밀매하며 살고 있다. 주민 대부분은 여전히 열악한 흙집에서 살고, 몸값을 노린 납치 같은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
이란의 발루치족은 이란 정부를 상대로, 파키스탄의 발루치족은 파키스탄 정부를 상대로 수십년간 분리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다. ‘발루치스탄’이라는 독립국을 세우는 것이 이들의 꿈이지만, 두 나라 정부의 탄압이 극심하다. 시아파 이란과 수니파 파키스탄은 사이가 나쁘지만, 발루치족을 내리누르는 데에는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처형당한 리기는 2007년 “발루치족의 권리를 찾겠다”고 선언하면서 이란 측이 자기네 민족에 대해 ‘종족말살’을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반면 이란은 “준달라는 테러집단일 뿐”이라며 미국·영국 정보기관과 연결돼 반 이란 공격을 저지르고 있다고 비난한다. 자헤단 테러가 일어나자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즉시 성명을 내고 준달라를 비판했다. 이란에서 일어난 폭력사태에 대해 미국이 이례적으로 재빨리 공식 입장을 밝힌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미국은 발루치 지역이 불안정해져 파키스탄으로 혼란이 퍼지고 아프간전에 방해가 될까봐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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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english.aljazeera.net/programmes/witness/2010/07/20107141236396733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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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오사마 살레 투자청장이 이끄는 이집트 투자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했다. 투자사절단은 포스코와 삼성, STX, LG 등 여러 한국 기업들과 접촉해 이집트 투자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리고 2008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홍해 연안 수에즈경제구역(SEZ) 개발과 관련해 인천경제자유구역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SEZ에 한국 의약·바이오업체들의 진출을 끌어내기 위해 대전의 바이오벤처 컨소시엄과도 MOU를 맺었다.
지난달 이집트 투자청(GAFI)은 한국 기자단을 카이로에 초청, 기업지배구조 컨퍼런스를 참관하게 하고 기업 설립절차를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간소화한 ‘원 스톱 숍(One Stop Shop)’을 보여줬다. SEZ에 취재진을 데려가 사실상 투자유치·운영 등의 서비스를 총괄하고 있는 중국 쪽 관리자들과 만나게 하기도 했다. SEZ는 중국 톈진특별경제구역(TEDA) 측이 부지 일부를 임대받아 공장 설립 등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이집트가 ‘차세대 성장동력’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는 홍해 바닷가 자파라나의 거대한 풍력발전 플랜트도 견학코스의 일부였다. 카이로 시내 포시즌스 호텔의 컨퍼런스홀에서 만난 마흐무드 모히엘딘 투자부 장관은 중국어로 인쇄된 명함을 내밀었다.


투자유치를 위해 외국 기자단을 불러 홍보하는 것은 어느나라나 마찬가지다. GAFI가 ‘미디어 팸투어(시찰)’라는 이름으로 기획한 이번 행사는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이례적인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인상적인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행사가 눈길을 끈 부분이 있다면 ‘이집트가 한다’라는 것이었다. 수천년 역사, 피라미드, 스핑크스, 룩소르의 거대한 신전들. 이집트가 외국인들에게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들은 그런 것들이다. 이집트의 ‘현재’는 그 나라를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이나 그 나라에 가고 싶어하는 잠재적 방문객들에게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이집트에도 변화 바람?

이집트의 오늘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집트는 중동 정세의 지렛대가 되는 지역 패권국가이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의 중재자이며 이스라엘과 수교한 몇 안 되는 중동 이슬람국가(정확히 말하면 요르단, 터키, 이집트만이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며 수교하고 있다) 중 하나이며, 호스니 무바라크라는 독재자가 1981년 이래로 29년째 장기집권을 하고 있는 나라다.
이집트는 지구상 어느 나라 못잖은 오랜 역사를 지녔으며 유엔 사무총장(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전 총장)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모하마드 엘바라데이 전 총장)과 아랍연맹 사무총장(아므르 무사 현 총장)을 배출한 국제무대의 핵심 플레이어다. 이 나라의 어제와 오늘을 요약하면 이렇다.


Egypt's President Hosni Mubarak, center, is welcomed by Algerian President Abdelaziz Bouteflika, right,
at Algiers airport, Sunday July 4, 2010. Mubarak is on a one-day trip to Algeria. (AP Photo/Ouahab Hebbat)


하지만 이 나라의 ‘미래’는 어떨까. GAFI의 초청으로 이뤄진 지난달 카이로 방문에서 맞닥뜨린 이집트의 모습은 조금은 생소했다. 이집트가 투자유치에 적극 나섰다? 가말 압둘 나세르 초대 대통령 이래로 ‘아랍 사회주의’를 표방해왔던 이집트가 시장중심 경제로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어차피 세계 사람들은 피라미드를 보러 온다”는 듯한 태도로 관광인프라 투자마저 게을리했던 이집트가 ‘원 스톱 숍’을 자랑하는 모습은 어색해보이기까지 했다.
어쨌든 수에즈의 중국인들이 이집트 투자의 이점을 열띠게 설명하는 모습은 눈에 띄었고, 무려 700여개의 터빈이 돌아가는 자파라나의 풍력발전소는 위용이 대단했다. 이집트에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변화의 배경은 분명하다. 이제 82세가 된 무바라크가 노쇠해졌다는 것, 미국은 29년째 계엄통치를 이어가는 무바라크 독재정권의 부작용을 이제 조금씩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는 것, 어떤 방식으로든 이집트는 ‘포스트 무바라크’ 체제로의 평화적 이행을 준비하면서 국민들의 반정부 감정을 누그러뜨릴 온건개혁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이집트에 가장 큰 위기의식을 불어넣은 것은 최대 맹방이던 미국이다. 미국은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을 사악한 독재자로 몰아세웠고, 이라크를 침공해 후세인을 몰아내기까지 했다. 조지 W 부시 정권이 내세운 이른바 ‘레짐 체인지(정권교체)’ 전략이었다. 부시는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중동 민주화 구상’이라는 것을 내세웠다. 하지만 중동·아랍권 최악의 독재정권인 무바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의 부패한 친미 전제왕정을 그대로 두면서 중동의 민주화를 운운한다는 것은 영 설득력이 없었다. 미국 내에서도 이집트와 사우디의 가시적인 변화가 없이는 이슬람권의 반미 감정을 억누를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부시 행정부는 이집트에 미온적으로나마 개혁을 촉구했고, 무바라크도 압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연유로 2005년 무바라크는 ‘사상 첫 다당제 대선’을 실시했다. 물론 선거는 공정하지 않았다. 야당 지도자였던 아이만 누르는 극도로 탄압받았고, 선거부정에 대한 고발과 저항이 줄을 이었다. 어쨌든 무바라크는 88.6%의 지지율로 당선돼 ‘5기 집권’을 이어갈 수 있었다. 비록 형식적인 선거였다고는 하지만 국민적인 저항의 분위기, 그리고 무슬림형제단 등 이슬람 조직의 부상은 정권에 경각심을 심어줬다.



Mohammed ElBaradei waves during a demonstration to protest at what they call systematic torture by the police
after the alleged beating death of a young man in Alexandria, Egypt, Friday, June 25, 2010. (AP Photo/Tarek Fawzy) 



경제개혁, 성공의 열쇠는 ‘정치’


이집트는 관광수입과 미국 원조에 크게 의존하면서 제조업이 낙후돼 사실상 이렇다할 공장이 없었다. 아랍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관행 때문에 민간부문이 취약하고 공공부문 효율성이 매우 떨어졌으며 부패도 심했다. 경제성장의 동력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인구 8000만명으로 중동·북아프리카 최대 시장이라고 하지만 경제는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무바라크는 저항을 누르기 위해 국민들의 큰 불만거리이던 경제문제에서 개혁을 약속했다. 핵심은 일자리를 만들어주겠다는 것이었다. 대선 1년 전 임명된 아흐메드 나지프 총리가 중심이 되어 민영화, 외국투자 유치, 관세 인하 등의 사업을 추진했다. SEZ도, GAFI의 홍보전도 모두 이런 정치적·경제적 배경에서 나온 것이었다.

개발도상에 있는 나라들이 흔히 그렇듯, 이집트에서도 경제를 좌우하는 것은 정치다. 독재는 부패를 낳고, 부패는 정체를 낳는다. 아시아처럼 ‘개발 독재’를 통해 급성장한 곳들도 있긴 하지만 제3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압도적인 수출용 자원이 없이 독재정권이 경제발전을 이뤄내는 경우는 드물다. 이집트의 경우 커다란 내수시장, 중동·아프리카·아시아의 교차점이라는 입지, 저렴한 노동력 등의 발전 요인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구슬들을 꿰어 보배로 만들어야 할 정부의 효율성과 투명성, 신뢰도는 낮다.
이집트가 후진적인 정치에 발목 잡혀 이번에도 성장의 기회를 놓치고 말지, 아니면 포스트 무바라크 체제로 연착륙해 개혁의 강도와 속도를 올려갈지는 내년 대선에 달려 있다. 아쉽게도 유권자들의 기대감은 크지 않은 듯했다. 무바라크가 아들 가말(46)에게 권력을 물려주려고 준비한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그러나 투자부 공무원 만수르는 “정치상황은 대선 결과가 어떻게 되든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무바라크가 내년 대선에 또다시 출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바라크는 살아있는 한 누구에게도 권력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견해였다.



An angry Egyptian demonstrator shouts anti-police slogans in front of two posters showing killed 28-year-old Khaled Said
during a protest in Alexandria, Egypt, Friday, June 25, 2010. (AP Photo/Amr Nabil)    

내년 대선을 앞두고,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한 엘바라데이가 대권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나름 돌풍을 일으켰던 아이만 누르도 다시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젊은 유권자들은 “모두 다 싫다”라고 입을 모았다. 한마디로 대안부재론이다. 한국의 한 외국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비르(24)는 “무바라크도 싫지만 엘바라데이는 친미파인데다 외국에 오래 머물러 국내 사정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아비르는 “지지할 사람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카이로에서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는 타미르(26)는 “가말 무바라크가 집권하면 아무래도 젊은 사람이니 안정을 유지하면서도 개혁의 속도를 좀 더 빠르게 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걸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지만 나는 아무도 찍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젊은 유권자 메이(26)는 가말 무바라크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가말은 이집트의 문제, 이집트의 정치 현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또한 개혁의 필요성도 잘 알고 있고, 실행에 옮길 능력도 있다.” 메이는 “엘바라데이는 좌파”라면서 “모처럼 추진되고 있는 공공부문의 민영화 개혁을 뒤로 돌릴 것”이라 주장했다.

아비르와 타미르, 메이는 모두 무바라크 이외의 대통령을 본 적이 없는 20대 젊은이들이다. 이들에게는 선택지가 별로 없어보였다. 늙은 무바라크의 시대가 좀더 계속되거나, 젊은 무바라크의 시대로 이어지거나, 두 가지 길 외에 현실적으로 민주적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막혀 있는 탓이다.
메이가 ‘개혁의 적임자’로 믿고 있는 가말은 최소한 아버지와는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카이로에서는 경찰관 2명이 인터넷 카페에서 칼레드 사이드라는 28세 남성을 체포한 뒤 목을 졸라 살해했다. 민주화운동가였던 사이드는 경찰이 단속으로 입수한 마약을 나눠갖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 경찰관들은 대마초를 흡입한 상태에서 그를 보복 살해했다.
미국과 유럽이 이 사건을 문제삼자 가말은 지난 7일 “문제의 경찰들을 철저히 조사해 정의를 세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말이 인권을 옹호하려는 마음이 있는지, 혹은 돈줄인 우방들에게 밉보이지 않으려는 것 뿐인지는 알 수 없다. 미래를 점치기엔 이집트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위클리경향 884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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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실종됐다가 미국에 있는 것으로 확인된 이란 핵과학자가 “이란으로 돌려보내 달라”며 워싱턴의 파키스탄 대사관에 피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과 미국간 ‘납치 공방’이 벌어졌던 핵과학자 실종사건의 진실을 둘러싼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워싱턴 주재 파키스탄 대사관은 13일 “이란 핵물리학자 샤흐람 아미리(35)가 우리 대사관에 와 있으며, 이란으로 즉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앞서 이날 이란 국영 IRNA통신도 같은 보도를 했으며, 또다른 이란 관영매체 파르스 통신은 “미국 정보요원들이 아미리를 비밀리에 파키스탄 대사관으로 옮겼다”고 보도했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뒤 미국과 단교, 워싱턴에 대사관이 없기 때문에 파키스탄 대사관을 통해 외교업무를 보고 있다.
BBC는 “아미리가 귀국을 원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자진 망명을 했다던 미국 측 주장과 배치되는 것”이라며 미 정보당국이 곤혹스런 처지가 됐다고 지적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5월 아미리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성지 순례를 갔다가 사흘 만에 메디나에서 사라진 것. 테헤란의 말레크 아시타르 대학에서 연구 활동을 하던 아미리는 이란의 핵 개발에 깊이 관여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가 적을 두고 있던 대학은 이란 최정예부대인 혁명수비대가 사실상 운영하는 학교다.
미스터리의 실종사건 뒤 아미리가 미국에 있음이 확인됐다. 이란 측은 미 중앙정보국(CIA)이 아미리를 납치했다고 비난한 반면, 미국은 “아미리가 스스로 망명신청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해 10월 이란은 테헤란 북부의 이슬람 성지 쿰에 새로운 핵시설을 짓고 있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정보망을 통해 쿰 비밀시설 신축 사실을 입수하자 이를 희석시키기 위해 이란이 부랴부랴 발표한 것이라는 보도가 뒤따랐다. 미국 측이 쿰 핵시설 정보를 아미리에게서 얻었다는 뒷얘기들이 흘러나왔다. 뉴욕타임스와 abc방송 등은 지난 4월 “아미리를 비롯해 이란에서 ‘망명’한 핵과학자들이 쿰 시설 등 이란 핵관련 정보를 미국에 넘겼다”고 보도했다.





이란 정부는 미국에 아미리를 돌려보내라 줄기차게 요구했다. 지난 4월에는 CIA가 장기간에 걸쳐 이란 핵과학자들과 접촉, 망명시키는 비밀작전을 해오고 있다고 비난했다. 영국 텔레그라프는 “이미 2008년 아미리가 독일에 유학했을 때부터 CIA가 접촉을 해왔다”고 전했다. ‘납치’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아미리의 미국행에 CIA가 개입했음을 뒷받침하는 보도들이었다.

지난 6월 유튜브에는 아미리가 “나는 납치됐다”며 구출해달라 호소하는 동영상이 올라왔다. 그 직후 “나는 자발적으로 미국에 와서 연구를 하고 있다”는 상반되는 내용의 동영상이 다시 올라왔다.
이란 측은 아미리가 미 당국의 압력으로 엇갈리는 동영상을 찍은 것이라 주장했고, 지난달 29일 이란 국영TV에는 아미리가 “두번째 영상은 날조된 것이고, 나는 미 정보당국의 감시를 피해 탈출했다”고 말하는 세 번째 동영상이 방송됐다. 이란 정부는 이달 4일 테헤란에서 미국 대사관 업무를 대신하고 있는 스위스 대사관 측에 CIA 납치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문서들을 전달했다.

아미리가 납치된 것인지, 혹은 망명을 한 것인지, 어떻게 파키스탄 대사관에 가게 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파르스통신은 “이란 정부의 공세에 압력을 느낀 미국 정부가 아미리를 파키스탄 대사관에 인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이라크 여행 중 이란 국경을 넘었다가 억류된 미국인 3명의 석방을 위해 미국이 아미리를 풀어준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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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나데르 파슈툰 시장에는 중국산 제품 천지다. 시장에서 머지 않은 곳에는 중국이 2500만달러(약 300억원)의 건설자금과 인력을 제공해 지은 10층짜리 잠후리아트 병원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전쟁과 테러로 황폐해진 카불에서, 새 벽돌과 반짝이는 유리창으로 이뤄진 이 병원은 단연 눈에 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남부와 중·동부에서 탈레반·알카에다 세력과의 전쟁으로 골머리를 앓는 사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카불과 북부 지역에서는 중국이 착착 발판을 다지고 있다. AP통신은 5일 “중국이 아프간의 환대를 받는 손님으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중국과 아프간의 밀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카불 남쪽 로가르주의 아이낙 구리광산이다. 아프간 정부는 3년전 세계 최대 미개발 구리광산으로 알려진 이 광산의 개발권을 중국야금과공집단공사(MCC)에 내줬다. 중국은 35억달러를 투자, 이 광산을 개발하기로 했다. 앞서 미국 지질학자들은 아프간에 금, 철광, 코발트, 구리 등 1조달러 어치의 광물자원이 묻혀있다는 보고서를 낸바 있다.
굴람 모하마드 얄라키 아프간 상업·산업부 장관은 AP인터뷰에서 “중국은 세계에서 원자재를 가장 많이 사는 나라”라면서 “그들이 아프간에 들어오고 싶어한다면, 안될 이유가 뭐 있느냐”고 말햇다. 중국은 자원을 얻고, 아프간은 투자를 얻어내는 ‘윈-윈’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두 나라는 국경을 맞대고 있다. 전쟁 전인 2000년 2500만달러였던 양국 교역량은 지난해에는 10배에 가까운 2억1500만달러로 늘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변경지대 신장위구르 무슬림 분리운동집단을 진압하기 위해 아프간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중국은 위구르 과격집단이 아프간 이슬람 극단세력의 영향을 받아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Afghan President Hamid Karzai (L) visits Republic Hospital on the inauguration ceremony in Kabul, capital of Afghanistan, Aug. 16, 2009. The 350-bed hospital, which was built with 25 million US dollars provided by Chinese government, is the most well equipped in Afghanistan. (Xinhua/Zabi Tamanna)




Photo taken on Aug. 16, 2009 shows the view of Republic Hospital built by Chinese government in Kabul, capital of Afghanistan.(Xinhua/Zabi Tamanna)


중국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을 위해 대통령궁에 회의장을 지어주고, 북부의 파르완주에서는 관개시설을 지원해줬다. 아직까지 중국의 아프간 원조액은 1억8000만달러로 미국의 120억달러에 크게 못 미친다. 하지만 미국이 아프간인들의 반감을 사는 것과 달리 중국은 ‘친절한 이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게 다르다. 잠후리아트 병원 건설프로젝트에 관여했던 아프간인 라마잔 카리미는 “중국인들은 길을 닦아주고 병원을 지어줄 뿐, 군대는 보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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