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딸기네 다락방

장자일기/ ‘있음’과 ‘없음’

딸기21 2006. 12. 8. 08:10
728x90

‘있음’과 ‘없음’


16. 이제 말 한 마디 해보자. 이 말이 ‘이것’과 같은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같든지 다르든지 그것들과 한가지임이 분명하므로, 사실 그것들과 다를 바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도 한번 말해보자.


17. ‘시작’이 있으면 아직 ‘시작하기 이전’이 있게 마련이다. 또 ‘아직 시작하기 이전의 이전’이 있게 마련이다. ‘있음(有)’이 있으면 ‘없음(無)’이 있게 마련이다. 또 ‘있음 이전의 그 없음’이 아직 있기 이전이 있어야 한다. 또 없음이 아직 있기 이전이 아직 있기 이전, 그것이 아직 있기 이전의 없음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데 갑자기 있음과 없음의 구별이 생긴다. 있음과 없음 중에 어느 쪽이 정말로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제 내가 뭔가 말했지만 이렇게 말한 것이 정말로 뭔가 말한 것인지 말하지 않은 것인지 알 수가 없구나.


이 시점에서 멀리 태평양 건너 어느 작자가 몇 년전 남긴 말이 떠오른다.


“Reports that say that something hasn't happened are always interesting to me, because as we know, there are known knowns; there are things we know we know. We also know there are known unknowns; that is to say we know there are some things we do not know. But there are also unknown unknowns - the ones we don't know we don't know.”


(뭔가 아직 안 일어났다고 하는 언론보도들을 보면 재미있다. 왜냐면 우린 세상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알려진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린 우리가 이런 것들을 알고 있다는 걸 안다. 또 우리는 우리가 잘 모르는 알려진 것들이 있단 사실도 안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음을 우리가 안다는 뜻이다. 하지만 세상엔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그걸 알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이 작자는 또 이런 말도 남겼다.


“I believe what I said yesterday. I don't know what I said, but I know what I think... and I assume it's what I said.”


(내가 어제 말한 것을 믿고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는 알고 있다. 내가 말한 것이 아마 그것이었을 것이다.)


얼마 전 자기 자리에서 짤려나간 이 작자가 이런 말을 어떤 뜻으로 했는지,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 스스로 이해하면서 하기나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뭔가를 매우 흐려놓고 누군가를 속이고 우롱하고 멍청하게 만들기 위해 저런 소리를 한 것만은 분명하다. 저 자는 먼저 인용한 ‘known~ unknown~'하는 말 덕분에, ‘영어를 거지같이 쓰는 인간’ 1위로 꼽혀서 그해 어느 단체가 주는 상까지 받았다;;


장자님 말씀은 저 작자와는 물론 전혀 상관 없을 것이다. 있음도 없음도 있기 이전, 아무것도 없음조차 없기 이전. 이것은 어쩌면 우주론 같고, 어쩌면 궁극의 궁극을 향하여 의문을 품는 물리학자의 꿈 같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