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키르쿠크

딸기21 2003. 3. 1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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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정부는 최근 이라크전이 발발하면 이라크 북부에 군을 투입시킬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 주력부대인 쿠르드민주당(KDP)은 "터키군이 들어오면 유혈충돌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달 말에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 반군이 북부지역에 잠입했다. 미국은 반군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터키를 상대로 미군 주둔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이라크 북부를 둘러싼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의 핵심에는 전략 요충지인 키르쿠크가 있다. 이라크 최대의 유전지대, 미국-이라크-터키-이란-쿠르드족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곳. 다가올 이라크전쟁에서는 키르쿠크를 장악하는 것이 전세를 결정지을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내의 모든 종족·종교갈등이 집약돼 있는 키르쿠크는 자칫 '또 하나의 전쟁'이 벌어질 위험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번에 '석유와 이라크전쟁' 글을 올리면서 키르쿠크가 대단히 중요한 지명이라고 했는데, 지금 그 키르쿠크 얘기를 해보자면.

1927년 이라크 최초의 유전이 발견된 키르쿠크는 이라크의 송유관이 시작되는 곳이다. 100억 배럴 이상의 석유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세계 최대의 유전 중 하나이기도 하다. 키르쿠크에서 시작되는 송유관은 남쪽의 수출항인 바스라, 북쪽의 터키·시리아, 서쪽의 요르단으로 뻗어나간다. 이라크 1일 산유량의 절반인 90만배럴이 여기서 나온다. 산지에 면해있어 강수량이 많고 곡물과 과실이 많이 나는 풍요로운 지역이기도 하다.

문제는 종족갈등. 이 일대에는 이라크 국민의 75%-80%를 차지하는 아랍계가 아닌 쿠르드·투르크멘·아시리아계 등 소수민족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은 키르쿠크가 갖고 있는 전략적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십수년간 이 곳 주민들을 아랍계로 바꾸는 '인종 개조' 정책을 펼쳐왔다. 쿠르드나 투르크멘계 주민들을 강제로 내쫓고 아랍계 주민들을 심는 것이다. 가히 '국내 식민지'라 부를 만 하다. 덕택에, 고향에서 쫓겨난 소수민족들은 이라크 내에서 '국내 난민'이 되어 떠돌며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사정이 힘들기는 하지만, 여전히 소수민족들은 키르쿠크를 중심으로 반군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은 터키 쪽에서부터 남하작전을 밀어붙여 키르쿠크를 초반에 장악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터키의 인시리크 공군기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프린스 술탄 공군기지와 함께 중동에서 미군의 최대 기지로 꼽힌다. 

반면 사담 후세인 정권은 남부지역을 포기하더라도 키르쿠크와 모술의 유전, 그리고 후세인의 고향이자 정권의 기반인 티크리트 등 북부도시들을 지키기 위해 사활을 걸 것으로 예상된다.

미-이라크의 움직임은 저렇고, 그럼 '북부 사람들'은 어떤가. 

무장 독립투쟁을 벌여온 쿠르드족들은 미국의 공격에 발맞춰 후세인정권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 쿠르드족의 주축인 KDP와 쿠르드애국연합(PUK)은 반후세인 투쟁을 하면서도 서로 반목을 계속하고 있는데, 두 세력 모두 키르쿠크 장악을 제1 목표로 삼고 있다. 

이들의 공적(公敵)은 터키. 터키는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자국내 쿠르드족이 이라크 쿠르드족과 연대해 분리독립을 외칠까 두려워한다. 때문에 전쟁 발발시 즉각 군을 투입, 키르쿠크가 쿠르드족의 돈줄로 들어가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터키는 터키인들과 혈통을 같이하는 투르크멘족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한마디로 뒤죽박죽이다. 정리해보면

미-이라크 정부군 싸움
터키군-쿠르드 싸움
그것과 이어진 쿠르드-투르크멘 싸움
쿠르드 내 KDP-PUK 싸움
여기에 이란계 반군까지 끼어들 것이고.

한번에 참으로 여러가지 전쟁이 키르쿠크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날 거라는 얘기다. 미국의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이라크 북부에서 터키와 쿠르드 간, 그리고 쿠르드족 두 세력 간에 '또다른 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터키군의 이라크 영토 진입은 곧바로 이란군의 개입을 불러와 분쟁을 역내에 확산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말 우려되는 것은 '사람들'이다. "오렌지와 레몬이 익어가는" 고향마을로 돌아가기 위해 후세인 정권의 몰락만을 손꼽아 기다려온 불쌍한 난민들, 후세인 정권의 탄압으로 이란 쪽에 피해있던 반군들, 이라크 내 종파 싸움으로 수천년 거주지인 늪지대(마시랜드)를 잃어버리고 난민화한 마시족들, 이도저도 아니지만 그저 불쌍하게 등 터져야 하는 이라크 모든 국민들. 부시의 미사일에 맞아야 하는 사람들, 후세인의 전쟁에서 총알받이 돼야 하는 사람들, 그들 모두 불행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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