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오르한 파묵, 그리고 터키라는 나라

딸기21 2006. 10. 13. 23:34
728x90

터키의 과거사를 비판했다가 재판까지 받았던 소설가 오르한 파묵이 대표작인 '내 이름은 빨강'으로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12일 스웨덴 한림어의 결정이 발표된 뒤 터키에서는 "터키 문학의 더없는 영광"이라는 환호와 함께 보수주의자들의 비아냥이 쏟아지면서 엇갈린 반응이 터져나왔다. 같은 날 프랑스에서는 옛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비판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터키는 하루 동안 국제적인 영광과 오명을 함께 껴안은 셈이 됐다.




작가가 아니라 배우 같군요, 파묵 선생.


터키인들 `환호' 한쪽에선 `냉소'


파묵의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터키 정부와 문학계는 일제히 환영과 축하를 보냈다. 이스탄불의 작가 쳉기즈 악타르는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그는 현대 터키의 깨어있는 의식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며 수상을 기뻐했다. 터키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문학 부문에서 나온 것에 대해서도 문화계는 환호하는 분위기다. 터키출판인연합회 메틴 젤랄 의장은 터키 문학이 세계에 더 많이 알려지게 될 것이라면서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한켠에선 냉소와 비아냥도 이어졌다. 파묵은 오스만제국과 현대 터키공화국의 아르메니아인·쿠르드족 학살을 비판했다가 지난해 국가모독죄로 기소됐었다. 법원은 무죄판결을 내렸지만 터키의 보수파들은 파묵이 반(反)터키적, 반애국적으로 서구 취향에 맞는 발언들만 한다며 비난해왔다. 이번 수상을 놓고서도 보수단체 지도자인 케말 케린시즈는 "우리 가치와 상관없는 상을 받은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파묵의 수상에 곤혹스러운 처지가 된 터키 정부는 "정치와 관계 없이 그는 노벨상을 받을 만한 훌륭한 작가"라는 입장만을 밝혔다.


끝없는 논란, 터키의 `과거사'


프랑스 하원은 파묵이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된 날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부정하는 행위 자체를 범죄로 취급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찬성 109대 반대 19로 통과된 이 법안은 사회당 주도로 만들어졌다. 법안은 오스만제국이 1차 세계대전 뒤인 1915∼19년 아르메니아인 150만 명을 학살했다고 명기하면서 이를 부정하는 사람에게는 1년 이하의 징역과 4만5000유로(약 54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나치 독일이 저지른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는 사람을 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반인류적 범죄들을 부정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다.

터키는 이 법안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스탄불 등 터키 곳곳에서는 법안을 비난하는 반 프랑스 시위가 잇따랐다. 터키 외무부는 법안이 최종 채택되지 않도록 모든 외교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터키는 오스만 제국 하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이 살해된 것은 사실이지만 프랑스 의회가 주장하는 것 같은 인종청소(genocide)는 아니었으며 사망자 숫자도 크게 부풀려졌다고 주장한다. 또 아르메니아에서도 수많은 터키인들이 학살당했다는 것이 터키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학살’이 문제인가 ‘이슬람’이 문제인가


프랑스 법안에 대해서는 유럽연합(EU)과 프랑스 정부조차도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 내각의 유럽연합장관 카테린 콜로나는 "역사를 법으로 쓰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이 법안이 불필요한 외교마찰을 일으킬 것이라 걱정했다. EU는 `문명 간 충돌'을 부추기는 듯한 법안이 터키와 아르메니아의 화해에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 나온 이런 우려들과 별개로, 법안은 여러 가지 논란거리를 안고 있다. 항상 모든 사안에는 여러 가지 측면들이 섞여 있고, 프랑스의 법안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잘못들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터키에 대한 유럽의 비판에 편견과 차별의식 같은 것은 전혀 들어있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일본이 과거사에서 껄쩍지근한 모습을 보일 때마다 우리는 격분한다. 그런데 서양 언론들은 몇몇 황당한 작자들이 광화문에서 손가락 자르는 ‘쌩쑈’를 하는 장면을 외신으로 내보낸다. 오리엔탈리즘의 잣대는 어디에나 스며 있다. (물론 우리 안에도 많이 있다!)


여전히 불투명한 터키의 미래


파묵의 영광과 터키에 대한 유럽의 비판, 그에 대한 터키 내부의 엇갈리는 반응들은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터키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터키는 경제적인 이유로 EU에 들어가고 싶어하고, 그 문턱을 넘기 위해 사형제 폐지 등의 `개혁' 조치를 취했다. 반면 기존 EU 회원국들은 터키인들의 대량 유입을 우려하면서 문화적·사회적 격차를 내세워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유럽은 터키에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인정하고 사과할 것 ▲파묵에게 적용됐던 `국가모독죄'처럼 비민주적인 법률들을 없앨 것 ▲쿠르드족 탄압을 중단할 것 등을 요구한다.

나는 터키라는 나라를 정말 좋아한다(터키인들도 우리를 ‘형제의 나라’라며 좋아해주니 기쁠 따름이다). 터키에는 역사와 자연과 문화와 예술과 시장과 향신료와 모스크와 성당과 버섯지붕 요정집과 신전의 기둥과 새파란 하늘 올리브 토마토 지중해 맛있는 아이스크림과 그걸 파는 유머러스한 아저씨들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야 소피아를 안은 이스탄불이 그곳에 있다.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를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프랑스의 법안은 일리가 있다. 과거를 부정하려는 자들 치고 제대로 된 놈들 못 봤다. 프랑스 의원들이 몇 %의 원칙과 몇 %의 편견으로 법안을 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터키 정부가 자기네 안의 약자들에게 하는 짓을 보면 돌을 던지고 싶어진다. 터키는 쿠르드족 3만여 명을 죽였고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말살하려 했고(하고 있고) 물 끊고 전기 끊고 굶겨 죽이려는 짓까지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내 이름은 빨강


파묵은 이스탄불에 보내는 찬가인 ‘내 이름은 빨강’에서 근대와 중세, 서양과 동양,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혼란을 현란하게 묘사하면서 힘겨운 줄타기를 벌인다. 옛 가치관과 새로운 가치관 사이에서 그는 ‘전통을 지킬 것’을 말한다.

동시에 (생긴 것도 근사한) 이 멋진 작가는 자기 나라가 저지른 잘못들에 대해서 눈 감아서는 안 된다면서 이슬람 꼴통들이 ‘서구의 잣대’라고 하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원칙들을 옹호한다.

터키 정부는 세속주의 근대화를 지향하면서 소수민족을 탄압한다. 터키인들은 유럽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만 한편에선 이슬람 강경론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터키 정부는 점점 강해져가는 자국민들의 반 서양-이슬람 정서와 EU의 요구 사이에서 혼란스런 모습만 보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파묵 외에도 많은 작가들이 체제를 비판했다가 처벌당할 위기에 처해있다면서 "터키인들은 파묵의 수상을 그의 정치적 입장과 억지로 떼어내 생각하려 애쓰고 있다"고 꼬집었다.



■ 오르한 파묵 공식 홈페이지 http://www.orhanpamuk.net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