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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세상]삼성의 ‘수임료 대납’ 의혹 불거진 미국 로펌 에이킨검프는?

딸기21 2018. 2. 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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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뢰플러는 미국 텍사스주 출신으로 공화당 연방 하원의원을 지냈고, 2008년에는 존 매케인 대선후보의 선거자문과 모금활동을 맡았습니다. 미국 대선을 3년 앞둔 2015년 그의 이름이 다시 언론에 등장했습니다. ‘부시 가문의 아들’로 당시만 해도 공화당 유력 대선주자로 꼽혔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의 선거캠페인을 지원하는 모금기구를 그가 이끌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제 빌라레알이라는 기업 컨설턴트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국무장관 시절이던 2010년 중국 상하이 세계엑스포 미국측 커미셔너로 일했던 사람입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에는 클린턴을 위해 ‘미국을 위한 힐러리’라는 이름의 모금활동을 했습니다. 


미국 워싱턴의 에이킨검프 본사. _ 위키피디아


로펌들이 늘어선 거리 이름을 따서, 워싱턴의 로비업계를 ‘K스트리트’라 부르지요. 뢰플러와 빌라레알의 공통점은 K스트리트에서도 가장 잘 나간다는 법률회사 겸 로비업체 에이킨검프에 소속돼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민주당과 공화당, 클린턴 가문과 부시 가문의 대선캠페인을 맡았던 사람들이 실상은 같은 회사에 소속된 로비스트 겸 모금운동가였던 겁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유명 컨설턴트들, 로비스트들이 민주·공화 양당 예비후보들에 밀착해 뛰고 있다면서 대표적인 사례로 이들을 꼽았습니다. 에이킨검프의 도움을 빌린 건 클린턴이나 부시만이 아니었습니다. 버니 샌더스도 이 회사 소속의 로비스트들을 활용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에이킨검프 출신들은 대통령을 만들어내는 데에 실패했습니다. 공화당의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대선에서 당선됐기 때문입니다.

 

이 에이킨검프가 한국 뉴스에 등장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라고 의심받는 ‘다스’의 미국 소송비용을 삼성전자가 대신 내준 혐의를 포착한 검찰이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과 우면동 사무실, 이학수 전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장 주거지 등을 8일 압수수색했습니다. 다스는 2003년 5월 김경준 전 BBK 대표를 상대로 투자금 140억원 반환청구 소송을 냈고 2009년에는 에이킨검프를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임료는 삼성전자가 대신 지급했다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의혹들입니다. 

 

에이킨검프의 공식 명칭은 ‘에이킨 검프 스트라우스 호이어 & 펠드(Akin Gump Strauss Hauer & Feld LLP)’입니다. 1945년 로버트 스트라우스와 리처드 검프가 공동으로 설립했습니다. 세워진 곳은 텍사스였지만 이내 워싱턴으로 옮겨 로비업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지금은 세계 20개국에 사무실을 두고 있고, 직원은 1800명이 넘습니다. 그 중 절반인 900명 이상이 변호사들입니다.


소속 법률가와 캠페이너들을 통해 대선 후보 등 정치인들의 모금을 돕는 것은 물론이고, 직접 정치자금을 지원하기도 합니다. 시민단체 ‘책임정치센터’가 운영하는 ‘오픈시크리트(opensecrets.org)’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16년 민주·공화 양당에 총 252만달러를 기부했습니다. 로펌들 중 정치자금 기부액 순위로 3위였습니다. 거대 석유회사 엑손모빌이 2012년 대선 때 기부했던 금액과 비슷한 규모입니다. 이 회사는 해마다 미국 내 20대 로펌을 선정하는 ‘어메리칸로이어’ 잡지의 ‘A리스트’에 이름을 올립니다. 이 잡지에 따르면 에이킨검프의 2016년 연간 수입은 9억8000만달러에 이르렀습니다. 


미국 로펌들의 2016년 정치자금 기부액. _ 오픈시크리트 웹사이트


그러나 이 회사를 둘러싼 구설은 끊이지 않습니다. 대선이라는 큰 판이 벌어졌는데, 이런 로펌에서 트럼프 캠프에만 발을 끊었을 리 없지요. 대선 캠페인이 한창이던 2016년 7월, 트럼프의 선대본부장이던 공화당 선거전략가 폴 매너포트가 갑자기 교체됐습니다. 우크라이나 친러 정당의 로비 자금을 받은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비롯해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의 커넥션이 줄줄이 폭로되면서 ‘러시아 스캔들’이 불거졌지요. 지난해 5월 로버트 뮐러 특검이 이끄는 의회 특별조사위원회가 꾸려졌습니다. 

 

특검이 불러 조사하고 증언하게 한 대상 중에는 매너포트와 밀접한 관계였던 에이킨검프 소속 변호사 멜리사 로렌자도 있었습니다. 러시아 커넥션에 대해 에이킨검프가 무엇을 알고 있었고 어떤 관계였는지 미국 언론들이 의혹을 제기했지만 회사 측은 아무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최근 트럼프 변호인들이 트럼프에게 러시아 커넥션 관련해서 ‘특검 조사에 응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서 논란이 일었다는데,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바로 그런 조언을 했던 변호사 존 다우드도 에이킨검프에서 은퇴한 사람입니다.

 

실은 이 회사와 한국의 ‘인연(?)’도 처음이 아닙니다. 2013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 방미 때 워싱턴에 갔다가 인턴을 성추행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미국 내 변호를 맡은 것도 에이킨검프였습니다. 당시 윤 전 대변인을 위해 이 회사가 변호사 4명을 투입했는데, 수임료 없이 ‘서민 무료변호’ 프로그램을 적용했던 것으로 알려졌지요. 미국 대선 때에나 접하던 K스트리트의 로비업체 이름을 한국 뉴스에서 자꾸만 보게 되는군요. 정경유착도 나날이 글로벌해지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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