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구정은의 세상]라프토와 김대중, 그리고 이명박

딸기21 2017. 10. 19.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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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롤프 라프토(Thorolf Rafto). 노르웨이 베르겐 경제대학에서 경제사를 가르친 학자이자 인권운동가였던 사람이다. 

 

라프토가 인권 분야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공산정권 하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인 1968년 ‘프라하의 봄’ 때였다. 라프토는 체코 개혁파들을 지지하면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운동을 시작했고, 동유럽 민주화 전반으로 관심과 활동을 넓혀갔다. 1973년에는 소련의 오데사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 소련의 국내정치를 비판하는 칼럼을 이탈리아 신문에 실었다. 


1979년 라프토는 대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 프라하를 방문했지만 공산정권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을뿐 아니라, 심지어 공안요원들이 라프토를 붙잡아 구타하기까지 했다. 라프토는 1986년 64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당시 입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고통받았다고 한다. 라프토가 사망한 뒤 노르웨이에는 그의 이름을 딴 ‘라프토재단’이라는 인권기구가 생겼다.

 

라프토재단은 설립 이듬해인 1987년부터 세계에서 인권신장에 기여한 사람들을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라프토인권상의 초대 수상자는 라프토와 밀접한 관계였던 체코의 개혁파 정치인 지리 하이예크였다. 


라프토재단 웹사이트


세계적으로 유명한 라프토상 수상자들로는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1990년), 동티모르의 조제 라모스-오르타(1993년), 김대중 전 한국 대통령(2000년), 이란의 여성 인권변호사 시린 에바디(2001년) 등을 들 수 있다. 이 네 명은 라프토상을 받은 뒤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이 때문에 라프토상을 ‘노벨평화상의 시금석’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난달 라프토재단은 올해 수상자로 인도와 파키스탄 간 영토분쟁 지역인 카슈미르의 인권활동가 파르비나 아한저와 임로즈 파르베즈 두 사람을 선정했다. 노벨평화상 시상식은 매년 오슬로 시청에서 열리지만, 라프토평화상 시상식은 라프토의 고향인 베르겐의 국립극장에서 열린다. 

 

올해 수상자들을 전하면서 현지 언론들은 라프토상 주요 수상자로 김 전 대통령을 비롯한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을 다시 한번 소개했다. 라프토재단 웹사이트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설명하면서 “한국의 전 대통령,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지칠줄 모르고 일해온 공로로 2000년 라프토상을 수상했다”고 적었다. 재단은 또 “두 차례 투옥과 수많은 살해 시도 등을 겪으며 오랫동안 권위주의 통치에 맞서왔다”면서 “집권 기간 경제개혁 정책과 함께 북한을 상대로 ‘햇볕정책’이라 불린 정책을 펼쳐 평화롭고 민주적인 발전 그리고 근본적인 인권 존중을 향한 희망을 주었다”고 소개했다.

 

라프토는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다는 점, 그리고 독재정권의 고문으로 다치고 평생 고통을 안고 살아야 했다는 점 등에서 김 전 대통령과 공통점이 많다. 하지만 한국에서 김 전 대통령이 이 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노벨평화상 수상’에 가려져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다가 갑자기 라프토상이 물 위로 떠올랐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김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취소 청원을 하면서, 라프토상 취소 청원공작까지 했던 일이 드러난 것이다. 연합뉴스는 19일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 등을 인용해 “국정원 심리전단이 2010년 3월 김 전 대통령의 라프토상 취소공작 계획을 당시 원세훈 원장 등 수뇌부에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심리전단은 내부 보고서에서 노벨평화상을 취소시키려면 이보다 먼저 받은 라프토상부터 취소시키는 ‘단계적인 공작’이 필요하다면서 자유주의진보연합 간부를 통해 라프토재단에 서한을 보낼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라프토와 김 전 대통령이 살아서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됐다면 어떻게 말했을까.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이 깎아내리려고 여러 공작을 했다는데, 그런다고 김 전 대통령의 빛이 가려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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