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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뉴스] 임상시험 대상자 630명 중 여성은 43명...약품 시험에도 ‘성평등’ 필요

딸기21 2017. 8. 20.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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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업계가 신약을 만들어 출시하기 전에 통상 생쥐나 돼지 같은 실험동물을 상대로 임상시험을 합니다. 그 뒤에는 인체 대상 임상시험을 거칩니다. 시험대상이 되는 동물이나 사람의 체질이나 성별에 따라 약물에 대한 반응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표본’을 대상으로 시험을 하는지가 중요하지요. 동물 시험에서든 사람에 대한 시험에서든 암컷보다는 수컷을, 여성보다는 남성을 주된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여성에게 약물이 투여됐을 때의 치료효과나 부작용이 정확히 측정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의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나왔습니다. 


미국의 의사이자 저널리스트인 싯다르타 무케르지는 <의학의 법칙들>이라는 저서에서 “결핵 예방접종인 BCG는 임상시험에서 강력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 효과는 위도상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감소한다. 공교롭게도 결핵이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곳은 남쪽의 저위도 지역이다. 또한 임상시험들이 여성에 대한 대표성이 낮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사실은 동물 연구조차 암컷 마우스에 대한 대표성이 낮은 편이다”라고 지적합니다. 2010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버클리)의 어빙 저커 교수가 내놓은 조사결과에 따르면 동물 시험에서 수컷을 더 많이 동원한 연구사례가 암컷이 더 많았던 연구의 5.5배였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이 동물 시험에서 수컷을 많이 쓰는 것은 수컷들이 여러 속성이나 행동 면에서 암컷보다 다양성이 많다는 것이 실험실의 속설처럼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라고 어빙 교수 등은 지적했습니다. 

 

사진 Cosmos Magazine


NIH는 이미 1990년에 여성보건연구실을 따로 만들었고 1993년에는 임상시험 대상 여성 수를 늘리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여성에게 더 많이 나타나는 질환을 연구할 때에도 동물시험이나 인체 대상 시험에서 남성을 더 많이 연구할 경우 신약을 적용할 때 오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여전한 것으로 지적됩니다. 2014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와 여성건강연구소의 제이닌 클레이튼 박사는 임상시험에서 여성의 ‘대표성’을 높여야 한다며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는 논문을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싣기도 했습니다. 심혈관계 질환과 관련된 신약연구에서 여성 임상시험 대상자는 32%에 불과하다는 보고도 나온 적 있습니다. 그래서 2014년 NIH는 여성 시험대상자를 늘리기 위해 80여명의 연구자들에게 1000만 달러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여성 환자들은 남성보다 신약이 투여됐을 때 부작용 등의 우려가 1.5~1.7배 높다는 조사결과가 2001년 나온 적 있습니다. 하지만 약물에 따른 정확한 위험도 평가기준이 없어, 미 식품의약국(FDA)은 2013년 여성에게는 취침 전 약물 투입량을 절반으로 낮추라는 가이드라인만 내놨습니다.

 

한국에선 어떨까요. 2014년 식약처에서 허가된 국내 개발 신약의 초기 임상시험을 분석해보니, 28개 논문에 반영된 시험 대상자 630명 중에 여성이 포함된 것은 단 3건, 대상자 수는 43명에 불과했습니다. 또한 여성의 주요 사망원인인 뇌혈관질환 약물 임상시험에서 여성 참여율은 31%, 남성은 69%였습니다(출처 : “의약품 승인·사용” 정책 대상 / 2016년 특정 성별영향분석평가 연구보고서).

 

늦게나마 신약개발 임상시험에서 여성 참여를 늘리고 여성 환자가 많이 나오는 질환과 의약품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나서기로 했습니다. 여성가족부는 20일 ‘의약품의 승인·사용 정책’에 대해 특정성별영향분석평가를 실시하고, 관련 부처에 개선을 권고했다고 밝혔습니다. 특정성별영향분석평가는 여가부가 각 부처의 주요 정책과 법령을 분석해 특정 성(性)에 불리한 사항은 개서하도록 소관부처에 권고하는 제도입니다.

 

여가부는 의약품 임상시험에 남녀가 균형있게 참여하도록 하고 성별 분석을 강화하도록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권고했다고 합니다. 또 의약품 처방과 투약 때에도 성별 차이에 대한 정보를 전문가들이 많이 받아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유럽에서는 네덜란드, 독일, 스웨덴, 영국, 포르투갈, 프랑스 등 14개 국가가 ‘의약품 안전사용서비스(DUR)’ 시스템을 이용해 ‘성별 주의 내용’을 전문가들에 제공하는데, 한국에서도 이 시스템을 활용하도록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도 개선권고를 했습니다. 임상시험의 ‘젠더 균형’이 앞으론 이뤄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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