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경매에서 88억원에 팔려나간 셀피(셀카)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딸기21 2017. 6. 2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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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대중화된 뒤로는 모두가 셀피(셀카) 문화에 익숙하지만, 그런 문화가 생기기 반 세기 전에 이미 셀피를 시도한 작가가 있습니다. 팝 아트의 대부로 불리는 미국의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이 그 사람입니다. 

 

워홀의 ‘셀피’가 처음으로 경매에 나왔습니다. 1963년 뉴욕에서 자신의 모습을 찍어서 특유의 색채를 덧입힌 작품 <자화상(Self-Portrait)>입니다. 2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소더비 경매에 나왔고, 770만 달러(약 88억원)에 팔렸습니다. 사간 사람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매물로 내놓은 사람도 개인 소장가로만 알려졌습니다. 소장자는 1980년대에 이 작품을 구입했다고 가디언 등이 전했습니다.

 

앤디 워홀의 <자화상(Self-Portrait)>. sothebys.com


인스타그램도, 트위터도, 페이스북도 없던 시절에 워홀은 이미 소셜미디어와 셀피 시대를 예견한 바 있습니다. “미래에는 누구든 15분만에 유명인사가 될 수 있다”고 예언했던 일은 유명합니다. 이번 경매를 진행하는 소더비 현대미술 전문가 제임스 세비어는 50여년 전에 촬영된 워홀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지금의 사진찍기 문화와 워홀의 ‘자화상’ 사이의 연관성이 이처럼 뚜렷해보인 적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미래의 문화를 내다보는 워홀의 통찰력과 안목이 뛰어났다는 겁니다.

 

워홀은 마릴린 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 엘비스 프레슬리를 비롯한 당대의 아이콘들을 찍은 사진들로 작품을 만들었고, 그 작품들을 통해 이 스타들을 미술관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대중문화와 미술관 사이의 다리를 놓은 워홀에게, 스스로의 사진도 찍어보라고 말한 사람은 미술품 경매상 이반 카프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카프가 “사람들은 당신을 보고 싶어해. 당신의 모습도 대중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당신의 명성에 어느 정도 기여했지”라면서 촬영을 권했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워홀의 셀피, 아니 ‘자화상’이 촬영된 곳은 1963년 ‘36차례의 에설 스컬(Ethel Scull 36 Times)’을 찍은 바로 그 스튜디오입니다. 이 스튜디오는 지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휘트니미술관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워홀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자신의 모습을 찍었는데, 미술평론가들은 그의 자화상이 횟수를 거듭할수록 “언젠가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과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허약성에 대한 강박”을 담는 쪽으로 옮겨갔다고 말합니다.


앤디 워홀의 <은색 차의 충돌>. sothebys.com


워홀의 작품들은 명성에 걸맞게, 미술품 경매에서도 늘 최고가 행진을 펼쳐왔습니다. 미국 작가로는 경매 사상 최고가 작품 판매 기록도 워홀이 최근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장-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1960-1988)의 작품이 기록을 깼습니다. 바스키아가 1982년 남긴 <무제(Untitled)>라는 작품이 일본의 사업가이자 미술품 컬렉터인 마에자와 유사쿠에게 1억1050만 달러(약 1250억원)에 팔렸습니다.

 

이전까지 미국 작가의 작품 중 경매 최고가 기록은 워홀의 <은색 차의 충돌(Silver Car Crash, Double Disaster)>이 갖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2013년 1040만 달러에 거래됐지요.

 

미국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팔려나간 미술 작품은 얼마일까요. 2015년 2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비공개 경매에서 팔린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의 1892년작 <나페아 파아 이포이포(Nafea Faa Ipoipo·언제 결혼하니)>가 아마도 최고가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작품의 정확한 낙찰가는 발표되지 않았으나, 3억 달러에 육박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남태평양 섬 타히티의 소녀들을 그린 작품입니다. 

 

바젤미술관이 50년 가까이 개인 소장가에게서 빌려 전시해왔으나, 원래 소유주가 누구였으며 누가 사들였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카타르 쪽에서 사들였다”는 소문만 무성했지요. 카타르 정부는 현대미술가 마크 로스코와 데미안 허스트 등의 작품들을 비싼 값에 잇달아 사들였는데, 아마도 도하의 카타르박물관 쪽에서 고갱의 작품도 사간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나왔습니다. 

 

그 이전까지 가장 높은 값에 팔린 것은 2011년 4월 거래된 폴 세잔의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Les Joueurs de cartes)>로 2억5900만달러에 매매됐습니다. 역시 카타르 정부가 비공개 경매로 사갔으며, 그려진 시기도 고갱 것과 비슷한 1892~93년이었습니다. 3위는 파블로 피카소의 <꿈(Le Reve)>으로 2013년 1억5500만달러에 팔렸습니다. 


폴 고갱의 1892년작 <나페아 파아 이포이포(Nafea Faa Ipoipo·언제 결혼하니)>. 위키피디아


미술 관련 매체들이 꼽은 4위는 미국 추상주의 화가 잭슨 폴록의 <No.5, 1948>(1억4000만달러), 5위는 1997년 사망한 네덜란드계 미국 현대미술가 빌렘 데 쿠닝의 1953년작 <여인 II(Woman III)I>(1억3750만달러)입니다. 

 

하지만 비공개로 개인 간에 거래되는 작품이나 암거래되는 것들은 가격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순위는 매매가가 어느 정도 알려진 작품들에 한정됩니다. 이렇게 엄청난 값에 거래되는 미술 작품들은 거의 모두 19세기 이후의 것들입니다. 세상이 다 아는 더 유명한 고전 시기의 작품들은 많지만 18세기까지의 것들은 대부분 각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어 거의 매물로 나오지 않습니다. 

 

만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시장에 나온다면 값이 얼마일까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이 이 작품을 팔 리는 없지만, 보험료를 통해 추정할 수 있습니다. <모나리자>는 1962년 보험 가입 때 이미 1억 달러로 감정가가 매겨져 기네스북에 올랐습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7억8000만달러가 넘을 것이라는 추정치가 2014년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 외에 다빈치의 작품들이 1960년대에 비싼 값에 거래된 적도 있지만 이례적인 경우였습니다. 세계 미술품 시장에 초고가 시대가 열린 것은 1980년대였습니다. 이런 흐름을 주도한 것은 일본 미술품 수집가들이 선호하는 반 고흐의 작품들이었고요. 워홀과 피카소의 작품들도 수집가들의 지갑을 여는 단골들이었습니다. 88억원에 팔려나간 셀피는 워홀의 ‘브랜드 파워’를 입증해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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