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한국 사회, 안과 밖

망할 놈의 올랭피아

딸기21 2017. 1. 25.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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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누드 그림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경건병 걸린 사람들'로 몰아가는 글들을 몇 개 보았습니다. 여혐을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꼴페미' '신경과민증' 낙인을 씌우는 것에서, 이제는 엄숙주의자로 몰아가는 쪽으로 한 단계 또 진화가 이뤄진 모양입니다. 그 그림이 기분나쁘고 불쾌한 건 내가 '경건해서'가 아닙니다. 대통령같이 높은 사람을 모욕해서도 아닙니다. 여성을 '혐오'하려고 '의도'하지는 않았겠지요. 그렇게 무의식 중에 여성은 '여성의 몸'으로 보는 시각이 싫은 겁니다. 대통령이건 누구건, 여성들을 풍자하려면 발가벗기고 보는 그 태도가 불쾌한 겁니다. 그게 모욕적이고, 혐오로 느껴지는 겁니다.
미학적으로 후져서도 아니고, 특정 정치 진영에 불리한 결과를 만들어서도 아닙니다. 그런 퍼포먼스가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모자랐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모저모 생각해보고 성장하면 됩니다. 그런데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불쾌하다는 사람들에게 '니가 불쾌한 게 문제야, 니가 무식해서야'라고 오히려 다시 공격을 가하는 사람들이 싫은 겁니다.

_ NAVA


마네도 몰라? 올랭피아도 몰라? 이거 유서 깊은 거야~ 이거 패러디 한두 개가 아니었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흑인을 노예로, 원숭이로, 미개인으로 묘사한 그림들은 숱하게 많습니다(그 망할놈의 올랭피아를 포함해서). 이렇게 유서깊은 '장르'라면서 흑인을 원숭이로 지금 패러디하는 것을 옹호할 수 있을까요? 여성은 '최후의 검둥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남자들 누드도 패러디 대상이 된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더군요. 사회적 역학관계에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다는 전제 하에 가능한 얘기이지요. 동등하잖아~ 라고 우기지 마시길. 무슬림 비하 만평 그려놓고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샤를리에브도같은 짓입니다. 동료 무슬림 시민들에게 모욕감을 주고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한 뒤, 무슬림들이 시위를 하자 '저런 폭력적인 무슬림' 하며 비난한 율란츠포스텐 같은 짓입니다. 풍자와 패러디는 강자를 향해(그러므로 대통령을 패러디한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되, 아이덴티티를 겨냥해서 하면 안 되는 겁니다.

박근혜 벗긴 그림이 기분 나쁘다고 하면 "지금 때가 어느 땐데 그딴 거에 시비야"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데 여성 어쩌구야" 이러는 자들이 적잖이 보입니다. 문재인에게 불리해질 상황이면 기분 나쁘고 그들의 태도가 옳지 않아도 걍 가만히 입 다물고 있어야 하나요? 내가 왜? 내가 나가서 촛불을 든 건 민주당 후보 대통령 만들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에게, 최순실처럼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억지 자백을 강요하고 있다"라고. 야당이 이겨야 하니, 박근혜를 물리쳐야 하니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거예요'라고 말하라는 강요를 듣고 있다고.


(이런 이슈들에 대해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혼자 조금, 아주 잠깐 생각해봤습니다. 왜 나는 핫한 이슈들에 대해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1. 깊이 생각하기 귀찮아서 2. 생각을 정리하기 귀찮아서 3. 말다툼 생길까 무서워서... 세 가지 모두 같잖은 이유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끄적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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