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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딸기21 2017. 1. 17.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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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이반 일리치. 권루시안 옮김. 느린걸음


지난 가을에 라카페 들렀을 때 기어이 책을 사고야 말았다. 표지도 이쁘고 질감도 좋고. 올해의 첫 책은 사실 이걸로 하고 싶었으나 어쩌다 보니 다른 책들에 밀렸다. 일리치의 책들은 나오는대로 사 모아야지.



경제학에 가려진 삶의 축복


저는 필요라는 개념의 당위성을 해체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필요로 인식하고 경험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노동보다도 더 근래에 창조된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라고 정의하는 그것은 과거 시대에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필요와 그에 상응하는 과거의 그것은 사회의 수많은 전제 속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너무나 달라 서로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최근에 일어난 인식론적 단절이 우리가 '필요'라 부르는 것이 등장한 시점입니다. 

1960년대 이후로 필요를 갖는 것이 배움의 목표가 됐습니다. 필요를 갖도록 교육하는 게 갈수록 더 중요한 작업이 됐습니다. 서비스직 종사자들은 단순히 만족을 부과하고 관리하는 수준을 지나 필요의 느낌을 구체화하는 수준으로 옮겨감으로써 스키너화한 낙원으로 이르는 길에 무게를 더해 주려 합니다.

1970년대 동안 '기본적 필요'라는 용어가 경제학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경제학에 들어오면서 정치적 핵심어가 됐습니다. 새로운 부류의 경제학자들이 효율적인 필요 충족이라는 윤리를 바탕으로 정책 권고사항을 꼼꼼하게 마련했습니다. 

정치토론에서뿐 아니라 평상시의 대화에서도 사람을 정의할 때 충족되지 않은 '필요'라는 말이 갈수록 더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겨우 몇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33-36쪽)


'저개발', 즉 극도로 궁핍한 상태를 가리키는 낱말이 탄생한 날은 1949년 1월 10일입니다. 이날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제4항 계획의 시행을 알리는 연설을 하면서 이 낱말을 세상으로 불러들였습니다. 문맹이라는 낱말은 1982년 하버드대학교의 '하버드 에듀케이셔널 리뷰'에서 처음 명사로 사용됐습니다. 그 뒤로 전문적으로 정의 가능한 필요와 권리를 지닌 대상자에게 '미진단자', '미치료자', '미보험자' 같은 통계학 용어가 들러붙었습니다.

인간을 이처럼 궁핍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가 아는 어떠한 전통과도 단절된 것입니다. 현재 통용되는 평등의 의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바로 이 '비참한' 관점을 바탕으로 하는 정의입니다.

필요 담론 속에서 인간의 평등은 모든 사람의 기본적 필요가 동일하다는 확실성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개개인에게 내재된 위엄과 쓸모가 달라서 평등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결핍으로 인정받을 권리를 얼마나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가에 따라 평등하지 않은 것입니다. 필요로 정의되는 담론에서는 또 우리가 서로를 소외시킨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필요는 수요로 변환되면서 상대방과 우리 사이에서 상대방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중재합니다. 그러나 필요는 또한 바로 이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면제해 줍니다.

(37쪽)



평화의 사라진 의미


평화는 민족학적, 인류학적 현실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그저 비현실적인 추상에 머무르게 됩니다. 아주 최근까지도 전쟁은 평화의 여러 켜를 모조리 꿰뚫고 들어가 평화를 완전히 파괴할 수 없었습니다. 전쟁을 계속하려면 그 전쟁을 뒷받침하는 자급 문화가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통적 전쟁 방식은 민중의 평화가 지속되어야만 가능했습니다.

지배문화나 군대가 동원되는 전쟁을 다루는 역사학자는 문화 영역의 중심부에 대해 기술합니다. 이런 역사학자에게는 문헌 기록으로 기념비가 남아있고 돌에 새긴 법령, 상거래의 서신, 왕의 자서전, 진군하는 군대가 남긴 뚜렷한 흔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패배자 쪽을 다루는 역사학자에게는 이런 종류의 증거가 전혀 없습니다. 이들은 종종 지구상에서 지워져버린 주체에 대해, 그 흔적이 적에게 짓밟혀버렸거나 바람에 날아가 버린 사람들에 대해 기술합니다. 농민과 유목민, 마을 문화와 가정 생활, 여성과 아이를 다루는 역사학자에게는 고찰할 수 있는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들은 짐작을 바탕으로 과거를 재구성해야 하고, 속담과 수수께끼와 노래에 담긴 암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역사도 전쟁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로 약자가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상대와 충돌하는 모습을 통해 약자를 그리는 것입니다. 저항의 이야기를 나열하면서 과거의 평화에 대해서는 넌지시 서술할 뿐입니다.

오늘날에는 평화의 역사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평화의 역사는 전쟁 이야기보다 더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합니다. 

(50쪽)


평화를 위한다는 뜻의 팍스는 가난한 사람과 그들의 자급 수단을 전쟁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뜻이었습니다. 평화는 농민과 수도사를 보호했습니다. 팍스는 구체적인 때와 장소를 보호했습니다. 영주 간의 충돌이 아무리 피비린내 난다 해도 들판의 소와 이삭은 평화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땅의 평화'는 공용 환경의 활용 가치에 폭력이 개입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방패였습니다. 물과 들판, 숲과 가축 말고는 달리 자급을 이끌어갈 방법이 없는 사람들이 물과 초지와 숲과 가축을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었습니다. '땅의 평화'는 이처럼 전쟁 당사자 간의 휴전과는 달랐습니다. 근본적으로 자급 지향이던 평화의 의미는 르네상스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국민국가가 떠오르면서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 우리는 새로운 종류의 평화와 새로운 종류의 폭력 속으로 이끌려 들어갔습니다. 이 평화와 폭력은 모두 그 이전에 존재한 어떤 형태의 평화, 어떤 형태의 폭력과도 거리가 멉니다. 이제부터는 자급 자체가 '평화로운' 공격의 희생물이 됐습니다. 자급은 상품 및 서비스를 공급하며 점점 확장되는 시장의 먹이가 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평화는 추상을 중심으로 세워졌습니다. 이 새 평화는 호모 오이코노미쿠스, 즉 천성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 생산한 물자를 소비하며 살도록 만들어진 보편적 인간에게 꼭 맞게 재단됐습니다. 과거의 팍스 포풀리(pax populi, 민중의 평화)는 토착적 자율, 그 자율이 번성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그것이 재생산될 수 있는 다양한 양식을 보호한 반면, 새로운 팍스 오이코노미카는 생산을 보호했습니다. 팍스 오이코노미카는 필연적으로 민중문화와 공용물과 여성에 대한 공격을 부추깁니다.

첫째, 팍스 오이코노미카에는 사람은 스스로 쓸 것을 스스로 마련할 수 없게 됐다는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팍스 오이코노미카는 자급을 '비생산적'이라고 규정하고, 자율을 '비사회적'이라 부르며, 전통적인 것을 '저개발된 것'이라 낙인찍습니다. 둘째, 팍스 오이코노미카는 환경에 대한 폭력을 조장합니다. 

(58쪽) 

셋째, 팍스 오이코노미카는 남녀 간에 새로운 종류의 전쟁을 조장합니다. 이 전쟁 역시 이른바 '생산력의 성장', 즉 임금 노동이 다른 모든 형태의 노동을 완전히 독점해 나가는 과정에 따른 필연적 결과물입니다. 노동은 성별이 없다고 보면서도 노동의 기회에서는 극단적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보수를 받는 매력적이라 생각되는 일거리는 남성에게 먼저 돌아가고 여성은 그 나머지를 맡습니다. 보수가 없는 그림자 노동을 강제로 떠맡은 사람은 여성입니다. 지금은 그런 작업이 갈수록 남성에게도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론적으로는 모두가 평등하지만 그 절반은 자신의 성 때문에 불리합니다.

(60쪽)



빼앗긴 공용, 들판과 고요


여러분께서는 사람을 흉내 내는 기계가 사람살이의 모든 측면을 잠식해 들어오고, 또 사람을 기계처럼 행동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예견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확실히 이 새로운 전자 장치에는 사람과 기계가, 또 사람과 사람이 기계의 조건에 따라 '소통'하도록 강요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계를 주로 사용하는 문화에서는 그 기계의 논리에 맞지 않는 논리는 뭐든지 걸러 버립니다.

(63쪽)


'입주자'는 지낼 곳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 대상이며, 따라서 제가 정주라는 낱말로 가리키는 저 사회적, 공동체적 활동의 의무가 면제됩니다. 이제 정주의 자유를 고집하는 사람은 아주 부자이거나 유별난 사람으로 취급됩니다. 

이들은 침입자로, 불법 점유자로, 무정부주의자로, 골칫거리로 낙인찍힐 것입니다. 페루 리마의 휴경지에 들어가 정착하는 인디언, 40년 동안 점유하고 살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산비탈에서 경찰에 쫓겨났다 다시 돌아와 눌러앉는 파벨라도,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의 폐허를 개조하여 정주하려는 대담한 학생들, 뉴욕 사우스브롱크스의 불타버린 건물에 들어가려는 푸에르토리코인이 그렇습니다. 이들은 모두 쫓겨날 것입니다. 시민을 표준 수납창고에 보관해야 하는 단위로 정의하는 사회적 공리에 도전하기 때문에 쫓겨나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시민을 호모 카스트렌시스, 즉 수용되는 인간으로 보는 지금의 모형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탈자는 위험한 존재입니다. 도시가 어머니처럼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지만 그 이면에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음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80쪽)


사람이 사는 땅은 문지방 양쪽 모두에 있습니다. 이쪽에는 가정이 있고 그 반대쪽에는 공용(commons)이 있는 것입니다. 공용이 없는 정주는 있을 수 없습니다. 고속도로는 거리도 아니고 길도 아니며 수송을 위해 예약된 자원이라는 것을 이주민이 인식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저는 뉴욕에 새로 도착한 푸에르토리코인 중 차도 옆 인도가 광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까지 몇년이나 걸리는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독일 관료에게는 실망스럽겠지만, 유럽 곳곳에서 사는 터키인은 의자를 거리로 가지고 나와 잡담을 나누고, 내기를 하고, 거래를 하고, 커피를 대접받고, 노점을 엽니다. 차량은 문밖에서 남의 험담을 하는 것만큼이나 거래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이들이 깨닫기까지는, 공용을 떠나보내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82쪽)



부정가치와 엔트로피


진정한 낱말에는 함축이라는 후광이 있습니다. 그와는 달리 용어에는 함축이 깎여나가고 없습니다. 낱말을 후광처럼 에워싸는 함축은 바람에 울리는 풍경처럼 사람의 목소리에 울려 퍼집니다.

진짜 낱말에는 하나하나 본래의 장소가 있습니다. 풀밭에서 자라는 식물처럼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낱말은 덩굴처럼 땅바닥을 따라 퍼지고 또 어떤 낱말은 단단한 나무 같습니다. 어떤 모양으로 자라든 이런 낱말은 말하는 사람이 조절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하는 말에 자기가 말하려는 뜻이 담기게 하려고 애씁니다. 

(94쪽)


폐기는 인간의 존재에 따른 자연적 귀결이 아닙니다. 폐기라는 개념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1830년 이전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 전에는 폐기(waste)가 명사로든 동사로든 황폐, 파괴, 사막화, 붕괴 등과 연관됐습니다. 제거될 수 있는 무엇이 아니었습니다.

폐기를 만들어내는 인간 사회는 자기가 자리 잡은 곳의 흙과 물을 파괴하는 사회이며, 팽창해 나가면서 주변 지역을 점점 더 황폐화합니다. 

(103쪽)



사회적 선택의 세 가지 차원


공동체에는 저마다 타인을 대하는 특징적인 방식이 있습니다. 고대 후기에 이르러 서유럽 교회가 생겨나고서야 이방인은 곤궁한 사람,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이방인을 짐으로 바라보는 이런 시각은 서양 사회의 본질이 됐습니다. 외부 세계에 대한 이런 보편적 사명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서양이라 부르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외부인을 도움을 주어야 하는 사람으로 보는 인식은 시대에 따라 다른 형태를 취했씁니다. 고대 후기에 이르러 야만인은 우상 숭배자로 탈바꿈했습니다. 중세기 말에 이르러 이방인의 모습은 다시 한 번 탈바꿈합니다. 신앙을 위협하는 이교도는 야만을 교화하는 인본주의자 역할을 위협하는 미개인의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시기에 이방인은 처음으로 경제와 관련된 용어로 묘사됐습니다. 괴물, 원숭이, 미개인 등에 대한 수많은 연구를 살펴보면 이 시기의 유럽인은 미개인을 '필요'를 지니지 않은 인간으로 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자립하고 있으므로 미개인을 훌륭한 존재로 대접해야 마땅하지만 식민주의와 중상주의에 위협이 되었습니다. 미개인에게 필요를 부여하기 위해 원주민으로 고쳐 만들어야 했습니다. 

군나르 뮈르달이 지적한 대로, 원주민 고유의 필요라는 구성은 식민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식민지를 다스리는 데에도 필요했습니다. 서양은 이방인에게 새로운 가면을 씌울 때마다 옛 가면은 벗어버렸는데, 자기가 포기했던 모습의 한 단면으로 인식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개인이라는 구성이 필요했던 것은 교회 외부에서 인본주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독선적인 식민 지배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원주민이라는 개념이 결정적으로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마셜 플랜과 아울러 다국적 대기업이 세력을 확장하고 초국적 교육자, 치료사, 계획가들의 야심이 끝 간 곳을 모르는 무렵에 이르고 보니,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해 원주민이 느끼는 필요가 제한돼 있어 성장과 진보에 방해가 됐습니다. 이에 따라 원주민을 저개발지역민으로 탈바꿈시켜야 했습니다. 이것이 서양이 외부인을 바라보는 현재의 관점입니다. 

(124쪽)



언어는 언제부터 상품이 되었나


네브리하는 여왕에게 전문가의 장삿속이 담긴 권유를 늘어놓습니다. 네브리하에 따르면 여왕에게는 문법이 지금 필요한데, 그 이유는 콜럼버스가 곧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폐하께서 이상한 언어로 말하는 수많은 야만인을 굴복시키시고 나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새로 필요해질 것입니다. 바로 승자가 패자에게 마땅히 내려야 하는 법률,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갈 언어입니다."

최종적으로 누구의 언어 개념이 승리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언어는 권력에 빌붙는 전문가가 관리하는 또 하나의 도구가 됐습니다. 백성을 좋게 만들고 좋은 백성을 만드는 기구가 됐습니다. 언어는 연금술사가 새로운 세계에 맞는 새로운 인간을 만들 처방약에 넣는 한 가지 주재료가 됐습니다. 어머니가 말하는 토착어 대신 교회와 교실에서 교습하는 모어가 들어앉았습니다. 모어는 모유보다 몇 세기나 앞서 상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주적 주체가 시민 수혜자로 바뀌었습니다. 자연을 지배하고 그에 맞춰 백성을 향상시키는 일이 공공의 핵심 목표가 됐습니다. 자주적 주체는 국가에 연금된 사람이 됐습니다. 시민권을 행사할 수 있으려면 일차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념 때문에 이사벨라 여왕의 신민은 자율성을 잃었습니다. 

(190쪽)



물의 신화: 망각의 강과 H2O


레테의 정화수는 흐릅니다. 혈액이나 화폐 그리고 초기 산업 시대에 사회적 상상을 부풀리던 수세 배출수처럼 순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찍이 1616년 윌리엄 하비는 영국 왕립의학회에서 혈액이 인체 속에서 순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하비의 생각이 임상 의사들 사이에 널리 받아들여지기까지는 한 세기가 훨씬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피를 순환 매체로 재정의하려면 신체를 사회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전통적으로 살과 피는 상징으로 가득 차 떨리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관과 거르개로 구성된 기능 체계로 고쳐 만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18세기 말에 이르러 하비의 이론은 의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피가 활발히 순환해야 건강하다는 관념은 돈이 맹렬히 순환해야 부가 쌓인다는 중상주의자의 모형과 맞아떨어졌습니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영국 건축가들은 이 이론을 런던이라는 도시에 적용하기 시작했고, '불멸의 하비' 덕분이라며 그에게 거듭 공을 돌렸습니다. 이들은 도시를 사회적 신체로 보고, 물이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오물을 곧장 도시 밖으로 운반해 나가야 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몸이 도시 속으로 끊임없이 흘러들어와 인간의 몸처럼 노폐물과 땀을 씻어 내야 하는 것입니다.

하비가 피를 순환의 매개물로 만들어 현대 의학의 신체를 창조한 것처럼 채드윅과 워드는 동료들과 함께 수세를 창조하여 도시를 끊임없이 찌꺼기를 제거할 필요가 있는 장소로 만들어냈습니다. 이로써 신체나 경제처럼 도시 역시 도관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체계로 구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오늘날 물은 도시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드는데, 들어올 때에는 상품으로, 나갈 때에는 폐기물이 되어 경계를 넘습니다.

(200-201쪽)



신체의 역사, '신체 생산자'의 출현


건강한 신체의 추구는 국민국가가 등장하면서 하나의 대의명분으로 처음 등장합니다. 민중이 '인구'라는 하나의 자원을 이루게 됐습니다. 건강은 입대의 질적 기준이 됐고 그 뒤 1세기에는 노동자에게 그리고 나중에는 어머니에게 적용되는 기준이 됐습니다. 프러시아, 또 프랑스에서는 위생경찰에게 보건을 집행하는 임무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건강을 추구하는 것은 또 개인의 권리로, 제퍼슨식 민주주의에서 행복 추구권의 물리적 실현으로 이해됐습니다.

12세기에 대해 강의하면서 제가 초점을 맞춘 것은 특정 관념의 등장에 대한 것이었고, 고대에는 똑같은 게 없었으나 우리 시대에는 확실성으로서 경험되는 주제와 개념이었습니다. 이런 것 가운데 한 가지는 우리가 '나 자신'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은 십자군, 대성당, 유럽의 소작농, 도회지와 함께 등장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신체의 역사가 형태가 잡혀감에 따라 우리는 역사적 순간이 저마다 어떤 식으로 시대 특유의 신체로 구체화됐는지 이해하게 됐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신체를 한 시대의 사조가 독특하게 육화한 것으로 해독하기 시작했습니다. 

(299쪽)


저는 살아가는 기술에는 빛과 그늘이라는 두 가지가 모두 존재함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즉 즐기는 기술에 대해서도 고통을 감내하는 기술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즐거움과 고통을 겪어냄은 모두 추상 개념이며, 감각이 문화적으로 체현된 두 가지 상반된 형태를 가리킵니다. 즐거움은 쾌락이 문화적으로 구체화된 것을 가리키며, 고통은 좌절이나 우울, 고민, 아픔의 정신적 위상을 가리킵니다.

(301쪽)


시대마다 전통적으로 '육체'라 불리는 인간의 조건을 경험하는 나름의 양식이 있습니다. 저의 신체와 같은 신체를 12세기에는 왜 찾을 수 없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면서, 오로지 한 세대에만 해당되는 사회적 구성의 결과물인 1960년대의 의원성(醫原性) 신체를 알아보게 됐습니다. 어떤 시대에서도 신체는 맥락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특정 집단이 하나의 시대를 경험할 수 있을 때 신체는 그 시대의 느낌을 형성합니다. 

우리 신체의 사회적 발생에서 수송 수단은 의료만큼이나 큰 역할을 합니다. 날마다 수송해 주어야 하는 신체는 몇세대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베트남 전쟁 동안 미국인의 신체는 호모 트란스포르탄두스, 즉 수송 대상인 인간이 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지금 우리의 이 신체는 암에 놀란 정신 안정제 소비자로 풍자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의원성 신체가 해체되면서, 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첨단 기술을 위한 신체로 전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의료 시설이 신체의 사회적 구성에 미치는 영향은 20세기 중반 무렵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새로운 가구나 자동차를 고안할 때에는 의학적 기준을 따랐습니다. 새로운 가구나 자동차를 고안할 때에는 의학적 기준을 따랐습니다. 학교와 매체 때문에 우리의 상상 속은 의학적, 정신학적 환상으로 범람했습니다. 그리고 복지 구조와 보험 체제 때문에 모든 사람이 환자가 되도록 훈련되었습니다. 우리는 의료라는 매개자가 신체적 현실을 구성하는 독점권을 향해 다가간 역사의 특별한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이 순간 첨단 기술과 약초 지식, 생명공학, 자율 체육이 어지러이 뒤섞이면서 감각되는 신체를 비롯한 여러 가지 감각되는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1960년대에 의료 종사자는 신체가 무엇인지, 어떤 느낌이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사람을 객관화하는 권한을 다른 여러 매개자와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을 객관화하여 신체 또는 정신으로 규정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하여, 자신을 객관화하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모형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를 자신의 신체 '생산자'로 생각합니다.

이 토양으로부터 어쩌면 자신을 복잡한 컴퓨터 프로그램에 기여하는 존재로 경험하거나 자신을 컴퓨터 프로그램의 한 부분으로 보는 사람들이 태어날지도 모릅니다. 

(304-305쪽)



생명은 지옥으로!


소유적 개인주의 이념 때문에 생명을 하나의 재산으로 말하는 방식이 만들어졌습니다. 가치론에서 생명의 소유는 최고의 가치로 해석됩니다. 호모 오이코노미쿠스가 윤리적 성찰의 기준이 됩니다. 소유 내지 전유하는 행동을 실행할 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지가 '인간됨'의 기준이자 법적 주체의 존재 기준으로 바뀝니다.

모든 것을 기계론적으로 인격화하는 풍조가 널리 퍼졌습니다. 박테리아도 '경제적' 행동을 모방하며, 자신의 환경에서 희소하게 존재하는 산소를 차지하려고 죽고 죽이는 경쟁에 들어가는 것으로 상상합니다. 전 우주에 걸쳐 점점 더 복잡한 생명체 간에 벌어지는 발버둥이 과학 시대 인류의 바탕 신화가 됐습니다.

생태학은 생물과 서식지 간의 상호관계에 대한 연구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용어는 또 알 수 있는 모든 현상을 서로 연관시키는 철학적 방법을 가리키는 말로도 점점 더 많이 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인공두뇌적 체제에 의한 사고를 나타내는 말로 쓰이는데, 이 사고는 모형인 동시에 실시간으로 작용하는 현실입니다. 즉 하나의 과정으로서 스스로를 관찰, 정의하고 규제, 지속합니다. 이런 양식의 사고에서 생명은 체제 그 자체와 같다고 간주됩니다. 생명을 체제를 가려버리는 동시에 성립시키는 추상적 물신인 것입니다. 우주를 하나의 체제로 이해하면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관리할 수 있는 존재물에 비유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323쪽)



품위 있는 침묵에 대한 권리


철학자로서 저는 어떤 화제의 경우에는 직접적 논의에 끌려들어 가기를 거부해야 하는 강력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대량 학살 기계는 논리학자가 '특별한 인식론적 지위'를 부여하는 개념입니다. 제가 핵폭탄에 대해, 그리고 핵발전소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때는 오로지 그것이 대량 학살 기계임을 증명하는 논리와 함께 말할 때뿐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일단 증명되고 나면, 그때부터는 발언자로서 저의 지위를 인간 이하로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이 개념을 사용해 문장을 말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이 문제를 논의를 통해 다루는 사람들과 마주칠 때 저는 오로지 비명을 지를 수 있을 분입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비명은 말보다도 침묵에 더 가깝습니다. '엉엉' 소리처럼, 특정 방식의 통곡과 비명은 침묵과 마찬가지로 언어라는 영역 밖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표현 형식은 말보다 더 큰 소리로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공포의 비명이라는 틀 속의 침묵은 언어를 초월합니다. 

만일 제가 원자폭탄은 무기가 아니라 대량 학살 기계라 주장하고 또 과학자로서 핵에너지는 필연적으로 미래 세대를 위험에 빠뜨린다고 주장하면, 제 논지의 무게는 복잡한 주제를 다루는 저의 능력에 의존하게 되고 제 말의 신빙성은 저의 사회적 위치에 달리게 됩니다. 삶에 대한 믿음과 자기 아이들을 위한 희망을 품고 있는 현명한 사람이라면 세상 누구라도 그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방법으로서 침묵으로 항거하면서 말할 수 없는 공포를 표출할 수 있습니다. 침묵을 지킨다는 결정, '아니오, 사양합니다' 하는 의례 행위는 대다수가 간단명료하게 말할 수 있는 목소리입니다.

침묵을 지키는 사람은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침묵은 확산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침묵을 깨뜨리려는 시도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평화 토론'에 참여하도록 요구할 것입니다. 침묵하는 사람에 대한 마녀 사냥까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논의를 벗어나 침묵할 권리, 참여자 자신의 존엄이 위태롭다고 판단될 때 논쟁을 끝낼 권리를 이 시점에서 되찾고 옹호해야 합니다. 공포에 질린 침묵을 전파할 권리 또한 있는 것입니다.

(337쪽)


나 또한 침묵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나 또한 침묵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왜냐하면

대량 학살에 관한 어떤 토론에도 끌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이며,

핵폭탄은 전통적 의미의 무기가 아니라 인간의 말살 이외에는 어디에도 사용될 수 없기 때문이며,

핵폭탄을 배치하는 행위는 평화와 전쟁 모두를 무의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며,

여기서 침묵이 말보다 더 잘 말해주기 때문이며,

이런 폭탄의 사용을 거부하는 조건을 논의하는 순간 내가 범죄자가 되기 때문이며,

핵 억지력이란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이며,

나의 자살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협박하지 않기 위함이며,

나치 치하에서 대량 학살을 둘러싸던 '침묵 영역'이 '논의 영역'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며,

이 강제적인 평화 논의 영역에서는 오직 나의 침묵만이 분명하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며,

공포에 질린 내 침묵은 그 누구도 이용하거나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며....


무엇이든 여러분에게 맞지 않는 항목은 빼십시오. 침묵을 지키려는 여러분 자신의 이유를 적어 넣으십시오. 그리고 배포하십시오.


(1983년 6월 9일 독일 하노버 제20차 독일 개신교 교회의 날 행사에서 낭독, 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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