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구정은의 세계]세계가 눈 감았던 ‘트럼프 현상’

딸기21 2016. 11. 9. 17:08
728x90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겠다며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했을 때, 반세기 동안 쌓아올린 유럽 통합의 틀을 감히 깨뜨리는 선택을 할 것이라고 보는 이들은 없었다. 영국 내 일부 극우파와 반유럽파의 선동인 줄만 알았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마찬가지였다. 트럼프가 대통령은커녕 공화당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도 없다고 했다. 예상은 뒤집혔다.

 

여론조사가 틀린 게 아니라 '해석'이 틀린 것이었다. 브렉시트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양측의 격차는 크지 않았다. 트럼프와 클린턴 지지율 조사에서도 막판 판세는 거의 동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렉시트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트럼프는 벽을 넘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예측한 것은 주류 미디어와 연구기관들이었다. 브렉시트 찬반 여론의 크지 않았던 격차, 트럼프와 클린턴의 근소한 득표율 차이가 가지는 의미를 포착하지 못했던 것이다. 작은 차이 밑에 숨어 있는 비주류의 거대한 반발을. 스스로를 주류라고 믿었던 이들의 자신감, 지금과 같은 세계가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었던 안일함이 인지의 왜곡을 가져온 것으로 봐야 옳다.

 

수치로는 크지 않았지만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그 ‘작은 차이’에 지금의 세계가 담겨 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미 대선에 대한 예측을 뒤집어 엎은 소외된 이들의 좌절감이 그것이다. 경고음은 전부터 흘러나왔다. 미국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지난 2월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 바람이 일자 이렇게 적었다. “트럼프가 비정상이라고 하는 건 진실이 아니다. 험악한 말들, 정당과 정책의 몰락, 정치를 이용해 문화적 전투와 정체성 전쟁을 하려는 경향 등은 우리가 지난 30년 동안 봐온 현상의 절정판일 뿐이다.” 비슷한 시기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는 공화당이 생명을 불어넣고 키운 프랑켄슈타인”이라며 트럼프를 마치 미국에 존재하지 않던 돌연변이로 취급하려는 태도를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퓨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중 정부를 신뢰한다고 말한 사람은 19%에 불과하다. 1966년 77%를 기록했던 신뢰도는 점점 떨어져 역대 최저 수준이다. 정부에 대한 감정은 이제 분노(22%)보다 좌절(57%)이 세배 가까이 높다.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는 6일 블로그에 “노동자를 포기한 민주당도 트럼프를 있게 한 공범”이라며 “지난 24년 중 16년 동안 집권하면서 최상위층을 위한 경제를 공고히 하는 부와 권력의 악순환을 바꾸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당이 도시의 고소득 유권자와 대기업에 대한 의존을 끊고 노동자들이 돌아오게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영국의 노동자들은 유럽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미국의 백인 노동자들은 클린턴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일자리를 잃고 중산층에서 밀려나게 된 된 백인 노동자들은 ‘1%가 모든 것을 갖는 모순을 바꾸자’고 한 버니 샌더스보다 모든 잘못을 이민자와 외국에 돌리는 트럼프에게 더 열광했다. 애초 이들은 트럼프에게 정치적 해답을 바라지 않았다. 정치를 혐오하는 이들은 수퍼히어로를 원했다. 그 심리 밑바닥에 깔린 구조적 모순과 분노가 얼마나 큰지 주류는 들여다보지 않았다.

 

극우 포퓰리즘은 세계에서 급속히 세를 얻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엘리트 정치에 대한 혐오, 법과 질서마저 무시하는 권위주의적 태도, 반난민·반무슬림을 내세운 인종차별주의를 공통점으로 한다. 극우 언론 브레이트바트는 극우파의 부상을 ‘아랍의 봄’에 빗대 ‘애국자의 봄’이라고 표현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이민자와 난민이 ‘애국자들’의 적이다. 중동에서는 서구 문화를 추종하고 미국을 추종해온 사람들이 좌절한 젊은이들의 적이다. 

 

난민 위기도, 테러리즘도 모두 무자비한 세계화의 틈바구니에서 자라났지만 원인과 해법을 직시하려는 노력은 적었다. 그 결과가 ‘아웃사이더 미국 대통령’이라는 충격으로 나타났다. 이대로라면 내년 4월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파 마린 르펜이 당선되고, 독일에서 극우파가 연방의회에 진출하고,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이 브레이크 없는 권위주의로 치닫고, 불평등한 자본주의의 폭주를 억제하기 위한 동력은 고갈되고, 개인뿐 아니라 국제사회마저 각자도생으로 치닫는 상황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연대와 개방과 평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으나, 그들의 숫자는 결코 과반이 아님을 세계가 직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