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유전자 조작의 시대, 생명의 미래는

딸기21 2016. 10. 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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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캐나다에서 ‘S-201’이라는 법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유전자 차별 금지법’이라고 불리는 이 법안은 유전자 검사를 근거로 한 모든 차별을 금지하며, 시민들이 기업의 유전자 검사 요구를 거부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골자다. 토론토스타 등에 따르면 법안은 지난달 상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고 하원 표결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법안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기업이 취업 희망자에게 ‘유전자 테스트’를 요구한다면? 보험회사가 유전자 테스트를 거쳐 질환이 걸릴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의 가입을 미리 걸러낸다면? 미래의 일이 아니다. 캐나다에서 S-201 법안을 발의한 제임스 코완 의원은 헌팅턴병 유전자를 보유한 한 24세 남성의 사례를 들어 상원 찬성 표결을 이끌어냈다. 유전질환인 헌팅턴병은 증상이 나타나기 전이라도 유전자 검사를 통해 발병 여부를 예측할 수 있다. 이 남성은 유전자 검사에서 ‘양성’ 즉 발병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20년 후 질병’ 내다보고 “해고”

 

청년이 일하던 회사에서 유전자 검사 결과를 물었고, 알려주자마자 청년은 해고됐다. ‘미래의 질병 가능성’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유전자 공정성을 위한 캐나다 시민연합’의 의장인 베브-하임 마이어스는 의회에 나와 “이 청년이 발병하기까지는 20년은 더 걸릴 텐데도 해고당했다”고 증언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유전의 신비가 속속 베일을 벗으면서 우리는 새로운 생명윤리, 새로운 가능성과 위험성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몇 해 전 일본에서 체외수정한 수정란의 염색체를 검사하는 ‘착상 전 검사’ 연구가 허용돼 논란이 빚어졌다. 사전에 미리 알 수만 있다면, 유전적 질환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배아를 굳이 선택할 부모가 있을까? 인공수정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검사가, 결국에는 ‘선택적 출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제이미(오른쪽)는 형 찰리(왼쪽)를 살리기 위해 태어난 ‘구세주 아기’다. 두 아이는 모두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_ 데일리메일


영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맞춤형 아기’가 이슈였다. 손위 형제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낳는 아기 문제다. 영국 의회는 2008년 5월 불치병에 걸린 손위 형제자매를 살리기 위해 인공수정으로 ‘치료용 맞춤 아기’를 낳는 것을 허용했다. 논란이 시작된 것은 2002년이었다. ‘다이아몬드-블랙팬 빈혈’이라는 희귀병에 걸린 찰리라는 네 살배기 아이를 살리기 위해 부모가 유전자 검사 허가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부모는 관련 법규가 없는 미국으로 옮겨가 유전자 검사를 거친 수정란을 착상시켜 둘째 아이를 낳았고, 둘째 아이의 골수를 추출해 찰리에게 이식했다. 어떤 이들은 유전자를 골라 아기를 낳는 것을 ‘디자이너 베이비’ 혹은 ‘스페어 아기’라 비판한다. 만일 태반과 골수를 넘어 신장을 비롯한 이식용 장기를 구하기 위해 아기를 낳겠다는 부모가 있을 때 이 또한 허용해야 할까?

 

이런 물음에 단답형으로 답하기는 쉽지 않다. 과학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우리의 몸과 생명에 대한 오래된 상식들을 깨부수고 있다. 법률이나 사회적 합의는 물론이고, 과학기술자 사회에서조차도 합의된 것이 없는 상황에서 유전공학 기술이 발전한다면 우리는 유용하면서도 매우 위험한 도구를 손에 쥐게 되는 셈이다.


‘생각의 변화’보다 빠른 ‘몸의 변화’

 

1978년 7월25일 영국에서 세계 최초의 시험관아기 루이스 브라운이 태어났다. 현재 지구상에서는 연간 300만명 이상이 인공수정으로 태어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을 비롯해 고령화·저출산 문제에 직면한 나라들이 인공수정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아랍계 주민들에 맞서 유대계 인구증가를 꾀하는 이스라엘의 경우는 인구 대비 불임치료 시설 숫자가 세계 1위이며 인공수정 출산이 전체의 5%에 육박한다. 인공수정이 정치적 맥락과도 맞닿고 있는 것이다.


1978년 태어난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 루이스 브라운과 부모.


지난달 27일(현지시간)에는 세 사람의 DNA를 물려받은 아기가 탄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요르단인 부부가 5개월 전 낳은 사내 아기 ‘하산’이 세계 최초의 ‘세 부모 아기’가 됐다고 과학전문매체 뉴사이언티스트가 보도했다. 하산의 엄마는 신경장애를 일으키는 미토콘드리아 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물질인 미토콘드리아는 모계로만 유전된다. 


부부의 요청을 받은 미국 의료진은 엄마의 난자에서 유전정보가 들어 있는 핵을 추출했다. 그러고는 미토콘드리아 이상이 없는 난자를 기증받아 핵을 제거한 뒤, 그 자리에 엄마의 난자 핵을 넣었다. 이렇게 조합된 난자를 아빠의 정자와 체외수정시켜 태어난 하산은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지만,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만큼은 난자를 기증한 여성에게서 물려받았다.

 

미국 새희망생식센터의 존 장 박사가 ‘세 사람의 DNA’를 물려받아 태어난 아기를 안고 있다. _ 새희망생식센터


의료진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윤리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했지만 유전적 결함을 수정란 단계에서 미리 제거한다는 것은 엄청난 윤리적 이슈다. 반대하는 이들은 “유전자를 기준으로 아기를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 경고한다. 2014년 2월 이 문제를 두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전문가 회의를 열었을 때에는 “다음번 유전자조작 상품(GMO)은 아기냐”는 비판까지 나왔다. 세계에서 이런 시술을 합법화한 나라는 영국뿐이다.

 

2009년 7월 영국 뉴캐슬대학과 북동잉글랜드 줄기세포연구소(NESCI) 연구팀은 배아줄기세포를 이용,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인간 정자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듬해 5월 미국 생명공학벤처 크레이그벤터연구소 연구팀은 미코플라스마 미코이스라는 박테리아의 유전정보를 컴퓨터로 읽은 뒤 연구실에서 화학적으로 복사했다. 이렇게 만든 DNA 세트를 다른 박테리아에 집어넣어, 인간이 ‘써준’ 유전정보가 입력된 생명체를 만들었다. 이미 미국에는 인공생명 시대를 바라보며 게놈 합성에 몰두하는 벤처기업들이 여럿 있으며, 기존 생물학과 구분해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났다.


어디까지가 ‘인간’인가

 

영국에서는 2006년 11월 런던 킹스칼리지와 뉴캐슬대학 연구팀이 소의 배아에 인간 DNA를 접목시키는 실험 허가를 신청해 ‘의료 목적에 한해’ 허용한다는 결정을 받아냈다. 소 배아에서 유전자 정보를 제거한 뒤 인간 DNA를 이식해 배아줄기세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배아는 영양물질만 소에게서 얻었을 뿐, 유전적으로는 99.9% 인간 배아다.

 

머지않아 미래에 우리가 인체 유전자의 신비를 100%는 아닐지라도 상당 부분 규명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로 변하게 될 것인가. 


영국 과학자 이언 윌머트 박사와 ‘복제양 돌리’. 1996년 세계 최초로 체세포 복제를 통해 탄생한 포유류인 돌리는 2003년 죽었다. _ 스코티시선


1997년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스코틀랜드의 이언 윌머트 박사는 한동안 ‘인간 복제의 세상이 열리느냐’는 비난에 시달렸다. 윌머트는 공개적으로 “어떤 종류든 인간 복제에 반대한다”고 선언했다. 문제는 ‘인간’의 범주를 어디에서 어디까지로 잡을 것이냐다. 윌머트는 “인간 복제는 위험하며 효용성도 없지만 줄기세포 연구나 배아 연구까지 제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저서 <복제양 돌리 그 후>에서 “나는 사람들을 믿는다. 올바른 지식을 구비한 민주주의가 남용을 막아줄 수 있다고 믿는다. 무엇보다도 나는 대다수 과학자들을 믿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핵폭탄을 만들고 나치 학살에 기여한 것도 과학자들이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근본부터 새롭게 규정하게 된 세상에서 오직 민주주의적 감시와 토론만이 제어장치가 될 수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미국의 생명윤리학자 대니얼 캘러핸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전학적 해법을 찾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그는 <탄생에서 죽음까지>라는 책에서 “정말로 위험한 것은 절망감이 커가면서 사회적 일탈을 ‘의료적으로 처치’하려는 마음”이라며 “위험은 유전학이 아니라, 유전학을 탈출구로 간주하게 만드는 사회적 절망감에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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