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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깊이보기]정책 없고, 리더십 없고, 내분까지... 미 공화당 주류가 몰락한 이유  

딸기21 2016. 3. 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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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사잡지 슬레이트는 지난 1월 “공화당은 ‘실패한 국가’이며 도널드 트럼프는 그 국가의 군벌”이라고 비꼬았다. 아웃사이더 트럼프가 열풍을 일으킨 사이 공화당 주류는 그를 끌어안지도, 그렇다고 몰아내지도 못하며 우왕좌왕하는 것을 가리킨 말이었다. 

 

1일(현지시간)의 ‘슈퍼 화요일’ 공화당 경선은 트럼프의 완승이었다. 비주류 티파티의 얼굴 격인 테드 크루즈도, 주류 보수파의 남은 희망이던 마르코 루비오도 도저히 트럼프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대선 본선에서 트럼프와 겨뤄야 하는 것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이겠지만, 그 못지않게 ‘충격과 공포’ 속에 흔들리는 것은 공화당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대선후보가 된다면 미국의 정치 시스템의 한 축인 ‘제도로서의 공화당’은 기로에 설 것이며 “1960년대 민권운동 시절 (흑인 투표권을 놓고) 대분열을 했던 공화당이 그후 반세기 동안 본 적 없는 균열에 직면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1일(현지시간) 플로리다 주 팜비치의 호화 스포츠클럽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은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뉴저지 주지사 크리스 크리스티, 오른쪽은 트럼프의 아들 에릭이다. 팜비치/AP연합뉴스



공화당 주류의 몰락은 자초한 측면이 크다. 조지 W 부시 정권 시절 ‘네오콘’들이 목소리를 키우면서 미국은 대테러전에 휘말렸고, 나라 곳간은 텅 비었다. 국민들은 전쟁에 넌더리를 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7년 동안 공화당에서 그런 실책에 대한 뼈저린 반성의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국민들의 삶을 못 챙기고 재정을 축낸 것에 대해 성찰하고 대안을 만들기보다는, 네오콘의 자리를 물려받은 공화당 내 신(新)극우파, 이른바 ‘티파티’가 기승을 부렸다. 당내 주류는 물론 전체 공화당 지지자들의 민심과도 동떨어진 극단적인 자유지상주의자(리버테리언)들이 당을 쥐고 흔들었다. 오히려 트럼프가 “이라크 침공은 잘못됐다”고 최근 목소리를 높였다. 

 

슬레이트는 공화당의 실패가 2008년 말부터 2009년 초 사이, 즉 오바마가 당선되고 집권한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지적했다. “오바마가 제안한 것이라면 뭐든지 반대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공화당의 실패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공화당은 대다수 서민들을 위한 건강보험 개혁안(오바마케어)의 발목을 잡고, 결국 그 문제로 2013년 연방정부 재정지출이 중단되는 셧다운까지 일으켰다. 2011년 오바마가 빚더미에 몰린 정부의 파산을 막고자 부채한도를 늘리고자 했는데 그것조차 반대했다. 대외 정책에서도 이란·쿠바와의 화해에 계속 딴지를 걸었으나,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부질없는 정치공세였다. 이슬람국가(IS) 사태, 이민자·난민 문제에서도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고 강경론을 고집하거나 반대만 했다.

 

정치분석가 제이컵 와이즈버그는 “오늘날의 공화당원들이 레이건에게서 배우지 못한 것들”이라는 글을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다. 트럼프도 공화당도 수시로 로널드 레이건 시절 ‘미국의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하지만, 실상 레이건의 성공요인은 배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레이건은 불법이주자들을 사상 최대 규모로 사면했고, 총기를 적정 수준 규제하는 것을 옹호했으며, 경제의 마중물을 붓기 위해 케인즈주의적인 부양책을 썼다. 신자유주의적 민영화 정책의 대변자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재임 기간 8년 중 6차례 세금을 인상했다.

 

이런 사실들을 잊고 오바마가 하는 일에 오로지 반대만 하면서 어느 새 공화당은 ‘정책 어젠다가 없는 정당’으로 전락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에게 외면당했고, ‘막말 극우파’ 트럼프가 그 빈 공간을 채웠다. 그런데도 공화당은 트럼프로 향하는 민심을 우습게 여겼으며 진지한 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티파티와 공화당 주류는 물과 기름 같은 사이여서 트럼프에 맞서 후보를 단일화할 수도 없었다. 터프츠대 정치외교학 교수 대니얼 드레즈너는 지난 26일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트럼프가 이긴 것은, 아무도 그런 일(트럼프의 승리)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공화당 기득권층이 트럼프를 한번도 심각하게 받아들여본 적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2012년 미트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 캠페인을 이끈 마이클 리비트 전 유타 주지사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공화당 내에 치열한 고민이 없다며 “담배 연기로 가득한 방이 없다”고 표현했다. 당의 개혁을 추진할 계기와 인물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도계 오바마’로 기대를 모았던 보비 진달 전 루이지애나 주지사 등이 극히 수동적인 당 분위기를 바꾸겠다고 나섰을 때 지도부는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공화당을 망하게 한 건 정책 부재, 내부 분열, 리더십 부재, 그로 인한 결정 장애였다고 미국 언론들은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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