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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깊이보기]콜라는 비만과 상관 없다? 미국의 ‘수상한 과학자들’  

딸기21 2015. 8. 1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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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이 잔뜩 들어간 탄산음료는 비만과 관련 없다? 최근 미국에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런 얘기들이 널리 유통됐다. 학술지에는 “비만을 막으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며 설탕·탄산음료·정크푸드 등 식생활 문제를 뺀 연구논문들이 실렸고, ‘비영리기구’에 소속돼 있다는 일군의 과학자들이 나서서 비만의 해법으로 운동을 강조하는 발언들을 내놨다.

 

그런데 이 과학자들 뒤에 코카콜라의 자금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뉴욕타임스는 9일 “비만에 대한 ‘과학적 해법’이라며 줄줄이 나왔던 연구들 뒤에 코카콜라의 연구비 지원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코카콜라가 과학자들을 동원, 학술지들에 논문을 싣거나 학회에서 발표하게 했으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널리 유통시키게 지원했다는 것이다.


돈 받고 ‘콜라 무죄’ 주장한 과학자들

 

과학자들이 주장한 ‘해법’은 새로울 것이 없다. “칼로리 걱정을 덜 하고 운동을 더 하면 비만 걱정은 없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콜라에 잔뜩 들어있는 설탕 과다섭취 문제는 쏙 빠졌다. 이런 ‘연구’를 내놓은 과학자들은 대개 ‘글로벌에너지균형네트워크’라는 이름의 신생 비영리기구에 소속된 사람들이었다. 이 기구의 부회장인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 교수 스티븐 블레어는 “미디어와 과학저널들은 너무 많이 먹는 것이 문제라며 패스트푸드와 청량음료 탓만 하는데 그런 식음료가 비만이 주범이라는 증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코카콜라 웹사이트


그런데 이 ‘네트워크’에 관여한 과학자들이 소속된 대학 2곳에서 정보공개법에 따라 코카콜라 측의 연구비 지원 사실을 실토했다. 블레어는 웨스트버지니아보건대학의 그레고리 핸드라는 과학자와 함께 지난해 1년 동안에만 150만달러(약 17억5000만원)를 지원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두 사람은 2008년 이후로 코카콜라로부터 400만달러를 받았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코카콜라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한 채 “우리는 신체활동과 영양에 관한 전문가들과 파트너로 일하고 있다”는 성명만 내놨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대기업에게 연구비를 받고 그 기업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분야에서 기업에 유리한 연구결과를 내놓는 ‘수상한 과학’이 꼬리를 잡힌 건 처음이 아니다. 올 연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총회를 앞두고 미국에선 이른바 ‘기후변화 음모론’이 고개를 들었다. 기후변화는 △지구의 자연적인 순환에 따른 현상일 뿐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며 △기후변화가 그리 심각하지도 않은데 △환경론자들이 현실을 왜곡·과장하는 바람에 경제적 피해가 커진다는 주장이다. 일군의 과학자들이 이런 주장을 내세우면 그걸 바탕으로 몇몇 정치인들은 환경 규제를 없애기 위한 입법활동에 들어간다.

 

지난 3월, 기후변화 음모론을 펼쳐온 한 미국 정치인의 배후가 들통나 거센 논란이 일었다. 짐 인호페 공화당 상원의원은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기후변화 회의론자 중 한 명인데, 그가 영국 석유회사 BP로부터 선거자금 1만달러를 받은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인호페가 단골로 인용한 과학자는 하버드-스미소니언 천체물리학 센터의 윌리 순 박사였다. 순은 “지구온난화는 인간이 아니라 태양 에너지 활동의 변동성 때문”이라고 주장해왔다. 인호페는 순 박사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지구온난화는 사기극이란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호페는 물론이고, 순 역시 기업들 돈을 받아왔다. 지난 2월 그린피스는 순이 지난 14년 동안 화석연료업계로부터 120만달러(약 13억3000만원) 이상의 돈을 받고 연구를 해왔다고 폭로했다. 기업-과학자-정치인으로 이어지는 ‘반 환경 커넥션’이 드러난 것이다.


불리한 연구논문 ‘철회’ 압력도

 

‘담배가 암을 일으킨다는 증거는 없다’, ‘유전자조작(GM) 식품이 유해하다는 증거는 없다’, ‘인간이 기후변화를 일으킨다는 증거는 없다’는 식의 수상한 과학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담배회사 편에 서서 암과의 관련성을 부인했던 몇몇 과학자들이 순식간에 기후변화로 갈아타 석유회사들 편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캘리포니아대학의 나오미 오레스케스 교수는 <의혹을 팝니다>라는 저서에서 프레드 싱어 등 유명 과학자들이 기업의 용병이 된 사례를 파헤쳤다. 

 

싱어 같은 과학자들은 원래 로켓·핵물리 전공자들인데 갑자기 건강 문제로 전공을 바꿨다. 담배회사들이 암에 걸린 흡연자들로부터 줄줄이 거액의 소송을 당하던 시기에, 이들은 담배와 암이 관련없다고 주장하며 담배회사들 편을 들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기는 무리였고, 담배회사들은 잇달아 패소했다. 그러자 같은 과학자들이 그 다음에는 기후변화로 무대를 옮겨 지구온난화를 부인하기 시작했다. 기후변화는 명백한 현실이 아닌 논란의 대상이라는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다. 


 

불리한 연구결과가 나왔을 때 논문이 철회되게 압력을 가하는 것도 기업들이 과학을 왜곡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오레스케스의 책에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강조한 과학자를 겨냥한 전방위적인 압력 실태가 생생히 묘사돼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멕시코의 GM 옥수수 ‘변이’에 대한 것이었다. 2001년 멕시코 환경부는 GM 옥수수를 재배하지 않은 오아하카 지역에서 GM 옥수수의 유전자가 발견됐다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놨다. GM 유전자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자연으로 전파됐음을 보여준 첫 사례였다. 멕시코의 식물학자 이그자치오 차펠라는 연구결과를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그런데 이듬해 네이처는 이 논문을 철회하면서, 차펠라의 논문에 결함이 있다고 주장하는 논문 2편을 나란히 실었다.

 

차펠라를 앞장서서 비판했던 ‘과학자들’은 메리 머피라는 인물과 앤두라 스메태섹이라는 인물이었다. 영국의 GM 반대 운동가들은 이들이 실존인물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생명공학회사 몬샌토와 계약한 한 컴퓨터장비회사에서 차펠라를 비난하는 메일들이 발송됐음을 밝혀냈다. 그리고 네이처에 차펠라 비판 논문을 실은 과학자들은 1990년대 말 스위스 생명공학회사 노바티스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의 파트너십을 추진했던 인물들이었다.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네이처마저 기업의 요구에 굴복, 논문을 철회시키고 반박글을 실어준 게 아니냐는 논란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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