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

지구의 밥상- 남태평양의 '콜라식민지' 나우루

딸기21 2015. 8. 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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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우루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다. 인구가 채 1만명도 되지 않는 외딴 섬이지만 이 곳의 식생활은 세계의 다른 어떤 곳보다도 ‘글로벌화’돼 있다. 먹고 마시는 거의 모든 것은 외국에서 수입한 것들이다. 사방이 바다로 에워싸여 있으나 어업은 무너졌다. 이곳 사람들은 더이상 고기를 잡지도, 채소를 키우지도 않는다.

 

통조림과 인스턴트 음식, 청량음료를 수십년간 먹고 마신 끝에 섬 사람들은 모두 비만이 돼버렸다. 이 섬 인구의 94.5%는 비만·과체중이고, 성인들은 거의 전부 당뇨병을 앓고 있다. 정크푸드가 들어가고 반 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이 섬은 학자들이 ‘콜라식민지’라 부르는 곳이 돼버렸다. 


지난달 초 한 나우루 주민이 공항 부근 아이워 지역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카트를 끌고 장을 보고 있다. 슈퍼마켓의 진열대는 통조림이 점령하다시피 했다. 냉동된 채소와 육류, 해산물은 모두 호주를 비롯한 외국에서 수입한 것들이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국토 대부분이 사막이다. 그러나 두바이의 대형마트에는 신선한 채소들이 냉기 속에 쇼핑객들을 기다린다. 마트에서 파는 토마토에는 7개국의 원산지 표시가 붙어 있다. 두바이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밥상에는 9개국에서 난 음식이 올라온다. 이들이 먹는 채소들은 에티오피아 같은 나라들에서 들여온 것들이다. 사우디아라비아나 UAE 등 걸프의 산유국 사업가들은 아프리카에 현대식 농장을 짓고 채소와 과일을 키워 가져간다. 그 사이 에티오피아의 아이들은 옥수수죽을 먹으며 자란다.

 

‘밥이 몸이다’라는 말처럼, 먹는 것이 우리의 몸을 만든다. 개인의 몸만이 아니다. 먹거리는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구조를 반영하며, 그 모든 구조가 합쳐져 나온 결과물이기도 하다. 글로벌화가 가장 크고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부문도 다름 아닌 먹거리다. 때 아닌 ‘집밥 열풍’이 한국을 강타하고 있는 데에서 보이듯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마저도 비즈니스의 대상이 됐고, 밥을 짓고 먹는 행위는 글로벌화된 거대 산업의 톱니바퀴 속에 끼어들어간지 오래다. ‘농업비즈니스(agribusiness)’와 ‘콜라식민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은 지구 상 어디에도 없다. ‘밥상’은 세계가 얼마만큼 비슷해졌는지, 지역의 색깔과 전통이 어떻게 사라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지정학적 공간이 됐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밥상은 여전히 세계에 존재하는 ‘차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부국과 빈국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한 나라와 지역 안에서도 밥상의 차이는 곧 삶의 격차다. 영국과 프랑스의 마트에는 농산물부터 심지어 젤리까지 유기농 마크가 붙은 값비싼 식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중산층이 많이 사는 런던 남부의 이스트그린스테드에서는 실직자들과 미혼모들이 푸드뱅크(무료급식소)에 생존을 의지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한 지역인 인도 뉴델리 꾸숨뿌르 빈민가의 밥상은 소박하지만 그래도 이 곳 사람들은 지역에서 생산한 먹거리들로 끼니를 채운다. 세계 사람들의 밥상을 통해 글로벌화의 가장 생생한 단면과 함께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찾기 위한 노력을 소개한다.


라나(53)는 초콜릿부터 먹으라고 권했다. 집 앞에서는 두 살에서 네 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아이들 예닐곱이 나무 탁자 위에 올라 앉아 초콜릿과 사탕을 먹고 있었다. 무더위 때문에 초콜릿과 사탕들은 녹아내렸고, 아이들 입가와 손에는 까맣고 빨간 단물이 묻어 있었다. 난민캠프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라나의 아들이 호주에 다녀오는 길에 초콜릿과 사탕을 잔뜩 사왔다. 라나의 손주들은 그걸 펼쳐놓고 작은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데니고모두에 있는 라나(오른쪽 아래)의 집 앞에서 라나의 손자들이 초콜릿과 사탕들을 먹고 있다. 어릴 때부터 초콜릿과 비스켓, 콜라, 햄 같은 인스턴트식품들을 먹고 자라는 탓에 나우루 사람들은 성인이 되면 대부분 비만이 되고 당뇨병에 걸린다.


지난달 초 방문한 남태평양 섬나라 나우루 주민들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초콜릿을 앞에 놓고 이뤄졌다. 나우루는 자기들만의 언어를 갖고 있지만 영어를 사실상 공용어로 쓰는 섬나라다. 인산염을 수출해 먹고 사는 이 나라는 19세기 말 잠시 독일의 통치를 받았고, 1차 세계대전 때에는 호주의 식민지가 됐으며 2차 대전 때에는 다시 일본에 점령당했다. 전후 유엔 신탁통치를 거쳐 독립국가가 된 것이 1968년이었다. 1999년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공화국’으로 유엔 회원국이 됐다.

 

적도 바로 아래에 있는 나우루는 넓이 21㎢에 해안선이 30㎞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호주 브리즈번에서 비행기로 4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인구는 지난해 7월 기준으로 9500명이 조금 못 된다. ‘수도’는 따로 없고 야렌 지역의 공항 활주로 앞 바닷가에 정부 청사와 의사당, 초등학교, 중학교, 경찰서, 소방서가 나란히 붙어 있다. 한때는 인산염 수출로 소득이 높았지만 지금은 쇠락해 재정의 상당 부분을 외부 원조에 의존한다. 산업이라곤 비료의 원료인 인산염 채굴과 소규모 코코넛 농장 정도다. 


이 작은 섬나라를 ‘지구의 밥상’을 돌아보는 출발점으로 삼은 것은, 우리가 먹거리를 두고 걱정하는 모든 것이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우루 사람들은 뚱뚱하다. 물론 뚱뚱한 것은 죄가 아니다. 신진대사량이 많은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다. 먹을 것을 즐기는 사람, 단 것을 유독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 지역 주민의 90%가 한두 세대 만에 비만과 과체중이 됐다면 그것은 구조적인 사회 문제다.


슈퍼마켓 진열대에는 인스턴트 식품과 수입산 냉동식품뿐이다.



나우루는 100년 가까이 인 광산을 파헤친 끝에 섬 전역이 황폐해졌다. 수산업은 외국서 온 원양어선들에 넘어갔고, 정부는 외국 배들에게 조업허가권을 팔아 수입을 얻는다. 소규모 농경과 채집·어로를 하던 이 섬은 어느 날부터 정크푸드 천국이 됐다. 독립 뒤 인스턴트 식품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작은 섬은 ‘콜라식민지(Coca-colanization)’로 변했다. 외국산 식품의 쓰나미 속에 전통 먹거리 생산은 몽땅 경쟁력이 없어졌다. 섬이라는 지리 조건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주민들은 고립된 반면 경제와 생활은 세계화의 물결에 휩쓸렸다. 정크푸드의 홍수, 바다 건너 어마어마한 거리를 옮겨다니는 식재료들, 토착 먹거리의 붕괴, 비만과 당뇨병. 세계 식량체제의 ‘미래’가 나우루라면 지구는 어떻게 될까.

 

인산염을 실어나르는 파이프와 항구 시설이 이어진 바닷가를 따라 걷다가 라나의 집에 들렀다. 초콜릿으로 배를 채운 아이들은 저녁 무렵 쏟아진 빗속에서 뛰어놀았다. 라나의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모두 함께 하는 저녁’은 없다고 했다. 식구들 각자 아무 때나 내키는대로 먹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현대인의 식사 시간은 출퇴근과 등하교의 생활리듬에 맞춰져 있다. 이 곳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2004년 미 중앙정보국(CIA) 통계에 따르면 이 나라의 실업률은 90%다.


라나가 집 마당 탁자에 앉아 호주산 햄과 비스켓을 먹고 있다. 라나는 식구들 모두 “아무 때나 내키는 대로” 끼니를 때울 뿐이지 식구들이 모두 모여 밥상을 차려먹는 일은 거의 없다고 했다.

라나가 멀리서 온 손님을 위해 특별히 차려준 밥상. 옆에 아기를 안고 서 있는 사람은 딸 모키.



라나의 가족은 아침에 눈 뜨면 원하는 만큼 호주산이나 미국산 비스킷을 집어먹는다. 이날 오후 라나는 초콜릿을 먹은 뒤 손바닥만한 호주산 햄 2조각과 비스킷으로 요기를 했다. 라나는 28살 딸 모키와 함께 집 1층의 작업실에서 재봉틀 두 대로 옷가지를 만들어 판다. 이곳에선 꽤 잘 사는 편이지만 그의 집에는 제대로 된 부엌이 없다. 요리는 거의 하지 않고, 햄·비스킷과 콜라를 먹거나 가까운 중국식당에서 밥을 사다가 통조림과 함께 먹는다. 아이들은 인도네시아산 컵라면을 가장 좋아한다.

 

모처럼 외국 손님이 왔다며 이날 라나는 오랜만에 직접 작업실 한 옆에서 저녁 준비를 했다. 메뉴는 볶음밥과 닭고기 조림, 쇠고기양배추국이었다. 쌀은 호주산이고 볶음밥에 들어간 다진 채소 역시 호주에서 수입된 냉동 ‘채소믹스’였다. 조려낸 닭도, 국에 들어 있는 쇠고기와 양배추도 모두 호주산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가게에서 먹을 걸 사먹지 않았지. 나트륨이나 아지노모토(일본산 조미료)도 없었어. 날마다 생선을 먹었어. 지금은 아침에 씨리얼이나 비스킷을 먹고 점심에는 아무 거나 먹는다.” 건강은 당연히 나쁘다. 라나는 당뇨병 때문에 다리를 잘 쓰지 못했다. “계속 인스턴트 음식만 먹으면 당뇨병이 심해져서 나중엔 다리를 잘라내야 해. 하지만 여긴 전부가 당뇨병이야.”


곳곳에 당뇨병의 위험을 알리는 알림판이 붙어 있으나 운동을 하거나 식단을 조절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통 식문화가 유지됐던 독립 이전에 나우루 사람들은 뚱뚱하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가 ‘오버사이즈’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현재 나우루 인구의 94.5%는 비만·과체중이고 인구의 40%는 당뇨병이다. 인구 절반 이상이 아이들인 걸 감안하면 성인들은 너나없이 당뇨병에 걸려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곳곳에서 다리를 잘 쓰지 못하거나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섬 여러 곳에 “당뇨병은 우리 모두의 일”이라며 경고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정부는 또 아이들이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트램펄린을 값싸게 공급해, 아이들 많은 집은 대개들 마당에 트램펄린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걷거나 운동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주변 섬나라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마샬군도에서는 2008년 기준으로 5만3000명의 인구 중 8000명이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 마이크로네시아는 90.9%, 니우에는 81.7%, 통가는 80.4%가 비만·과체중이다. 미국령 사모아는 주민 네 명 중 세 명이 비만이다. 토켈라우는 성인 인구 중 비만이 63.4%, 키리바시는 50.6%다.

 

아이워의 슈퍼마켓에 갔다. 상품 진열대는 캔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사방이 바다인 섬에서 생선조차 모두 수입산을 먹는다. 꽁꽁 언 노르웨이산 고등어와 연어, 냉동 새우와 참치캔과 고등어캔. 에와 지역의 ‘카펠 앤드 파트너’는 섬에서 가장 큰 마트다. 역시 선반을 메운 것은 가공식품들이었다. 세계에서 코카콜라 다음으로 많이 팔리는 음료라는 스위스 네슬레의 네스카페와 베트남산 G7 커피믹스, 캔음료와 통조림들이 즐비했다. 이 곳에는 비록 호주산이지만 가공하지 않은 양배추와 오이, 피망 같은 채소들이 있었다. 마트 바깥 ‘패스트푸드’ 간판이 붙은 곳에서는 호주산 고기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와 마일로(초콜릿 음료)를 팔았다. 


동네 가게들도 과자와 청량음료, 통조림들을 주로 판다. 신선한 채소를 파는 '동네 가게'는 없다.


여섯 집 건너 한 집은 중국 식당이다. 이 나라의 가게와 식당은 중국인들이 도맡고 있다. 섬에 두 곳 있는 수퍼마켓은 물론이고 동네 작은 가게들도 컵라면과 청량음료와 과자를 주로 팔았다. 중국인 가게에서는 커피믹스에 얼음을 넣어 플라스틱 컵에 담은 아이스커피를 팔기도 했다. 그러나 채소를 파는 가게는 없었다. 익히지 않은 채소는 이들의 식단에서 완전히 사라진 듯했다.

 

정크푸드는 사람들의 입맛만 점령한 게 아니었다. 수풀 속, 바닷가, 고원과 라군 주변, 모두 쓰레기 천지였다. 탄산음료 캔과 맥주캔, 비닐 포장재가 섬을 뒤덮고 있었다. 쓰레기 처리시설도 없고 재활용도 없는 이 섬은 그렇게 쓰레기장이 돼버렸다. 기암괴석이 늘어선 바닷가 풍경은 근사했지만 좁은 백사장은 캔 조각들과 쓰레기로 덮여 발을 디딜 수 없었다.


나우루 어느 곳에서든 볼 수 있는 '중국 식당'.

중국 식당에서 열리고 있는 결혼피로연에 불청객;;처럼 들어가봤다. 사진을 찍도록 허락해준 신혼부부(흰 옷 입은 남녀)들에게 감사를...

결혼피로연의 음식들.

나우루의 식당에서 먹은 것들.


야렌에 있는 리사(53)의 식당에서 라나와 함께 점심을 사먹었다. 라나가 고른 메뉴는 콘비프. 역시 재료는 호주산이다. 라나는 짜디짠 콘비프를 콜라 한 캔, 환타 한 캔과 함께 먹었다. 식당 주인 리사는 “오늘은 생선이 없다”고 했으나 생선이 언제 들어오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예전엔 다들 고기를 잡았는데 지금은 고기를 잡을 줄도 몰라. 외국 물건이 들어오지 않으면 아마 우린 먹을 게 아무 것도 없을 거야.” 

 

리사와 라나 모두 기후변화 걱정을 많이 했다. 나우루는 11월부터 2월까지가 우기다. 하지만 요새는 우기가 아니어도 비가 쏟아지고, 주기적으로 가뭄이 온다.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 고기도 잡히지 않아. 그리고 예전엔 없었던 플루(전염병)가 늘었어.” 수도 시설은 거의 없다. 일본이 원조해준 물받이통에 빗물을 받아놓고 쓰는 집들이 많았다. 섬에 하나 뿐인 담수화 시설도 아직 가동되고는 있으나 많이 낡았다.

 

오래 전 먹거리 중 남아 있는 것은 코코넛 같은 과일 정도다. 섬 가운데에 부아다 고원이 있다. 가장 높은 곳이 해발고도 61m에 불과한 평평한 고지대다. 그 안쪽에 라군(호수)이 있고 코코넛과 파파야 농장들이 있다. 라이널(50)은 라군 옆에 판자를 덧댄 집을 짓고 산다. 코코넛과 파파야, 그리고 아키마마라는 열대 과일을 따서 주민들에게 팔곤 한다. 



파파야를 깎아 가지고 나오는 라이널.

라이널이 쪼개서 건네 준 코코넛. 맛이 괜찮았다. 뜻밖에도 포슬포슬한 식감.

아키마마를 따고 있는 라이널.

이것이 아키마마.

에오밥이 파파야 이파리를 끓였다. 탕약처럼 끓여서 먹는다.



라이널이 따다준 코코넛과 파파야는 맛있었다. 주민들은 이런 식물들로 약을 만들기도 한다. 라나의 남편 에오밥은 주민들이 보통 ‘포포’라 부르는 파파야의 잎을 달여 약을 만들었다. 파파야 달인 물을 먹으면 뱃속이 깨끗해지고, ‘노니’라는 식물 이파리를 달여 먹으면 상처가 낫는다고 했다. “노니는 우리가 오래전부터 약으로 쓰던 건데, 서양 사람들은 그걸 가져다가 팔아. 우리는 팔지 않아. 사람들을 돕는데 쓸 뿐이지.” 라나의 말이다.

 

공항 동쪽 아니바레 부근을 지나다가 ‘피시 마켓(FISH MARKET)’이라 쓰인 건물을 봤다. 지은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어시장 간판의 페인트칠이 선명했다. 일 없이 어슬렁거리던 청년에게 어시장은 언제 열리냐고 물었다. “그런 건 없다”고 했다. 청년은 “아무도 생선을 팔지 않는데 정부가 여기에 왜 이런 건물을 지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배를 타고 나가 참치를 잡아다 파는 주민들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집에 고기를 보관해 두고 조금씩 잘라서 이웃들에게 파는 정도다. 


이름만 어시장... 어시장 따위는 사실은 없다.


언덕 위 식당에는 광둥성에서 온 중국인 주인과 젊은 점원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닭고기 커리를 주문했다. 역시 얼렸다 녹인 채소믹스를 썼고, 조미료가 하도 많이 들어가 목이 칼칼할 정도였다. 이 곳 식당의 풍경은 거의 비슷하다. 작은 주방에 테이블 몇 개가 있고, 주로 광둥성에서 온 중국인 주인과 난민 점원이 서비스를 한다. 메뉴는 모두 조미료와 나트륨이 잔뜩 들어간 볶음밥이나 국수다. 식당 앞에서 이란 출신 난민 메흐디가 친구와 담배를 피우며 수다를 떨고 있다. 메흐디는 식당에서 일해 푼돈을 번다. 두 사람 모두 식당에서 50m 정도 떨어진 난민용 컨테이너 집에 산다.

 

인산염 수출 외에 달리 소득이 없는 나우루는 호주로부터 원조를 받는다. 그 대신 호주는 이 나라에 난민들을 떠넘겼다. 작은 섬 복판에 난민 캠프를 만들고, 호주로 가고자 배에 몸을 실은 이란·이라크·팔레스타인 난민들을 가뒀다. 심사를 통과한 난민들은 캠프 바깥 컨테이너 집들로 거처를 옮기고 허드렛일을 하며 정착해 살아간다. 캠프에 아직 머무는 난민이 약 1700명, 밖으로 나간 난민은 줄잡아 수천 명이다. 


캠프를 벗어난 사람들은 ‘자유 난민(free refugee)’이라 불리지만 그들의 자유는 섬에 한정돼 있다. 넘을 수 있는 국경도, 빠져나갈 배도 없는 이 섬은 버림받은 난민들을 가둬두는 천혜의 감옥이자 ‘세상의 끝’이다. 이라크에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 하니(39)는 2년 전 아내와 함께 이 섬에 왔다. 섬의 2개 뿐인 호텔 중 한 곳이자 최대 관광시설인 메넨 호텔 옆 난민촌에서 그는 하루 종일 아무 일 없이 앉아 있다. “일자리는 거의 없다. 나우루 정부로부터 매주 돈 몇푼을 받아 먹고 산다.” 난민들의 얼굴에는 절망이 그대로 묻어났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난민용 주택.

중국 식당에서 만난 이란 출신 난민들.


어찌 됐든 나우루 사람들 입장에서 보자면 난민캠프는 몇 안 되는 일자리 중 하나다. 섬 전역에서 ‘트랜스필드’라 쓰인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나 버스들을 볼 수 있었다. 난민캠프를 관리하는 위탁업체의 이름이다. 트랜스필드에 고용돼 청소일을 하는 여성들은 주급 200호주달러(약 18만원)를 받는데, 이 정도면 썩 괜찮은 수입원이다. 난민들을 떠안은 대신 난민캠프에서 일하고 원조를 받으면서, 주민들은 그 돈으로 콜라와 비스킷을 사먹는다. 한때 정부가 인산염을 판 돈으로 기금을 만들어 앞날에 대비하겠다고 했지만 기금은 금세 바닥났고 ‘미래’도 날아갔다. 

 

“인산염은 영원할 수 없는데, 그러고 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등유가 떨어지면 밥도 못 하고, 고기잡는 법도 다 잊었으니.” 리사는 섬이 점점 더 ‘남의 것’이 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외지에서 온 먹거리, 외지에서 온 캔과 플라스틱, 외지에서 온 사람들. 주민들은 중국인들에게 식당과 가게터를 임대해주고, 그들의 음식을 사먹는다. 



역설적이지만 이 곳에서 뭔가를 키우는 사람들은 외부에서 온 이들이다. 중국인들은 양배추 따위를 키워 식당에서 요리에 쓰거나 주민들에게 판다. 난민들도 채소를 키운다. 니복 부근의 난민촌, 컨테이너집 바깥에 울타리를 치고 중동에서 온 난민 가족들이 아마도 고향에서 그랬겠듯이, 토마토를 키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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