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로그인] 메르스, 한국과 독일

딸기21 2015. 6. 1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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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사망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며, 회복되기만을 바랐던 가족들에게 애도를 전합니다. 병원에서의 감염은 모두 예방됐으며 당국은 의료진을 비롯해 메르스 대응에 관여했던 정부 관리들의 노력이 대단히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달랐을까. 독일에서도 며칠 전 메르스로 1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추가 감염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사망자가 나온 독일 니더작센주 보건부가 내놓은 성명을 꼼꼼히 살펴봤다. 숨진 사람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서 휴가를 보내고 돌아온 65세 남성이었다. 한국의 첫번째 환자(68)와 나이도 비슷하다. 이 남성은 지난 2월8일 귀국했고 이틀 뒤 발병해 병원에서 일주일간 집중 치료를 받았다. 당시 유럽질병통제센터(ECDC) 보고서에 따르면 환자는 위중했지만 안정적인 상태였다. 5월에는 메르스가 완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폐질환을 비롯한 합병증으로 6월6일 사망했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감염자와 접촉한 사람들은 많았다. 환자 가족, 집중치료를 받은 병원, 감염자가 숨진 병원이 모두 방역 대상이었다. 발병 뒤 처음 찾아간 병원에서는 메르스 의심증세라 판단하고 두 차례 환자의 체액을 채취해 본 대학의 로버트-코흐연구소에 분석을 맡겼다.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은 것은 3월7일이었다. 독일 정부는 세계보건기구(WHO)와 ECDC에 보고했고 유럽 전염병 조기경보·대응시스템이 가동됐다. 이후 3개월 동안 주 보건부와 사회복지부, 지역보건소, 병원, 대학연구소는 유기적으로 대응했다. 이미 2월23일부터 지역 보건 당국은 환자가 머물렀던 병원과 접촉자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200명 넘는 사람들을 추적해 전원 감염 여부를 검사했다. 다행히 모두 음성 판정이 나왔다.


Kathe Kollwitz, . 1893 - 1897, printed 1931.

 

물론 독일은 의료보장이 매우 잘 돼 있다. 1880년대에 이미 유럽에서도 가장 먼저 국민 헬스케어시스템을 구축한 나라다. ‘하우스에르츠트’라 불리는 주치의를 지정해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한국처럼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니며 ‘의료 쇼핑’을 다니는 문화는 없다. 그렇다 해도 메르스가 진단과 치료에 고도의 의학적 수준을 요구하는 난치병은 아니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내과의사 수는 한국이 2.1명, 독일은 3.9명으로 2배 정도다. 그러나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한국이 10.3개로 독일의 8.2개보다 많다. 메르스를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MERS-CoV)가 신종이라고 하지만 세상에 알려진 지 3년이 됐다. 결국 독일과 한국의 상황을 가른 것은 두 나라의 대응 과정의 차이였다.

 

메르스 감염자가 나온 25개국 중 최초 발생지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빼면 대규모 전염이 일어난 나라는 한국 뿐이다. 안타깝지만 니더작센주의 성명은 반복해서 한국을 언급한다. “의료관계자, 환자 가족과 친척들에게 전염된” 한국의 “비극적인” 상황은 이 질병에 대한 “조율된 대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남의 나라에서 반면교사의 대상이 됐다고 해서 국가 이미지가 실추돼 큰 일이라거나 민족적 수치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때에는 우리도 방역의 모범 사례였다. 하지만 정부 대응이 ‘손 잘 씻기’처럼 개인 책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건 실망을 넘어 공포스럽다. 무엇이 잘못됐는 지에 대한 보건 당국의 꼼꼼한 분석과 반성과 각오는 들려오지 않는다. 수없이 인용되는 누군가의 말을 ‘표절’해 보자면 “국가가 가장 기본적인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며,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됐다.” 


세월호도 메르스도, 결론은 각자도생이며, 정부도 국민들에게 그걸 가르치고 있는 듯하다.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우리는 절벽에서 내던져진 채 살아남아야 하는 사자새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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