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

딸기21 2015. 6. 7.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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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가 사회민주주의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기쁩니다. 인도에 갔을 때 극심한 가난을 보았습니다. 어떤 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부자인데도 말입니다. 미국을 다닐 때 어떤 면에서는 그보다 더 참담한 가난도 보았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공산주의 독재자도 보았고, 공산국가에서 행해지는 압제와 핍박도 보았습니다. 나치의 학살 터에 갔을 때 희생자 명단에서 사회주의자와 노동운동가들을 보았습니다. 그때 나는 사민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깔깔거리며 읽다가 내친 김에 이 작가의 후속작인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까지 읽었다. 재미났다. 그러다가 관심이 올로프 팔메에까지 미쳤다. 전화번호를 버젓이 전화번호부에 실어 누구든 전화할 수 있게 했다는 총리, 경호원도 없이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가 총에 맞아 암살당한 정치인. 무엇보다 이전투구 아귀다툼 외교 전장에서 '인권과 평화'를 잣대로 들이댄 정치인. 좀더 알아야 할 것 같아 후마니타스에서 나온 하수정의 <올로프 팔메>를 펼쳤다. 


올로프 팔메. 사진 후마니타스 블로그


앞에 언급한 것은 1982년 총선을 앞두고 TV 토론에서 보수주의자로부터 '사회주의자'라는 공격을 받고(어디든 '좌빨 사냥'은 있는 모양이다) 팔메가 내놓은 답변이다. 길지만 좀더 옮겨 본다.


스웨덴에 민주주의의 터를 닦고, 1930년대 위기관리 정책을 통해 이 땅을 가난과 실업에서 구해 낸 것이 사민주의라는 것을 알고 나서 사민주의에 대한 제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국민연금 제도 개혁을 위해 일할 때, 자신의 노후를 보장받기 위해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한 평범한 노동자를 만났을 때, '이것이 내가 하는 일이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중략)

이 세상의 전쟁과 군비경쟁, 대규모 실업과 불평등을 보면서 저는 제 신념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우리나라에 불의가 득세하고, 실업률이 치솟으며, 조작과 협박이 만연하는 것을 볼 때 더욱 확신합니다. 우파에서 내놓는 정책이 사람들을 실업으로 내몰고, 사회 안전은 깨어지고 그럼에도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부르주아 계층이 말하는 미래에서, 노동자는 점점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유해집니다. 사회 안전은 더욱 허술해집니다. 연대 의식이 약해지고 이기심이 만연하는 곳에서, 강자들은 살아남지만 약자들의 아름다운 손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사민주의자입니다. 저는 사민주의가 이 나라에 이루어놓은 일 앞에 제가 사민주의자라는 사실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이제 국민은 우파가 정권을 잡으면 우리의 일터와 고용 안전, 사회 안정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근대 스웨덴의 역사는 당신들이 사악하다고 했던 사회주의식 개혁으로 가득합니다. 

나는 사민주의자입니다. (얄마르) 브란팅이 모든 이에게 선거권을 보장했을 때, 페르 알빈이 1930년대에 대량 실업에 맞서며 복지에 대해 말했을 때, 에를란데르가 사회 안전의 터를 세우고 국민연금을 개혁했을 때 사민주의자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연대와 사람들에 대한 염려를 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 사민주의이기 때문입니다.


(109-111쪽)


책은 크게 세 덩어리로 돼 있다. 집안 배경과 어린 시절, 학창시절, 정치인이 되기까지의 팔메라는 사람의 삶을 소개하는 것이 첫번째 덩어리다. 두번째는 정치인 팔메가 했던 일과 그가 추구했던 이상이다. 세번째는 복지국가의 상징인 스웨덴이라는 나라, 그 나라에서 우리가 배워야만 하는 것들에 대한 소개다.


“이곳에서 스웨덴의 총리 올로프 팔메가 암살당했다. 1986년 2월 28일.” 팔메가 쓰러진 스베아베겐 거리에는 그 사실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사진 후마니타스 블로그


아무리 훌륭한 정치인인들 과오가 없을 수 없고 정적이 없을 수 없다. 누구든 공과가 있고 논쟁을 낳는다. 팔메도 그랬다. 솔직하고 직설적이었고 일 중독이었고, 타고난 연설가였고, 그만큼 적도 많았고 끝내는 암살을 당했다. 팔메를 읽으면서 떠오르는 한국의 대통령이 있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누가 누구를 닮았다고 떠받들려는 것이 아니라, 숱한 논란 속에서 살다 갈 수밖에 없는 정치인의 숙명을 보며 자연스럽게 떠올랐다는 뜻이다.


스웨덴이 부러운가? 부럽다. 팔메 같은 정치인이 있다는 게 부러운가? 부럽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 그들의 복지 수준이나 인권 기준을 부러워하기 전에, 그 사회의 고민과 역사가 부럽다.


20세기 초반 스웨덴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자연환경은 척박했고 출생률은 낮아 인구가 줄어만 갔다. 이때부터 국가 차원에서 인구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훗날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군나르 뮈르달에게 연구가 맡겨졌다. 뮈르달은 부인인 알바 뮈르달과 함께 인구 감소의 원인과 대책을 분석한 <인구문제의 위기>(1934)를 펴냈다. 이 연구의 정부 쪽 책임자가 (훗날 총리가 된) 에를란데르였다. 이 연구는 스웨덴 복지제도와 사회정책의 초기 방향을 설정하는 길잡이가 되었다. (133쪽)

사민당의 역사는 블루컬러로 구성된 전국노동조합연맹(LO)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초기 사민당의 역사는 노동조합운동과 흐름을 같이한다. 사민당과 
LO는 재정적, 전략적으로 서로를 지원하며 동반자 관계를 유지해왔다. 한동안 두 조직은 회원 관리를 같이했다. 조합비를 내는 노동조합 회원은 자동으로 사민당원이 되는 식이었다. 이 제도는 1991년 폐지되었다.

LO는 우리가 생각하는 노동조합과는 차원이 다르다. 조합 안에 자체 연구조직을 두고 정책을 개발해 사민당의 싱크탱크 역할까지 맡아왔다. 1951년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과 연대임금제를 담고 있는 렌-메이드네르 모델을 개발한 예스타 렌과 루돌프 메이드네르도 LO 소속 경제학자였다. (181쪽)


사민당은 정책을 만들 때 LO 연구팀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1930년 초기 정권을 잡은 이후에는 수정자본주의 노선을 발표한 케인스의 경제 이론을 받아들였다. 재무부 장관 에른스트 비그포르스는 정부 주도 수요관리 정책과 입안을 이끈 주역이며 팔메가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사람이기도 하다. 부부가 각자 노벨상을 수상한 군나르와 알바 뮈르달은 학문적으로 사민당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동시에 정치에 직접 참여해 자문하며 사민당 내각에서 활동했다. (182쪽)


책은 사민당 뿐 아니라 보수진영까지 포함해 스웨덴의 현대 정치사를 전하고 있어, 알듯 모를듯 낯선 이 나라의 역사를 아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정치인들의 성격과 발언 등등 개인적인 면모들도 많이 소개돼 있다.


(팔메의 정치적 아버지 격인) 에를란데르는 총리가 된 이후에도 스톡홀름 서쪽 외곽 지역에 위치한 방 3개짜리 아파트를 세내어 살았다. 당시에는 총리용 관저가 따로 없었다. 23년 총리 생활을 마치고 나서는 임대주택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러자 사민당 동료 정치인들이 갹출해 사택을 지어주었다. 에를란데르가 유독 검소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직전 총리였던 한손은 임기 중에도 늘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고, 심지어 전차에서 내리다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팔메 역시 총리로 재직하는 동안 남들처럼 전철을 타고 다녔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보고 놀라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여행객들이 스톡홀름 시내를 걷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스웨덴 총리 팔메더라는 식의 무용담이 심심치 않게 돌아다녔다. (137쪽)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이런 소탈함은 부러운 문화이고 재미난 에피소드이긴 하지만 대단히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소탈해봤자 미덕도 되지 못하는 필부필부를 위한 정책이니까. 


1950년대 말 정부는 교육기회를 확대하고 교육의 질을 향상할 방안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 결과 대학을 다니는 동안 돈 걱정 없이 학업에만 열중할 수 있도록 등록금을 없애고 학생 수당을 주자는 안이 나왔다. 공부를 하고자 하는 젊은이에게 빚지지 않고 공부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그때만 해도 대학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에 세금으로 고등교육에 투자하는 것은 부자만을 위한 복지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자 부자는 학비를 내고, 가난한 사람만 학생 수당을 받게 하는 것은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소득에 따라 혜택을 주는 선택적 복지의 개념이다. 그러나 스웨덴 복지는 초기부터 보편적 복지를 지향했다. 특수 계층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은, 마치 세금으로 생색을 내는 것 같아 인간의 품위를 손상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어 반대가 컸다.

정부는 대학의 문턱을 낮추면 고학력 무직자가 많아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고 인문학 과정을 축소하거나 입학 요건을 까다롭게 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었다. (159-160쪽)


전후 서부 유럽과 미국은 유례없는 경제적 번영을 경험했다. 예방적 복지의 차원을 넘어, 넘치는 풍요를 거름 삼아 높아진 삶의 질에 대한 기대에 어떻게 부응할 것인지가 새로운 질문으로 떠올랐다. 성장의 열매를 나누는 차원이 아니라, 복지를 성장의 동력으로 인식해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고,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생산적 복지의 시대가 도래했다. 197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총리가 된 팔메는 복지에 근대성의 가치를 더했다. (199쪽)

정치인으로서 팔메의 목표는 뚜렷했다. 스웨덴 사회를 근대화하는 것이었는데 그가 생각하는 근대화는 모두에게 자유와 평등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팔메는 인간이 각자가 타고난 제약 조건에 상관없이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가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는 나라를 꿈꿨다. 그는 정부의 통제와 계획 안에 개인의 자유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풀어야 했다. 사민당을 이끌게 된 팔메는 강한 사회에 대한 변함없는 확신으로 필요하다면 경제 개입도 서슴지 않았다. 

또한 국가가 보호해야 할 소외계층으로 장애인, 노령자, 만성질환자, 미혼모, 과부, 학생, 미성년자, 예술가, 노숙자 등 사회적 소수 계층을 나열하며 이들을 위한 맞춤 지원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회적 정의와 평등이 바탕에 있지 않으면 자유도 없다고 믿었다. (177쪽)

팔메는 구조적으로 여성을 지원하기 위해 몇 가지 제도를 개혁했다. 1971년 팔메의 첫 번째 임기에 도입한 부부 개별 세금 제도는 여성의 사회 참여에 큰 몫을 했다. 팔메는 제도의 수혜자가 성별에 상관없는 개인이 되도록 개혁의 초점을 맞췄다. 가족 기준으로 디자인되어 있던 기존 제도가 개인을 기준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정부는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탁아시설을 크게 확충했다. 유치원법을 개정해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6세의 미취학 아동을 위한 보육시설을 제공하게 했다. 모성 휴가를 부모 휴가로 바꿔 남성이 육아에 참여하는 것을 공식화했다. 낙태를 합법화했고, 이혼 후 공동 양육권을 도입했다. 유급 육아휴직 제도 기간을 늘린 뒤로 출산율이 눈에 띄게 올라간 점이 주목할 만하다. (191쪽) 


팔메를 거센 논란 속으로 몰아간 이슈는 여러가지였으나, 그 중에서도 '베트남전 반대'를 빼놓을 수 없다. 물론 팔메가 완벽한 이상주의자였다거나(여기서 '이상주의자'는 원대한 이상과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가졌다는 긍정적인 의미다) 욕 먹을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중립국' 스웨덴은 2차 세계대전 기간 나치 독일에 협력하면서 전쟁을 피했고 팔메 집권 기간에도 여기저기 무기를 팔았다. 


하지만 팔메는 제3세계 탈식민 국가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고, 정치적 공격을 자초하면서까지 베트남전 반대 전선에 섰으며 열강의 눈치를 보는 대신 국제무대에서 자기가 생각하는 '강력한 중립, 개입하는 중립'을 펼쳐보이려고 노력했다.


스웨덴은 베트남, 칠레, 쿠바, 포르투갈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고 중동 분쟁에도 중재자로 활약했다. 대부분의 국가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테러 집단으로 대할 때 팔메는 의장인 아라파트를 따로 만나기도 했다. 스웨덴은 아프리카 해방운동을 후원한 첫 번째 서방국가이기도 하다. 나미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모잠비크, 앙골라, 잠비아, 짐바브웨 등의 민족해방전선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 남아공의 인종분리 정책에 대한 스웨덴의 대응은 적극적 중립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준다. 

국민 총소득의 1퍼센트 이상을 정부개발원조에 집행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스웨덴의 경우 이미 1960년대부터 그렇게 해왔다. 이는 팔메가 국제원조기관에서 개발도상국의 원조와 교육 지원에 대한 책임을 맡고 있을 때 주도적으로 이끌어 낸 결정이다. 팔메가 총리가 된 이후 대외 원조액도 점점 늘었다. 1975년 570만 달러에서, 그가 총리직을 수행한 마지막 해에는 1000만 달러를 돌파해 두 배 넘게 성장했다. 수혜국은 터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국가였다. (264-265쪽)


1968년 2월 21일, 교육부 장관이던 팔메는 응우옌토쩐 모스크바 주재 베트남 대사와 선두에 나란히 서서 행진했다. 반 베트남전 시위였기 때문에 베트남 사람이 참여하는 것이 큰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냉전 시대였기 때문에 다른 곳도 아닌 모스크바 주재 베트남 대사라는 점이 갖는 상징성이 컸다. 서방 정치인 중 팔메만큼 맹렬하게 미국을 비판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270쪽)


1985년 가을 총선 때 연설하고 있는 팔메의 모습. 이는 이듬해 암살당한 팔메가 치른 마지막 선거이기도 했다. 사진 후마니타스 블로그


팔메가 베트남전을 비판하며 했던 연설은 21세기 벽두에 이라크를 침공한 자들에게 그대로 들려주고픈 내용이다.


"베트남전이 미국의 잘못된 정책 판단 때문인지 아니면 자본주의가 제국주의의 형태로 발현된 것인지 묻는 이가 있다. 내 의견은 이렇다. 세상에 경제적 이익이 없음에도 전쟁을 할 만큼 비이성적이며 멍청한 자본주의자는 없다. 

도대체 우리가 무슨 근거로 베트남 국민이 스스로 체제를 선택할 권리를 부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다른 사람의 보호자가 되는 것은 민주주의의 목적일 수 없다. 오히려 이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을 남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미래를 마주하고 싶지 않다. 민족자결권이 '위험'이 되고, 사회 해방이 '위협'이 되며, 사회의 변화가 '위기'가 되었다. 우리는 이 세계에 확고해진 특권계층과, 부자 나라가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쳐놓은 견고한 진을 본다. 그러나 대중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유를 구하기 시작할 것이다. 해방을, 정의를, 더 나은 삶을, 가난과 기근으로부터의 자유를 찾기 위한 세계적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우리 잘 사는 나라들이 스스로를 위해 성벽을 쌓는다면 결국 우리는 파시즘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부자 나라가 무력이나 압제로 특권을 지키는 미래를 원하지 않는다." (273쪽)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비판도 그렇다. 백인정권은 내부의 투쟁과, 여기에 화답한 외부의 압박으로 무너졌다. 그 '외부의 압박'을 선도한 사람이 그리 크지 않은 나라 스웨덴의 정치인 팔메였다. 1986년 팔메의 연설이다.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가 존속할 수 있는 이유는 외부의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국제적 지지가 모두 사라진다면, 그리고 강한 반대로 이어진다면 아파르트헤이트는 지속될 수 없다. 만약 세계가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하기로 결심하면, 아프르트헤이트는 사라질 것이다.

단지 인간의 피부색 때문에 그들을 가난에 내던져 둔다. 이런 제도가 존재하는 한 전 인류는 존엄성을 잃게 될 것이다. 이 제도에는 몇몇의 경제적 이익과 열강의 이권이 연관되어 있다. 여기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하는 여론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아파르트헤이트는 인류를 좀먹는 제도다. 우리는 남아공 흑인 민중을 지지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고립시켜야 한다. 우리는 이 역겨운 제도를 뿌리 뽑아야 할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아파르트헤이트는 개혁 대상이 아닌 제거의 대상이다." (288쪽)



팔메를 보면서 왜 버락 오바마는 '훌륭한 사람'이 아닌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고나 할까. 내 나라 사람들을 위해서만 인권과 평등과 복지를 주장한다면 그건 그냥 표를 얻으려는, 진보인 척만 하는 사람이다. 물론 그마저도 등 돌리는 자들보다, 그 나라 사람들에겐 낫기야 하겠지만. 오바마가 그런 인물이다. 그냥 한마디로 '미국 대통령', 좋게 말하면 키 크고 좀 잘 생기고 말도 좀 잘 하는 미국 대통령.


안타깝지만, 사민주의 복지정책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지금 스웨덴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최근 총선에서 반이민 극우파 정당이 제3당이 될 정도로 커져서 개소리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고민의 하한선이 우리의 고민의 상한선보다 높아 보이니.


책 뒷부분은 저자가 살고 공부하며 경험한 스웨덴 이야기, 스웨덴이 한국에 던져주는 시사점 같은 것들로 구성돼 있다. 아무래도 국제뉴스를 다루는 일을 하다보니 외국 저자가 외국에 대해 쓴 책 위주로 읽게 되는데, 이 책은 정말 믿고 읽을만 하다. 정성 가득하고 말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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