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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피플]‘트리니다드 잭’, 어느 FIFA 거물의 인생 행보

딸기21 2015. 5. 29.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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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니다드 잭’. 2011년 비리 의혹에 밀려 사퇴하기 전까지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을 지낸 잭 워너(72·사진)의 별명이다. 


그의 고향인 트리니다드토바고는 인구 120만명의 카리브해 작은 섬나라이지만, FIFA 내에서 제프 블라터 회장의 측근인 ‘트리니다드 잭’의 위세는 막강했다. 그의 행보와 그를 둘러싼 의혹들은 거물급 ‘FIFA 마피아’의 실체와 비리 백태를 보여주는 쇼룸이나 다름없다.

 

'남아공 1000만달러' 뇌물 주인공


미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워너는 2010년 월드컵 대회를 유치하려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측 인사들로부터 1만달러 돈뭉치가 든 가방을 전달받는 등 온갖 방식으로 뇌물을 받았다. 이 돈들은 미국 뉴욕의 FIFA 금융계좌들을 통해 ‘세탁’됐다. 그는 2022년 카타르를 개최지로 선정하는 과정에도 개입했고, 역시 이 때도 돈봉투들이 오갔다. 



2011년 FIFA 회장 선거를 앞두고, 워너는 카타르측 돈을 받아 카리브 국가들에 찔러주는 역할을 했다. 그 해 5월 트리니다드 수도 포트오브스페인의 하얏트리젠시호텔에 카리브축구연맹(CFU) 간부 25명을 부른 워너는 갈색 종이봉투를 하나씩 나눠줬다. 4만달러씩 든 돈봉투였다. 워너는 “함맘의 선물”이라고 했다. 카타르 출신인 모하메드 빈 함맘 당시 아시아축구연맹 회장에게서 온 돈이라는 뜻이었다. 

 

워너는 그 돈을 받고 선거에서 다시 제프 블라터 회장에게 표를 몰아주자고 설득했다. 비난이 일자 그는 “신실한 사람은 교회로 가라. 여기는 비즈니스 자리”라고 되레 목소리를 높였다. 그 무렵 함맘에게서 나온 돈이 하도 많이 풀려, ‘함맘 ATM’이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체육교사 출신 흑인운동가, 축구계 거물이 되다


워너는 트리니다드 남쪽 소도시 리오클라로 태생으로, 당초 직업은 체육교사였다. 영국 식민지였고 영어가 공식언어인 트리니다드는 인도계와 아프리카계가각각 주민의 3분의1을 차지하지만, 아프리카계는 대체로 가난하며 소수 백인들과 인도계가 정치·경제를 장악해왔다. 워너는 흑인 권리향상을 요구하는 ‘블랙파워’ 운동에 가담해 목소리를 키워나갔다. 카리브축구연맹에서 일하게 된 그는 승승장구해 1983년 이 기구의 회장이 됐다. 이로써 자동적으로 FIFA 집행위원이 됐다. 

 

1990년 월드컵 예선 때 워너는 축구협회 규정을 무시하고 경기장에서 술을 팔 수 있게 했고, 입장권 5000장을 추가 인쇄해 판매했다. 정해진 인원보다 많은 관중들이 들어간 바람에 안전 논란이 일었다. 워너는 이 일로 궁지에 몰렸으나 미국축구연맹의 척 블레이저가 구원투수가 돼줬다. 워너를 북중미카리브축구연맹(CONCACAF) 회장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회원국이 35개국에 이르는 CONCACAF의 수장이 되면서 바야흐로 워너는 FIFA의 유력자가 됐다.

 

그는 CONCACAF 지원을 받아 자신이 갖고 있던 땅에 1600만달러짜리 축구시설을 지었다. 임대료 비싼 뉴욕 트럼프타워의 한 개 층을 모두 빌려 사무실을 만들고 중계권 장사를 했다. 워너와 블레이저의 결탁 속에 CONCACAF는 북미와 중미 축구시장의 이권을 엄청나게 키웠다. 연간 14만달러였던 이 기구의 예산은 스폰서십과 각종 판매권·중계권 계약이 늘면서 4000만달러로 증가했다. 


아이티 지진 성금까지? 끝없는 비리 의혹들


비리에는 끝이 없었다. 그는 2004년 트리니다드와 스코틀랜드의 친선경기 뒤에는 경기를 성사시킨 사례조로 7만5000달러를 요구했다가 스코틀랜드축구협회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에는 그의 아들이 경기 관람권을 대량구입해 웃돈을 얹어 되팔아 문제를 일으켰다. FIFA는 워너의 아들에게 100만달러의 벌금을 매겼다. 트리니다드 국가대표팀의 상금을 워너가 가로챘다는 주장도 나왔다. 


심지어 2010년 대지진을 겪은 아이티에 보낸 FIFA 기부금 중 일부를 횡령하기도 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FIFA가 조사를 했지만 언제나 그는 결백을 주장했고, 조사는 유야무야됐다.

 

국제적인 거물이 된 워너는 자국 내에서도 권력을 키웠다. 신문사를 운영했고, 2007년부터 정치에 뛰어들어 국가안보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냈다. 마침내 그를 물러나게 한 것은 바로 2011년의 돈봉투 사건이었다. 워너는 사전에 “미디어(기자)가 여기 있느냐”고 물은 뒤 기자가 없음을 확인하고 돈봉투를 돌렸다. 그러나 2주 뒤 현지 신문에 이 날의 발언과 돈봉투 사건이 낱낱이 보도됐다. 

 

조사 하루만에 4억원 보석금 내고 풀려나


결국 워너는 퇴진했다. 그러자 FIFA는 그가 ‘스스로 물러났다’는 이유로 그의 혐의에 대한 모든 자체조사를 중단했다. 워너의 파트너격이던 블레이저 역시 개인 비리로 숱한 문제를 일으키다 2013년 FIFA에서 물러났다. 블레이저는 이번 미 당국 수사로 중형을 선고받을 것이 예상되자 플리바겐(양형협상)에 나서 모든 비리를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7일 스위스 검찰이 미국과 협력해 FIFA 간부 7명을 체포하자, 워너는 트리니다드 당국에 자진출두했다. 그러나 비리 백화점 격인 그는 ‘탈진했다’며 보석금 40만달러(약 4억4000만원)를 내고 조사 하루만에 풀려났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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