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HSBC 탈세 방조 '리크(유출)'... 각국 후폭풍

딸기21 2015. 2. 1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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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계 거대 금융회사 HSBC 스위스 법인이 세계 자산가들의 세금회피를 방조했으며 범죄자나 부패한 정치인·사업가들의 자산은닉을 도운 사실이 폭로됐다. ‘HSBC 리크(유출)’로 불리는 이 사건의 파장이 각국으로 튀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리펑 전 중국총리의 딸인 리샤오린 부부가 HSBC 제네바 지점에 여러 개의 계좌를 만들어 놓고 245만달러(약 27억원)를 예치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10일 보도했다. 중국전력국제유한공사 회장인 리샤오린은 중국에서 ‘전력 여왕’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총리를 지낸 아버지를 등에 업고 부를 축적, 해외에 재산을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았다.


The doors were open. (Reuters/Denis Balibouse)


시진핑 주석이 ‘호랑이 사냥’이라 불리는 거물 부패사범과의 전쟁에 나서면서, 리샤오린을 비롯해 전력·석탄·에너지 기업들을 장악한 리 전총리 일가는 궁지에 몰리고 있었다. 사정의 칼날이 리 전총리 일가를 직접 겨냥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지난해 10월 호주에서 리 전총리 측근이 체포되면서 중국 당국의 해외 도피 부패사범 검거, 이른바 ‘여우 사냥’이 본격화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HSBC 리크’가 터진 것이다.

 

영국 가디언, 프랑스 르몽드 등은 미국에 본부를 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함께 HSBC 비밀계좌 리스트를 지난 8일 보도했다. 폭로된 리스트에는 총 10만6000개, 203개국 예금주들의 계좌정보가 들어 있다. 이 계좌들에 담긴 자산총액은 1180억달러에 이른다. 한국인 계좌도 20여개 들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금주들 중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측근을 비롯해 유명인사들과 부패한 정치인들, 심지어 오사마 빈라덴을 지원해준 사우디아라비아 기업인들도 있었다. 

 

리스트는 HSBC 스위스 법인에서 일하던 이탈리아·프랑스 이중국적자인 컴퓨터 엔지니어 에르베 팔치아니(43)가 2007년 회사 고객 계좌정보를 해킹해 빼낸 것들이다. 팔치아니는 이 자료를 가지고 프랑스로 도주했다가 스위스의 체포 요청을 받은 프랑스 당국에 붙잡혔다. 그러나 그가 가진 자료 내용을 알게 된 프랑스 측은 스위스에 그를 인도하는 대신에 자국민 탈세자 세금추징에 이용했다.



당시 프랑스 재무장관이던 크리스틴 라가르드 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갖고 있던 팔치아니의 자료들은 ‘라가르드 리스트’라는 이름으로 2010년 각국에 전달됐다. HSBC 본사가 있는 영국 정부는 명단을 건네받고 1000여명에게서 못 받은 세금 1억3500만파운드를 ‘조용히’ 추징했다. 기소된 사람은 단 한명 뿐이었다. 리스트는 결국 ICIJ에 넘겨졌다. HSBC의 부도덕한 행위와 함께, 겉으로는 부자들 세금을 걷겠다면서 밑에서는 쉬쉬해온 각국의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특히 영국에선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정권이 거센 역풍을 맞았다. 2011~2013년 HSBC 회장을 지낸 스티븐 그린이 캐머런 내각의 통상장관을 맡기까지 했던 것이다. 야당인 노동당은 HSBC에 대한 의회 차원의 조사에 들어가기로 했으며, 그린을 청문회에 세울 방침이다. 벨기에는 HSBC 스위스법인 간부들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프랑스의 마누엘 발스 총리는 탈세조사뿐 아니라 “유럽 차원의 대응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미국서도 상원 금융위원회가 정부에 탈세 혐의 예금주들 조사를 촉구했다.



HSBC는 자산규모 2조7584억달러로 중국공상은행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은행이다. 은행 측은 “탈세와 돈세탁에 악용되지 않도록 예방조치들을 취하고 있다”면서 투명성을 강화하고 당국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유출된 자료를 통해 은행 직원들이 ‘세금 우회 수법’ 등 탈세 상담까지 했던 사실이 드러나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리크’의 주역인 팔치아니는 ‘프랑스의 에드워드 스노든’으로 떠올랐다. 그는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 체포됐다가 풀려났으며 지금은 스페인 좌파 정당들과 반부패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와 협력해 레바논 무장조직 헤즈볼라 계좌정보를 건네는 등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스위스 검찰은 지난해 12월 그를 은행기밀보호법 위반과 산업스파이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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