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세 사람 DNA 가진 아기’ 영국서 첫 허용...기술의 영역으로 내려온 출생의 신비

딸기21 2015. 2. 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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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유전자 ‘조작’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영국이 세계 최초로 ‘세 사람의 DNA를 가지고 태어나는 아기’를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영국은 이미 형제자매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태어나는 ‘치료용 맞춤아기’를 허용한 바 있다. 황소의 배아에 인간의 유전자를 집어넣는 ‘미노타우로스 연구’, 실험실에서 제조된 정자 등 과학기술은 이미 인공생명체를 만들어내는 문턱까지 가 있다. 그만큼 논란도 크다.

 

영국 의회 통과… 의료계 환영, 종교계 우려 목소리


영국 하원은 3일 유전적 이상이 있는 여성의 난자를 ‘수리’해 임신할 수 있게 한 ‘인간생식배아법’ 수정안을 찬성 382표, 반대 128표로 통과시켰다. 이로써 영국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이같은 생명공학기술을 허용하는 나라가 됐다고 가디언 등이 보도했다. 법안은 미토콘드리아 이상이 있는 여성의 난자에서 유전정보가 담긴 핵을 빼내, 유전적 이상이 없는 여성의 난자에 이식할 수 있게 했다. 건강한 기증자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뒤 임신을 원하는 여성의 핵을 집어넣어 건강한 난자를 만드는 것이다. 이 난자가 수정되면 엄마아빠의 유전정보가 고스란히 담긴다. 하지만 미토콘드리아는 기증자의 것이기 때문에, 극히 일부이지만 기증자의 유전정보도 들어가게 된다.



세포 안의 미토콘드리아는 모계로만 유전되는데, 미토콘드리아에 유전적 이상이 있는 여성은 건강한 아기를 출산하기 힘들다. 영국에서만 매년 150명 정도의 태아가 이로 인해 숨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전적 이상을 가진 이들의 출산을 돕는 기술을 허용하라는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는 지난해 2월 미토콘드리아 대체를 통한 인공수정을 허용하는 법안을 내놨다. 

 

법안이 통과되자 불임부부를 위해 과학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해야한다고 주장해온 사람들은 환영했다. 하지만 영국 국교회인 성공회와 가톨릭은 이런 시술 과정에서 배아 파괴가 늘어날 것이며 더욱 근본적으로는 인간 유전자의 ‘조작’을 가능하게 한 것이라 비판한다. 생명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적용에 우려를 표해온 시민단체나 과학자들도 “부모의 의도에 따라 유전자가 조작된 ‘디자이너 베이비(맞춤형 아기)’로 가는 길을 열었다”며 반발하고 있다. 법안은 상원 표결을 거쳐야 하지만 하원 결정이 그대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구세주 아기, 인공정자, 미노타우로스 배아...


영국은 2008년 5월 ‘치료용 맞춤 아기’ 출산을 허용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불치병에 걸린 손위 형제ㆍ자매를 살리기 위해 인공수정으로 시험관아기를 만드는 것을 합법화하기로 한 것이다. 형제자매를 살리기 위해 태어난다는 점에서 이런 아이들은 ‘구세주 아기(saviour sibling)’라 불리기도 한다. 물론 이렇게 태어난 아이도 정상적으로 자라나지만, 출산 과정에서 조직형이 치료대상인 형제나 자매와 맞지 않을 경우 수정란이 폐기되기 때문에 반대론이 적지 않다. 아직까지 구세주 아기들은 형제자매에게 태반과 골수를 제공하는 선에 그치고 있지만 신장을 비롯한 이식용 장기를 구하기 위해 아기를 낳겠다는 부모가 있을 때 이 또한 허용해야 하느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많다.

 

디자이너 베이비 논란은 영국만의 일이 아니다. 일본산부인과학회 윤리위원회는 2014년 11월 ‘착상 전 검사’ 임상연구 계획안을 승인했다. 체외수정한 수정란의 염색체를 검사해 이상이 없는 수정란만 골라 자궁에 착상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체외수정으로 아기를 낳는 이들이 늘고 있으나 성공률은 10% 안팎이다. 이로 인해 수많은 불임부부가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들여, 고통스러운 과정을 여러 번 거치는 것이 현실이다. 불임부부들에게 이런 연구는 희소식이 될 수 있다. 반면 이런 검사가 결국은 미래에 ‘아이 골라 낳기’로 나아갈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기술과 윤리의 접점, 투명성과 민주적 토론에서 찾아야

 

과학자들은 인공적으로 정자를 만들기도 했다. 2009년 7월 영국 과학자들이 배아줄기세포를 이용,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인간 정자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과학자들은 시험관아기(IVF)에 빗대 ‘시험관(IVD) 정자’로 이름 붙였다. 이 기술이 발달하면 불임 남성의 유전자로 정자를 만들어 인공수정이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더 큰 저항을 부르는 연구도 있다. 역시 영국에서 2006년 과학자들이 소의 배아에 인간 DNA를 접목시키는 실험에 나섰고, ‘의료 목적에 한해’ 허용한다는 결정을 받아냈다. 과학자들은 쉽게 구하기 힘든 인간 배아가 아닌 소의 배아를 이용하는 것일 뿐이라 주장한다.

 

이런 연구들에 대한 생각은 첨예하게 갈린다. 가장 앞서 나간 영국의 경우 인간생식 연구의 윤리문제를 전담, 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인간생식배아관리국(HREA)이라는 기구와 정부 산하 여러 위원회가 있고, 세 부모 DNA 아기 문제를 놓고서도 정부가 법안을 내놓은 뒤 1년 가까이 공청회 등 여론을 반영하는 절차를 거쳤으나 여전히 반발이 크다. 민주적 토론과 과학기술에 대한 감시, 투명한 공개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기술의 안전성 문제도 있다. 영국 서섹스대 테드 모로 박사는 BBC에 “세 부모 DNA 수정란 기술이 안전한지는 아직도 확신할 수 없다”며 사람들의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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