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파리 테러 뒤 극우파 바람... 두러움에 떠는 유럽 무슬림 이민자들

딸기21 2015. 1. 12.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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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 같은 일이다. 우린 늘 차별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지금의 상황은 두렵다.” 


프랑스 파리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일어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대규모 100만명의 시위가 프랑스 전역에서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 누구보다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은 독일의 터키계 이민자들인 듯합니다. 베를린에 사는 29세 터키계 여성 시린 사크는 12일 BBC방송에 최근의 상황을 ‘공포영화’라 표현했습니다.

 

'통합되기 싫으면 나가라' 극우 운동 '페기다' 바람


이날 독일 드레스덴 등 곳곳에서는 ‘페기다(PEGIDA)’의 시위가 벌어질 예정입니다. 페기다는 ‘서구의 이슬람화에 맞선 애국적 유럽인들’이라는 반이슬람 정치운동의 약칭으로, 지난해 10월 드레스덴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지난해 10월 20일 첫 집회 참석자는 350명에 불과했으나 지난 5일 집회에는 1만8000명이 모였습니다. 파리 테러 뒤 처음 열린 12일 집회에는 사상 최대 인원이 참석할 것으로 보입니다.


www.tagesschau.de


하이코 마아스 법무장관이 이 집회를 취소하라고 요구했지만 페기다 측은 거부했다고 도이체벨레는 전했습니다. 지난 10일 드레스덴에서 3만5000여명의 시민들이 페기다의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맞시위를 벌이기도 했으나, 극우파의 시위는 갈수록 확산되고 있습니다. 300만명에 이르는 터키계 이민자들은 파리 테러가 불러온 역풍에 떨고 있고요.


페기다 스스로가 밝힌 '강령'에 따르면, 이들은 전쟁 난민이나 정치적 박해에 직면한 망명자에게 피난처를 내주는 것에는 동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여성혐오와 폭력적인 정치사상에 저항하는 것이지, 이곳에서 통합돼 살고 있는 무슬림들에게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동시에 이들은 "범죄를 저지르는 망명신청자나 이민자들에게는 무관용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독일, 나아가 유럽의 분열 보여주는 페기다 운동


파리 테러 전인 지난 5일자 기사에서 도이체벨레는 난민들에 대한 독일인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페기다 운동의 바탕에 깔려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비엘레펠트 대학의 사회학자 안드레아스 치크는 이 신문에 "독일인들의 40%는 난민 신청자들이 고국에서 박해를 받았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여론조사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페기다 운동은 많은 독일인들의 이민자에 대한 오해를 보여주는 징후라고 설명합니다.


난민들이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이주자들이 '여성혐오'를 하고 '폭력적인 정치사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싫은 것이라고 페기다는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문화적 거부감이 큰 것이겠지요. 그 이면에는 유럽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깔려 있을 것이고요. 역시 같은 신문 기사에 소개된 것입니다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독일인 절반 이상이 "이웃에 모스크가 들어오는 것은 싫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베를린 훔볼트 대학 사회학자 나이카 포루탄은 "응답자의 40%는 부모 양쪽이 독일인이어야지만 진짜 독일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유럽연합 내 '자유이동'에도 빗장 거나


페기다의 시위는 유럽 반이민 바람을 보여주는 상징에 불과합니다. 반대 운동도 거세게 일고 있고요. 그러나 파리 테러 뒤 우려됐던 극우파의 부상과 반이민·반이슬람 감정이 결국 현실화되기 시작했습니다. 


2004년 마드리드 동시다발 테러를 겪은 스페인은 유럽 내 자유로운 이주를 보장한 ‘솅겐 조약’ 개정론을 앞장서 들고 나왔습니다. 호르헤 페르난데스 디아스 스페인 내무장관은 11일 일간 엘파이스 인터뷰에서 “국경 통제를 강화하고 솅겐 조약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프랑스 극우파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도 조약을 개정하자고 주장했습니다.



1995년 3월 발효된 이 조약은 유럽연합(EU) 국가들끼리 국경을 열어 회원국 국민들의 자유로운 역내 이동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회원국들은 스웨덴 등 느슨한 이민정책을 가진 나라들을 거쳐 넘어온 이주자들이 유럽 전역으로 퍼진다며 개정을 요구해왔습니다. EU와 미국·캐나다는 11일 파리에서 내무장관 회의를 열고 테러범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 통제를 강화하기로 합의했으며, 공동성명에서 솅겐 조약을 개정할 수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극우파 세력 확대, 유럽 정치지형도 바뀔 듯


파리 테러는 유럽 정치지형의 변화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11일 파리에서 열린 테러 희생자 추모행진에 프랑스의 여러 정당 지도자들이 함께 했으나 르펜 국민전선 대표만 배제됐습니다. 르펜은 오히려 이를 호재로 삼으며 “국민 통합은 정치 술수에 불과했다, 가면이 벗겨졌다”며 맹공했습니다. 르펜은 2017년 대선 유력후보로 지지율이 30%에 육박합니다. 스웨덴에서는 모스크가 공격을 받았고, 네덜란드에서는 악명 높은 극우파 선동가 게르트 빌더스가 "유럽은 전쟁 중"이라며 반이민 정서를 부추겼습니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파리 테러 주범들이 밝혀지기도 전에 유럽에서는 반이민 포퓰리즘 정당들에 대한 지지가 올라갔다"고 썼습니다. 물론 이것이 온전히 파리 테러 때문만은 아닙니다. 극우파는 지난해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약진했지요. 2009년 유럽 경제위기가 시작된 이후 유럽에서는 반이민 정서가 크게 늘었습니다. 시리아 내전이 격화되면서 최근 무슬림 난민들이 급증한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난 몇달 사이에만 20만7000명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의 이주를 시도했습니다. 그 중 일부는 열악한 불법 이주선이 난파해 목숨을 잃었지만요.



올해 유럽에서는 영국 등 8개국에서 총선이 실시됩니다. 극우파가 처음으로 EU 회원국 정부에 입성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11일 대행진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등 유럽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해 ‘연대’를 강조한 데에는 각기 자국 내 극우파들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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